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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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드 다이아몬드.

 

나도 이 사람의 책을 두 권이나 읽을 정도이니(제3의 침팬지, 총·균·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다.

 

이번에 읽은 책도 그의 장기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읽어도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쓰고, 가능한 한 자료들을 모아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 하는 것.

 

그래서 책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본인은 자료들을 발췌해서 책을 냈다고 하지만, 요즘 나오는 책들보다 두 배는 두껍다.

 

무려 680쪽에 달한다. 주나 보충설명까지 더하면 700쪽이 넘는다. 사람들이 읽기에는 우선 분량에서 질린다. 그럼에도 읽기 시작하면 잘 읽힌다.

 

숱한 예화들과 구체적인 자료들이 제시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학술서라기보다는 대중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까지의 세계다.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자신이 조사할 수 있는 대상을 조사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책에 남아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직접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쉽게 이야기하면 오지에 살던 사람들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해서 쓴 글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는 지구화, 세계화 되어서 그런 사람들이 얼마 남아 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의 삶을 어제까지의 삶이라고 하고 살펴본 책이 이 책이다.

 

왜 어제까지의 삶일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 우리 인류의 발생초기에 살았으리라 추측되는 삶들을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문명이 발달했음에도 현대문명을 만나지 못해 예전 방식 그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어제까지의 세계다. 왜 '까지'냐면 이제는 그런 삶을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 없는 삶을 살았던 그들에게 이제는 국가가 존재한다. 국가는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 고유의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국가는 간섭하고 통제하고 교화하려 한다. 또 그들 역시 현대 문명을 접하고는 현대 문명을 동경한다.

 

어제까지처럼 산다는 것은 고통과 괴로움과 굶주림과 위험에 처해 있는 삶이라는 얘긴데, 현대 문명은 이들을 없애버리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에 이들은 어제에서 나와 오늘을 살려고 한다.

 

그래서 어제까지의 세계다. 이제는 사라져 버릴 세계. 그러나 어제란 오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오늘에 살아남지 못하는 어제는 어제로 기억되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어제까지의 세계는 오늘의 세계를 비추어주는 거울이 된다. 오늘의 세계를 더 잘 살게 해주는 안내서가 된다.

 

하여 이 책은 과거의 삶을 사는 소수 민족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들 삶에서 지금 우리가 들여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과거가 암울했다고 해서 과거를 통째로 잊자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빛과 어둠을 다 보여주기 때문에 과거의 어둠은 제거하고, 빛을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자는 말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식생활이다. 또 친밀감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이다. 이런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식생활로 인해 고혈압, 당뇨병 등 온갖 성인병이 난무하는데, 우리가 살아온 어제까지의 세계에서는 이런 식생활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고, 우리의 유전자는 지금의 식생활에 견딜 수 있는 몸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고... 그래서 저염식, 채식 위주, 천천히 먹는 습관이 있는 어제까지의 세계가 습관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말.

 

또 서로의 얼굴을 보며 집중하면서 이야기하는 태도. 그리고 아이들을 업을 때 업는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게 업는 것, 또 함께 자는 것 등등. 그리고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이는 것.

 

여기에 무엇보다도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건설적 편집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심하는 태도.

 

안전이 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어제까지의 세계의 모습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은 사라지겠지.

 

방대한 분량에 비해서 결론이 너무도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정답은 늘 가까이에 있는데, 그걸 멀리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지. 어제까지의 세계는 바로 오늘의 세계와 맞닿아 있고, 어제까지의 세계가 우리에게 내일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미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존재했었고, 오늘에 현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오래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우리는 미래는 과거와 현재와 다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자도 말한다. 과거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를 무조건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다만, 충분히 우리 눈 앞에 좋은 것이 함께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계속 유지하자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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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재구성 -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 급여
브루스 액커만 외 지음, 너른복지연구모임 옮김 / 나눔의집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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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허경영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래도 한 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 그는 갖가지의 기행으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 내건 공약을 보고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허황된 소리를 한다고 했었다.

