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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근현대사 책을 한 권 더 빌리러
퇴근 후 도서관에 갔다. 근현대사 섹션에서 책을 고르던 중 책등에 써있는 생소한 이름을 발견했다.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 정율성> - 그의 이름도 생소하거니와 조선의 독립군이 어떻게 중국의 별이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연표를 먼저 보니, 광주에서 태어나 1933년 난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 주말마다 상해로 가서 소련 출신 음대 교수 크리노바에게 음악 수업을 받고, 옌안에서 루쉰예술학원 졸업 후 중국공산당 정식 가입… 대체 집안에 돈이 얼마나 많아야 일제 시대에 소련 출신 음대 교수한테 사사를 받을 수 있는 거야? 라는 거부감에 책을 덮었다가, 다시 궁금해져서 책을 펼쳤다가, 결국 책을 빌려 집에 와서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새벽 4시였다. 도저히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뚱의 공산당이 대치 중이던 1930년대
일제는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고 있었다. 김구의 임시정부와 김원봉의 의열단은 국민당 장제스로부터 자금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 돈으로 김원봉은 난징에 의열단 간부학교를 세우고 형 따라 의열단에 들어온 정율성의 음악 수업료를 대주었던 것이다. 영화 <암살>과 <밀정>에 나온 의열단 활동이 바로 이 3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의열단 의거가 장제스를 감동시킬 만큼 화제가 되긴 했지만, 일제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고, 또 일제에 입힌 피해에 비해 오히려 의열단원들의 인명 피해가 너무 컸다고 화자는 말한다. 결국 의열단장 김원봉은 나중을 기약하며 의열단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1935년에 공산당이 국민당을 피해 떠난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에 자리 잡았을 때, 23세의 정율성 또한 의열단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옌안에 합류해 우여곡절 끝에 작곡가로 인정받는다. 정율성은 이때 <옌안송>을 작곡해 공산당 내에서 입지를 굳히고, 후에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채택되는 <팔로군행진곡>도 작곡한다. (중국인민해방군가는 중국에서 국가 다음 가는 노래라고 한다.)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다는 위대한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에 대해
이 책을 보면서, 앞서 말한 두 영화로 인해 재조명된,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다는 위대한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에 대해 내가 가진 얄팍한 지식이나마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약산은, 장제스가 일제를 몰아내기는커녕 일제에 가장 큰 치명타를 주고 있는 공산당을 죽기 살기로 공격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일 때에, 단원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계속해서 국민당의 후원금을 받았고, 국공합작 후 중국 공산당군이 타이항산 전선에서 일제와 결사항전을 벌이던 당시, 윤세주를 비롯해 의열단 출신 조선의용군 수백여 명이 타이항산 팔로군에 합류해 최전방에서 싸울 때에도(이때 조선인 팔로군은 삼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원봉만은 끝까지 합류하지 않고 국민당군에 남았다.
그렇다고 김원봉을 무능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젊은 김원봉의 뜨거운 열정과 애국심은 의심할 바 없지만, 의열단을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이끌 만한 연륜이 아직 부족했고, 의열단 동지들과 그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한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보면,
중국 팔로군 소속으로 중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던 독립군들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인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이 책을 보니 이보다 더 명료해질 수가 없었다. 정율성이나 윤세주와 같은 이유로 많은 비타협적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대항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중국 공산당군에 합류했고, 공산주의 자체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전세계 노동자와 농민이 뭉쳐야 한다는 국제주의를 천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혁명을 위해 중국군 소속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것 또한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팔로군 출신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이나 국가를 중요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중일 전쟁 이후, 대부분의 독립군들이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독립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조선으로 속속 돌아오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제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우리 손으로 승리를 쟁취할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지만.
이 책은 소설과 같은 구성으로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혔고, 한 번에 끝까지 다 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워낙 정율성의 관점에서만 쓰여졌기 때문에.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책들은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며칠만 지나면 너무 많은 사건들이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되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는데, 이렇게 범위를 좁혀 한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따라가니, 인과관계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순서에 대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잘 남았다. 앞으로도 이런 미시적 관점의 평전이나 역사서를 많이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