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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픈 한 주다. 긴 책을 읽기에는 머리가 정리가 안된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짧은 시집이다.

 

시집이 짧다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소품이라고 해야 하나, 시가 많이 수록되지 않은 시집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주로 나무, 곤충, 삶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다.

 

제목도 모자나무인데... 죽은 사람들의 모자를 달고 있다는 모자나무, 그런데 이 모자나무는 죽은 사람들만 보아야 하는데, 그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죽음과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삶이 곧 삶이 아니고, 죽음이 곧 죽음이 아닌 상태. 삶과 죽음이 우리곁에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집에서는 이중성을 다루되, 이중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이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이것인 상태가 된다. 결국 시집의 뒷부분에 가면 작은제목이 '노자의 가르침'인 연작시가 나오는데 노자란 있음보다는 없음을 추구한 사람 아니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게 한 사람 아니던가.

 

이 시집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순서를 거꾸로 편집되어 있다. 보통은 1,2,3...이런 순으로 나가는데... 이 시집에서는 8,7,6,...이런 순서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는 앞과 뒤를 구분하는 것이 덧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여 산을 오르는 길은 곧 내려오는 길임을, 반복되지 않는 길은 곧 죽음의 길임을, 우리의 삶은 이러한 반복을 통해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눈에 확 들어온 시 하나. 산문시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이 내 마음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 불안을 꿈꾸는 사람. 결국 불안을 꿈꾼다는 얘기는 자신의 처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즉 자신을 끝까지 끌고 가본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내 자신이 나를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나를 극한까지 끌고 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

 

'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부터 시작하는 자세. 그래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시대...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세상이 다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결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우해 불안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불안 자체를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참,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시다.

 

사과나무의 불안

 

  사나과무가 불안한 것은 사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꼭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안에는 요행이 없다. 불안은 이루어진다. 불안이 이루어지지 안흔 경우는 불안을 꿈꿀 때이다. 불안을 꿈꾸면 불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과나무의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을 보라. 불안을 꿈꾸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불안을 꿈꾸는 사과들은 더 빨리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지 불안을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은 오로지 불안을 꿈꾼 사과알들이다. 떨어져 주려고, 기꺼이 떨어져 주려고 마음먹은 사과알들이다. 불안에 쾌히 시달리자는 사과알들이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나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찬일, 모자나무. 민음사. 2006년.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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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 그리고 에밀 졸라.

 

두 이름이 생각이 나는 요즈음이다. 신문을 보니 통합진보당에 이어 특정 시민단체에도 종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하던데...

 

신반공시대... 신유신시대...신긴급조치시대...이렇게 말해야 하나...

 

매카시는 한 때 미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 의원이었다. 그의 말로 인해, 그의 주장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세상에서 쫓겨나야 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에서도 냉전시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하기야 우리가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조차도 이런 매카시 광풍을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참...

 

그러나 매카시는 곧 몰락하고 만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광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었건 믿지 않았건을 떠나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보다 잘나가는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험담하고, 비난하고, 욕설하고 또 그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역사에서 이런 그는 부끄러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또 반복되어서는 안될 이름으로도 남아 있고.

바로 유명한 용어 "매카시즘"

 

반면에 에밀 졸라. 그는 간첩죄로 기소된 유대인 드레퓌스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나는 고발한다' 이 글 때문에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글로 공표했다.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지킬 양심이고, 자존감이었다.

 

그 때 졸라는 박해를 받고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이름은 정의의 대명사로, 참여하는 지식인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런 두 사람의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있다. 신현림의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라는 시다.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

- 진실을 죽이는 세상에 대한 통탄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는 세상이 그리워

험담 철조망이 아니라, 비난이 아니라, 욕설 작살이 아니라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 주는 세상이 그리워

 

진실의 죽음은 어떤 씨앗도 되기 힘든 고통이었다

대체로 불혹이면 자기 이름이 상할 일들은 못 견딘다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존감이다

 

세상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질투와 시샘, 선망, 뒤틀린 욕망을 전시한 싸구려 상점이다

