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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 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하승우 지음 / 이매진 / 2014년 4월
평점 :
얼마 전에 삼척에서 핵발전소 유치를 두고 주민투표가 있었다.
이미 삼척에 핵발전소를건설하기로 했었는데,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삼척시장으로 출마한 사람의 공약이 주민투표에 핵발전소 유치 여부를 부치기로 한다는 것이었고, 이 공약을 실천한 것이다.
투표율이 개표를 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개표 결과 핵발전소 유치 반대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 중앙정부에서, 또 법무부에서 이런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나온 것.
법적 효력?
자신이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걸려 있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는데, 그것이 법적 효력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지? 핵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누가 쓰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쓰나,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쓴다. 그런데 결정은 정부에서 한다.
지방에서 당사자들이 할 수가 없다. 당사자들이 어렵게 성사시킨 주민투표도 법적 효력이 없다고 무시한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형식만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법적 절차라는 형식적 절차만이 중요하지, 실질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과는 관계가 먼 사람이 결정해준 대로 따라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종. 아니 이 정도면 말살이다. 지방자치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방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은 중앙정부에 종속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터를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론으로 아나키즘을 들고 있다.
아나키즘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에 이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런 이론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나온 이론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론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아나키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어떤 결정된 이론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게 실천해 가는 이론임을 보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연결되어 가는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개념이 '연방주의'와 '협동'이다.
중앙집중적인 지금 우리 상태에서는 삼척의 경우와 같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 수가 없다. 연방주의 처럼 각 지방이 독립적인 정치, 경제적 힘을 지니고 대등한 관계들을 맺어갈 때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협동이 필수적이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대등한, 너를 나로 보는 그러한 인식부터 시작하는 아나키즘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나키즘. 여기에 대해서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형식적인 법 구절에 얽매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제도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삶에 관한 정치를 소수의 정치가 계급에게 맡기고, 자신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정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가 계급에게 내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내 삶에 관계되는 정치에 내 스스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권리를 찾게 되는 방법이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아나키즘이다.
지금, 우리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얼마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결과 아니던가.
내 권리를 찾아오는 것. 내 삶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
내 삶터와 같이 다른 사람의 삶터도 존중해주는 모습. 그런 모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삶.
그게 가능하게 하는 정치. 그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듯이 아나키즘이다.
내 권리 찾기. 이게 바로 지금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정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만한 좋은 글들.
33쪽. 대의민주주의는 이성의 구실만을 강조할 뿐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의 장 밖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제거하려 든다.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부정하고 시민의 정치 행위를 가로막는다. ...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의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제거하거나 정치를 경제에 예속시킨다. 그러면서 정치는 점점 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중의 정치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불가능하다. 고대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전환은 민주주의를 축소하거나 민주주의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48쪽. 공간적 의미에서 벗어나면 풀뿌리 운동은 단지 지역운동을 뜻하지 않고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50쪽.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51쪽. 풀뿌리 정치는 `합의`나 `순수함`보다 `차이`와 `혼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대화와 조직화만으로 부족하다. 앞서 말한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53쪽. 풀뿌리 운동은 경쟁과 생존 투쟁을 극복하고 공생과 자율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내 삶의 경험이나 의식하고 분리되지 않은 정치 구조를 만드는 행위이며, 삶 자체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54쪽.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둥글게 모여 앉아 지혜를 모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95쪽. 협동조합이야말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기대를 건 삶의 양식이었다.
139쪽. 아나키스트들의 지향은 다양했지만, 기본은 `자유로운 코뮌` 또는 `자율적인 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고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계, 생산하고 교환하고소비하는 체계가 사유화되지 않고 사회화된 체계, 그곳이 바로 코뮌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위해 아나키스트들은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나키스트들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을 주장했다.
157쪽. 아나키즘은 모든 권력에 맞선 반대, 모든 조직에 맞선 반대, 모든 질서에 맞선 반대가 아니라, 제어할 수 없고 집중화된 권력을 향한 비판이다. 따라서 `반강권주의`가 적절한 번역이다.
168쪽. 타자를 대상화시키지 않아야 서로 보살피며 자치와 자급의 삶을 살 수 있다.
169쪽. 법치주의에서는 법 자체만큼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보장돼야만 한다.
190쪽. 연방 국가는 `유기적인 분리`의 원칙을 따라서 모든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만큼 분리시켜야 하며, 공공 행정은 전적으로 공개되고 통제돼야 한다. 이런 정부 아래에서 아나키즘은 시민과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기 질서를 재구성하고 공동체 간의 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220쪽.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시킬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국유화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기회나 그럴 이유도 줄어든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맞선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와 `공적인 소유`를 지향해야 한다.
221쪽. 공유가 자연스러운 원리로 사회에 자리 잡으려면 협동을 내세운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아나키즘은 국가와 자본을 대체할 힘을 만들지 않으면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힘은 외부의 지원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져야 했다.
235쪽. 아나키즘은 중앙 집중화된 혁명 조직이 아니라 각자의 살림살이를 지지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들 간의 연계와 단단한 삶의 그물망이 아직 오지 않은 사회를 도래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도래할 사회는 그 사회를 도래하게 만드는 방법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하게 믿었다. ... 손을 잡으려면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존재에 눈을 떠야 한다. 그런 마주봄의 계기는 바로 교육이다. ...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을 결합하려면 교육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243쪽. 아나키즘의 주체는 자기에 눈 뜨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존재다.
251쪽. 정치인들에게 공적인 일을 떠맡긴 채 공적인 시민의 성격을 잃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갇힌 개인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자주적인 특성, 곧 적극적인 공동체 참여를 통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특성을 잃어버린다. 자본주의와 권위주의는 사람들의 이런 자각과 성장을 가로막으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277쪽. 연방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국가기구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권을 통해 지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런 지역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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