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 파소도블레 -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이현진 외 지음 / 작은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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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난해하다. 모르는 낱말이 있다. 모르는 낱말이 있으면 호기심이 작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아예 멀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지도는 아는 말이고 '파소도블레'는 전혀 모르는 말이다.

 

난지도는 이름과는 달리(난초와 지초의 섬이라는 뜻이었는데)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 쓰레기꽃을 피웠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공원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땅 속에서는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 한번 쌓였던 것들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데, 그만큼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겉모습이 살 만해져도 속으로 들어가보면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제목에 난지도가 들어간 것은 신입기자들로서, 사회 초년병으로서 편치 않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난초와 지초처럼 고상하고 멋진 모습을 기대하지만, 예전 난지도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란 의미.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외국어인지 잘 모를 낱말이 제목에 떡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리 외국어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라고 해도, 좀 너무한다 싶은 말이다. 파소도블레라니...

 

찾아봐야지. 이렇게 제목도 찾아보게 만드나. 아니, 자신들의 삶이 이렇게 우리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찾아보니 춤 이름이란다. 스페인에서 유래한 춤이라고 하는데, 파소와 도블레라는 말이 합성된 것이라고 한다. 파소가 걸음이고, 도블레는 더블, 즉 둘이라는 뜻이니 두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존재들인 청춘들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지만,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그냥 '뭔가 있어 보이는 춤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8쪽)고 하는데,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청춘일 수는 있겠다.

 

전체적으로 제목을 보면 남들은 잘 모르지만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을 만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기자 생활을 하지만 속으로는 썩고 있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런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한 책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무슨 거창한 주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살아가는 모습을, 남의 일기장을 읽듯이 읽어내려가면 된다. 읽어가다가 자신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만날 수가 있다. 이들 역시 우리나라 청춘들이 벗어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리나라 청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다른 청춘들보다는 조금 나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결혼을 하기도 했으며, 자식도 낳은 사람이 있고, 전세라는 형태로 거주지를 마련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포세대라는 말이 자연스레 들리는 이 시대에, 이들은 사회초년병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이루지 못한 청춘들에 비하면 많이 나은 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생활도 생활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많이 버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버거운 생활을 '파소도블레'처럼 두 걸음을 빠르게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 그들이 이름 그대로 난초와 지초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속에 있는 그 가스들을 빨리 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함을 이 책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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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진의 쓸모 -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정기훈 지음 / 북콤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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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얽힌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그런데 사진이 화려하지 않다.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도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언가 찡하는 마음이 된다.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일들, 그러한 일들을 사진으로, 글로 상기시켜 주고 있다.

 

소심하다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데, 그것은 바로 인위적이라기보다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포착한 사진이라서 그렇다. 가령 시위를 하면 시위를 하는 중심적인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시위 장면에서도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정기훈은 그래서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할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마냥 기다린다. 자신이 생각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힘들게 지내는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그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가. 그들에게 애정을 지니고 사진을 찍는 사람.

 

그래서 표지에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돋보이지 않고 또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글도 그렇다.

 

사진에 얽힌 글들이 우리 사회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동안 관심없이 지내왔던 시간들을 반성하는 읽기이기도 했다.

 

사진가는 주로 우리 사회에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을 찍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장소를 함께 찍었다. 그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 마치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드러내는 것만큼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이들이 크게 표현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이 사진책 속에 나온 것처럼 힘들게 지내는 그런 모습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소심한 사진이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 밝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드러나지 않은 모습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우리가 지나치고 있던 그런 일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소심한 사진의 쓸모'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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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시민운동
와다 하루키 외 지음, 이원웅 옮김 / 오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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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록 해결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진상규명하고 사과하고 보상을 하면 한방에 끝나버릴 일인데...정부는 이미 협정으로 끝났다고 하고, 소위 지식인들이란 자들은은 자기들 유리한 자료들만 대상으로 논지를 펼치고, 보상은 정부 차원에서는 없다고 못박고 있는 상태.

 

이게 벌써 몇 년이냐?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엄연한 주권국가로서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해주는 일은 위안부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약간의 일. 그것도 많은 압력이 있은 뒤에야 이루어진 일이니.

