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기본소득 총서 3
강남훈.권정임 외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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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잠잠해졌다. 실제로 잠잠해진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복지정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언론을 통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지고,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느니 마느니 각 지방의회에서 말들이 많은데, 무상이 아니라 '의무'라는 말로 바꾸자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무상 중의 무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국민에게 어떤 조건도 걸지 않고 균등하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기본소득이니,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문제에도 두 팔 걷고 덤비는 사람들에겐 기본소득이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때문인지 언론들은 기본소득은 다루지지도 않는다. 현실의 문제만을 조금씩 다루고 있을 뿐인데, 복지정책에 관해서 앞서 가는 의제를 만들어내는 언론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하지만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논의되거나 실험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지국가라고 하는 핀란드, 독일, 그리고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카탈루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거쳐 아프리카에 있는 한 도시에서 기본소득을 직접 시행한 나미비아, 그리고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명시한 브라질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가 한창이고, 기본소득 이론을 구체화시켜가고 있다. 이것은 기본소득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얘기라고 받아들여도 된다.

 

함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해서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마음 속에 개운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왜 이렇게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어떤 도시에서는 시행도 했고, 헌법에 기본소득을 명시하기도 했는데 왜 아직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는가?

 

기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좋다고 하는, 또 단순하고 명쾌한 이 기본소득 정책이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경제가 호황을 이루었을 때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쏙 들어갔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본소득 논의가 재점화되는 모습이 이 책에 나타난 세계 여러나라의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논의는 활발했으나 실행을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해서 알리고, 실현가능성을 주장하는 책이지만 이상하게 읽으면서 기본소득이 실현되기가 참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유토피아'라고 모두가 힘들어질 때 그 때 함께 살아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

 

그렇다면 지나친 경제적 풍요는 기본소득 논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함께 어려워지자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기본소득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노동을 꼭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바로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함께 삶 자체가 바로 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으니, 그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면 기본소득은 충분히 시행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전제된다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들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의 세금에서 많이 올리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세금이 투명하지 않은, 고액 탈루자가 너무도 많은, 종교인들에게 과세를 하지 않는, 상위 소득자의 세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의 재원은 사실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리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본소득을 추진할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정당이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또 정당으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추진하게 강제할 시민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좋은 기본소득이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분명 가능하다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책이다.

 

이제는 무상급식이나 뭐니 이런 논의를 떠나 좀더 발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우리나라도 이 책의 사례들처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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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과학자들 - 생명 윤리가 사라진 인체 실험의 역사
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 지음, 안희정 옮김, 서민 감수 / 다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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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읽기에 너무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어쩌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 장래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할 책.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또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책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서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막 튀어나오고, 내 마음의 파장이 깨지는 그런 경험을 하기는 하지만, 마음의 파장이 깨지면서 평정이 깨지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에, 그러한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읽어야만 한다.

 

우리 인류가 인류애란 이름으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것도 사람을 살린다는 의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죽였는지, 그러면서도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요즘은 의사보다는 제약회사라는 다국적 기업이, 돈을 앞세워 사람을 실험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더욱 이런 책은 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기니 피그(실험용 인간)"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명의 과학자와 한 명의 시인이 생각이 났는데, 다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노구치 히데요, 황우석, 윤동주

 

노구치 히데요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닥터 노구치"라는 제목의 만화로 9권이 나와 있다. 그 만화 참 감동적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결국 인류를 위하는 세균학자가 되는 노구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책에도 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황우석도 마찬가지다. 한 때 우리나라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사람 아니던가. 배아복제, 줄기세포 등등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원들에게 난자를 제공하게 했던 사람.

 

난자를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과연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떨어뜨리는 일에 불과하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있다. 그 누구라도. 그러기에 인간은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으니,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여기에 윤동주. 일본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다고 알려져 있는 순수한 시인. 그의 자기성찰이 나타난 시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럼에도 그는 실험용 인간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런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특히 731부대에 관한(마루타라는 말로 유명해진)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하여간 읽어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무엇보다도 실험용 인간이 된 사람들은 전시에는 군인들을 비롯한 사람들... 평상시에는 사회에서 정말로 힘 없는 약자들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힘든 사람들, 사회로부터 낙오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주고 실험용 인간으로 사용했다. 그 실험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이것이 과연 인류를 위한다는 것인가.

