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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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7편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작가의 첫소설집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어떤 울림을 느끼게 된다. 공감을 느끼면서 소설의 주인공들의 마음과 같이 울리는 공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이 소설집을 읽으면 마음이 울린다.

 

그렇다고 소설들이 밝지는 않다. 분명 어두운 분위기, 어두운 결말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잔잔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마음을 살그머니 흔드는 감동이 있다.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밝음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소설집의 제목이 된 '쇼코의 미소'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읽고나서는 주인공들이 그래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온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실제 생활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마음에 위안을 주고, 행복을 준다. 그렇게 소설은 공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공감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작은 일에서도 틀어질 수가 있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기도 하는데... '한지와 영주'란 소설에서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았던 관계가 틀어지는 모습이 펼쳐진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감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인지도 모를 이유로 멀어지는 관계,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씬짜오, 씬짜오'라는 소설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한 말이 결국 묻혀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해서, 관계를 파탄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에서 만난 베트남 부부와 한국인 부부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생활을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나온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성심을 다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가 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일본에게 그런 사과를 요구하지만 베트남에서 벌인 일에 대해 과연 우리는 제대로 진심으로 사과했는지, 반성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비록 자신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국가, 자신의 민족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으면 어떤 관계든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가 바로 '공감'이다. 이런 '공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나 '비밀' '미카엘라'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이런 삶들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삶을 사는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의 장점은 우리들의 공감 능력을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공감 능력을 우리 몸 곳곳으로 퍼지게 한다.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도 아주 잔잔하게...

 

그래서 읽으면서 몸 전체에 공감이 퍼져나가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공감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말로 표현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감들, 아주 작은 공감들, 그것이 우리를 삶으로 이끌고,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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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작품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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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를 아마도 어린 시절에 동화라고 생각하고 읽었을 것이다. 제비에게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던 왕자의 동상 이야기.

 

결국 자신은 사람들에 의해 철거되고, 제비는 죽게 되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행복한 마음이었을 왕자와 제비의 이야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고, 어린 시절에 많은 감동(?)을 준 이야기였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읽으니 감동은 여전한데,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이 보인다.

 

바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행태.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또 권력을 쥐려고 하는 자들은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관심이 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이다. 무언가 크고 화려한 것들로 치장하려는 모습, 행복한 왕자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린시절 왕자와 제비에 중점을 두었던 읽기에서 이제는 그만큼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순수함을 힘으로 오염시키는 자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들에 대해서 오스카 와일드가 얼마나 비판적인 눈길을 보냈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우리나라 도처에 생기는 동상들, 기념관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했고.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로 따스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모아두었는데,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목에 따라서 새빌 경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전혀 엉뚱한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결론도 행복한 결말이고.

 

'캔터빌의 유령'을 읽다보면 뭐 이런 유령이 있나 싶은 웃음이 나온다. 유령이 당하는 모습이라니... 영화 '나 홀로 집에'의 오스카 와일드 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결론은 훈훈하다. 사람들에게 당하는 유령이라니...

 

겁에 질린 유령, 사람을 피하는 유령, 그러나 순수한 소녀에게 구원받는 유령... 소녀의 이름은 버지니아이고 유령의 구원은 결국 무덤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것.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경쾌하고 유쾌하게 전개된다.

 

무시무시한 내용일 수 있는 것이 가벼운 희극으로 정리가 되는 느낌... 여기에 '모범적인 백만장자'에서는 부자의 도움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 청년의 이야기.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전통 주제에 충실한 소설인데... 이렇게 이 책에 실린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들은 행복한 결말을 추구한다.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추구하지 않는 작품이 '비밀 없는 스핑크스'인데... 이 작품은 워낙 짧아서... 오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단편소설들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추운 겨울날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온기가 있다. 이것이 이 단편소설들의 매력이다. 다만 지나치게 도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도식에 따르고 있다는 점이 문제일 수는 있다.

 

그래도 소설에서라도 이렇게 착한 사람이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두 편의 희곡이 실려 있는데, 한 편의 희곡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살로메'이고, 다른 한 편은 또 하나의 희극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이란 희곡이다.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원한 공주 이야기...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 역시 행복한 결말을 이끄는 작품이다.

 

아마도 지금 연극이나 영화로 말한다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거짓으로 사랑을 얻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리는 그런 내용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사랑에 빠진 남녀들이 알게 되는 출생의 비밀 정도 되는,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인데... 그럼에도 결론은 행복이다.

