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여름언덕 공동선 총서 1
제임스 C. 스콧 지음, 김훈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아나키스트 하면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은데, 책 제목부터 모두가 아나키스트라니?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하지 않나? 무정부주의자라고 하면 반정부주의자, 반국가주의자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무정부주의자 하면 왠지 위험인물로 취급당할 것 같은 느낌이 되는데,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을 붙여도 되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인식이 확장이 되었고,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나타났으며, 아나키즘의 주요 언어로 에스페란토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뜬금없이 우리가 모두 아나키스트라니...

 

도대체 아나키스트가 뭐길래 그럴까?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 책의 정의부터 보자. 물론 이 책의 지은이가 정의한 내용은 아니다.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서 한 말인데, 이 책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사람 살기 더 힘들게 만드는 온갖 이념과 제도와 조직과 기관과 시스템과 못생긴 인간들의 전제적 강압과 착취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 상호부조의 정신에 의해서 서로 도우면서 진화하는 것을 지향하고, 인간의 자유와 자주성과 창의성과 자발성을 돋워줘서 세상을 좀 더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꿈이 곧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즘은 국적이 없고 경계선이 없고 차별이 없고 착취가 없는 '세상을 보는 따듯한 눈길'이다.  - 214쪽.

 

이것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렇다면 누가 아나키스트가 되지 않고자 하겠는가.

 

이렇게 좋은 아나키즘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지은이 역시 아나키즘에 대해서 사상의 핵심이라든가, 사상가들의 사상이라든가 하는 것을 이야기해주기 보다는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아나키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아나키즘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제도들의 비합리성, 비자주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단일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우리들의 자발성과 창의성 또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이것들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바로 아나키즘임을 알게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그렇다. 학교라는 제도가 알게모르게 사람들을 통제, 훈육하는 역할을 하는데, 또 학교를 통해 배출된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적 의제를 결정하려는 모습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극서이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아주 사소한 예로 신호등을 들고 있다. 신호등이 교통안전을 지켜준다는 신화 속에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 신호체계를 무작정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네덜란드의 한 마을에서 신호등을 없앨을 때 일어난 일을 들어, 우리들이 권력, 제도에 굴복하여 우리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 이론이나 맑스주의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티부르조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프티부르조아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것. 누구나 자신이 살 만큼의 땅과 집을 지니고 싶어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자율성과 자유,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는 것. 이런 프티부르조아들이 서로 협력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시각이다. 사적 소유를 없애려고 했던 시도들이 무력화된 지금, 대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해 가고 있는 지금, 소농, 자영업자, 자유노동자 등 프키부르조아들을 배격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삶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아나키즘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온전한 개인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 협동. 바로 이것이 아나키즘이라는 생각. 그런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 아닐까.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라, 모든 것이 표준화된 사회가 아니라, 우연에 기댄, 그러나 그 우연 속에서도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 개성을 뽐내면서도 서로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다시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아래 생각하기에 좋은 문장.

65쪽. 카리스마의 핵심조건은 아주 주의 깊게 듣기와 반응하기다. ... 사회 밑바닥 계층 사람들은 대체로 최상위 계층 사람들보다 더 잘 듣는 편이다.

75쪽. 질서, 합리성, 추상성, 이름 일람표의 종합적인 명료성, 풍경, 건축술, 작업 공정 등은 위계 권력에 도움이 된다.

83쪽. 다양성을 지닌 환경에서 가장 잘 자라고 번성하는 사례가 꼭 식물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인간의 본성도 역시 변화와 다양성을 좋아해서 협소한 획일성을 피하려는 성향을 지닌 듯하다.

109쪽. 개방성의 정도는 어떤 활동이나 제도(그것의 형식, 목적, 규칙들)가 그런 활동을 수행하거나 그런 제도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욕구에 의해서 얼마만큼 수정되거나 병경될 수 있느냐에 따라 가늠이 된다.

113쪽. 포유동물들은 요란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포함한,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놀이를 통해서 신체적 기능 조정과 신체적 능력, 정서적 조절, 사회화와 적응과 소속과 사회적 신호와 신뢰와 실험 등의 능력을 계발한다.

... 놀 기회를 박탈당한 인간들은 폭력적인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불신하는 경향이 아주 높다.

122쪽. 공립학교 시스템의 크나큰 비극은 그것이 대체로 단일 제품 생산 공장이라는 점이다. ... 이런 제품은 대체 어떤 제품일까? 그것은 협소하게 구획된 특정한 형태의 분석적 지성 혹은 재능이다.

134쪽. 우리의 일상 삶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관행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또 우리의 일상 관례들과 기대치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136쪽. 나는 붉은 신호등 철거를 책임감 있는 운전법과 시민 예절을 훈련하는 온건한 형태의 연습으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건 내가 경험한 일인데...예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 신호등이 없었다. 알아서 차들과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보행자들이 길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137쪽, 교통 관리의 공유 공간 개념은 차량 운전자와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들의 지성과 양식, 주의 깊은 관찰에 의지하고 있다.

139쪽. 자주성과 자유는 상호부조의 정신과 더불어 무정부주의적 감성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144쪽. 하위 계급 사람들은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변경에서 살거나 작은 재산과 결부된 최소한의 권리 정도만을 누리며 국가 안에서 사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을 통해 상대적인 자율성과 자주성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땅 한 뙈기와 자기 집과 자기 가게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엄청난 욕구는 주로 행동의 자유와 자주성과 그런 재산들이 제공해주는 안전이라는 현실적인 이익뿐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과 지위, 작은 재산과 결부된 명예(국가나 이웃 사람들의 눈에 비친)도 함께 확보하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85-186쪽. 양적으로 우수성, 질을 평가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수량적인 감사 시스템에 주로 의지하는 것이 안겨주는 진정한 피해는 활발한 민주적 토의의 일부가 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회의장에서 다루지 않고 중립적이라고 하는 전문가들의 수중에 맡기는 데서 온다. 원래 공적인 영역에 속해야 마땅할 것들을 그 영역에서 빠앗아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많은 시민과 공동체의 삶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 과정에서의 이러한 사이비 탈정치화다.


아나키즘 사상가들과 선동적이지 않은 포퓰리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시민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참여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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