까닭 없는 비난의 땅바닥엔 시샘과

질투의 뿌리가 징그럽게 엉켜 있음을 알기에 무시하며

화난 하이힐로 땅바닥은 안전한가 두드리며 지나친다

화려해 보였으나 초막처럼 쓸쓸한 진실을 애도한다

 

남의 노력에 박수 칠 여유가 없음 입 다물고 지나치시라

스스로 깊은 바다를 헤엄치지 못한 얄팍한 심장을 보이지 말고

고마워하시라 적어도 그대가 못 산 삶을 살지 않는다

 

나이 마흔이면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신의 이름이더라

진실을 죽인 일은 없는가, 고개를 숙이고

나도 나를 살펴볼 테니 님들도 자신을 돌아보시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고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야 참으로 사람 아니런가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02-121쪽

 

제목이 마음에 들어 헌책방에서 구입한 시집인데... 읽다보니 이런 시가 있었다.

 

'야, 이거 지금 우리 세태와 딱 맞는 시구나.'

 

낮은 곳으로, 자신들이 돌보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정당을 해산하라고 하는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방관하고 있는 또다른 거대 야당. 이들에게 진보정당은 시기, 질투의 대상인가? 오히려 진보정당은 자신들이 빠뜨리고 있던 일들을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정당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정당처럼 하지는 못할지라고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거대 정당의 의무 아니던가.

 

시에서처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도 너희는 그렇게 하니 잘 해봐라. 이정도는 되어야 거대 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못 본체하는 것을 떠나 존재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는 자존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하여 쓸쓸하고 우울하다. 씁쓸하다. 인생이. 이 사회가.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민주주의가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은 또다른 봄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추락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절망만을 남기고 있다.

 

치유가 필요하다. 위로를 받고 싶다. 그것을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데... 함께 치유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만이라도 건강해야 할 터.

 

시인은 시를 써서 위로를 받는다지만, 나는 그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시를 쓰는 밤

 

시를 쓰면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내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소리에 밴 향기를 느낀다 시를 쓰면 시어들이 나를 밀어내며 끌어당긴다 왕릉의 빛을 받고 투명해지는 손, 손 닿는 물건마다 빛이 나듯이 물방울같이 투명해진 마음이 닿으면 책과 의자도 창밖 건물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참았던 비명도 쓸쓸함도 터져 바람 속에 기도 속에 녹아내린다

 

  시를 읽거나 쓴다는 건 살얼음판 세상에 사랑 하나 심고 침대 위에 사과꽃 무성히 피어내는 일이니 두 번 살 수 없는 생을 시로써 수없이 고쳐 가며 겸손히 다시 사는 고마움이니 인생을 비로소 누린다는 기분이니 깊은 어둠 와인처럼 마시는 시간 침대 타고 달리는 시간 빛의 왕릉이 내 집이 되는 순간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61쪽.

 

이렇게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겠지. 더 많은 시들도 위로가 되는데...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그래. 사회문제에서 이제는 개인으로 내려와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이렇게 슬프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시를 읽으며 그나마 위안을 느낀다. 시인의 첫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도 읽어볼 것. 

 

침대를 타고 달렸어

 

누구나 꿈 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누에가 고치를 잣듯

포기 못할 꿈으로 아름다움을 얻는 거

 

슬프고, 아프지 않고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찌 회오리 같은 인생을 알며

어찌 사랑의 비단을 얻고 사라질까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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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 제출

 

이게 뭐야...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포털에 뜨는 기사다.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해산한 것도 아닌데,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정당을 해산하라고 정부가 청구안을 제출하다니...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법무부 장관이 청구안을 헌재에 제출했다고 하는데... 삼권분립이 지켜지고 있는 나라에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정당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으로 합법적인 조직이고,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펼칠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한 정당을 해산시키려 하다니.

 

이렇게 정당이 해산 된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던 일 아닌가. 게다가 행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고 있는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이게 뭔가?

