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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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이 아마도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을 테고, 또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이 명심하고 살펴야 할 내용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 역시 이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가 있던 날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 장소를 급하게 큰 곳으로 바꿔가며 열린 토론회였다. 토론자로 함께한 나는 토론 중에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와중이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참석자 중 한분이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5쪽)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쓰는 말이다. 자신이 잘 결정하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을 향해 양해를 구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장애'다. '장애'라는 말은 '장애인'과 곧바로 연결되고, 이는 곧 무언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쓰인다.

 

결정장애가 있다는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쓰이는 말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도 이 말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쓴 사람은 혐오표현이 아니라라고 강변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혐오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자리에서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차별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는 차별이 얼마나 있을까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우리 모두는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라는 말도 한다. 그만큼 우리들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런 선량한 사람들이 의식없이 차별을 한다. 혐오표현을 한다. 그런 상황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차별인지도 모르고 차별을 행하면서 자신은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소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설 자리를 잃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다. 다들 그게 왜? 라고 되묻기 때문이다.

 

하여 책 제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적확한 표현이다. 우리 모두는 선량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남에게도 가급적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줄 때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이 혐오표현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때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언제든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받은 차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이 차별을 받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지만 차별을 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자리에 있다. 그 자리는 그때그때 다른 자리가 된다.

 

다른 자리, 다른 때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말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다수가 옳다고 해서 꼭 옳은 것도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혐오표현을 벗어나는 데에 있어선.

 

지금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표현이 '남자가? 여자라?'라는 표현이다. 이는 어떤 행동을 특정한 성에 고정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 자체가 차별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표현인데,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표현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완고한 입장이 대세다. 이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매우 좁다. 이 책에서도 다뤄주고 있지만, 자신들의 축제를 여는 데도 수많은 방해를 이겨내야 한다. 그게 방해가 아니라 폭력임을, 불법행위임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제정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갈 길이 멀다.

 

이 책은 이러한 차별을 3부에 걸쳐 다루고 있다. 1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이라고 해서, 자신의 시야에 갇혀 차별을 보지 못하는 경우를 다루고 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이 살아온 날들 속에서 형성된 생각들이 차별에 해당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을 고찰하는 것이 바로 2부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공정함 속에 담겨 있는 차별, 배제 속에 담겨 있는 차별. 우리라는 말 속에 얼마나 심한 배제가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름을 차별로 이어가는 모습들.

 

삶 속에 스며들어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별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금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2부에서 만날 수 있다.

 

3부는 그렇다면 어떻게 차별을 극복할 것인가다.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부분이 있다.

 

  형식적 평등은 가장 기본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조치가 될 수 없다.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과 다양성이 고려되는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적극적 조치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음을 의미한다.

  적극적 조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쪽)

 

자, 이제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모든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차별이 없어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책에 나온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이 일화에서 깨달을 수 있다. 역으로 이 일화를 통해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함을, 더욱 민감한 감성을 지녀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전세계의 사회복지 학자와 현장 활동가들이 모인 세계사회복지대회라는 대규모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규모에 걸맞게 개막식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축사 도중, 장애인 활동가 10여명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하라!"고 외치며 기습시위를 했다. 휠체어에 탄 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경호원들은 활동가들의 사지를 들어 휠체어에서 분리하고 행사장 밖으로 끌어냈다. (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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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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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90년생은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다. 이들은 이제 대학에 입학했거나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한 나이부터,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한 세대다.

 

이런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미 사회에서 주도세력이 된 사람들은 60-7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세대에 대해서 별다른 정보가 별로 없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닌 관점에서 새로운 세대를 판단한다. 기성세대의 판단과 사회에 막 진입한 세대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 일치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변함을 인식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내온 방식을 새로운 세대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하면 그것은 꼰대다. 제대로 소통이 될 수 없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회에서 갈등이 유발되고 서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세대로 사회에 진입한 90년대생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사회에서 성장해왔고, 이들이 지닌 사고방식은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권장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이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우선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런지 생각하지 않고, 사실, 그들이 살아가기 너무도 힘든 시대이기 때문에 또 그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그런 회사 생활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에, 또한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직업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직장에도 그들은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대기업이 아닐지라도.

 

그들의 특성을 이 책에서는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우선은 간단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복잡한 것, 무언가 계속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하는 일을 그들은 거부한다. 아니 90년대생 만이 아니다. 그것은 요즘 생활하는 우리도 원하는 일이다.

