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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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옳은 말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 소수자 문제가 생기고, 차별이 생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틀림을 인정하지 않아서 소수자 문제가 생기고, 차별이 생기기도 한다. 아니, 차별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틀림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기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틀림을 다름으로 치환하며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 다름으로 치환하면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틀린 견해도 다른 견해로 여기며 수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한다.

 

물론 내 견해가 틀렸을 수도 있다. 틀린 내 견해를 다른 견해로 받아들여 달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하게 만든 책이다. 뜨끔하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이 책은 신랄하다. 신랄한 만큼 반발도 많을 수 있다.

 

그게 이 책이 의도한 바이기도 할 것이다. 반발이 있어야 재반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반발도 없이 넘어가는 것, 토론이 되지 않는다. 토론이 되지 않으면 그게 문제인지 제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인데, 문제로 제기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틀림을 다름으로 치환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일 것이다.

 

저자인 위근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공통의 합의에 이르기 위해선 더 가차 없이 나의 '옳음'의 근거를 확보하고 상대의 '틀림'을 논박하는 논의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적 태도란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식의 태도가 아니다. 서로의 의견 차를 '다름'이라는 말로 쉽게 인정한다면 우리는 서로 옳고 그름을 합의할 최소한의 근거를 아예 잃어버린다. 이것은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관점이다. 관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조적이다. 우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격렬한 논의 안에 뛰어들어 수많은 목소리와 경쟁해야 한다. 그 불편한 과정을 회피한 채 서둘러 절충안을 찾고 합의하려는 것, 그것이 강요된 화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는 매우 높은 확률로 사회적 통념의 편에 선다. (7쪽)

 

어쩌면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황희의 일화를 우리의 삶에 주욱 실천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네 말도 맞다. 네 말도 맞다. 허허... 이런... 그러니 모두 맞다고. 판단을 하지 말라고. 그건 아니다. 분명 옳고 그름은 있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 상대의 옳음을 듣는 것.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 절충이 아니라 옳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토론이다. 그리고 이런 토론을 통해서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여기서 다름은 옳고 그름의 다름이 아니라 상대와 내가 같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다름이고, 그것은 상대의 견해가 옳고 그른지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상대를 다른 존재로, 상대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견해가 틀렸을 때도 다르다고 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 나오는 것 중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과격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말. 왜 과격해졌을까? 권력을 쥔 자들이 할 수 있는 절차나 방법을 통해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길이 없기 때문에,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알리는 것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과격함인데 그것을 가지고 반대한다? 그건 결국 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약자들의 주장하는 방식이 과격하다고 해서 그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그 과격한 방식을 다르다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이 옳을지라도 과격한 방법은 틀린 거라고. 그건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 논리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라고 한다.

 

격쟁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는 일. 그러나 격쟁에도 처벌이 따랐다고 한다. 격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행위 자체에 벌을 준 것. 과격함을 잘못됨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때도 그랬는데, 현대에 와서 과격함만으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묻어버리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근우는 꾸준히 자신이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쓴다.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토론하자고 한다. 자, 나는 이렇게 불편하다. 이 불편한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불편한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릇된 것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반박하라고, 그래서 토론을 하자고. 공론의 장을 만들자고.

 

글쓰기의 실천적 힘은 독립적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논의의 맥락 위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의가 질적으로 풍부해지고 치열해질수록, 세계에 대한 유의미한 쟁점들이 가시화되며 합의를 위한 공통의 토대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공론장 안에서 충분히 성숙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획기적인 발상 역시 등장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천재적이진 않지만 성실한 글쓰기로 논의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곳의 일원이고 싶다. (9쪽)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아직은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고 있기에. 권력 있는 자들은 그름을 다름으로 포장하야 논쟁을 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라고 한다. 그렇게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야무야 논쟁을 없앤다.

 

이제는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적어도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는 일에는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책에 참 많은 사례들이 나와 있는데, 그 사례들에 대한 위근우의 주장을 읽고 그 근거들의 타당성을 판단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자신의 주장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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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진천규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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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견 없이 읽기는 힘들다. 그동안 내게 쌓여 있던 배경지식들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들, 들었던 것들, 보았던 것들,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이미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내 시각을 고정하고 있다. 이런 시각의 틀에 맞지 않는 책은 끝까지 읽기 힘들다.

