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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 젊은 영혼들에 빚진 한국 현대사
안치용.바람저널리스트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21년 6월
평점 :
'청년'이란 현재보다는 미래에 가까운 존재다. 가깝다는 말보다는, 현재를 살기보다는 미래를 사는 존재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들에게는 현재를 딛고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하여 청년들은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죽음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미래를 현재가 잡아끌어 주저앉히는 격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죽음으로 현재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에게는 청년들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보여주고 이끌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청년들의 죽음이 미래의 좌절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때가 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동안 가려졌던 현재의 그늘들이 드러나고, 그늘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한 청년의 죽음은 개인으로는 좌절이고, 멈춤이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함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또 청년들로 보면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법에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비록 오랜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전태일이 외쳤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말, 노동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제목에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이라고. 개인의 죽음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의 토대가 되기에 '고발'이란 말을 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을 지닌 인물로 이 책에 나오는 '윤상원'을 들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끝까지 도청을 지켰던 청년.
그가 인터뷰에서 '오늘의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83쪽)
윤상원은 자신의 죽음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었고, 그의 죽음과 또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많은 이들의 죽음은 실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죽음을 맞은 청년도 있지만, 그런 의식이 없더라도 한 청년(여기서는 청년이라는 말이 특정한 성별을 지닌 젊은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청년은 특정한 성별이 아닌 그냥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의 죽음이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윤금이'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신효순, 심미선'은 우리에게 미군은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가 생각하고, 개선하게 한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흥순'을 통해서는 도시빈민들의 문제가 드러나고, '버스 안내양, 김경숙, 박영진, 문송면, 황유미, 황승원, 구의역 김 군, 자이븐 프레용' 등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아직도 이 문제는 진행 중이어서 우리가 관심을 지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아직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내세우지 않거나 또는 전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생각하게 한 청년들 이야기도 있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김주열, 이한열'과 같은 청년들 이야기, 외국에 파견나간 노동자들 이야기도 있다.
미래에 살아가야 할 청년이 현재에 머물게 되는 죽음. 그러나 그 죽음으로 현재의 민낯을 드러내고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 청년들.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 많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구나. 먼 과거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에도 계속 이런 죽음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죽음들을 해결하지 못한 빚이 있구나. 이 빚을 갚아야 이들의 죽음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활짝 열어젖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제시대 윤동주부터 시작한다. 청년 윤동주,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했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런 청년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런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만드는데 참여하도록 한다.
청년의 죽음을 다룬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단지 이런 죽음이 있었다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빚을 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빚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더 큰빚이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여전히 청년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니 그 빚을 갚아야지 이런 사태를 벗어날 수 있다.
빚 갚음. 그것은 사회의 어둠을 보고, 어둠을 몰아낼 빛을 우리가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촛불 경험이 있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쓰여진 시'에 나오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와 같은 청년들을 이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곳곳에서 만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가 그들의 빚을 빛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않음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원했던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죽음으로 인해 별이 되어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 청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