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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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간에 위계가 있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학력, 집안, 경제력 등등)에 의해 위계지워진다.

 

스스로 위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위계 속에서 어느 자리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위계를 부정하는 것이 인권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 아니다. 학력이 자신의 순수한 노력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도 많다. 이미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학력도 달라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니... 학력이 꼭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얘기다.

 

여기에 집안은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졌고, 경제력 역시 자신의 노력보다는 이미 주어진 집안의 환경에 따라서 크기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력과 학력은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더해 다른 조건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동등하다. 어떤 사람도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권의식이 발달하면서 학력, 집안, 경제력 등에 의한 위계는 차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인 것인데도 여전히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별이다. 성별과 더불어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위계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이다

 

그래야 한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 앞에서는 남녀나 또는 성적 지향을 구분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사람이라는 존재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성별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서 성적 지향에 따라서 차별이 이루어졌다. 공공연히, 또는 암묵적으로.

 

이것에 반대해서 우리도 사람이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만 잘살겠다고 하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운동도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당연히 인권 운동이다. 인권 운동이기에 성별의 다름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성별,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과격하다?

 

페미니즘 운동을 표방하던 운동 중에 과격하게 보인 운동이 있었다. 미러링이라고 해서 남성들이 하는 혐오표현을 거울 비추기 식으로 되돌려 주는 운동도 있었다. 혐오 표현에 혐오 표현으로 대응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처음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방법은 큰소리다. 작은 소리는 다뤄주지도 않는다. 자신들을 봐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밖에 대고 존재를 드러낼 때,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세력을 그것을 과격하다고 한다.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반항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험한 표현을 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잘 받지 않는다. 공고한 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운동은 더 강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미디어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격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이란 무엇인가. 드러나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미 과거로부터 더 심한 억압을 받고 지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제야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론을 문제 삼아 다 문제있다고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페미니즘은 과격하기보다는 성별로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건들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런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기에는 남성, 여성, 또는 다른 성적 지향, 진보,보수, 자본가, 노동자 또는 어떤 직업에 따라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행복을 꿈꾼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을 읽자

 

이 책은 이런 저런 페미니즘 운동을 다루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부터(호주제 폐지 등) 시작하여 미투 운동까지 근 30년에 걸쳐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더한 점은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자장 안에서 머물게 하려는 모습이 페미니즘 운동 내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남성 연대들이 등장한다. 또 자기들 진영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모습도 드러난다.

 

이미 제목에 위계가 드러난다. 페미니즘 좋다. 그러나 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해라. 이게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다. 이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그 틀에서 페미니즘이 나왔을 때 보수와 진보는 연대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보라. 그런 연대 사례들이 너무도 많아서 열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한 '오빠'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아직도 무의식 중에도 이런 '오빠'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에.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부터 읽었으면 좋겠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 맹목적인 반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가 '오빠'에 빠져 '허락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이 책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서보다도 우리나라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 운동을 정리하고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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