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만...

 

이름만 들었던 시인이다. 한수산 소설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힘든 세월을 보내다 돌아가셨다는.

 

그의 시집을 구해서 읽어본 기억이 없고, 그의 시도 기억에 없다. 다만, 이 구절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만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지용 문학관에 갔을 때 역대 정지용 문학상을 받은 시인들과 시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박정만도 있었다. 어떤 시로 받았는지, 정지용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던 시가 어떤 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헌책방에서 발견한 박정만 시집. 시집으로 발간된 것이 있어서 그것을 손에 들었다가, 박정만 시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시집 한 권으로 되겠나 싶어, 그 헌책방에 있는 박정만 시전집을 고르게 되었다.

 

값은 좀 비싸지만, 정가에 비하면 헌책방이라 60%정도이 가격으로 살 수 있기에 골라들게 되었는데... 700쪽이 넘는 책이기에... 읽기에 수월하지는 않았다.

 

내 취향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시들이 많았고, 또 특정한 시기에 엄청나게 많은 시가 쓰여졌기에, 그 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비슷해서, 특히나 시의 느낌이 너무도 어둡고 죽음을 연상시켜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읽는데 꽤나 오래 걸렸는데...

 

한 시인의 전 생애가 담겨 있는 시전집을 주마간산식으로 읽을 수는 없는 일.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맘이 내킬 때마다 손에 들고 읽었으니...

 

어둡다. 그가 받은 고문이 시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 한 시를 보면 이렇다.

 

수상한 세월1

 

그 막막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군화 신은 아이들이 내 몸뚱어리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상처를 내고

나이팅게일 그려진 안티플라민을 주었어.

 

1981년 5월. 국풍(國風)이 여의도에서 흐느끼던 날.

 

박정만, 박정만 시전집. 해토. 2005년 초판. 603쪽

 

그렇다. 남들은 축제라고, 그것도 관제 축제지만, 흐드러지게 놀 때 그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다 세상을 뜨고 마는데...

 

그런 고통들이 시에 오롯이 나타난다. 그래서 어둡다. 죽음이 늘 시에 나타난다. 그럼에도 그는 좀더 좋은 세상을 기대한다. 그 기대가 이루어질 때까지 살지 못하지만 말이다.

 

시인이 고문을 받는 시대... 이제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필화가 일어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가끔은 질서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될 때가 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데...

 

2010년이 넘은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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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텔레비전에서 특집으로 방영해주는 영화 몇 편을 보았다.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했으나 놓친 영화 몇 편과 이미 보았 음에도 또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

 

 그 중에 가슴을 울리는 영화는 역시 "7번 방의 선물"

 

 이 영화는 다시 보아도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볼 만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내용의 사실성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영화 내용만으로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눈물샘에서 눈물이 물 흐르듯 흘러내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재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과연 재판이 공정한가?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럼에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판이 필요하다면 그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몸을 구속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까지 재판은 이루어져 있다. 몸을 구속하는 것이야 잘못되었다는 판결이 나면 풀어주고,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해줄 수도 있겠으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나중에 잘못되었다고 판명이 되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

 

불가역성. 그것이 바로 사형제도의 문제이고, 재판의 무서운 점이다. 우리나라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속되고 있는 나라인데... 15년이 넘게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라고 하나, 법이 사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대통령이 사형집행에 서명을 하는 순간, 15년간 지켜온 사형 미집행국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영화 "7번 방의 선물". 되돌릴 수 없는 결과...

 

이 영화에도 변호사가 등장한다. 국선변호사. 돈이 없거나 변호사를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나라에서 선임해준 변호사. 대개는 성의 없이 변론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국선 변호사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니...