 

책읽기도 그런데, 정치체제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우리가 흔히 보수다 진보다라고 편 가르기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수도 진보도 사람들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하는 사상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살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는데 그 방향이 다를 뿐이라고 하면 되는데,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것이 바로 이런 이념이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이 바로 남북 관계다.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가고, 한창 전쟁 발발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평화체제로 가기도 하는 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남북관계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리 긴장이 고조되어도 전쟁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지니고 일상생활을 유지해 가고 있다. 아무리 북한의 침략 위협 운운해도 사람들의 삶은 평온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북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알 수가 없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 인의 장막보다 더 강한 것이 바로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다. 그 장벽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노력을 한 사람을 오히려 종북좌파라고 몰아부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한 것이 남한의 모습이라면, 자본주의를 선전하려는 사람이라고 추방당하는 것이 북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남과 북은 서로가 서로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가려져 있을 뿐이다. 가릴 뿐이다.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흘리거나 또는 사실을 왜곡한 정보만을 유출할 뿐이다.

 

사실보다는 온갖 추론과 상상만 난무하는 것이 남북관계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볼 때는 아주 특이한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 내 눈에 있는 안경 색깔에 맞춰 그 사회가 보인다. 남한도 북한도 그러한 안경을 아직은 벗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진기자 출신이지만 미국 영주권이 있는 진천규가 북한을 단독 취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단독취재라? 북한이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진천규는 이것이 편견임을 보여주고 있다. 단독취재를 하면서 그는 평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삶을 자유롭게(?-완전히 자유롭게 취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안내원이 늘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취재와는 다르게 꽤 자율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취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에도 들어가 보고, 지하철도 타보고, 버스도 또 산책도 하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기록을 했다.

 

그가 느낀 것을 하나로 정리하면 평양에 살고 있는 사람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또 미국의 대북제재 이후 어렵게 살아서 얼굴에 궁색함이 가득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진천규의 사진이나 글에서 평양 사람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겠는가.

 

북한 사람들의 삶이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의 편견임을 이 책에서 진천규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나름 자유롭게 취재를 하면서 북한의 실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남과 북이 하루 빨리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체제를 마련하여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교류를 한다면 서로가 지녔던 편견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체제가 달라 막혀 있는 교류의 길을 풀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도 이룰 수 있다. 통일을 잠시 뒤로 미루더라도 남과 북은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유엔에 동시 가입이 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상에 세상 어느 나라도 거의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데, 말이 통하는 단 하나의 나라만 여행을 할 수 없는 세상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오해를 쌓고 그 오해가 쌓이고 쌓여 서로를 불신하면서 계속 담을 쌓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쌓였던 오해도 풀리게 된다. 그런 오해를 푸는 디딤돌로 이 책은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진천규는 또 통일TV라고 하여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방송을 하려고 한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를 안경 없이 바라보고 만날 때 통일의 시간도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 이제 평양과 서울의 표준 시간은 같다고 한다. 시간만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평화로워야 하니까 말이다. 북한에 대한 편견을 덜어버릴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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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 임승수의 방구석 경제수업
임승수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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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질문을 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무엇? 그러면 공산주의요! 하는 대답이 곧장 들려온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일텐데, 또는 전체주의일텐데, 쉽게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말을 한다. 같은 층위에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 분단된 나라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었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것이 있었던 나라에서, 공안 검사들이 꽤 힘을 발휘했던 나라에서, 지금도 종북이라는 말이 상대를 옭아매는데 더없이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사회주의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상대가 되는 체제는 자본주의다. 이렇게 개념을 명확하게 해야 논쟁이 된다.

 

이념으로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어떤 체제가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나를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좀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상대를 억압하고 억누르고 없애기 위해서 하는 토론이 아니라.

 

따라서 이 책은 소중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들 개념을 정리해주고 있고, 왜 이런 체제를 옹호하는지를 두 인물을 통해서 잘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소유와 오평등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장점과 단점, 사회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짚어주고 있다. 두 체제가 완벽하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체제는 없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삶에 유리한 쪽으로 체제를 바꾸어나갈 뿐이다.

 

따라서 어느 고정된 체제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두 체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좀더 나은 체제로 수렴되어야 한다.

 

주장은 마음껏 발산되어야 하지만 삶을 통해서 수렴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수렴된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사회주의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주의에서 실현했던 제도나 또는 이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라고 해도 모든 것이 민영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것을 민영화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극소수에게만 부가 집중되고 소외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계도 위협받는 지경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요소와 사회주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두 체제가 갖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이 된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는 두 체제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체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흘러가는 것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 체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우리들의 삶에 어떤 체제가 더 좋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레드- 콤플렉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처럼 버젓이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책의 구성이 청소년들이 두 체제를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두 체제에 대한 기본 지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찬반, 사회주의에 대한 찬반,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이 느껴진다.

 

꼭 어느 체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절충도 가능하다. 세상은 이렇게 두 체제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을 읽으며 우리들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체제는 적어도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 생각이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몫이겠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책읽기에 응모해 당첨되었다. 덕분에 잘 읽었다. 우리학교 출판사,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청소년들이 지혜로워지는데 도움이 되는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좋은 책 꾸준히 많이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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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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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째 책읽기가 거꾸로 되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대체로 순서 대로라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아니면 먼저 읽고 그 책에 감명을 받아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경우가 많다.

