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텔레비전에서 특집으로 방영해주는 영화 몇 편을 보았다.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했으나 놓친 영화 몇 편과 이미 보았 음에도 또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
그 중에 가슴을 울리는 영화는 역시 "7번 방의 선물"
이 영화는 다시 보아도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볼 만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내용의 사실성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영화 내용만으로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눈물샘에서 눈물이 물 흐르듯 흘러내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재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과연 재판이 공정한가?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럼에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판이 필요하다면 그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몸을 구속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까지 재판은 이루어져 있다. 몸을 구속하는 것이야 잘못되었다는 판결이 나면 풀어주고,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해줄 수도 있겠으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나중에 잘못되었다고 판명이 되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
불가역성. 그것이 바로 사형제도의 문제이고, 재판의 무서운 점이다. 우리나라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속되고 있는 나라인데... 15년이 넘게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라고 하나, 법이 사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대통령이 사형집행에 서명을 하는 순간, 15년간 지켜온 사형 미집행국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영화 "7번 방의 선물". 되돌릴 수 없는 결과...
이 영화에도 변호사가 등장한다. 국선변호사. 돈이 없거나 변호사를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나라에서 선임해준 변호사. 대개는 성의 없이 변론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국선 변호사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니...
오히려 일부러 국선 변호사가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까... 왜냐하면 변호사란 힘없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사람도 꽤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의 국선 변호사는 정말로 지지리도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려 애쓴
다. 마지못해 맡았을 뿐이라는 점이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보이고, 또한 권력에 밀착해 있음이 보이고, 그리고 피의자의 혐의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최근에 나온 영화 "변호인"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는 변호사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런 변호사가 실제로는 없겠지만, 영화에서처럼 존재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우리는 영화 "변호인"의 변호사와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변호사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어떤 변호사가 우리의 권익을 위해 변론을 해줄 것인지 어떻게 아나? 변호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기들의 위치를 자리매김 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하여 설날에 본 영화때문에...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박원순이 쓴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두레
부제가 '한국인권변론사'이고 더 작은 제목은 '가시밭길을 선택한 변호사들'이다.
영화 "변호인"과 "7번 방의 선물"을 함께 본 사람이라면 그 영화 속의 변호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험난한 길을 자처했던 변호사들이 이야기니까.
이들로 인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조금은 줄었을테니까.
가장 좋은 사회는 변호사가 없는, 즉 재판이 필요없는 사회이겠지만, 그런 사회가 되기 전에 우선 제대로 돈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변호사들이 넘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때 두려움을 지니고 재판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혹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재판. 그것을 돕는 변호사, 그런 사람들로 충만한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지금도 재판은 넘치고 넘쳐 재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