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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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이 아마도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을 테고, 또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이 명심하고 살펴야 할 내용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 역시 이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가 있던 날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 장소를 급하게 큰 곳으로 바꿔가며 열린 토론회였다. 토론자로 함께한 나는 토론 중에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와중이었다.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참석자 중 한분이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5쪽)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쓰는 말이다. 자신이 잘 결정하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을 향해 양해를 구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장애'다. '장애'라는 말은 '장애인'과 곧바로 연결되고, 이는 곧 무언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쓰인다.

 

결정장애가 있다는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쓰이는 말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도 이 말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쓴 사람은 혐오표현이 아니라라고 강변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혐오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자리에서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차별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는 차별이 얼마나 있을까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우리 모두는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라는 말도 한다. 그만큼 우리들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런 선량한 사람들이 의식없이 차별을 한다. 혐오표현을 한다. 그런 상황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차별인지도 모르고 차별을 행하면서 자신은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소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설 자리를 잃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다. 다들 그게 왜? 라고 되묻기 때문이다.

 

하여 책 제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적확한 표현이다. 우리 모두는 선량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남에게도 가급적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줄 때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이 혐오표현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때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언제든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받은 차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이 차별을 받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지만 차별을 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자리에 있다. 그 자리는 그때그때 다른 자리가 된다.

 

다른 자리, 다른 때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말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다수가 옳다고 해서 꼭 옳은 것도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혐오표현을 벗어나는 데에 있어선.

 

지금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표현이 '남자가? 여자라?'라는 표현이다. 이는 어떤 행동을 특정한 성에 고정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 자체가 차별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표현인데,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표현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완고한 입장이 대세다. 이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매우 좁다. 이 책에서도 다뤄주고 있지만, 자신들의 축제를 여는 데도 수많은 방해를 이겨내야 한다. 그게 방해가 아니라 폭력임을, 불법행위임을 인식시켜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제정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갈 길이 멀다.

 

이 책은 이러한 차별을 3부에 걸쳐 다루고 있다. 1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이라고 해서, 자신의 시야에 갇혀 차별을 보지 못하는 경우를 다루고 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이 살아온 날들 속에서 형성된 생각들이 차별에 해당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을 고찰하는 것이 바로 2부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공정함 속에 담겨 있는 차별, 배제 속에 담겨 있는 차별. 우리라는 말 속에 얼마나 심한 배제가 담겨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름을 차별로 이어가는 모습들.

 

삶 속에 스며들어 인식하지도 못하는 차별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금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2부에서 만날 수 있다.

 

3부는 그렇다면 어떻게 차별을 극복할 것인가다.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부분이 있다.

 

  형식적 평등은 가장 기본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조치가 될 수 없다.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과 다양성이 고려되는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적극적 조치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음을 의미한다.

  적극적 조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쪽)

 

자, 이제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모든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차별이 없어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책에 나온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이 일화에서 깨달을 수 있다. 역으로 이 일화를 통해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함을, 더욱 민감한 감성을 지녀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전세계의 사회복지 학자와 현장 활동가들이 모인 세계사회복지대회라는 대규모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규모에 걸맞게 개막식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축사 도중, 장애인 활동가 10여명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하라!"고 외치며 기습시위를 했다. 휠체어에 탄 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경호원들은 활동가들의 사지를 들어 휠체어에서 분리하고 행사장 밖으로 끌어냈다. (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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