 

정작 인류를 위하는 일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즉 인류를 위하는 일은, 수단이 목적과 일치되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이, 의사들이 구하고 싶어하는 인류는 바로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막 다루면서 인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에 불과하다.

 

정작 인류를 위한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가장 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할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는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똑똑한 학생들, 특히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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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사회 -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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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말라테스타는 파리코뮌과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168쪽)라는 말로 말라테스타를 설명하고 있다.

 

낯선 인물, 아나키스트 하면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을 떠올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스페인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루티, 그리고 미국의 촘스키, 또 여성으로는 엠마 골드만 정도를 떠올리던지, 아니면 톨스토이까지를 생각해 내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박열이나 신채호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은 생소했다. 게다가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고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을 했으니 낯설 수밖에... 나에게 이탈리아의 사상가는 '그람시'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상과 행동의 일치, 감정과 이성의 균형, 설교와 실천의 일치, 완고한 투쟁 에너지와 인간의 선함을 결합시키고 우아한 상냥함과 매우 엄격한 완고함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162쪽)는 평가를 받는다는 옮긴이 후기를 읽고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에 의해 아나키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 아나키즘 쪽에 많은 관심이 갔지만, 아나키즘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문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는 몇 가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물론 그 답은 말라테스타가 살았던 당시의 해결책이겠지만, 지금에도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제법 있고, 또 그의 생각을 현재에 맞게 변용해서 적용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카페에서 하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질문과 대답, 반박, 재반박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렵지가 않다. 적어도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이루어진 17번의 대화. 이것은 주제가 17개라는 얘기고, 17개의 문제를 가지고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대책을 제시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17개의 주제를 보자. 지금도 유효한 주제들이 꽤 있는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 지금 현실과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하다.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는 왜 가난한가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자유로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나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가족은 자유로운가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인민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지금 토론해도 좋을 주제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찬찬히 이 책을 읽어보자. 도대체 이 책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적어도 아나키즘이라는 것이 어떤 사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나키즘의 입문서로써 이 책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읽기에 편하고, 분량도 적당하고, 또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서 그러한 주제에 아나키즘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 무모한 공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정부주의가 아닌, 반강권주의로 번역하자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의 자율, 자치, 협동을 세 덕목으로 삼고, 그러한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자치를 이룬 집단들이 연대해서 사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니, 꼭 공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가 먼저 읽은 박홍규의 인디언의 민주적 아니키즘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아나키즘은 단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상가들의 말들도 다 아나키즘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세상에 나만큼 귀한 존재가 없다는 말은 나만큼 너도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니 서로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이고, 공자가 말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하지 마라는 말 또한 내 자유와 남의 자유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고, 노자의 소국과민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아나키 사회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예수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나라 역시 아니키 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실 아나키즘은 근대에 나온 사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상인데, 이를 현대에 실현하기 위해서 현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이러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어떤 권위에 자신의 권리를 내주지 않고 스스로 자치를 행한다는 주장에서 아나키즘이 꼭 필요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 옮긴이가 끝부분에서 제기한 질문... 정말 아나키즘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주제들과도 통한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할 때에 처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아나키즘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것이 실현되는가 마는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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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 인디언에게 배우는 자유, 자치, 자연의 정치
박홍규 지음 / 홍성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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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놀랍고, 이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들고, 설마?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지... 수긍도 하다가,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하다가, 아냐,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 하면서도, 그래도? 뭔가 미심쩍어 하면서 읽었는데...

 

민주주의의 원형을 우리는 흔히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는데, 이 책에서 박홍규는 민주주의의 원형은 인디언 사회에 있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아시아 대륙에서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많고, 그들의 피부색과 우리들의 피부색이 비슷해서 우리는 어쩌면 같은 종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수긍을 하지만, 서양의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영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인디언에게서 배운 것이라니...