 

오히려 일부러 국선 변호사가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까... 왜냐하면 변호사란 힘없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사람도 꽤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의 국선 변호사는 정말로 지지리도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마지못해 맡았을 뿐이라는 점이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보이고, 또한 권력에 밀착해 있음이 보이고, 그리고 피의자의 혐의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최근에 나온 영화 "변호인"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는 변호사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런 변호사가 실제로는 없겠지만, 영화에서처럼 존재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우리는 영화 "변호인"의 변호사와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변호사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어떤 변호사가 우리의 권익을 위해 변론을 해줄 것인지 어떻게 아나? 변호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기들의 위치를 자리매김 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하여 설날에 본 영화때문에...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박원순이 쓴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두레

 

부제가 '한국인권변론사'이고 더 작은 제목은 '가시밭길을 선택한 변호사들'이다.

 

영화 "변호인"과 "7번 방의 선물"을 함께 본 사람이라면 그 영화 속의 변호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험난한 길을 자처했던 변호사들이 이야기니까.

 

이들로 인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조금은 줄었을테니까.

 

가장 좋은 사회는 변호사가 없는, 즉 재판이 필요없는 사회이겠지만, 그런 사회가 되기 전에 우선 제대로 돈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변호사들이 넘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때 두려움을 지니고 재판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혹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재판. 그것을 돕는 변호사, 그런 사람들로 충만한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지금도 재판은 넘치고 넘쳐 재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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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는데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1위란다. 무려 50%정도의 노인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바우만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소비자 사회로 전환이 되고,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가난조차도 이제는 나라가 책임을 져주지 못하는, 사회복지에서 노동복지로 전환이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는 더 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서 노인복지를 강조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나라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이 아직도 많다고 하니...

 

여기에 어떤 보도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의 평균 월 수입이 26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이나마 고물상이라고 하는 곳, 재활용센터의 운영 세금이 올라, 노인들에게 폐지 대금으로 지급하는 돈이 줄어들거라고도 하던데...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은 굶주리는 사람 모두를 먹이고도 남지 않는가. 그럼에도 골고루 분배가 되지 못하고, 음식 쓰레기로 버려지는, 또 사용 가능한 물품들이 그냥 폐기물이 되고 마는 현실 아니던가.

 

가난 구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일텐데...

 

사회복지가 확립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는 형제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두의 생활은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현종의 시집을 읽다가 이거네.. 이 시가 지금 우리 현실이네... 그럼 이런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없나?

 

정말로 이런 사람, 이런 정치가가 필요하네 하는 생각을 했다.

 

가난이여

-인도시편 1

 

석가모니는 저 가난을 구할 길 없어

스스로 헐벗었다

정치로도 경제로도 무슨 운동으로도

국가 해 가지고는 더더구나 안될 게 뻔하니

지상에 가난은 영원할 터이니

저 버림받은 가난을 어쩌나 어쩌나 하다가

도무지 그걸 구할 길 없어

스스로 ...... 헐벗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알몸이 빛났다

 

그리고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계사. 1989년 5판. 95쪽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이 단지 물질적 가난만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선 물질적 가난에 국한시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난해진 사람이 있다. 세상에 어떤 정치,경제,국가로도 가난을 해결할 수 없어 스스로 헐벗었다는 석가모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한 예수와 통하는 것이다. 즉,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영혼이 가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나도 가난해야 한다. 마치 중생이 병들어서 자신도 아프다던 유마거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려가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시는 석가모니를 들어서 가난에 대해서는 함께 가난해지는, 그들과 함께 할 때만이 가난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것을 모두 놓아버리는 경지.

 

이 경지에 도달했을 때 빛나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바로 석가모니의 삶이었다. 예수의 삶이었다.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물질적 가난, 정신적 가난을 극복하지 않겠는가.

 

다 내려놓아 더욱 빛나는 사람.

 

지금 사람들은 다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좋다. 적어도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이렇게 노인 빈곤율이 소위 잘사는 나라라는 OECD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정현종의 이번 시집에서는 선(禪)의 냄새가 많이 난다. 불교적인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리고 뒤에 인도시편이 몇 편 있는데...

 

굳이 불교라고 하지 않아도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물질적, 정신적 허영을 버리라는 것 아니던가.