 

그의 공약 중에서 위키피아에 있는 것 몇 가지만 보면 지금 보아도 앞서가도 너무 앞서 갔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원씩 지급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재혼 제외)

출산수당 출산시마다 3000만원씩 지급

 

이것이 그의 공약 중 유명해진 것들이다. 다 복지에 관련되는 것들인데,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75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현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만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것을 앞서 간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 수당은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출산수당은 이야기되고 있지만, 결혼 수당은 아직(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실시하고 있지 않다. 여행 다니다 어느 동네에서 플래카드에 결혼을 하면 결혼 장려수당으로 얼마를 준다는 내용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이야기가 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 때는 저런 미친 사람, 하고 손가락짓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무상급식이라 불리는 의무급식이 시행되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누리교육과정을 나라에서 책임지겠다고(말로는 그래놓고, 지자체, 또는 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하고 있지 않은가.

 

반값 등록금 이야기도 나왔었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반값 등록금으로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그에 준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도 현 대통령 공약이지 않았나.

 

그런데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버려 문제가 많아졌지만, 이렇게 그런 공약이나마 내걸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갑자기 왜 허경영 이야기냐고?

 

요즘 계속해서 기본소득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 모두에게 조건없이 일정액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허경영의 공약처럼 실현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냐고, 꿈도 꾸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유토피아, 그냥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능한 유토피아라고 해서 '리얼 유토피아'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 내용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분배의 재구성"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분배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분배의 재구성으로 사람들은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가 있게 된다.

 

이들은 평등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고, 당당한 한 개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무엇으로도 차별받지 않고 말이다.

 

다만, 기본소득으로 달마다 얼마를 주어야 하냐 하는 금액과 어디서 재원을 마련하느냐는 재원 마련의 문제, 그리고 기본소득과는 성격이 좀 다른 '사회적 지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그리고 어느 정책을 지지할 것이냐 하는 점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반 빠레이스와 사회적 지분을 지지하는 액커만과 알스톳의 주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둘은 목표에서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과정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지급이 지속적이냐 일시적이냐, 소액이냐 거액이냐의 차이 말고도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것이 더 우리나라 상황에 합당하냐를 지금은 따질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논의들이 일어난다는 사실들이 기본소득이 먼 미래가 아닌 곧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복지가 계속 뒤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번역되어 이미 몇 십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관해서 논의를 하고, 그 주장이 실현될 수 있게 구체화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 복지에 대해서 냉철하게 판단하는 눈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사람들이 실질적 자유를 누리면서 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소득은 필수적이니, 그런 삶의 소득을 재분배해주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정당이 있고, 또 기본소득에 관해서 이론을 만들고 홍보도 아닌 단체도 있는데, 기본소득에 대해서 또는 사회적 지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면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 무엇인지, 또 사회적 지분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것이 더 자신에게 와닿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해 관심이 더 생기면 기본소득네트워크에 한 번 들어가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http://basicinco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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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기본소득 - 논쟁과 전략의 탐색
이명현 지음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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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쟁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월호법이 통과되자마자 이제는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해야겠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인지,그도 아니면 이제는 어쩔 수 없으니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인지 '복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그것도 공약인데, 공약을 지켜야지가 아니라, 내 공약이지만 너희가 지켜라라는 아주 이상한 쟁점이다.

 

누리교육과정 예산에 대한 논의가 무상급식(엄밀한 의미로 쓰면 의무급식이어야 한다. 의무교육에에는 급식 역시 포함되어 있다.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엄포까지 놓으면서 학교로 애들을 오게 만들어 놓고 밥은 돈을 내라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논의로 번져가고 있다.

 

몇 년 동안 잘 시행이 되고 만족도도 높고 정착이 되어가고 있는 급식 문제를 누리교육과정과 연관지어, 경기도 이재정 교육감의 말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를 만들려고 하는데도 이상하게도 언론에서 연일 이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교육청의 잘못인 듯한 어감을 풍기고 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가, 왜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는가를 새삼 실감하고 있는 중인데...

 

한 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부자유를 견디지 못한다. 한 번 복지의 장점을 경험한 사람은 복지 폐지를 견딜 수 없다.

 

무상급식(의무급식) 역시 마찬가지고, 이는 기초노령연금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지켜져야 할 사항이다. 이것을 가지고 왈가왈부 한다는 것 자체가 후진적이다.