 

김승섭의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면서 좋은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은 우주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몸에 대한 책임은 개인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의학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해준 책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었다면, 이 책은 질병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도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에서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에 관해서 연구를 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이들의 질병이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밝힌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더 많고,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질병이 많다는 것.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렇겠지 하는 것들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소방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것을 공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들이 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경제적 대우, 근무 여건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부상을 당했을 때는 당연히 공상처리가 되어야 하고, 또 폭행을 당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그것이 근무 여건의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에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낙태에 관한 문제.

 

지금 국회에서 낙태금지법이 다시 제정이 되었고, 여성단체에서는 그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김승섭은 낙태에 관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낙태금지가 과연 누구에게 더 해로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입법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앞부분만을 읽었어도 그 법안을 그렇게 내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낙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한 것이 우리나라 현실인데,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여성의 건강권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이 받은 유전적인 건강을 떠나 사회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의 악화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잘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책임에 사회의 책임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어쩌면 의사들 배만 불리는 사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의사들은(다는 아니겠지만) 개인의 건강만을 본다. 개인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을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속해 있다.

 

역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니, 그들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이 그렇게 된 것은 사회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이들 건강이 좋아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치료와 사회 환경의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이 책에서 김승섭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면 이 책에 나오는 전공의들의 건강상태 부분을 보면 기가 막힌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데,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 건강을 돌볼 수 있는데, 전공의들의 건강상태는 아주 나쁨 상태에 있다는 것.

 

장시간 노동, 부족한 수면, 쌓이는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등등으로 그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의사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가 힘들다는 현실.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진료거부를 하는 것은 의사 집단의 동질성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면,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선배 의사들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것.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방법은 인원수를 늘리는 것 아닐까? 같은 일을 한 사람이 할 때보다 두 사람, 세 사람이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나. 그들도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사색을 하면서 환자들을 만나는 수련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무슨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전공의들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건강하게 수련을 해서 건강한 의사가 되도록 하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법의 일부를 보자. 과연 이 법대로만 한다면 건강한 전공의가 될 수 있을지 판단해 보라.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과 비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 약칭: 전공의법 )

[시행 2017. 12. 23.] [법률 제13600호, 2015. 12. 22., 제정]   

 ①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4주의 기간을 평균하여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1주일에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

 

②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연속하여 36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연속하여 40시간까지 수련하도록 할 수 있다.

 

③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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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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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우주다. 우리 몸은 세계다. 그런데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방대한 세계를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주라면 어떨까? 우리는 아직도 우주의 일부만을 알고 있다.  또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사실일 수도 있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우리 몸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알려졌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도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과, 또한 치료가 힘든 불치병, 난치병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라고 하는 암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다른 존재에게 넘겨주고 있다. 특히 의사들에게. 우리나라 의사들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라. 그들이 진료 거부를 할 때 주장했던 것을 보면 그들이 지닌 자세를 알 수 있다. 전교 1등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공부는 못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라고 당당하게(?이건 당당이 아니라 뻔뻔이지만) 주장하다가 그것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생각하라.

 

이들은 우리 몸을 재단한다. 자신들이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다고 옳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환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로지 환자의 잘못이다. 수많은 의료사고에서 의사들의 과실을 증명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만큼 의사들이 잘못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카르텔이 공고하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오는 제멜바이스의 예를 보면 의사들이 우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많음을, 그리고 그들이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들이 시체 만진 손을 닦지 않아 산모들을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인정하지 않았던 의사들. 그것을 밝힌 제멜바이스는 오히려 의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이 책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의 힘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담배와 관련된 일들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수많은 사실 중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실들만 골라 그것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여기에 어떤 약은 개발이 되고, 어떤 약은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 주로 걸리는 병들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더딘 이유는, 그것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또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는 의사는 배척당하기 일쑤다. 이 점을 이 책 6장에서 다루고 있다.

 

통념이 된 의학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소위 과학적 사고를 한다는 의사 집단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몸에 대한 통제권을 찾아와야 한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야 한다. 4장을 보면 사람들의 끝, 즉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끝을 맺는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가?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자신의 끝을 맡기고 있다. 연명치료라고 하는 것들...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건강이 과연 개인적인가?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한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개인의 문제일 수가 없다. 내가 잘 못 챙겨서 병이 걸렸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사회적인 문제가 깊숙히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자신이 자란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질병을 앓고, 그들의 건강한 생활에도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러니 건강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그보다 더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것.

 

하여 건강은 정치와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3장에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2장도 마찬가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람들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식민정책을 펼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우리 몸을 통해서 사회, 문화,정치,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 몸은 바로 우주라는 것. 이 우주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주체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읽기에도 쉽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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