 

통합진보당이  자신들의 선거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나서 정당이 깨지고, 또 알오니 뭐니 해서 의원이 구속이 되고 하지만, 그래도 한 정당을 이렇게 무참히 대우해도 되는 걸까?

 

어쩌면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당정치의 죽음을 알리는 날이 되지 않을까?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것이 확립(?)이 되었고, 또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교조의 법외노조화에 이어 통합진보당의 해산 청구라...

 

왜 이렇게 자꾸 기시감이 느껴질까?

 

1958년이 다시 돌아온 걸까?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잊었는가?

 

한 나라 정당의 당수이자 한 때 장관도 했었고, 또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왔던 죽산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나라. 그 때 진보당이 해체되었는데...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진보당"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한참 젊었던 그 시절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먹은 지금,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그만큼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역량이 축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법원에서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그것도 당이 아니라 당원인 사람들이 구속되었을 뿐인데... 다시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한 정당에 대한 이런 태도는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을 배제하는 행위밖에는 되지 않을텐데...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정부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어째서 행정부가 입법부도 관리하려고 드는가? 삼권분립은 어디 갔는지...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 아니었나? 그래서 국정감사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

 

왜 반대로 가는가? 행정부가 또다른 헌법 기관인 국회에 간섭해서 정당을 해산해야 된다고 헌재에 청구하고 있는 현실이 제대로 된 현실인가.

 

1985년에 나온 책 목차만 다시 보았다.

 

1. 진보당 문헌

2. 진보당의 정책과 특수조직활동

3. 진보당 사건 관계자료

4. 진보당 사건과 판결을 보는 시각

5. 조봉암 관련자료

부록1. 진보당 간부명단 및 간부 약력

부록2. 진보당 일지

부록3. 진보당 관계자료 총목록

 

이거 어째 몇 년 뒤에 진보당에다 두 글자만 더 붙여 또 하나의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역사는 앞으로 가도 시원찮은데.. 왜 자꾸 뒤로만 가려고 하는지...

 

헌재의 판결이 어찌될지 두고볼 일이다.

 

다만 정당은 그 정당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지지했던 국민들도 있다는 사실을 헌재에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정부는 일부 국민을 위한 행정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행정부라는 사실도.

 

같음만을 추구하는 사회.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권대복, 진보당, 지양사. 1985년.

 

아마, 이 책은 구하기 힘들 거다. 나온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인터넷에서 책표지의 사진도 구하기 힘드니. 그래도 먼 옛날... 지금과 비슷한 이름을 지닌 정당이 지금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던 역사적 사실로 읽어둘 만한 책이다.

 

아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해서 남겨두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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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 최근에 나온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란 책을 보고 싶어서. 그 책을 빌리려고. 그것도 만화이지 않은가. 그런데 한 순간 제목이 생각이 안 났다. 기껏 생각난 것은 그것이 아나키스트에 대한 만화라는 것.

 

머리 속에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란 제목만 떠올랐고... 이게 그 제목인가 하고 이 책이 있냐고 물었더니 오래 전에 품절된 책이라고 한다.

 

'어? 이상하네. 올해 나온 책이라는데...'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을 쳐본다. 책 표지의 사진이 나오는데, '어라, 이 책은 우리 집에 있는 책인데... 내가 읽은 책인데.. 그거 두루티에 관한 책이잖아. 이 책은 아닌데...' 하고 만다.

 

아무리 쳐도 이 책밖에는 없다.

 

그러면 분명 제목을 착각한 거다. 어리석게도 검색어를 '무정부주의자'로 친다. 또 똑같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만이 뜬다. 이게 뭐야. 착각을 해도 너무 했나 싶다.

 

그런데... 누군가 혹시 이 책 아니냐고 한 책을 가져다 보여 준다.

 

 

"맞아요. 이 책이에요." 그러고 나서 제목을 보니... 이런... 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불렀던 예전 책들을 읽은 부작용이 제목을 착각하게 하고, 신문에 소개된 내용에 의하면 아나키스트가 죽었다고 하니, 고백이 죽음으로 변형이 되어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그래도 운이 좋다. 이렇게 책을 찾을 수 있었으니... 하여 토요일에 이 책을 열심히 읽었고, 젊은날의 이상과 나이 들어서의 좌절을 간접 경험할 수가 있었는데...