 

앞으로 한참 나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자꾸 뒤로 가려는 복지정책. 이것을 언론이 다뤄줘야 하는데...

 

학생들만이 아니라 청년들, 그리고 노인들, 여기에 중장년들까지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사람들로 만들려고 하는지 왜 이렇게 정책이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다.

 

지금 세계는 복지를 놓고 논의중이고, 이 복지 중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시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선별적 복지니 보편적 복지니 하면서 의무급식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우리나라로서는 다른 나라의 기본소득에 관한 움직임이 부럽기만 한데...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에 관한 움직임이 있다. 우리나라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소수이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의 책임이 여기서 또 대두된다.

 

기본소득은 대표적인 보편 복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일정한 금액을 지급한다는 정책이다.

 

이렇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람들은 생계의 걱정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게 된다. 이 자유는 노동시장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가 된다.

 

근대에 들어 국가는 노동자들에게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가 될 수 없게 만들었다. 자본과 결탁한 국가의 초기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다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가 자본의 증식에도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국가는 복지를 도입한다.

 

물론 선별적 복지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 이들을 그대로 두면 사회 문제가 되고, 그 처리 비용이 더 드니, 이들에게 최소한의 호구책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 선별적 복지다.

 

이렇게 선별적 복지로 세월이 흘러갔는데, 이는 자본이 성장을 구가할 때나 가능한 복지 정책이었다. 자본이 세계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러한 선별적 복지를 위한 세금이 잘 걷히지 않게 되었을 때 자본과 국가가 선택한 길.

 

아니 자본과 국가가 선택하게 만든 길이 바로 보편적 복지다. 보편적 복지는 현대 국가의 새로운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선별적 복지가 근대국가의 몫이었다면 보편적 복지는 현대국가의 몫이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대표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직 국가적으로 실행이 되고 있는 국가는 없지만, 시도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곳은 있으며, 기본소득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되고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세계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선별적 복지니 보편적 복지니에서 머물고 있다.

 

이미 보편적 복지인,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간다는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고, 또 연구들도 많이 되었으며, 책으로도 많이 출판되었는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모르쇠로 자신들의 무식을 자랑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대표격인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론 및 쟁점,그리고 실현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살핀 책이다.

 

세계적인 추세에, 이념에 따른 기본소득 논의, 나라에 따른 차이 등을 세세하게 잘 밝혀 놓고 있어서 기본소득에 관한 체계적인 정리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기본소득은 환상적인 주장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주장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충분히 가능하고, 또 우리가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허니, 우리 정치권이 뒤로 가게 하지 말자. 앞으로 가도 모자랄 판이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더 나은 정책들, 우리가 실현해야 할 정책들이 앞에 놓여 있다.

 

이미 잘 되고 있는 것들을 흔들려고 하는 집단을 경계하고, 그들을 멀리하고,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꿈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하자. 그런 공부를 하자. 그런 논의를 하자.

 

이 책은 그런 논의가 지금, 필요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온 기본소득, 구체적인 실현은 우리에게 달려 있으니...

 

기본소득은 바로 이런 것이다.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의 직업을 선택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지만,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아도 될 자유를 약속한다.
... 기본소득이 있으면 사람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영업이나 협동조합 기업을 시도하기도 하고 원하는 분야의 시간적 작업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쾌한 정규직에 종사하도록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사회는 책임과 자율 같은 사회적 기반을 중요시하며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이다.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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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1-0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읽기 시작했어요.
요새는 구 사회당(현 노동당) 사람들 외에 녹색당 사람들도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 책도 찜해둬야겠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 - 복잡한 세상, 넘쳐나는 기기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이경남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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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무호흡증이라고 들어 보았는지. 수면무호흡증은 들어보았어도, 이메일 무호흡증은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잠잘 때 숨을 쉬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이메일의 홍수 속에서 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숨을 무의시적으로 쉬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경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점점 더 빈도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우리는 잠만큼이나 이메일과 같은 전자기기, 즉 디지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은 많아지는데, 의식적으로 이용하는 시간은 적어지니, 자연스레 무호흡증이 생길 수 있고, 이 무호흡증이 당장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몸에 좋을 리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있는데, 이메일 무호흡증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위치 태스킹을 멀티 태스킹으로 착각을 하고 지내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한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일들을 순서대로 할 뿐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디지털 주의 결핍 상태, 즉 디지털로 인한 주의 산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산만함을 다방면의 일을 동시에 처리함으로 착각하고 지내는 일,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자. 우리나라는 이메일 무호흡증이라기 보다는 카톡 무호흡증이라고 해야 하고, 컴퓨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스마트폰에 의한 주의력 결핍 상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해 보라. 아이들은 한 순간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다. 또 언제든지 스마트폰이 울린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현상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더 심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늦게 스마트폰을 만나게 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모두들 손에 이 작은 기기를 들고 몰두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기기가 잠시라도 없으면 불안해 한다.