 

두 번째 특성은 재미있거나라고 한다. 그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그렇다. 광고를 보더라도, 또 유튜브를 보더라도 그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자신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따분한 삶이 아니라 재미 있는 삶. 그것이 90년대생들이 지닌 특징이다. 그런 그들에게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회사에서 적응하도록 하려면 짧은 기간에 명확한 목표를 인식시켜야 한다. 이 일을 어느 정도 하면 어떤 보상이 있을 거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들은 재미있지도 않은 불확실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세 번째 특징은 정직하거나라고 한다. 정직이라는 것이 거짓이 없다라는 것이 아니다. 이 때 정직은 공정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지금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불공정하다고 여져지는 일이 벌어졌을 때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 이것이 90년대생이 바라는 것이다. 이런 그들이 직원이 되었을 때, 기존의 직원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면 그들은 견딜 수 없다. 대기업이라도 그들은 과감하게 이직을 결정한다. 이들의 특성에 맞는 직장 생활 방식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90년대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90년대생들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변화되어 왔다. 90년대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 자신의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 수평적인 직장 문화 등등.

 

소비자로서의 90년대생도 마찬가지다. 이미 변한 사회의 모습에 따라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 그들이 이미 변한 사회의 모습을 알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변한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세대가 지금은 90년대생들이라는 것,

 

따라서 90년대생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에 맞는 기업문화,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실제 사례들을 들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90년생은 왔다. 이런 책을 기반으로 90년대생을 이해하다면 다가올 2000년생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세상은 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에 관심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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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교사들의 열두 달 학교생활 - 학교 성평등이 세상을 바꾼다
구세나.박효진.이소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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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을 하는 한 해 내내 페미니즘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를 보여주는 책이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교에서 실천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냈다. 페미니즘 교육이라고 해도 좋지만 성평등 교육이라고 해도 좋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여기에 이 책에서 아쉬워 하는 점이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아직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과 함께 성교육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아직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교사들이 이런 식으로 성평등을 이루는 교육을 하는 것은 페미니즘에 어울리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이 학교에서 계속 이루어진다면 성별로 인한 차별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시작은 3월에 학생들 번호를 나누는 것부터다. 번호 하면 대부분 남학생이 앞번호, 여학생이 뒷번호 또는 성차별을 없앤다는 목표로 한 해는 남학생이 앞번호, 또다른 해는 여학생이 앞번호로 매해 번갈아 가며 번호를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남녀 구분을 없애고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부여하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더 획기적인 방법이 나온다. 그냥 제비뽑기로 번호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별로 인해 번호가 부여되는 일도, 또 부모 성에 따라 부여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원하지 않는 번호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성별이나 성이 작동하지는 않게 된다.

 

두 줄 서기를 할 때 남녀로 세우는 관습이 지속되고 있는데, 그냥 두 줄로 서면 된다는 것. 아무 생각없이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점이 얼마나 성평등에 어긋나고, 성구분을 자연스럽게 고착시키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4월이면 부모와 만나 성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왜 학교에 오는 부모가 대부분 엄마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다. 학부형이 아니라 학부모이며, 학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엄마든 아빠든 함께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성교육도 마찬가지고.

 

외모 중심주의에 대해서 학생들과 공유하며, 여성들의 생리대 문제에 대해서도 성별을 떠나 함께 경험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만든다.

 

미디어로 인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도 하고, 여성들의 롤 모델울 찾아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인물 중심의 역사에서 남성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성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차별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가장 평등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학교라는 생각을 하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학생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젊은 여성인 교사에게 맡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여기에 승진을 하기 위해서 보직을 맡을 때도 여전히 여성인 교사보다는 남성인 교사에게 우선권을 주는 학교가 많다는 것.

 

단지 성별로 인한 차별만이 아니라 경력이나 나이로 인한 차별도 학교에서 꽤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에 문제제기를 하고 교사 사회부터 바꿔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 표지에 있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학교 성평등이 세상을 바꾼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또 아이들이 배운다는 교육기관인 학교에서부터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라, 관리자와 교사 간에, 또 교사와 학부모 간에,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에 평등한 문화가 확립되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

 

그런 변화를 이끄는데 페미니즘이 한 역할을 할 것이고, 페미니즘 교사들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그러한 변화는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학교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이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 책을 읽어보면 성평등이 성평등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임을,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임을, 그래서 우리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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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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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로 무슨 주의자를 구분할 수 있을까? 성별에 따라서 주의자들이 분류되는가? 아니다. 만약 사회주의자라고 하면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하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도 그렇다. 자유주의자면 자유주의자지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사상이나 행동으로 사람을 어느 쪽으로 분류하지 단지 성별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분을 하는 경우의 신념이 있다.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하면 즉각적으로 여성을 떠올린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먼저 성별을 떠올린다. 왜 그럴까? 오랜 세월 동안 차별 받아온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페미니즘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여전히 여성만으로 국한된 운동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가?

 

그래서는 안된다. 페미니즘은 남성이나 여성 또는 성소수자로 구별되어서는 안된다. 페미니즘은 약자라서 위협을 받고 그 두려움 속에서 지내는 존재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어떤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운동이다. 이런 운동에 왜 성별을 연결지으려 할까?

