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보수시대 - 미처 몰랐던 징후들
신기주 지음 / 마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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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장기 보수 시대로 접어들었다. 단순히 보수 정권이 몇 차례 집권하게 될거란 얘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단 말이다.'(6쪽)

 

'200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두 번의 보수 정권은 구조적 보수화가 낳은 정치적 결과물이다.'(6쪽)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이미 장기 보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 그리고 그런 징후들이 예전부터 나타났다고 하는 글로 이 책이 채워져 나간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장의 구멍들, 퇴행하는 사회, 기울어진 미디어, 속물스러운 정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장기 보수 시대는 결국 경제가 중심이 된다. 먹고 살 만해진 사회에서 어떤 삶을 누릴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데,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단이 사회의 중추를 이루면서 혁명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경제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재편할 수 있었던 시기에 하지 못했던 결과 결국 시장에 정치의 힘을 빼앗기고 말았다는 이야기. 그런 경제를 우리가 아무리 비판해도, 공약으로 '경제민주화' 운운해도 불가능하다는 얘기.

 

권력의 중심이 시장으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정치가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단 말인가. 경제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정치고, 정치인들은 재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현실. 결국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니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자기 것을 지키려는 세력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고, 이런 현상은 사회 전체를 퇴행시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에 대해서 이런 현상들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중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결국 '사다리'고, 그 사다리의 위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대' 문제임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의 집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 로켓 개발조차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는 미디어다. 이미 정권의 입맛에 맞춰진 미디어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 못하게 한다.

 

주어진 사실만 방송한다고 하면서 사회의 보수화에 일조하고 있다. 그렇게 미디어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그런 미디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속물스러운 정치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권력을 잃는 그런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를 장악하려 하고,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이익이 아닌 정치인들의 이익을 실현시켜 주어야 한다는 그런 퇴행, 속물 정치.

 

이것이 정도전을 이 책에서 끌어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왜 실각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는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를 꿈꾸었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킬 정치를 꿈꾸었다는 것.

 

정치의 중심은 무언가 이익을 지니고 있는 기득권세력일 수밖에 없는데, 그들에게 등돌린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정치인들을 비판하지만, 정치인들이 지닌 속성을 정도전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제 이익들을 위해서만 그렇게 피튀기게 싸우고, 그런 이익을 위해서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힘을 합치는지,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장기 보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걸 인정하자는 거다. 인정하면 무엇이 좋을까? 정치나 경제나 모두가 다 우리의 행복을 목표로 하지 않나.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정치가, 어떤 경제가 좋으냐를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장기 보수 시대'에서 행복찾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끝부분에서 잠시 언급하고 있다.

 

이제는 정치 혁명, 경제 혁명이 아니라 '문화 혁명'이 필요하다고. 그런 '문화 혁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문화 혁명조차 이루지 못하면 장기 보수 시대는 지속되리라고...

 

'21세기 한국에서 가능한 건 68혁명 같은 문화 혁명이다.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혁명 말이다.'(261쪽)

 

성숙한 자본주의... 이미 세계의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혁명부터 이루자고, 그것이 우리의 행복찾기라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생각해 봄 직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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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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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무척 유행했던 책이다. 그때는 당연히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면서 읽지 않았던 책.

 

어쩌면 유행처럼 한 책이 번지는데 대해서 일종의 거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또 그런 시류에 참여한다는 일이 '피로'하게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피로'와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쳐 떨어짐, 무언가 하고 싶어하지 않음, 무관심으로 생각했던 '피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달로 사람들을 성과주의로 몰아가는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용어로 '피로'가 쓰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11쪽)는 말로 시작한다. 한 시대의 사회를 규정하는 질병이 있다는 얘긴데, 지금 시대의 질병은 면역체계를 건드리는 질병이 아니라, 풍요의 질병, 지나침의 질병, 긍정성 과다의 질병이라는 것이다.

 

하긴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런 풍요 속에서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니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신경성 질병으로 나타나고, 우리 사회는 이런 신경성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 말이 타당하기도 하겠다.

 

"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다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22쪽)

 

이렇게 넘쳐나는 사회를 활동사회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 때 활동이 긍정적인 의미라고 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회, 무언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사회, 그럼에도 그 자기계발의 깊이는 없이 그때그때 활용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약물에 의존하는 도핑과 같은 사회라고 한다.

 

"활동사회라고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 ... 도핑은 말하자면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65쪽)

 

이런 사회가 어떻게 피로하지 않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이 지게 된다. 사회 문제를 개인화한다. 이 책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66쪽)

 

그러나 이러한 피로가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피로를 느끼는 사람은 쉴 수밖에 없다. 쉼, 그것은 자신의 몸을 떠나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얘기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빠르게, 빠르게 지나쳐 왔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피로'다. 그런 '피로'는 긍정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그는 일허게 말한다.