 

그렇다고 일의 능률, 학생들의 학습 집중력이 높아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학습 효과를 이루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가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디지털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고,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디지털 기기는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 몸은 이런 기기들로 인해서 확장이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얽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얽힘을 인정하고,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어떻게? 우선 "관조"

 

디지털 기기를 다루고 있는 나를 관찰하는 연습부터 하자는 것이다. 이를 거리두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명상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런 명상과 같이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나를 생각하고, 인식하면서 기기를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명상에서 호흡을 하면서 호흡이 내 몸에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나가는지를 의식하면서 하듯이 디지털 기기를 다루면서 내가 지금 왜, 어떻게 이 기기를 다루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매달릴 때보다 훨씬 더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잘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더불어 하나 더 디지털 안식일을 갖자는 것이다. 러다이트운동처럼 기기를 거부하고 파괴할 수는 없으니, 이를 이용하되 일정한 시간을 두고 디지털 기기를 닫아두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다면 디지털에 대해 더 의식적인 사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디지털에 몰입을 하더라도 그렇게 몰입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조가 필요하고, 디지털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갖는,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그런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디지털로 인한 산만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연 속을 산책하는 일... 오프라인의 결정체. 그런 일들. 우리 아이들에게 온라인 상의 세계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경험하게 하는 일. 그것을 어른들이 먼저 실천하는 일.

 

디지털 홍수 시대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이다.

 

적어도 디지털 기기를 만지면서 왜 만지는지, 어떻게 만지는지를 생각하는 관조의 습관을 갖고, 또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디지털에서 멀어져 실생활에서 직접 온몸을 사용하는 그런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생활을 하자.

 

그것이 나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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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 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하승우 지음 / 이매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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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삼척에서 핵발전소 유치를 두고 주민투표가 있었다.

 

이미 삼척에 핵발전소를건설하기로 했었는데,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삼척시장으로 출마한 사람의 공약이 주민투표에 핵발전소 유치 여부를 부치기로 한다는 것이었고, 이 공약을 실천한 것이다.

 

투표율이 개표를 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개표 결과 핵발전소 유치 반대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 중앙정부에서, 또 법무부에서 이런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나온 것.

 

법적 효력?

 

자신이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걸려 있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는데, 그것이 법적 효력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지? 핵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누가 쓰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쓰나,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쓴다. 그런데 결정은 정부에서 한다.

 

지방에서 당사자들이 할 수가 없다. 당사자들이 어렵게 성사시킨 주민투표도 법적 효력이 없다고 무시한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형식만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법적 절차라는 형식적 절차만이 중요하지, 실질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과는 관계가 먼 사람이 결정해준 대로 따라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종. 아니 이 정도면 말살이다. 지방자치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방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은 중앙정부에 종속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터를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론으로 아나키즘을 들고 있다.

 

아나키즘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에 이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런 이론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나온 이론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론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아나키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어떤 결정된 이론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게 실천해 가는 이론임을 보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연결되어 가는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개념이 '연방주의'와 '협동'이다.

 

중앙집중적인 지금 우리 상태에서는 삼척의 경우와 같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 수가 없다. 연방주의 처럼 각 지방이 독립적인 정치, 경제적 힘을 지니고 대등한 관계들을 맺어갈 때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협동이 필수적이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대등한, 너를 나로 보는 그러한 인식부터 시작하는 아나키즘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나키즘. 여기에 대해서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형식적인 법 구절에 얽매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제도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삶에 관한 정치를 소수의 정치가 계급에게 맡기고, 자신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정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가 계급에게 내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내 삶에 관계되는 정치에 내 스스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권리를 찾게 되는 방법이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아나키즘이다.

