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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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하는데, 무소불위의 위력을 지닌 사람은 그 위력에 취할 수밖에 없다. 위력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권력을 지닌 사람들 곁에는 그 권력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꼬여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다 보면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넘어서는, 더 막강한 인(人)의 장막이 설치된다.

 

그 다음부터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말들만 권력자의 귀에 들어간다. 권력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지당하는 칭송의 말과 함께 곧장 실행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권력자는 권력의 맛에 취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신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도 그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쓴소리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라고 진실을 담은 말들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권력의 맛에 취하면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듣지 않으니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떠나가게 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곁에 남게 된다.

 

세상에! 민주주의 시대에 지방자치단체장이 무슨 왕이란 말인가? 왕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다면 그는 단체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왕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차기 권력을 노리는 유력한 정치인이라면 더더구나...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거야 원... 정말 마음이 답답하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그것도 민주주의 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싸우면서 닮아간다더니, 니체가 경고한 대로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덧 예전 민주투사라고 하던 사람들, 그들 자신이 전제권력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섬뜩한 말이다.

 

안희정의 참모진들은 나를 '순장조'라고 불렀다. ... 수행비서는 왕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비서는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죽음으로 그 입을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조직 내에서 안희정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15쪽)

 

이게 말이 되나? 이 민주주의 시대에, 수행비서가 무슨 예전 내시들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순장조라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정치권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더 답답한 것은 미투 선언이 있고나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권력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자만큼이나 권력에 중독되어 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이러한 폭로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폭로한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권력을 쥐고 있음으로.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우리나라 내부고발자들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는가. 공익제보자들이 당한 일도 엄청난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이들보다 더한 고통이 따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김지은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던가. 그런 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말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20-21쪽)

 

사실이 중요한 것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채로 여론과 선정성만이 중요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드는 데 얼마 전까지 나의 동료였던 사람들이 참여했다. 2차 피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큰 배신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 권력 앞에서 사인 간의 우정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배웠다. 인간은 없고, 조직만 있었다. (156쪽)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 (296쪽)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것은 정치인 주변에서 이런 인식들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 권력 옆에서 함께 권력을 누리다 다음에는 자신이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 거기까지 가지 못하면 최소한 권력 옆에 계속 있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러니 바른 소리보다는 입맛에 맞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일을 할 때 주변을 의식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권력자 주변의 사람들이 권력자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성폭력을 폭로한 사람 편에 서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캠프는 단순히 일하는 능력이나 학위 같은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판을 중요시 여겼다. ... 누군가의 눈 밖에 나면 그것은 곧 커리어의 끝을 의미했다. (79쪽)

 

이런 사람들이 모여 캠프를 이루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책이 마련된다. 무언가 이상하다.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그들에게는 권력이 더 중요하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중요하다. 평판이 중요하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 가까이서 지내면서 알게 되면 환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말로는 미투 운동에 찬성한다 하면서, 자신이 성폭력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정치인 안희정의 대외적 이미지와 내가 업무를 통해 겪는 실상은 낱낱이 상반되었다. 그는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았다. 나의 자리에서는 그에게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나 노동권도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101쪽)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 노동권도 지켜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의 인권, 노동권을 지킨다는 것인지...

 

가끔 뉴스를 보면서 의아할 때가 있었는데, 검사들이 피의자를 조사할 때 밤샘조사를 하는 것, 왜 남들 근무하는 시간에 하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집에서 쉬게 했다가 다음 날 다시 조사하는 것이 기본적인 인권 보호 아닌가 하는 생각.

 

법을 집행한다는 검사들조차 이렇게 수면권, 또는 8시간 노동권을 무시하면서 일을 하니, 어떻게 국민들의 인권,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금도 지니고 있는데...

 

또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어떨 때는 (이들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보면 참 부끄러운 결과가 나올 테지만) 늦은 밤에도 회의를 한다. 회의는 낮에 하면 되는 것이고, 낮에 그들이 회의 한 결과를 국민들에게 발표하면 될 텐데... 이들 역시 기본적인 노동권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법부나 입법부에서 일하는 것이 이런데.. 정치인들은 이보다 더한가 보다. 수행비서 역할을 하려면 인권과 노동권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니... 어떻게 이렇게 하면서 보편적 인권, 노동권을 운운하는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재판을 거치면서 여러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김지은은 단지 성폭력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노동권에서도 엄청난 침해를 받았음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이런 비민주적인 활동들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니...

 

범죄 피해 사실과 관련된 수행 일정, 출장 기록, 영수증, 메시지, 사진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찾아서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당한 범죄는 성폭력뿐 아니라 노동권과 인권 침해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스스로 깨우쳐갔다. 그동안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 속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51쪽)

 

이런 일을 겪다 드디어 세상에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폭로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폭로를 한 순간부터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 바로 2차 가해다. 이런 2차 가해로 인해 김지은은 자해, 대인기피증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성폭력이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현재의 삶, 과거와 미래, 자아, 인격에 대한 살인이었다. 성폭력이 비공개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칼로 난도질 하는 살인 같았다. (275쪽)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려는 사람들.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댓글을 통해 피해자를 난도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니 피해자는 폭로한 순간부터 또다른 폭력과 싸워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권력자 주변에서도 피해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증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피해자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차 가해는 엄연한 범죄임을, 그또한 심각한 성폭력임을 명심하게 해야 한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가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피해자가 그 이후에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김지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해자는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법에 의한 처벌로 자신의 행위를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게는 그런 행위가 일회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지속되는 행위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폭력과 같은 일들을 막을 수 있다.

 

읽으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재판은 끝났지만 김지은에게는, 또 피해자들에게는 이 일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 모두도 이러한 가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이 지속되지 않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인권,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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