 

이 만화에 반갑게도 "두루티"가 나온다. 그가 암살당하고 그 신발을 행운의 신발이라고 신고 다니는 한 아나키스트,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 신발은 주인공인 '안토니오'가 신고 다니는데...

 

결국 이 만화와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 이렇게 만나게 된다. 만화에서 두루티의 신발은 주인공이 더 이상의 이상을 포기할 때 태워버리게 된다. 그렇게 두루티는 주인공의 삶에서 사라지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다.

 

하지만 책으로 남아 아직도 우리에게 아나키스트의 이상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이상에 더 다가는 책이 있으니, 그것은 에스페란토어에 관한 이야기, 그 말을 만든 자멘호프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지금도 평화를 꿈꾸는 아나키스트들은 공통어로써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국제적인 협력을 이루어내고 있으며, 특정 국가의 언어가 다른 언어 위에 군림하는 일을 막고 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의 이상은 "에스페란토어"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 만난 세 책.

 

권위주의가 넘치고 있는 지금 이 땅에... 자율, 자치, 상호성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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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발소에 주로 걸려 있던 시가 있었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로 시작되는 말.

 

그 뒤의 구절은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이 두 구절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만큼 강하게 다가왔고, 또 그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길 대도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던가, 시로 말하면 이렇게 되는 이야기를 공자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고 했다.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얼마나 우리는 삶에서 많은 좌절을 겪는가, 그를 삶이 속인다고 했는데, 장미빛 미래를 약속할 것 같았던 세상이 우리를 끝없는 나락으로 빠뜨리려 하고 있을 때, 이 말을 쓸 수 있다.

 

그래 삶은 늘상 우리를 속일 수 있다. 그것이 삶, 아니던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지만 "쎄라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인생이다!

 

삶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 외로울 때 이렇게 시 한 편은 힘이 되어준다. 시를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있으면 그만큼 나는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를 많이 두었다고 할 수 있다.

 

7-80년대엔 많은 학생들이 연필을 썼고, 연필 자국이 배기지 않도록 책받침을 공책에 받쳐놓고 글씨를 썼는데.. 그 책받침에 시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시화들. 그렇게 우리는 시를 삶에서 쉽게 접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정말로 세상이 힘들다고 느낄 때, 이육사의 "절정"을 읊기도 하고...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절망에서, 도저히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그런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했던 육사.

 

이 시에서 위로를 받곤 했다. 그런데... 지금...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참 많은 것을 이루었는데...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특히나 젊은이들이 살기 힘들어진 시대. 그럴 때 이 책... 삶에게, 사회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사회로 인해 내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나를 먼저 추스리고 그 다음에 사회에, 삶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현림이 자신의 딸을 위해서 시를 편집해 내었다. 자신의 딸만이 아니라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읽고서 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않고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그래, 좋다.

 

이 시대. 시가 더 필요한 시대다. 상처를 치유한 개인들이 모여 우리를 이루고, 그 우리들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시에서 많이도 멀어진 시대 같지만 오히려 시가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을 읽자. 시를 읽자.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외국 시인의 시가 많은 것이 약간의 단점으로 다가오지만 그거야 뭐.. 시에 동서양을 따질 필요가 없으니...

 

이 시... 요즘 시대에 필요한 시가 아닌가 한다.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시를 통해서 접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만사가 안 된다고 걱정하거나 마음 상하지 마라.

생명수는 어둠 속에 있으니

형제들이여, 가난을 슬퍼하지 마라.

역경 속에 기쁨이 숨겨져 있으니

세월의 모순된 변화에 슬퍼하지 말고 참아라.

쓰디쓴 날 뒤에 반드시 다디단 날이 오리리.

 

- 사디

 

신현림 엮음,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인생편. 걷는나무 2013년 초판 29쇄.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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