 

지금, 우리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얼마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결과 아니던가.

 

내 권리를 찾아오는 것. 내 삶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

 

내 삶터와 같이 다른 사람의 삶터도 존중해주는 모습. 그런 모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삶.

 

그게 가능하게 하는 정치. 그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듯이 아나키즘이다.

 

내 권리 찾기. 이게 바로 지금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정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만한 좋은 글들.

33쪽. 대의민주주의는 이성의 구실만을 강조할 뿐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의 장 밖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제거하려 든다.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부정하고 시민의 정치 행위를 가로막는다. ...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의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제거하거나 정치를 경제에 예속시킨다. 그러면서 정치는 점점 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중의 정치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불가능하다. 고대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전환은 민주주의를 축소하거나 민주주의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48쪽. 공간적 의미에서 벗어나면 풀뿌리 운동은 단지 지역운동을 뜻하지 않고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50쪽.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51쪽. 풀뿌리 정치는 `합의`나 `순수함`보다 `차이`와 `혼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대화와 조직화만으로 부족하다. 앞서 말한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53쪽. 풀뿌리 운동은 경쟁과 생존 투쟁을 극복하고 공생과 자율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내 삶의 경험이나 의식하고 분리되지 않은 정치 구조를 만드는 행위이며, 삶 자체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54쪽.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둥글게 모여 앉아 지혜를 모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95쪽. 협동조합이야말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기대를 건 삶의 양식이었다.

139쪽. 아나키스트들의 지향은 다양했지만, 기본은 `자유로운 코뮌` 또는 `자율적인 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고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계, 생산하고 교환하고소비하는 체계가 사유화되지 않고 사회화된 체계, 그곳이 바로 코뮌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위해 아나키스트들은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나키스트들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을 주장했다.

157쪽. 아나키즘은 모든 권력에 맞선 반대, 모든 조직에 맞선 반대, 모든 질서에 맞선 반대가 아니라, 제어할 수 없고 집중화된 권력을 향한 비판이다. 따라서 `반강권주의`가 적절한 번역이다.

168쪽. 타자를 대상화시키지 않아야 서로 보살피며 자치와 자급의 삶을 살 수 있다.

169쪽. 법치주의에서는 법 자체만큼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보장돼야만 한다.

190쪽. 연방 국가는 `유기적인 분리`의 원칙을 따라서 모든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만큼 분리시켜야 하며, 공공 행정은 전적으로 공개되고 통제돼야 한다. 이런 정부 아래에서 아나키즘은 시민과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기 질서를 재구성하고 공동체 간의 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220쪽.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시킬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국유화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기회나 그럴 이유도 줄어든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맞선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와 `공적인 소유`를 지향해야 한다.

221쪽. 공유가 자연스러운 원리로 사회에 자리 잡으려면 협동을 내세운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아나키즘은 국가와 자본을 대체할 힘을 만들지 않으면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힘은 외부의 지원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져야 했다.

235쪽. 아나키즘은 중앙 집중화된 혁명 조직이 아니라 각자의 살림살이를 지지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들 간의 연계와 단단한 삶의 그물망이 아직 오지 않은 사회를 도래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도래할 사회는 그 사회를 도래하게 만드는 방법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하게 믿었다. ... 손을 잡으려면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존재에 눈을 떠야 한다. 그런 마주봄의 계기는 바로 교육이다. ...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을 결합하려면 교육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243쪽. 아나키즘의 주체는 자기에 눈 뜨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존재다.

251쪽. 정치인들에게 공적인 일을 떠맡긴 채 공적인 시민의 성격을 잃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갇힌 개인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자주적인 특성, 곧 적극적인 공동체 참여를 통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특성을 잃어버린다. 자본주의와 권위주의는 사람들의 이런 자각과 성장을 가로막으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277쪽. 연방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국가기구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권을 통해 지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런 지역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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