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가는 시인이다. 그가 사회의 여러 면에 눈을 주고 있음을 시를 통하여 또는 다른 글들을 통하여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집 전에 그의 시집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여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본 순간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게 되었다. 헌책방에 있는 책 치고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2012년에 나온 시집인데... 이 정도 가격은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 이 시집은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한 번은 꼭 읽어봐야지 했던 시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읽은 이 시집... 몇 편의 시를 넘기자 눈에 딱 들어온 시.

 

"얼음놀이"

 

이 시집은 이 시 하나로 되었다.

2014년 1월. 우리 사회에 닥친 얼음놀이.

아니, 우리 사회라기보다는 말 못하는 짐승들, 특히 철새들과 오리와 닭들에게 닥친 얼음놀이.

 

따뜻하게 살아 있어야 할 생명들을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그들이 병들었음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한 마리가 또는 여러 마리가 감염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의 새들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그런 현실.

 

사람들도 이동 중지가 내려진 상태. 그럼에도 철새들...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을 뿐인데, 전염병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고, 또한 자신들도 감염되어 죽어가는데도 사람들의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올 겨울.

 

세상도 추운데, 새들은 더욱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그들을 얼음나라로 초대하고 있다. 아니 초대가 아니라 강제 연행이다. 그들은 그냥 얼음이 되고 있다.

 

이 시 하나... 2014년 1월을, 또 몇 년 전의 구제역 파동을... 그런 우리들의 얼음놀이를 이 시 하나로 표현하고 있다.

 

뭇 생명들은 모두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단지 자신들의 종족이 병에 걸렸다고 함께 순장당해야 하는 그런 비극. 이 엄청난 연좌제.

 

순장이 없어진 지는 논의거리가 안 되더라도 연좌제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그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가? 아니, 우리에게도 연좌제가 없어졌는가? 과연 그러한가. 우리도 이렇듯 어느 한 순간에 얼음놀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닌가. 바우만의 논의처럼 "쓰레기가 되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닌가.

 

화려한 군무. 철새들을 보러 오는 많은 사람들. 철새는 귀한 손님. 우리가 잘 맞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믿음. 철새들을 위해서 먹이를 놓아주던 마음씨.

없다.

조류독감. 일명 AI라는 그 무시무시한 질병 앞에서는 지금껏 쌓아왔던 철새들과 인간들의 관계도, 가금류라고 집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들과의 관계도 없다. 농민들의 생계도 없다. 그냥 땅 속으로 묻힐 뿐이다. 얼음이 될 뿐이다.

 

이것을 시인은 얼음놀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 놀던 일명 "얼음 땡".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얼음이 되어도 살아날 수가 있었다. 다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펄펄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얼음놀이는 단 한 번의 참여로 끝이다. 다시는 따스함을 지닐 수 없다.

 

영원히 잊혀질 뿐이다. 사라질 뿐이다. 꽁꽁 언 땅에 꽁꽁 언 몸을 꼭 뉘일 뿐이다. 숨 쉴 공간 하나조차 없이, 온기 하나조차 없이 그렇게 갇힐 뿐이다. 2014년 1월에. 

 

올해 쓴 시가 아님에도, 예전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조류독감, 그리고 구제역 파동을 이렇게 얼음놀이로 표현했다. 지금은 단지 짐승들에게만 해당하지만... 이것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던 순간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홀로코스트...

 

아, 사람은 이토록 무서운 존재구나! 남의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뭇생명의 운명이라지만, 이렇듯 절멸로 가는 길을 갈 수도 있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구나!

 

슬프다. 시인은 이 시집의 말미에서 '나는 여전히 시가/아름다움에의 기록의지라고 믿는 종족이다'라고 했는데... 이 얼음놀이는 바로 우리의 비극적 현실을 표현함으로써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비참을 빗겨가지 않고 비참을 그대로 드러내어 비참을 극복하게 하려는 몸부림. 이것이 바로 이 시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2014년 1월.

철새들...

가금류들...

정말로 이 얼음놀이에서 벗어나 따뜻한 빛을, 볕을 쬘 수 있게 되기를...

우리네 삶에서 따뜻한 볕이 내리쬐어 우리 모두가 그 볕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기를...

 

얼음놀이

 

살처분,이라고 했다.

집단 살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TV를 끄고 나는 구역질을 시작했다.

 

얼음놀이를 시작해 얼음집에 들어오면 얼음닭 얼음돼지가 되어 살 수 있어 병들지 않았는데 왜 내가 죽어야 해요? 왜 함께 죽어야 해요? 질문은 용납되지 않아 얼음집에 들어와 얼음놀이 할 테야 닭이, 오리가, 돼지가, 소년이, 소녀가, 쿵쾅쿵쾅 얼음! 얼음! 외치는 소리

 

'몸서리치다'

 

얼음집 주련에 내려진 붉은 글씨

이 말은 얼음집의 절창

몸속에 서리가 들어차는 것

몸 밖에 서리가 들이치는 것

몸에 내린 서리를 치우고 싶은 것

치우기 위해 치떠는 것

치떨며 온몸에 서리가 꼭꼭 들어차는 것

 

서리: 살처분할 수 없는 물들의 깍지 끼기

 

몸서리치는 새들아 돼지들아 얼음집에 들어와라 쿵쾅쿵쾅 얼음! 얼음! 슬픈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자라라, 얼음아, 얼음집을 머리카락 그물에 넣어 먼 하늘로 날아갈 테다 머언먼 하늘에 서리를 풀듯 너희를 풀어놓을 테다 따뜻한 햇살 닿아 얼음이 녹으면 너희는 새로운 날개를 얻어라 존중받는 발굽과 쫑긋한 청력을 얻어라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년 초판 1쇄.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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