 

가장 중요한 일은 진상규명이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종합하는 사고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제국주의는 이미 잘못되었음을 전세계가 인정했다.

 

지금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의 나라 과거 정부가 했던 일이라고 지금 정부의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책임은 완전히 청산하기 전까지는 계속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책임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안 난다. 이게 지금까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일본 정부가 부정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약하지만, 그리고 우리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일본 정부에서도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려고 한 적도 있고. 물론 피해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완전히 용서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국가 간의 외교 능력도 필요하지만 자국 내 시민운동의 역할, 즉 깨어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시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그것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쪽으로 알려져 있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운동이었지만,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여러 논의를 거쳐, 정부와도 협의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다. 시민사회가 깨어 있을 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일본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중요하다.

 

이 책은 그 과정과 결과를 담은 책이다. 일본 편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여러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결과는 실패다. 이 운동은 실패했다. 실패한 원인들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이들은 우선적으로 홍보부족을 들고 있다.

 

자신들이 하려는 취지가 왜곡되어 보도되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위안부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렇다고 완전한 실패는 아닌 것이 필리핀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다만, 우리나라와 대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원인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추진해서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이 위로금을 받으면 일본 정부에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위로금을 받는 일과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별도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홍보부족은 피해자 당사국들에서 벌어지는 시민운동의 주체들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나 대만에서도 위안부를 돕는 단체가 있는데, 이들 단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시아여성기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시하기 전에 이런 단체들과 먼저 의논을 하고 조율을 하는 과정을 거치며 양해를 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일은 다시 10년 전후로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다.

 

전후 50주년을 맞아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벌였던 잘못들을 바로 잡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서 과거의 일을 청산하는 운동을 하고, 정부에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하지 않자, 먼저 민간에서 기금을 모아 피해를 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원을 하고자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사람도 있는데, 그들 역시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지만 지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도 한다. 

 

그래도 사무적인 기금은 정부에서 내고, 총리 사과문까지 동봉해서 지원금을 주겠다고, 이 일을 하면서 일본 사회에 과거의 일을 밝히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일본 국민들이 모금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게 되니 자연스레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고.

 

이렇게 일본에서 벌어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시민운동은 몇 년 지속되다가 중지하게 된다. 그리고 잊혀졌다가 2010년대 들어와 다시 한번 불거진다. 비슷한 민간기금 문제로... 참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운 것인지...

 

일본 정부는 한결같이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나오니, 최소한 1995년처럼 총리 사과라도 했으면 좀더 나았으련만... 일본 시민운동 단체들도 힘이 많이 떨어져 이 문제는 또 흐지부지 되고,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그 일은 언제고 다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여 진상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적어도 학자들이 역사적 자료들을 찾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후대들이 지어야 한다. 후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상들이 잘못한 일은 후손들이 마무리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다.

 

지금 일본에서는 시민사회가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일본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이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가해국 시민들의 압력이 가해국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니,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할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실패의 기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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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2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차명수 옮김 / 한길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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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전세계적인 사건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근대에 들어서 이제 혁명은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나라 혁명은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간다. 그렇게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근대에 들어서 일어난 일이다.

 

그 이전에 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은 한 나라에서 그치고 말았다. 어떤 일도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는 이제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홉스봄이 쓴 근대 역사 3부작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혁명의 시대'

 

당연히 혁명하면 제일 먼저 프랑스대혁명을 떠올린다. 이제는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그 혁명이 프랑스에만 머물지 않고 전유럽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런 혁명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홉스봄은 두 개의 혁명, 즉 이중혁명 시대라고 한다.

 

프랑스대혁명 하나로 세계적인 사건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과 더불어 산업혁명을 들고 있다. 즉 경제와 정치가 맞물려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치경제학이 쇠퇴했지만, 1980년대에는 정치경제학이 붐을 이루었다.

 

정치와 경제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함께 간다는 것을 그 학문을 통해서 이야기했던 것이다. 홉스봄도 마찬가지다. 경제혁명 없는 정치혁명은 오래가지 못하고, 정치혁명 없는 경제혁명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1789년부터 1848까지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는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경제구조가 개편되기 시작하고, 프랑스대혁명으로 정치구조 역시 달라지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이중혁명으로 예술, 철학, 과학, 종교 등 사회 각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고찰하고 있다.