 

그래 모두가 조금은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은 부유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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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가는 시인이다. 그가 사회의 여러 면에 눈을 주고 있음을 시를 통하여 또는 다른 글들을 통하여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집 전에 그의 시집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여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본 순간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게 되었다. 헌책방에 있는 책 치고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012년에 나온 시집인데... 이 정도 가격은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 이 시집은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한 번은 꼭 읽어봐야지 했던 시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읽은 이 시집... 몇 편의 시를 넘기자 눈에 딱 들어온 시.

 

"얼음놀이"

 

이 시집은 이 시 하나로 되었다.

2014년 1월. 우리 사회에 닥친 얼음놀이.

아니, 우리 사회라기보다는 말 못하는 짐승들, 특히 철새들과 오리와 닭들에게 닥친 얼음놀이.

 

따뜻하게 살아 있어야 할 생명들을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그들이 병들었음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한 마리가 또는 여러 마리가 감염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의 새들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그런 현실.

 

사람들도 이동 중지가 내려진 상태. 그럼에도 철새들...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을 뿐인데, 전염병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고, 또한 자신들도 감염되어 죽어가는데도 사람들의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올 겨울.

 

세상도 추운데, 새들은 더욱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그들을 얼음나라로 초대하고 있다. 아니 초대가 아니라 강제 연행이다. 그들은 그냥 얼음이 되고 있다.

 

이 시 하나... 2014년 1월을, 또 몇 년 전의 구제역 파동을... 그런 우리들의 얼음놀이를 이 시 하나로 표현하고 있다.

 

뭇 생명들은 모두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단지 자신들의 종족이 병에 걸렸다고 함께 순장당해야 하는 그런 비극. 이 엄청난 연좌제.

 

순장이 없어진 지는 논의거리가 안 되더라도 연좌제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그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가? 아니, 우리에게도 연좌제가 없어졌는가? 과연 그러한가. 우리도 이렇듯 어느 한 순간에 얼음놀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가. 바우만의 논의처럼 "쓰레기가 되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닌가.

 

화려한 군무. 철새들을 보러 오는 많은 사람들. 철새는 귀한 손님. 우리가 잘 맞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믿음. 철새들을 위해서 먹이를 놓아주던 마음씨.

없다.

조류독감. 일명 AI라는 그 무시무시한 질병 앞에서는 지금껏 쌓아왔던 철새들과 인간들의 관계도, 가금류라고 집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들과의 관계도 없다. 농민들의 생계도 없다. 그냥 땅 속으로 묻힐 뿐이다. 얼음이 될 뿐이다.

 

이것을 시인은 얼음놀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 놀던 일명 "얼음 땡".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얼음이 되어도 살아날 수가 있었다. 다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펄펄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얼음놀이는 단 한 번의 참여로 끝이다. 다시는 따스함을 지닐 수 없다.

 

영원히 잊혀질 뿐이다. 사라질 뿐이다. 꽁꽁 언 땅에 꽁꽁 언 몸을 꼭 뉘일 뿐이다. 숨 쉴 공간 하나조차 없이, 온기 하나조차 없이 그렇게 갇힐 뿐이다. 2014년 1월에. 

 

올해 쓴 시가 아님에도, 예전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조류독감, 그리고 구제역 파동을 이렇게 얼음놀이로 표현했다. 지금은 단지 짐승들에게만 해당하지만... 이것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던 순간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홀로코스트...

 

아, 사람은 이토록 무서운 존재구나! 남의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뭇생명의 운명이라지만, 이렇듯 절멸로 가는 길을 갈 수도 있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구나!

 

슬프다. 시인은 이 시집의 말미에서 '나는 여전히 시가/아름다움에의 기록의지라고 믿는 종족이다'라고 했는데... 이 얼음놀이는 바로 우리의 비극적 현실을 표현함으로써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비참을 빗겨가지 않고 비참을 그대로 드러내어 비참을 극복하게 하려는 몸부림. 이것이 바로 이 시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2014년 1월.