 

오스카 와일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작품들에서는 행복이 흘러넘치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라도 이런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런 행복한 결말이 여전히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읽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현실이 엄혹할지라도 늘 현실 너머를 꿈꿀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꿈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현실을 잠시 넘어설 수도 있으니...

 

소설이 치열하게 현실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 너머의 세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오스카 와일드가 쓴 작품들, 특히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런 따스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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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7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8-02-18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스카 와일드가 감옥에서 동성의 연인 앨프리드 더글러스에게 쓴 편지 <심연>도 인상적이였어요

kinye91 2018-02-18 14:44   좋아요 0 | URL
더글러스와의 일을 담고 있는 책이 번역되었다고 들어서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어요. 꼭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알베르 카뮈.르네 샤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의숲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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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음을 알듯이 마음을 아는 친구가 있음은 그야말로 행복이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논어에서도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멀리서 찾아오는 나를 알아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음은 기쁨이요, 행복이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났다면, 그런 친구가 있다면 인생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에게 '페스트'나 '이방인'의 작가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소설들 말고도 '시지프의 신화, 반항하는 인간'으로도 알려져 있고. 무엇보다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노벨문학상에 전세계가 열광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열광하는 나라도 없는 듯하니, 먼 프랑스에 살던 작가도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그가 쓴 작품도 작품이지만 노벨문학상이라는 이름이 한몫 더했을 것이다.

 

반면에 르네 샤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카뮈와 관련된 인물로 '장 그르니에'는 많이 알려져 있어도 시인인 '르네 샤르'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런 르네 샤르라는 시인이 카뮈에게는 '지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처음 만나서 카뮈가 죽을 때까지, 아니 카뮈가 죽고나서도 우정을 지속한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행동도 한다. 문학에서도 정치적인 면에서도 그들은 서로의 행동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동조한다.

 

카뮈의 후반기 삶에서 르네 샤르는 늘 함께 하는 그런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르네 샤르가 우리에게 덜 알려진 이유는 그가 시인이라는 점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시를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을테니 말이다. 외국 시를 번역하는 일도 힘들지만 그렇게 번역된 시를 읽으며 감동을 받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르네 샤르는 노벨문학상을 받지도 않았으니...

 

편지글 곳곳에서 카뮈는 르네 샤르의 시를 칭찬한다. 너무도 좋은 시라고... 르네 샤르 역시 카뮈의 작품을 칭찬하고.

 

이들의 칭찬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말인 주례사 비평과 다른 점은 그들은 그들 서로의 작품이 어떻게 쓰여졌고, 어떤 표현방식과 주제를 택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작품만이 아니라 서로의 기질과 행동도 잘 알기에 작품을 작품으로만 보지 않고 사람과 작품을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 잘 담겨 있다. 편지만큼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글이 어디 있겠는가.

 

성인이 되어 만난 그들이 우정을 이어가면서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그들의 삶 자체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서 카뮈의 개인적 생활을 알 수 있고, 그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 책에 실린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카뮈라는 작가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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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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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라이 고골의 작품으로 많이 언급되는 '검찰관'

 

읽어야지 하면서도 희곡이라 선뜻 손에 잡지 못했던 작품인데, 뇌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번을 기회로 삼아 읽기로 했다.

 

고골의 작품이 그 당시 러시아를 풍자한다면, 그리고 이 작품이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그것은 러시아 사회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사회 전반에 통용된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썩어문드러진 관료사회를 이토록 우습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 있을까? 너도나도 썩어버린 세상, 특히 권력을 쥔 자들의 모습을 이토록 우습게 그리다니... 역시 풍자다. 러시아에서 이 작품을 발표하고 당분간 피신해 있었다고 하니 당시에도 찔리는 사람이 많았나 보다.

 

작은 마을 시장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신분을 감춘 검찰관이 온다는 소문. 검찰관은 우리나라 조선시대로 치면 암행어사에 해당할 터.

 

이런 편지를 읽고 검찰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어리석은 마을 지주가 여관에 검찰관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묵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부랴부랴 여관으로 찾아가는 시장, 그는 수많은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자신의 죗값을 받게 될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시장만이 아니다. 동네 유지라 할 수 있는 자들 모두가 다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자선병원장, 교육감, 판사 등등.

 

시장이 찾아간 사람은 하급관리.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돈이 없어 그냥 여관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 허풍이 심한 이 사람을 시장을 비롯한 마을 관료들은 검찰관으로 착각한다.