 

신분제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중류층이 대거 등장하게 되는 시기.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자본가라 할 수 있는, 또는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부를 더욱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의 축적을 방해하는 정치 구조를 개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가 영국에서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면 - 물론 그 과정에서 영국 또한 피를 흘린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다만 프랑스대혁명과 같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 프랑스에서는 피를 부르는 혁명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경제혁명이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으며, 이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차이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영국보다 늦은 프랑스에서는 다른 경제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고, 이것이 다른 정치혁명을 유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이 전세계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다. 혁명의 이념을 지키려는 프랑스와 자국으로 그런 이념이 번지게 할 수 없다는 유럽 전제국들의 전쟁. 여기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혁명의 이념은 유럽 여러 국가로 퍼져가게 된다.

 

한번 번진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 다른 정치 구조를 엿본 사람들은 이제 과거에만 머물 수가 없다. 힘이 약해 현상태를 유지하더라고 그들의 눈은 이미 앞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으므로.

 

그러니 프랑스대혁명으로 촉발된 정치 개혁이 보수적이든 급진적이든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혁명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세계는 신분제 사회에서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도시빈민이 되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형성된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빈곤한 생활을 하는 사회로 변해가게 된다.

 

이들을 포요하는 이념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세계는 이제 귀족 중심에서 자본가 중심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 변혁을 꿈꾸는 집단이 농민에서 노동자들로 옮겨가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중혁명이 유발한 사회의 모습이다.

 

방대한 저작인데... 과거를 살피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혁명의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피면, 지금 인공지능 시대 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비슷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혁명의 시대에도 그 시대를 거부하고 과거 회귀를 주장하는 사람, 어쩔 몰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사람, 그 시대의 변화를 읽고 거기에 영합한 사람, 그 시대의 변화를 읽었으나 부정적인 면을 간파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했던 사람 등 다양한 인간 집단이 존재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혁명의 시대에 이어지는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읽으며 현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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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인권 에세이 - 구정화 교수가 들려주는 살아 있는 인권 이야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구정화 지음 / 해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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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인간이 지닌 권리라는 의미일텐데, 인권이란 말을 쓸 때는 이상하게도 인간이 지녀야 할 권리라는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권리라는 뜻이란 생각이 든다.

 

인권 보장이라든지, 인권 실현이라든지 여전히 인권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떤 지점까지 가는 길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여전히 미지의 권리이다. 인권, 인권 하지만, 인권은 도처에서 유린되고 있다.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에게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책이 나왔다. 청소년들이 누려야 할 인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자, 인권이란 개념에는 청소년, 어른, 남자, 여자 또 그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다르게 쓰인다는 의미는 없다. 인권은 보편적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그러니 학교에서 학생 인권과 교권이 충돌한다는 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학생 인권이 보장되고 실현된다면 교권과 충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권은 내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 권리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나와 다른 사람이 동등하다는 인식과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실 밖 인권 교과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단지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인권의 전반적인 면을 모두 다루고 있다.

 

교과서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것을 조목조목 정리하여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인권 감수성을 키운다고 하는데...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인권은 알면 알수록 좋기 때문에, 자꾸 이야기 해야 한다. 하여 이 책은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1장과 청소년이 지녀야 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2장, 사회 이슈로 살펴 보는 인권을 다루는 3장,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권 전반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청소년들이 토론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에 장이 끝날 때 부록으로 세계인권선언과 UN아동권리협약, 우리나라 헌법,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등을 실어 놓아 인권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도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권은 완성형이 될 수 없다. 이미 완성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인권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것, 그래서 늘 살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권이다.

 

이렇게 인권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나라는 자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로 나아가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인권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은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어쩌면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교과서는 이런 책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들 삶을 통해서 인권 감수성을 키우고,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또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인권은 일회성이 아니다. 삶을 통해 내내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반성하고 실천해야 할 우리 삶의 지침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 속에 있는 실천, 그것이 인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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