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 젊은 영혼들에 빚진 한국 현대사
안치용.바람저널리스트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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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란 현재보다는 미래에 가까운 존재다. 가깝다는 말보다는, 현재를 살기보다는 미래를 사는 존재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들에게는 현재를 딛고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하여 청년들은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죽음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미래를 현재가 잡아끌어 주저앉히는 격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죽음으로 현재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에게는 청년들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보여주고 이끌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청년들의 죽음이 미래의 좌절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때가 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동안 가려졌던 현재의 그늘들이 드러나고, 그늘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한 청년의 죽음은 개인으로는 좌절이고, 멈춤이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함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또 청년들로 보면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법에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비록 오랜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전태일이 외쳤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말, 노동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제목에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이라고. 개인의 죽음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의 토대가 되기에 '고발'이란 말을 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을 지닌 인물로 이 책에 나오는 '윤상원'을 들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끝까지 도청을 지켰던 청년. 


그가 인터뷰에서 '오늘의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83쪽)


윤상원은 자신의 죽음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었고, 그의 죽음과 또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많은 이들의 죽음은 실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죽음을 맞은 청년도 있지만, 그런 의식이 없더라도 한 청년(여기서는 청년이라는 말이 특정한 성별을 지닌 젊은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청년은 특정한 성별이 아닌 그냥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의 죽음이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윤금이'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신효순, 심미선'은 우리에게 미군은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가 생각하고, 개선하게 한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흥순'을 통해서는 도시빈민들의 문제가 드러나고, '버스 안내양, 김경숙, 박영진, 문송면, 황유미, 황승원, 구의역 김 군, 자이븐 프레용' 등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아직도 이 문제는 진행 중이어서 우리가 관심을 지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아직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내세우지 않거나 또는 전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생각하게 한 청년들 이야기도 있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김주열, 이한열'과 같은 청년들 이야기, 외국에 파견나간 노동자들 이야기도 있다.   


미래에 살아가야 할 청년이 현재에 머물게 되는 죽음. 그러나 그 죽음으로 현재의 민낯을 드러내고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 청년들.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 많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구나. 먼 과거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에도 계속 이런 죽음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죽음들을 해결하지 못한 빚이 있구나. 이 빚을 갚아야 이들의 죽음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활짝 열어젖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제시대 윤동주부터 시작한다. 청년 윤동주,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했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런 청년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런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만드는데 참여하도록 한다.


청년의 죽음을 다룬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단지 이런 죽음이 있었다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빚을 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빚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더 큰빚이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여전히 청년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니 그 빚을 갚아야지 이런 사태를 벗어날 수 있다.


빚 갚음. 그것은 사회의 어둠을 보고, 어둠을 몰아낼 빛을 우리가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촛불 경험이 있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쓰여진 시'에 나오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와 같은 청년들을 이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곳곳에서 만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가 그들의 빚을 빛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않음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원했던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죽음으로 인해 별이 되어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 청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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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호수를 보고 놀란다. 264호다. 한 달에 두 번 발간이 되니, 일년이면 24권이 나온다. 10년이면 240권이다. 여기에 24권이 더해졌다. 한 해가 더해졌으니, 11년째 발간되고 있다.


  예전에 발간되던 잡지들이 휴간이 되거나 정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격월간지가 계간지가 되기도 했고.


  하나하나 내 곁을 떠나간 정기간행물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런데 빅이슈는 여전하다. 처음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별다른 생각없이 구입했는데, 읽으면서 기회가 되면 구입해야지 했던 기억.


  빅판들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 나들이를 하지 않은지도 오래지만, 서울 나들이를 하더다로 빅판들이 판매하는 지하철 역에 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탓도 있기는 하겠지만, 빅판들을 통해 구입하지 못하면 정기구독을 하면 된다. 직접 대면해서 구입해야 마땅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직접 만나기가 힘들다면 정기구독을 해서 빅이슈를 만나는 일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한 해째 만나오고 있다. 즐거운 만남이고, 다음 만남을 기대하기도 한다. 여기에 표지 인물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대부분 기꺼이 표지 인물이 되기를 승낙했다는데, 우리 사회에 정(情)이 메말라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고맙다.


정, 사람들 사이에 규칙만이 있으면 얼마나 삭막할까? 난세에 법을 중시하는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평화로운 시기에는 법보다는 사람들 간의 정이 우선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때로는 이런 정으로 인해서 피곤하기도 하지만, 정때문에 더 돈독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빅이슈를 통해서 깨닫는다.


이번 호에는 K-콘텐츠에 대해서 기획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 예술이 이제는 우리나라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 문화가 외국으로 나아간다. 그것도 열광적으로.