 

"피로는 무장을 해제한다. 피로한 자의 길고 느린 시선 속에서 단호함은 태평함에 자리를 내준다. 막간의 시간은 무차별성이 시간, 우애의 시간이다." (72쪽)

 

이때 '피로사회'의 사람은 비로소 '주권자'가 된다. 물론 그는 주권자이자 희생자이다. 그 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그것이 바로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책의 부록이라고 할 수 있는 '우울 사회'에서 그는 이 점을 '호모 사케르'라는 용어를 빌어 이야기한다.

 

"성과사회의 주권자는 자기 자신의 호모 사케르인 것이다. 성과사회에서도 주권자가 호모 사케르를 낳고 호모 사케르가 주권자를 낳는 역설적 논리가 성립한다." (110쪽)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보면 우리는 주권자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리는 호모 사케르로만 존재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여 세상과 자신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고 그냥 '피로'에 지쳐 나가떨어져 있기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더 달릴 곳도 없는데... 잠시 멈춰야만 하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멈춰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호모 사케르로 지내왔다면 이제는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피로사회'는 '성과 사회'다. 성과 사회는 경쟁만을 이야기하는 사회다. 그것이 굳이 남을 적대시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은 내 내면에 들어와 있다. 나는 남을 내면화해서 책임을 나만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성과 사회, 피로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 일 덜하기 운동, 일자리 나누기 운동, 저녁이 있는 삶, 기본 소득 논의 등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은 이제 '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호모 사케르'에 머물지 않고 '주권자'가 되기 위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런 행동을 통해서 사회는 변할 수 있기도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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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과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이었더군요 ...

kinye91 2015-05-02 07:20   좋아요 1 | URL
미래 세대들이 성과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 생태적 전환과 해방을 위한 기본소득 팸플릿 시리즈 (한티재) 2
하승수 지음 / 한티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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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자다. 팜플렛이다.

 

세계 역사에서 팜플렛이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이런 작은 책자들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내 경우에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그랬고,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이 그랬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책이 생겼다.

 

작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작지만 폭발력은 대단한 책. 바로 기본소득에 관한 책이다. 외국 사람이 쓴 "조건 없이 기본소득"도 읽을 만하고 생각할 것이 많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이 책은 우리나라 현실에 더 가까워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집단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찻잔 속의 태풍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정책이 되고 있다.

 

그만큼 새로운 정치집단이 제도 정치권으로 진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존의 언론들이 이러한 문제를 잘 다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이 바로 팜플렛이다. 작은 책자로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여러 사람에게 읽히는 일.

 

복잡한 수식을 제외하고, 난해한 이론을 빼고 간단명료하게 주장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향력을 확보해가는 일이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 전자매체의 영향으로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시대에, 기본소득같이 사회를 바꿀 정책에 대해서 알리는 길은 짧고 명료하게 정리한 책을 내는 일.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어야 하고, 전철이나 또는 다른 장소로 쉽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것.

 

이 책은 이런 점을 만족시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료하다. 주장이 확실하다.

 

확실하기에 설득력이 있다. 그냥 그럴 수 있을까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다. 한 번 해보자라고 주장한다.

 

충분히 가능하기에 시도하면 된다고, 간략하게나마 기본소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복잡한 수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무엇보다 이 책에는 철학이 있다. 방향이 있다. 전망이 있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이 심화되는 우리나라에서 불평등을 고쳐나갈 좋은 방법이며, 또 실업으로 인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주어 생활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시혜가 아니라 국민들이 받아야할 당연한 권리라는 사실을, 기본소득은 우리가 함께 사용해야 할 공유재를 사용한 결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마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이 한 해를 결산하고 배당을 받듯이 기본소득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사회가 유지, 발전된 결과에 배당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 모두가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인 것이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주니까, 주주로서 대한민국 활동의 결과를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소득을 권리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실현시킬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지, 주느냐 마느냐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게 된다.

 

다만, 문제는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눈 앞에 있음에도 하지 않는 집단이 기득권을 쥐고 있다는 것, 그런 기득권을 없애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고,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 단체들이 늘어나면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세력들이 나올 것이라는 점에서, 우선은 기본소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런 팜플렛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니, 하게 해야 한다. 이 책의 작은 제목처럼 '생태적 전환과 해방'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될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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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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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인가 대학생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어졌다. 오히려 청년들이 더 보수적이고, 수구로 흐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녔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로 전락했고, 사람을 우선시 한다는 대학이 사람을 상품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비판이 사라진 대학, 함께 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 대학, 지성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대학.

