이번호를 여는 글 제목은 '정확하게 이해하기'다. 이해하기도 힘든데,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더 힘들다.


  내 관점을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어떤 글도 내 관점을 거쳐 이해되기 때문에, 나는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경우에 대화가 필요하다. 내 이해와 네 이해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로 가는 것. 하지만 이런 대화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여유에서 나온다.


  영화 '미나리'로 요즘 많이 언급되는 배우 윤여정이 했다는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여유가 있어야 이해를 한다고, 그것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나라 인권을 문제 삼는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하는 그 행동들이 혐오행동이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이들에게는 삶의 여유가 있을까? 오히려 살기 힘들기 때문에, 그 이유를 강한 자들에게서 찾고, 그들을 향해 주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감사뿐만이 아니라 이해할 마음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빅이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음식에 관한 글이 있는데,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 잘 가지 못하는 디저트 음식을 파는 곳을 소개하는 글. 그 글을 보면서 과연 노숙인들 자활을 돕는 잡지인 [빅이슈]에서 그런 사치스럽다면 사치스러운 음식에 대한 글을 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아니다. [빅이슈]이기 때문에 그런 글을 실어야 한다. 노숙인이라고 해서 무료 급식소에서만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 역시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는 빈부귀천이 없다.


[바베트의 만찬]이란 소설을 보라. 최선을 다해 고급스러운 음식을 대접하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바베트. 자신의 전재산을 음식을 장만하는데 쓰고도 만족해하지 않던다. 그것을 사치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자신에게 베푸는 만찬이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만찬. [빅이슈]에 실리는 음식에 관한 글을 보면서 그렇게 [바베트의 만찬]을 떠올리고, 그런 글들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호에서 문구, 다이어리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만년필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린 시절 펜촉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쓰던 모습, 펜촉을 꽂을 펜대를 사기도 했지만, 모나미 볼펜 뒤에 꽂아 쓰던 기억. 그리고 한 쪽을 쓰기 위해서 여러 번 잉크를 찍어야만 했던 기억. 그렇게 펜촉으로 글씨를 쓰면 빨리 쓸 수가 없다.


매끄럽고 빠르게 쓱쓱 써지던 볼펜과 달리 펜으로 쓰는 글씨는 천천히 쓸 수밖에 없었다. 글씨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는데, 펜촉에서 벗어난 건 만년필을 선물 받고부터... 한번 잉크를 넣으면 꽤 오랫동안 쓸 수 있었던 만년필은 새로운 세계였다.


펜촉보다는 빠르게 쓸 수 있지만 볼펜보다는 느리게 쓰던 만년필... 이번 호에서 그런 기억을 소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펜촉으로나 만년필로 글씨를 쓴다는 것도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여유는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내 맘 속에 비워둔다. 나를 꽉 채워 더이상 다른 존재가 들어올 수 없게 하지 않고 나를 비워 다른 존재로 하여금 나를 채울 수 있게 한다.


이런 비움은 곧 여유고, 여유는 내 관점만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자연스레 이해를 동반하게 된다. 이해를 하게 되면 많은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될 테니... [빅이슈]를 만나면서 내 맘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여러모로 고마운 [빅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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