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는데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1위란다. 무려 50%정도의 노인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바우만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소비자 사회로 전환이 되고,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가난조차도 이제는 나라가 책임을 져주지 못하는, 사회복지에서 노동복지로 전환이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는 더 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서 노인복지를 강조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나라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이 아직도 많다고 하니...
여기에 어떤 보도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의 평균 월 수입이 26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이나마 고물상이라고 하는 곳, 재활용센터의 운영 세금이 올라, 노인들에게 폐지 대금으로 지급하는 돈이 줄어들거라고도 하던데...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은 굶주리는 사람 모두를 먹이고도 남지 않는가. 그럼에도 골고루 분배가 되지 못하고, 음식 쓰레기로 버려지는, 또 사용 가능한 물품들이 그냥 폐기물이 되고 마는 현실 아니던가.
가난 구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일텐데...
사회복지가 확립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는 형제라고 생각하면, 우리 모두의 생활은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현종의 시집을 읽다가 이거네.. 이 시가 지금 우리 현실이네... 그럼 이런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없나?
정말로 이런 사람, 이런 정치가가 필요하네 하는 생각을 했다.
가난이여
-인도시편 1
석가모니는 저 가난을 구할 길 없어
스스로 헐벗었다
정치로도 경제로도 무슨 운동으로도
국가 해 가지고는 더더구나 안될 게 뻔하니
지상에 가난은 영원할 터이니
저 버림받은 가난을 어쩌나 어쩌나 하다가
도무지 그걸 구할 길 없어
스스로 ...... 헐벗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알몸이 빛났다
그리고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계사. 1989년 5판. 95쪽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이 단지 물질적 가난만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선 물질적 가난에 국한시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난해진 사람이 있다. 세상에 어떤 정치,경제,국가로도 가난을 해결할 수 없어 스스로 헐벗었다는 석가모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한 예수와 통하는 것이다. 즉,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영혼이 가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나도 가난해야 한다. 마치 중생이 병들어서 자신도 아프다던 유마거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려가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시는 석가모니를 들어서 가난에 대해서는 함께 가난해지는, 그들과 함께 할 때만이 가난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것을 모두 놓아버리는 경지.
이 경지에 도달했을 때 빛나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바로 석가모니의 삶이었다. 예수의 삶이었다.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물질적 가난, 정신적 가난을 극복하지 않겠는가.
다 내려놓아 더욱 빛나는 사람.
지금 사람들은 다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좋다. 적어도 함께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이렇게 노인 빈곤율이 소위 잘사는 나라라는 OECD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정현종의 이번 시집에서는 선(禪)의 냄새가 많이 난다. 불교적인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리고 뒤에 인도시편이 몇 편 있는데...
굳이 불교라고 하지 않아도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물질적, 정신적 허영을 버리라는 것 아니던가.
그래 모두가 조금은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은 부유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