 

이렇게 파격적인 주장을 할 수가 있나,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생각으로 읽어 갔다. 인디언들에 대해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들에 대한 생각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렇게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그들에게서 연원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아서 흥미도 있었지만 반신반의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책 내용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게 된다.

 

법학자답게 근거를 들어서, 특히 사회계약이라든지 법률 쪽에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읽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어가면서 기존 지식이 무장해제된다. 기존에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이 서양의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이래서 교육은 중요하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여 지도자라고 하여도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으며, 지도자이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이나 권력을 축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사회였고, 그래서 그들은 작은 집단끼리 자치적인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자치를 바탕으로 하여 서로 연합하는 연맹체의 제도를 마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하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은 사실은 침략에 다름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이들의 침략으로 몇 천 년 동안 이어져 오던 자유롭게 자치했던 인디언 사회가 멸망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한 번은 들어보았던 이름, 라스카사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줘 같은 서양인이지만 인디언을 대하는 태도가 콜럼버스와 라스카사스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이방인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이 라스카사스는 영화 '미션'의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과 신부 둘 다 합친)

 

이들이 이렇게 자유와 자치를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그렇다고 자연에 매몰된 삶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 그리고 남녀 평등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유럽의 법률에도 인디언 사회의 제도가 많이 반영이 되었다고 법률적 조항들을 예로 들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인디언 사회에서 이루어졌던 자유ㅡ자치의 모습인 '호데소노니 연방회의'는 가장 적절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미국의 연방 헌법이 이 '호데소노니 연방회의' 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미국의 헌법 학자들은 이를 믿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는 페인, 제퍼슨, 프랭클린의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가고 있다.

 

미국의 연방 헌법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보다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방향이 중요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호데소노니 연방 회의'는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미국의 초기 학자들, 정치가들이 인디언들과도 잦은 접촉을 했을테니, 이를 몰랐을 리 없고, 영국으로부터 독림하여 자신들의 헌법을 만들 때 참조했을 가능성은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거의 영향력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는 여기에서 이들이 이미 오래 전에 실시했던 그러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의 연설문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특히 이 구절, 정말 지겹도록 외웠던, 그러나 잘못 생각하면 국가주의로 머물 수만 있는 그런 구절인데.. 이 구절을 아니키 민주주의에 맞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네디가 워낙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대통령이고, 그의 연설문은 영어로 또 번역본으로 많이 읽히고 있으니...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 주십시오.

친애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다 같이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주십시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물으라는 얘기는 국가만 바라보면서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복지정책을 펼치를 바라만 보지 말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 각자가 자유롭게 노력해서 국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말로 바꿀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오로지 중앙정부만 바라보면서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들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자율적으로, 자치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자고 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게 바로 우리가 요즘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그러니 이것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제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 자치, 협동의 삶을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 이것이 아직은 국가를 없애기는 힘들지만 국가와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언에게 배우는 민주적 아나키즘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국가를 위해라는 말에서 국가란 존재하는 실체라고 보기보다는 자치적인 삶들의 총합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케네디가 이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는 개인들 위에 군림하는 리바이어던이 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라는 말은 개인적이고 자치적인, 자율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뒷구절은 그대로다, 강대국을 바라보지 말자. 세계의 시민들은 각자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먼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실천을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럴 때 세계 연합이 성립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국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G2니 뭐니 하면서 강대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아나키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또 자치적인 집단들의 연합, 이것이 오래 전부터 인디언들이 실천해왔던 일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아나키 민주주의라는 점.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나키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미 실현되었던 오래된 미래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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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고함 - 130여 년 전 한 아나키스트의 외침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홍세화 옮김, 하승우 해설 / 낮은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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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에 나온 글이라고 한다.

 

'상호부조론'으로 잘 알려진 크로포트킨이 당시의 청년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짧막한 글이지만 한 세기도 더 전의 글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도 맞는다.