 

그것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존재들을 틀지우는 행동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운동이 아니라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운동이라고 규정지으면, 그 운동의 파급력을 낮출 수가 있다. 이런 전략이다. 이 전략들이 교묘하게 먹혀들어가는 것은 또다른 약자들에게 더 약한 약자들 위에 군림하게 하는 것이다.

 

약자로 더한 약자를 억압하게 하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 운동이 겪어왔던 역사 아니던가. 그러니 지금도 페미니즘 하면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이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남자와 페미니스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런 제목이 눈길을 끈다.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되면 안 되는가? 아니 남자라서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그동안 남자로서 누려왔던 것이 많으니.. 이 책에도 나오지만 조금만 집안일을 도와도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소리를 듣는다. 똑같은 일을 여성이 하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남자라는 것에 틀지워져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라왔을 수 있다. 그것을 '맨박스'라고 한다. 그 틀에 갇혀 있다는 것. 그것은 남자에게도 비극이다. 그 틀을 벗어던져야 한다. 틀을 벗어던질 수 있는 열쇠, 페미니즘에 있다.

 

왜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소리가 문제가 되는지 인식하게 되는 순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 또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 눈을 뜨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저자 최승범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자신의 엄마가 겪어 왔던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줌으로써 그것이 여성이 당연히 겪는 일이라는 생각에 균열을 준다. 그것이 아님을... 평생토록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부조리한 일들을 깨닫게 되면서 그는 자연스레 페미니스트가 된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다. 그래, 붙이기 싫지만 '남성-교사'가 되었다. 은연 중에 '여성-교사'보다는 권력을 지닌 존재. 그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페미니즘을 교육한다고 한다.

 

무작정? 아니다. 교육과정에 따라서 관련 있는 내용이 나오면 그에 맞춰 페미니즘에 대해서 또 여러 차별에 대해서 관련 자료를 통해 교육한다고 한다. 처음엔 반발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학생들 또한 차별을 인식하고 그것을 반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만, 늘고 있는 상태다.

 

한번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꾸준히 교육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면 페미니즘에 성별이 필요없다는 생각보다는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남성들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해야만 운동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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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발언 1~2 세트 - 전2권 - 김종철 칼럼집 발언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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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2015년에 발간된 책이다. 무려 5년이 지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급속도로 변하는 이 시대에 5년이면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구태의연한 주장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실현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종철 선생이 이토록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발언'은 해야 한다. 발언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발전이 없는 사회다. 왕조시대였더 조선시대에도 발언을 막지는 않았다.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지금 시대에 발언이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권력의 힘으로 발언을 막는 경우도 있지만,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에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적 압력으로 자유로운 발언을 막는 경우가 있다. 자신들에게 쓴소리가 되는 발언을 똘똘 뭉쳐 막으려는 모습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발언은 소중하다.

 

이렇게 사회적 압력에 자체 검열을 하여 발언을 삼가고 있는 지식인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발언을 삼가고 있으니 곡학아세하는 어용 지식인들의 말들만이 판치게 된다.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럴 때 김종철 선생의 이 [발언]은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식인. 소명을 지닌 지식인.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 발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

 

그의 발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핍박받는 사람, 사회적 약자들이 당당히 살 수 있는 세상.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공생공락의 삶에 대한 발언이다.

 

그래서 그는 성장주의를 추구하는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대농을 중심으로 하는 기계농, 화학농에서 벗어나 소농 중심의 농업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기본소득을 도입해 최소한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정치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람 몇을 바꾼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최소한 시민의회는 가능하다고, 숙의민주주의 역시 가능하다고,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정치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추첨민주주의(제비뽑기)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성장제일주의를 버리면.

 

몇 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 당시 김종철 선생이 주장한 것들 중에 지금 우리가 이룬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니, 더욱 답답하다.

 

경제는 여전히 성장제일주의고, 비례대표제를 개혁한다고 했는데, 세계 제일의 꼼수로 비례대표제를 완전히 무력화 시켰으며, 난개발을 반대했지만, 그 난개발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후위기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발언을 김종철 선생이 했음에도 기후위기는 여전하다.

 

소농중심의 농업 정책을 펼치자는 주장이 계속되어 왔으나 농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 교육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이 발언들이 소위 말하는 위정자들에게 가닿지 않았을 수 있다. 하긴 김종철 선생이 원한 건 자신의 발언을 위정자들이 듣고 정책을 실현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김종철 선생이 원한 것은 자신의 발언들에 대해서 시민들이 공감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었다.

 

위정자의 시혜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쟁취하는 것. 깨달은 시민들이 공생공락의 삶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그가 하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이 공허한 울림에 그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발언]해야 할 때다.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다.

 

김종철 선생의 발언은 충분히 들었음으로. 그가 충분히 말했음으로. 두 권으로 역인 이 책 [발언], 여전히 유효하다. 이 발언들이 과거의 주장이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이 [발언]은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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