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지구상에는 없는 땅이 나온다. 그러나 지구상에 없다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상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우리들이 겪는 일상임을 깨닫게 하는데 이 소설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제목은 '기프트'다. 우리말로 하면 선물인데... 어떤 선물? 바로 내게 주어진 능력이다. 그것은 선물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을 행할 때 대가로 주어야 할 것도 바로 선물이다.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선물에는 이미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선물 하면 한쪽 면만 보는 경향이 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이 둘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선물이 지닌 의미가 산다. 단지 주고 받는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선물 자체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에는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고원지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소위 환타지로 불리는 소설에서는 특별한 종류의 인간들이 나오고, 이들과 대비되는 보통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는 보통 사람들이고, 특별한 사람들은 주술사나 그밖의 능력을 지닌 인간들로 나온다. 능력자들은 고지대에 살고, 보통 사람들은 저지대에 산다. 그리고 그들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세상.


그런데 이것이 환타지 소설에서만 나올까? 우리들 일상생활에서도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서로가 서로를 경원하면서 다르게 살아가는 현실. 또 능력자들이라고 해도 그 능력으로 인해 성공하는 사람과 파멸해 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그 능력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행로.


이것이 바로 이 소설 '기프트'다. 지구상에 없는 도시와 사람들을 등장시켰지만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기프트', 선물은 대부분 파괴적이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선물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만 전승이 된다. 이들은 이 선물을 받았음을 보여주면 권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선물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다. 너무도 뛰어난 '되돌림' 능력을 받았지만 파멸하고 만 주인공 오렉의 고조할아버지 카다드. 오렉은 이런 카다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의 파괴력에 대해 공포심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에 따라 선물의 의미를 파악하고, 공동체에서 생각하는 선물의 의미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공동체가 생각하는 선물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자신은 모자란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처럼 오렉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지낸다.


선물을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공동체 생활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지도 못하니, 오렉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을 한 방향이 아니라 양 방향으로, 기존의 관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을 오렉을 통해 알려준다.


어찌보면 한 남자 아이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성장에 도움을 주는, 또 남성 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깨닫게 되는 것을 이미 깨우친 여성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물이 지닌 양면성을 지적한 것도, 끝까지 주인공과 함께 하는 인물도 그라이라는 여성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오렉이라는 '되돌림'이라는 파괴의 능력을 계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그 인물이 그러한 파괴 능력을 선물로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데, 그라이의 선물은 '부름'인데, 이는 동물을 불러내 사냥꾼들에게 넘기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물의 마음을 읽고 동물과 함께 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 점을 그라이는 깨닫고, 자신은 사냥을 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쓰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되돌림' 능력은 어떻게 될까? 오렉은 이 파괴의 능력을 거부하려 한다. 자신에게 엄청난 파괴의 능력이 있다고, 눈을 가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파괴의 선물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그는 언어의 아름다움에 빠진다. 창작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가 받은 선물은 있는 것을 파괴하는 되돌리기가 아니라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되돌리기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데 그가 겪는 수많은 일들이 이 소설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이 파괴적인 능력을 진정한 선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를 마음 졸이면서 읽게 된다.


여기에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작가는 답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둔다. 그러다가 한 순간 한 단계 성장한 주인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사람이 지닌 능력이 이렇듯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집단이나 사회, 국가는 어떨까? 한쪽면만을 보고, 그것만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오히려 다른 면이 있음을 말하고, 그 다른 면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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