 

이런 대학에서 학생들은 오로지 기업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길러져 사회에 나온다. 그들이 대학 간 목표이자 이유는 좋은 곳에 취업해서 자신들의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다.

 

더 이상의 목표는 없다. 학문을 하겠다,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말은 이미 대학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만큼 대학은 이제 지성의 전당도 진리를 추구하는 곳도 아니게 되었다.

 

대학에 대한 평가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 있는 이 말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은 교육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애초의 목적을 잃어버린 경주이지만 마지막 주자는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향해 보란 듯이 진격한다. '무감'을 만들어내고, '영어'를 숭배하고,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하고, '비판'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학에는 고통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술만 가득하다.. 대학은 '경제가 어렵다' '기업이 힘들다'는 말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고, 효율성을 최고의 논리로 여기는 '완전체' 학생들만 탄생시킨다.' (348쪽)

 

이것보다 더 정확한 분석이 어디 있겠는가.

 

사회 모든 곳에서 경쟁이 우선이 되듯이, 지성을 길러야 하는 대학에서도 상대평가라는 명목으로 경쟁만을 유발하며, 대학평가라는 족쇄로 대학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대학 평가로 인해서 전공실력을 쌓기보다는 평가에 맞는 강의를 할 수밖에 없고, 그 이유로 대학에서 영어강의가 늘어나고, 어줍잖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기에 심도 있는 공부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단지 영어 수업만이 아니다. 대학생들 역시 자신의 진로가 취업에 있기에 취업에 방해되는 일들은 대학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취업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고다. 비판적 사고의 전당이었던 대학이 이제는 표준화된 사고만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려 드는 교수, 강사가 있다면 이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대학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로 취급당할 뿐이다.

 

정말 암울하다. 인문학, 사회학이 사라진 대학, 비판적 사고가 사라진 대학, 협동은 없고 경쟁만 남은 대학.

 

공부는 없고, 배움도 없고 오로지 학점만 남은 대학, 그래서 취업이라는 미끼로 대학 문화가 통제와 억압을 대표한다는 군대문화 쪽으로 흘러도 그러려니 하고 마는 대학.

 

사실, 간호대학이 그렇게 군사문화와 유사한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체육관련 학과들이야 심심찮게 언론에 나와서 알고 있었지만, 간호학과마저 그럴 줄을.

 

적어도 약한 사람을 사랑으로 만난다는 그런 학과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런 군사문화가 간호학과뿐만이 아니라, 많은 학과들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이라는 미끼때문에... 선배에게, 교수에게 잘못 보이면 취업을 할 수 없고, 기업을 비판하면 취업이 힘들어지기에...그냥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는 대학.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찾아나가는 시기가 대학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기업에 맞추고, 기업이 원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변모시켜 나가는 시기가 대학 시기라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정말 암울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먼 미래에는 모든 것이 개인 책임이지, 도무지 사회적 책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득시글댈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그 부끄러움조차 인식 못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모습을.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지성인에서 이제는 단순한 기업인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적어도 교수라면 비판적 지성을 동원하여 사회의 문화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제 교수들은 그런 능력이 없음을 이 책에서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저자의 앞선 책과 마찬가지로(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대안을 제시할 수가 없다. 단지 대안이라고 하면 지금 현실이 이렇다고, 현실의 본모습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게 문제다. 봐라, 이렇게 가면 우리나라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점점 시민이 없어지는 사회로 우리는 가고 있다. 시민이 없는 공화국. 그건 끔찍한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늦지 않았다. 시민이 되도록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이런 책을 읽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대안의 첫걸음이다.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고의 단일성을 벗어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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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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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답답해지는 책이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미래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면서 청년들에게 아픔만 주고 있다. 그들이 치유할 수 있는, 아픔을, 그들의 상처를 옹이로 만들 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너희들이 잘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만 하고 끝난다면 별 문제 없다. 왜냐하면 이런 말들을 받아들일 대상이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이 말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것으로 내면화한다.

 

"능력주의 사회, 자기계발의 사회"라고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청년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자신 탓으로만 돌린다. 내가 못해서 이렇게 되었어. 이게 다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환경에 대해서는 보지 못한다. 그저 개인탓이다. 개인탓이기에 내가 좀더 아파야 하고, 내가 좀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더 노력을 안한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존재들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을 내면화시키는데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일조를 한 것이 바로 자기계발서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자기계발서'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목적으로 쓰여졌지만, 오히려 청년들을 희망고문에 빠뜨리고, 좀더 넓고 크고 멀게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고 오로지 자신 탓으로만 돌리게 하고 있다고.