 

착각은 신념이 되고, 하급관료가 하는 말이 모두 검찰관의 말로 들린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은 한 명씩 찾아와 자신의 신상에 관한 부탁을 하려고 한다. 두려움에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들에게 하급관료가 하는 말, 돈 좀 빌려달라고... 그들은 군말 않고 수백 루블씩을 준다. 그들이 주는 이 돈은 바로 뇌물이다. 자발적으로 주는 뇌물. 자신들을 잘 봐달라고 하는. 다른 목적은 없다.

 

명목은 빌려달라와 빌려준다지만 받을 생각도 없고 줄 생각도 없는 그런 뇌물 거래다. 엄연한 자발적 뇌물 공여인 셈이다.

 

자, 이 말이 강압적 뇌물 강요로 들리는가. 시장, 판사, 병원장, 교육감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눈치껏 돈을 주었을 뿐이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이들이 나중에 재판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검찰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한 사람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준 뇌물이니 무죄라고 할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준 뇌물이니까 유죄이고, 돈의 액수에 따라서 형이 결정될까?

 

판사라는 사람도 뇌물을 주었으니, 이들의 판결은, 혹 희곡이 계속된다면 강요에 의한 뇌물 상납이기에 최소한의 형량을 받고 끝날 것이다. 이것이 당시 러시아 상황이니까. 그리고 대다수 나라가 지니고 있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현실이니까.

 

하급관료를 설정해서 한 바탕 희극을 연출한 고골의 솜씨가 놀랍다. 이 희곡을 통해 당시 러시아 관료 사회가 얼마나 낡고 늙었으며 부패했는지를 알 수 있고, 그들이 얼마나 허약한지도 알 수 있다.

 

장사꾼들과 다른 민중들이 검찰관으로 추정되는 하급관료에게 와서 청원서를 제출하지만 이들의 일이 해결된다는 기미는 없다. 하급관료는 이런 사태를 즐기고 떠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희곡의 마지막 부분에 진짜 검찰관이 나타나 시장을 소환한다. 이 검찰관은 그 동안의 일을 다 지켜보았으리라. 하지만, 과연 그가 제 직무를 수행했다고 해도 이들을 처벌하고 사회를 바꿀 수 있었을까?

 

시골 마을의 관료들이 이토록 부패했다면 중앙에 있는 고급관료들은 더 부패했다는 말이 되니, 조선 후기 그토록 많은 암행어사가 파견되었지만 조선의 멸망을 막을 수 없었듯이,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희곡이다.

 

180년도 더 전에 쓰인 희곡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사회는 발전해 왔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의 행태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으니까. 거기에 기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 작품을 읽으며 자꾸 우리 사회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특히 요즘 재벌에 대한 재판 결과가 생각나는 것은?

 

법관들이 이런 작품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덧글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어렵다. 시장의 이름은 '안똔 안또노비치 스끄보즈니끄드무하노프스끼'라고 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검찰관으로 오해받는 하급관료 이름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흘레스따꼬프'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을 외우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래서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 표기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왜 이리 이름들이 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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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 서양문학의 향기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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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젊은 시인이 릴케에게 자신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그가 다녔던 학교에서 릴케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만나고 릴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다음이다.

 

생면부지의 젊은 시인에게 편지를 받은 릴케는 정성을 다해서 답장을 보낸다. 그 답장이 열 편에 해당하는데...

 

단지 젊은 시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편지글이다. 이렇게 진지하게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글을 읽은 젊은 시인은 그야말로 멘토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젊은 시인은 지금 우리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이름은 카푸스다) 그는 릴케의 편지를 책으로 냄으로써 문학사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 세기가 지난 글들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또 릴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국 시인 아니던가.

 

그가 문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책이니, 읽어볼 만하다.

 

첫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비평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는 문학의 기준을 외부에서 가져오지 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비평의 말은 언제나 다행스런 오해로 귀결될 따름이니까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또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말이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영역에서 일어나니까요. 이 모든 것보다 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들입니다." (12쪽)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17쪽)

 

릴케는 문학을 하는 데 기본적인 것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 고독 등을 들고 있다. 어려움, 문제가 없다면 예술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고 고독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을 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한다.

 

네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40쪽)

 

마치 김수영의 시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이런 말들. 그렇다. 예술은 문제를 빗겨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릴케는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는데... 차분히 읽으며 하나하나 음미해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열 편의 편지가 들어있는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문학에 관해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릴케의 고민, 릴케의 문학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는 책이고, 후배 작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는 모습도 좋게 다가온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 두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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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9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9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