 

'오늘 나는 청년에게 말을 건네려고 합니다. 마음과 정신이 이미 늙어 버린 나이 든 분은 이 소책자를 읽으며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들에게는 제가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29쪽)

 

이 말로 시작하는데, 이 시작 부분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청년들 중에서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책을 읽으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 청년들이 사회에 관심이 있을까? 이건 크로포트킨이 생각하는 것 하고는 다른데, 그는 사람들을 믿었는데, 그 믿음으로 협동, 상호성, 자치를 이야기했는데...

 

왜 나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했을까?

 

아마도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발간되기 전에(일제시대에는 일본어로 발간이 됐을 거라고 추측을 하는데... 이 책의 앞부분에 홍세화의 글에서 본인의 아버지가 일본어로 된 이 글을 읽지 않았을까 추측을 하고, 일제시대에 크로포트킨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가 되었으니) 우석훈이라는 경제학자가 유행시킨 책 "88만원 세대"에서 '그는 청년들이여, 토플 책을 버리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했는데, 그 반향이 미미했으며, 그 다음에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인 노혁명가인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가 출판되어 엄청나게 읽혔음에도 변화는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나는 이게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하는데)의 광풍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서로 단결하기보다는 각자 살길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능 수시시험장 풍경을 보라. 대학에 입학하려는, 이제 성인이 되려는 학생들이 대학에 시험을 보러 오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온다는 사실. 그래서 수시 시험날이 되면 학생 반 부모 반인 풍경이 펼쳐지는 우리나라 대학가 풍경.

 

도대체 성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십대의 끝에서 그들은 아직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청년들은 늙었다기 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늙었다. 대학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믿음에, 그 불안한 마음에 부모를 대동하고 시험장에 오는 모습, 그것은 젊은이의 모습이 아니라 실패는 곧 끝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모험을 하지 않는 늙은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은 학교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들은 소리는 대학 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전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이 그랬기에 그들의 늙음을 탓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우리를 반성해야한다. 또 소수이긴 해도 수능을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고,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대학을 거부하고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청년들은 이미 크로포트킨이 하려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소수의 행동을 돌출행동으로 보지 않고 청년들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연이 당연이 아닌 돌출이 되어 버린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이 책에서 크로포트킨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앞에 놓은 첫 질문은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입니다.'(29쪽)

 

'그동안 쌓아 올린 지성이나 능력과 학식을 활용하여 오늘날 비참과 무지의 나락에 떨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도울 날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덕으로 타락한 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0쪽)

 

그렇다. 이것이 바로 청년의 의무이자 권리다.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권리,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의무.

 

이 다음에 그는 의사가 되려는 청년, 법조인이 되려는 청년, 엔지니어가 되려는 청년, 교육자가 되려는 청년, 학문에 전념하려는 청년, 노동자가 된 청년, 노동자의 가족인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에게는 그 위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바람직한지, 개인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공부를 하게 해준 사회 각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라고 당부한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일, 그것은 이 글을 시작할 때 홍세화가 자신이 평생동안 다짐했던 것 중에서 지켜왔다는 '장교가 되기 보다는 사병이 되자'는 말. 남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크로포트킨이 당부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남보다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남보다 좋은 위치에 올라 남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도대체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무엇이 함께 사는 길인가?를 고민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자는 그의 당부.

 

이것이 어찌 130년 전만의 일이겠는가. 이런 당부는 지금 우리의 청년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크로포트민의 글이 워낙 짧은 글이라 책으로 내기 위해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부분에 홍세화의 글. 이것은 우리나라 상황과 또 그가 겪은 상황과 연결지어 읽으면 더 좋고,

 

그 다음에 크로포트킨의 글... 많이 생각하면서 읽으면 되고, 이것이 단지 신체적 나이의 청년들이 아닌, 세상이 올바르게 바뀌기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모두 청년들이라 할 수 있으니, 마음이 늙지 않은, 아직도 좋은 세상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이고, 특히 교육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고 적어도 이런 글이 있다는 얘기를 중고등학생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부분은 하승우의 크로포트킨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으리라.

 

이런 외침을 들은 청년들이 정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나 역시 늙지 않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내가 설 자리를 잘 찾아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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