 

이 책은 지금 20대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왜 사회적인 공감능력을 상실했고, 모두를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게 되었으며, 그들 내부에서도 철저한 분리주의가 성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대학의 서열화가 공고하게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서열화를 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대학생들이 오히려 이런 서열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은 새롭다. 우리는 대학생들을 대학서열화의 피해자로 생각하기 쉬운데, 대학강사로 여러 대학 학생들을 만난 사회학 강사인 저자는 대학생들 자신이 이미 대학 서열화를 내면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내면화가 다른 부분에서도 작동을 하기에, 그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라든지, 철거민들의 투쟁 등등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을 왜 날로 먹으려 하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정말 무서운 사고방식의 습관화.

 

왜 이렇게 됐을까? 세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던 IMF. 이 때 우리 모두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우리 내면으로 들어와 버렸다.

 

엄청나게 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되었고, 해고가 자유로와(예전에 비해서)졌으며,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그 사태가 내가 잘해야 한다, 내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가 대학의 경영학과화.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가 먼저 시작을 했다지만, 지금 모든 대학들이 취업이 되는 학과만 살려두고 그렇지 않은 학과는 통폐합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영학과가 한 학과가 아닌 대학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있는 현실, 대학의 경영학과화는 다양성의 상실이며, 다른 눈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편이고, 또 젊은이들이 오로지 취업에만 목매달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경영학은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대학에서 가르치든 거의 같은 내용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하여 대학생들이 다양한 사고, 폭넓은 사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 암담하다.

 

셋째가 before/after라고 한다. 이전과 이후. 네가 스펙을 쌓기 전과 후, 네 얼굴을 고치기 전과 후. 이 말은 오로지 네 책임이라는 뜻이다.

 

잘못되면 네가 노력을 안 한 거다. 왜 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이 있는데 넌 안 하녀? 또 못 하냐다. 그러니 네가 책임져라. 이건 네 책임이다. 네 잘못이다.

 

여기서 구조의 문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길은 없다. 주어진 길을 열심히 따라 가라. 못 따라가면 넌 낙오된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 이렇게 따라오지 못한 사람들은 낙오자다.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다. 이들이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이들에게는 이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더 노력한 나에게는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 맞다.

 

차별은 정당하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다. 노력의 차이에 대한 댓가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단다. 기껏 수능 점수 하나로 대학이 갈리고, 가정환경에 따라서 자기들이 얻을 수 있는 지적 자산이 달라져서 출발점이 달라지고 장비가 달라져 결과가 달라졌을 뿐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단다. 오로지 앞만 보고, 위만 보고 갈 뿐이다.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남들을 짓밟고 오르기만 하는 애벌레들처럼. 

 

그곳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길을 가서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애벌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나비가 되기 전에 고치로 죽고 말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회도, 젊은이들 자신도.

 

읽을수록 암담하다. 지은이는 자기계발서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도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분석만 있을 뿐이다.

 

박사논문을 다듬은 것이라서 그런지, 사회학적으로 지금 20대를, 그것도 대학생들을 분석은 했으나 대안 제시는 없다. 물론 대안 제시는 불가능하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능력주의가 옳다고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대학생들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이 대안 역시 외부에서 이미 성공한 어른이 제시하는 한 방편일 뿐인데...

 

그런데도 아쉽다. 대안을 어른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눠서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처럼 토익, 토플 책을 버리고 짱돌을 들라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대안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몫이다. 어른들도 청년들도 모두 자신들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덧글

 

그래서 사실 예전 한완상이 주장했던 것이 그립다. 모든 취업원서에 자신의 출신대학을 적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적어도 입사원서란에 출신대학란을 삭제한다면... 작은 시작이지 않을까. 이것은 기성세대도 또 젊은세대로 함께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다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주장을 함께 해야 한다. 적어도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일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세대를 아울러 먼저 6시간 노동이 법제화되도록 주장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고... 여가시간을 갖게.

 

여기에 월급, 최상위와 최하위의 차이가 25배가 넘지 않도록 법제화할 것. 적어도 강제를 통한 균형도 필요하지 않을까.

 

또 기본소득을 주장할 것. 청년들이 생계를 걱정해서야... 생계는 사회가 책임지고 해결해주고, 청년들이 생활을 고민한다면, 그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 함께 만들어갈. 적어도 지금처럼, 청년들이 위기의식 속에서 허우적대면 우리 사회의 미래도 암울할테니 말이다.

 

읽고나니 참 우울한 책이다. 이게 단지 청년들의 자화상만일까? 지금 이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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