철새들...

가금류들...

정말로 이 얼음놀이에서 벗어나 따뜻한 빛을, 볕을 쬘 수 있게 되기를...

우리네 삶에서 따뜻한 볕이 내리쬐어 우리 모두가 그 볕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기를...

 

얼음놀이

 

살처분,이라고 했다.

집단 살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TV를 끄고 나는 구역질을 시작했다.

 

얼음놀이를 시작해 얼음집에 들어오면 얼음닭 얼음돼지가 되어 살 수 있어 병들지 않았는데 왜 내가 죽어야 해요? 왜 함께 죽어야 해요? 질문은 용납되지 않아 얼음집에 들어와 얼음놀이 할 테야 닭이, 오리가, 돼지가, 소년이, 소녀가, 쿵쾅쿵쾅 얼음! 얼음! 외치는 소리

 

'몸서리치다'

 

얼음집 주련에 내려진 붉은 글씨

이 말은 얼음집의 절창

몸속에 서리가 들어차는 것

몸 밖에 서리가 들이치는 것

몸에 내린 서리를 치우고 싶은 것

치우기 위해 치떠는 것

치떨며 온몸에 서리가 꼭꼭 들어차는 것

 

서리: 살처분할 수 없는 물들의 깍지 끼기

 

몸서리치는 새들아 돼지들아 얼음집에 들어와라 쿵쾅쿵쾅 얼음! 얼음! 슬픈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자라라, 얼음아, 얼음집을 머리카락 그물에 넣어 먼 하늘로 날아갈 테다 머언먼 하늘에 서리를 풀듯 너희를 풀어놓을 테다 따뜻한 햇살 닿아 얼음이 녹으면 너희는 새로운 날개를 얻어라 존중받는 발굽과 쫑긋한 청력을 얻어라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년 초판 1쇄.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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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기로 하다. 어디로 갈까.... 가까운 곳... 하루만에 돌아볼 수 있는 곳. 무언가 볼 수 있는 곳. 하여 선택한 곳이 홍성...

 

만해 한용운 생가가 있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근처인 덕산(예산)에 수덕사가 있다는 이유로 고르게 된 곳. 특히 홍성에는 김좌진 생가도 있다고 하니... 겸사 겸사...

 

가면서 홍성은 한우도 유명하고, 또 가다가 남당항이라는 곳에 가면 맛있는 해산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으니... 구경할 것과 먹을 것이 풍부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늘 카메라를 잊고 다닌다는 사실. 사진을 찍어서 기념할 것들도 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충전은 해놓고도 카메라를 집에 놓고 오고 말았으니.. 출발하고 한참 뒤에 아, 카메라! 하고 말았으니... 참... 

 

그래도 여행은 의미 있다. 카메라 대신 눈에, 마음에 마음껏 담아 오기로 작정하고...

 

먼저 아침에 출발했으니 점심을 먹어야지 하고 들른 곳은 남당리. 오호라, 새조개 축제란다. 새조개가 새랑 닮아서 붙인 이름인데.. 맛도 일품이다. 다만, 조금 비싸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당항까지 갔으니 맛있게 먹을밖에.

 

생각보다 새조개의 양이 많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 어떤 식당(수덕사 근처 식당이다)에서 본, '수덕사도 식후경'이라고 홍성 유람도 식후경이다. 배가 찼으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밖에는 없는데...

 

먼저 가는 길에 고산사를 들르고, 이어서 김좌진 장군 생가를 들르기로 하다. 청산리대첩으로 유명한 분. 요즘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운데, 직접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장군이 이 사태를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어떤 심정이 될까...

 

생가는 생각보다 커다란 규모였다. 아, 양반이었지, 학교까지 세울 정도였으면 나름 사는 집안이었겠지 하는 생각에... 잘 꾸며놓은 생가와 김좌진 장군 기념관. 그리고 동네 이름이 이제는 김좌진 장군의 호를 따서 '백야로'가 되어 있으니... 이렇게 독립운동가를 기리면서도...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다니...이런 이율배반이 있나 싶기도 하다.