또한 외국 방송들이 이제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너무도 많은 방송들. 지상파 몇 개만을 방송 전체인 줄 알고 자랐던 세대들에게는 지금 이 방송들 이름을 기억도 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외국 방송들에 우리나라 드라마, 가요, 예능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야말로 세계화 시대다. 세계화를 우리나라 문화가 주도하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방송에 대한 소개, 왜 우리나라 프로그램이 세계에서 인기가 있을까를 분석한 글들. 빅이슈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듯이 방송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책임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방송매체들 속에서 어떤 책임감을 지니고 방송을 접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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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6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추카합니다 ^ㅅ^

kinye91 2021-12-16 15: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2-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즐겁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kinye91 2021-12-16 17: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님도 즐겁고 행복한 연말 되길 바랄게요.

쎄인트saint 2021-12-16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2-16 17: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 2021-12-17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서재의달인 축하드려요 ^^

kinye91 2021-12-17 05: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진실에 갇힌 남자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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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우선 보통사람과 다르다. 대학 때 미식축구를 한 거한이다. 덩치가 다른 사람을 압도한다. 여기에 미식축구 경기 중에 다쳐서 뇌의 한 부분이 특수한 작동을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뇌를 지니게 된다.


잊지 않는다는 일,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좋은 기억이 있으면 그것을 잊지 않으니 축복이겠지만, 마찬가지로 안 좋은 기억을 잊을 수가 없으니 저주이기도 하다. 이런 기억 능력은 양날의 검이다. 어떤 쪽으로 제어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이 달려 있다.


데커라는 인물. 기억과 덩치. 그는 형사로 일한다. 형사, 사소한 단서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직업. 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형사로서 덩치와 기억은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데커는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했다. 이처럼 치명적인 사건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견디기 힘든 기억이다. 최소한 데커에는 망각이 없으므로. 이 기억 속에서 그는 허우적 댈 수밖에 없다.


딸의 생일에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와 무덤에 꽃다발을 놓는 데커에게 13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암으로 인해 가석방이 되었다고 찾아와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무죄임을 밝혀달라고.


데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재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무죄라고 주장한 사람이 살해당한다. 뭔가 이상하다? 다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반전에 반전,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범인은 누구인가? 그 범인을 추론하는 재미로 소설을 계속 읽기 시작한다. 뜻밖의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그리고 그들이 또 살해당하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데... 여기에 반전이 또 일어난다. 범인에 대한 윤곽, 13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윤곽이 점점 뚜렷해진다. 범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그래, 이 소설은 그런 재미로 읽어야 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나? 미국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갱단, 마약, 그리고 돈... 결국 돈이라는 생각으로 사건이 정리되어 갈 무렵. 아니다. 돈이. 더 다른 문제가 있다.


소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미국 사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까지 끌어들인다. 좀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고, 007시리즈를 소설로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소설을 전개했으면 훨씬 좋았겠단 생각을 하는데...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니까. 그러니 오히려 살인과 경제를 연결짓고, 그 매개가 되는 돈이 사람들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서술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이런 국가간의 음모까지 나아간 점이 좀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전까지 추리를 해나가고, 범인의 윤곽을 밝혀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범인이 누구일까를 추론하는 재미까지 있는데... 결말을 감안하고 읽으면 그런대로 흥미로운 추리소설이다.  


데커가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소설을 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고,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자신의 아픈 기억을 극복해가는 모습이 잘 표현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중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열린 결말이다. 아마도 데커라는 인물을 통해 다른 추리소설들이 계속 나오리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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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아이들에게 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한다. 학교에 진로 교육이 들어오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공부하고,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해 보라는 취지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질문에 답할 시간이 없다. 오로지 시험을 향해 달리고 있을 뿐. 왜 자신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할 뿐.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렇다.


  학교에서 시달리고, 학원에서 시달리고, 엄청나게 많은 숙제 속에서 도무지 질문을 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다. 질문은 얽매임에서 벗어났을 때 나오는데, 아이들을 옭아매고 있으면서 왜 너희들은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타박한다. 질문을 할 시간 여유를 주지도 않으면서.


그러니 아이들을 좀 여유롭게 놓아주자. 정말로 심심해서 다른 여러 가지를 찾아볼 수 있게. 그렇게. 청소년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시간을 주고 있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질문할 시간을 갖게 하는가? 질문이 있어야 답을 찾을텐데... 시험지에서 찾는 답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답을 찾는, 아니 답을 만들어가는 그런 생활을 하게 해야 하는데...


한상권이 쓴 청소년시집을 읽다가 이 시를 읽고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단일한 길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는지...


『무소유』를 읽는 시간


『무소유』를 읽다가

종이 치자 너는

복도로 따라 나왔다.

저는 그분처럼 살기 싫어요.

급할 땐 버스에서 내려

택시라도 타야 하는 거잖아요.

물론 그렇지.

다리를 다쳐 병원 가려는데

택시비 아끼려 걸어갈 순 없잖아요.

당연하지.