 

한데... 이 김좌진 생가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정문의 해설과 기념관의 해설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는 점. 김좌진 장군은 박상실이라는 사람에게 암살당했다고 되어 있는데... 박상실은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기념관의 해설에서는 일제의 밀정인 김일성(金一星:우리가 알고 있는 그 김일성이 아니다)이 사주한 박상실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되어 있다.

 

무엇이 맞는지... 집에 김좌진 장군에 관한 책이 있어, 분명히 김좌진 장군은 말년에 아나키즘에 경도되었고, 아나키즘을 적대시하던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암살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돌아와 찾아보니...

 

김좌진은 1930년 1월 24일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하여 살해당하였다. 그 이유는 그가 한족총연합회의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무정부주의자들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박환, 식민지시대 한인아나키즘 운동사. 선인, 2006년 초판 2쇄. 250쪽에서)

 

이렇게 되어 있다. 김좌진 장군 같이 중요한 인물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게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김좌진 장군 생가과 기념관에서는 일치된 기록을 남겨야지...

 

다음에 이제는 '만해로'를 따라 만해 한용운 생가에 도착.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기와집이라면 만해의 생가는 초가집이다. 아주 작은... 그런 초가집. 여기에 만해 문학체험관이 있고, 민족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초가집이야 만해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것이니 뭐 한 눈에 들어오고, 다만 만해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현판이 있어서 사진을 찍는 의미도 있어 좋았다고 해야 하는데... 민족시비 공원을 한 바퀴 휘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리가 아는 시인들의 시가 시비로 길을 따라 곳곳에 서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시인만 해도, 백석, 윤동주, 이육사, 조지훈, 김남주, 조태일, 김달진, 유치환, 구상 등이 있으니 ... 한 번 볼만한 곳이다.

 

그리고 만해문학체험관. 이곳은 만해의 숨결이 담겨 있는 곳이다. 둘러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고, 만해의 유물들을 만나보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적어도 만해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면 한 번은 둘러보면 좋을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제는 수덕사로 향했다. 수덕사... 유명한 절이다. 큰 절이라고 해야 하나... 내게는 만공 스님으로 유명한 절인데... 몇 번을 가봤었는데.. 오래간만에 가 보니, 많이도 변했다. 대웅전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빼고는 전혀 옛 기억을 되살릴 수가 없다.

 

정말로 와 본 지 오래 되었나 보다. 미술관도 생기고 성보박물관도 생기고... 성보 박물관에서 만공스님의 자취를 좇기도 하고, 미술관에서는 이응노 화백의 자취를 느끼기도 했으니... 이것만으로 됐다.

 

하루 여행 온 목표는 다 달성한 셈이다. 저녁은 이제 수덕사 근처의 산채비빔밥.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길.

 

한 가지 아쉽다고 한다면 수덕사에서 윤봉길 의사를 기념한 '충의사'가 근처에 있는데... 그냥 지나쳐 왔다는 것.

 

홍성과 예산.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 인물이 참 많기도 하다. 이런 인물들을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우리 민족의 정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리라.

 

수덕사의 만공 스님도 일제시대에 조선 불교와 일본 불교를 통합하려는 총독의 움직임에 반대 성명을 일갈한 분 아니던가. 그래서 조선 불교가 조선 불교로 존재하게 했던 분 아니던가...  

 

하여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뒤숭숭해진 마음을 홍성,예산 여행으로 다잡고 왔다고도 해야겠다.

 

단순한 여행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 속 인물을 만나고 온 길이기도 하고, 우리 문학을 만나기도 한 날이기도 하고... 세속과 초월해야 하는 종교도 세속에 참여할 수 있음을 느끼고 온 날이기도 하니...

 

무엇보다 벗들과 함께 한 여행. 좋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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