하지만 어떤 날은

주변을 돌아보며 손 내밀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잖아.

언제는 앞만 보고 달리라면서요.

문제는 집착, 그것이

저녁 강의 물살보다 앞서면

밤낮없이 세운 강의 역사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거지.

너는 너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생각인데?


셈법이 복잡한 건 싫어요.

닥치고 돈 벌 거예요.


『무소유』 법정 스님 수필집


한상권, 그 아이에게 물었다. 창비교육. 2018년. 초판 2쇄. 46-47쪽.


이렇게 질문을 하는 학생이 이 시집에 많이 등장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만의 생각을 지닌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학생들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시적 화자는 바람직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질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어른. 그런 어른이 필요한 시대이기도 한데... '닥치고 돈 벌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이 시 속에 등장하는 학생은 한번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질문을 하고 있으니...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닥치고 돈 버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돈으로 인해 생활이 힘들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회에서 자신의 배당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 그런 배당을 정책으로 실현하도록 한다면 적어도 돈때문에 다른 일을 포기하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또한 '닥치고 돈 벌 거예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되리라.


그런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도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은 어린이, 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상권 시집을 읽으며 '그 아이에게 물었다'는 말을 '우리에게 물어야 한다'고 바꿔 생각해 본다. 우리 역시 어느 순간 질문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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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ms1123 2021-12-1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이에게 물었다..
 
로봇과 제국 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정철호 옮김 / 현대정보문화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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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서  2권.


다시 오로라 행성으로 오게 된 글래디아와 다닐, 지스카드. 오로라 행성에서는 로봇은 소유자의 소유물에 불과하니, 사실 오로라 행성의 지배자들은 글래디아에게 오로라 행성으로 귀환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면 두 로봇은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


왜 갑자기 글래디아를 오게 했을까? 추리소설처럼 추론하게 만든다. 다닐과 지스카드가 추론을 하고, 글래디아의 추론은 핵심에서 벗어나기에 논의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는 지구를 파괴하려는 맨더머스(그의 상급자 아마디로)와 지스카드의 능력을 알아채고 자신의 로봇으로 만들려는 바실리아가 등장한다.


그들은 지구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스카드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로라에 돌아온 지스카드를 바실리아가 자기 소유물로 만들려고 하지만, 지스카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바실리아의 기억을 지우고, 글래디아로 하여금 지구로 향하게 한다.


이제 지구의 이야기... 지구에 도착하여 겪게 되는 일들은 그다지 흥미진진하지 않지만, 맨더머스의 음모 장소를 찾아가는 이야기에서 '스리마일'섬이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시 아시모프에게는 핵발전이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았나 보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설정된 장소 이름이 '스리마일'이니, 스리마일 핵폭발 사건은 우리에게도 알려진 사건 아닌가. 그러니 아시모프가 지구가 방사능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이렇게 소설로 표현했고, 우주인과 이주민의 갈등은 당시 지구에서 벌어지던 냉전을 연상하게 한다. 즉 SF소설이라고 하지만 광활한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닐은 거의 확고하게 로봇0원칙을 확립한다. 그것은 인류에게 위해를 가하는 인간에게는 해를 입혀도 된다는 원칙. 즉, 개인보다는 인간이라는 집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는 인간을 힘으로 제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 원칙에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로봇0원칙은 불완전하다. 지스카드는 소멸된다. 자신의 능력을 다닐에게 전수하고서.


이제 다닐은 살아남아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구 멸망은 끝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은하제국을 건설하는 첫걸음이 된다. 그것을 지켜보고, 평화로운 은하제국이 건설되고 유지되도록 하는 일, 다닐의 일이다.


이런 다닐을 알게 되면 왜 [파운데이션]에서 다닐이 계속 나오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아시모프 소설은 서로가 서로를 보충해주고 있다. 발표된 순서대로 읽으면 사건의 순서는 뒤죽박죽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 읽어도 좋다. 읽으면 읽을수록 빈 자리를 메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1권에서 완만하게 진행되던 사건 전개가 2권에서는 급격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로봇들이 사건의 전면에 나선다. 인간과 대등하게, 때로는 인간보다 우위에서. 자,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로봇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토론거리로 이 책을 참고할 수 있다. 로봇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혐오하는 이주민 사회와 거의 모든 것을 로봇에 의존하는 우주인 사회. 


두 사회는 로봇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반대일 것 같지만, 사실 두 사회 모두 로봇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고 인간의 소유물, 즉 물건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다닐과 지스카드는 생각할 줄 아는 로봇이다.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아는 지스카드는 마음도 있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들을 단순하게 소유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고 더 개량된 로봇들과 살게 될 때 어떤 관점에서 로봇들과 지내야 할까? 로봇을 이용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나?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단지 SF소설이라고, 상상 속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일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 소설에서 인류가 저지른 어리석은 짓들을 우리는 따라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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