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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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서양 신화와 역사와 철학과 문학이 모두 나오는 듯하다. 그냥 읽어서는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주를 보면 참... 너무도 방대한 서양 문화가 종합되어 나온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파우스트, 파우스트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서양문화를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 책은 그냥 책에 불과하다. 내 정신에 충격을 주거나 마음을 뒤흔들어 놓거나 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책읽기는 의무가 된다.

 

한번 잡았으니, 끝까지 가봐야지 하는 오기가 생긴다. 어차피 책읽기는 잘못읽기라면 그냥 읽으며 내 멋대로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다 싶기도 하다.

 

1부에서 개인이 겪는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 범위가 확장된다. 정치 사회로까지 나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으니,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정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그 세계로 인도한다. 그런 정치사회라고 해봐도 사랑이 빠질 수가 없다.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는 '헬레나' 가 등장한다. 물론 그 전에 파우스트의 제자가 창조했다는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도 나오지만.

 

호문쿨루스 이야기를 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신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싶어한다. 파우스트의 제자인 바그너는 그런 인간을 만든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다. 아주 작은 생명체, 그것도 유리 안에 있어야 할 존재다. 그러니 만족할 수는 없다.

 

이런 호문쿨루스 이야기를 지나 헬레나로 넘어간다. 과거 신들을 소환하라는 왕의 명령,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헬레나를 지상으로 데려오자 파우스트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 아이까지 낳는다. 전쟁까지 일으킨 여인과 행복하게 사는 것. 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아이는 죽고, 헬레나는 돌아가고. 이것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욕망이다. 이룬다고 해도 영속할 수 없는 욕망이다. 영속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멈추어라' 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다른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을 받아 왕에게서 해안선을 받게 된다. 이것을 간척하는 사업을 하고, 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는 드디어 '멈추어라'라고 말한다.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잡히게 되지만 그는 구원받는다. 바로 그레트헨으로 인하여. 여성성, 사랑이 영원함을 여기서 보여주는데...

 

그 유명한 구절이 파우스트 마지막에 나온다.

 

일체의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일 뿐,

미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실현되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 (388-389쪽)

 

남성성이 욕망으로 가득찬 세계라면 여성성은 사랑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세상은 이런 남성성의 세계가 아니라 여성성의 세계라는 것.

 

그렇다면 파우스트가 영혼을 빼앗기게 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 장면은 남성성, 여성성 어디에 속하는가.

 

해안을 개척하고, 그곳에 사람을 이주시키는 것, 이건 남성성이라고 해야 한다. 무언가를 정복하고, 그 정복된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욕망.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 바로 이것이 남성성이다.

 

이런 남성성이 충족된다고 해도 우리 영혼은 신에게 가지 못한다. 그것은 악마에게 갈 영혼일지도 모른다.

 

파우스트 끝부분을 읽으며 그가 쫓아내는 노인부부 이야기는, 서양이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쫓아내는 원주민들의 모습과 겹친다.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곳에 자신의 깃발을 꼽고 여기가 바로 내 땅이다. 자유로운 땅이다. 이리로 와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라 하는 것, 남의 눈물을, 피를 바탕 삼아 세운 땅이 어찌 자유롭고 행복한 땅일 수 있을까?

 

그러니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는 욕망에 멈추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좋은 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로 인해 파멸에 이른 그레트헨이 그를 구원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용하는 정신, 마음이 바로 여성성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내 멋대로 읽은 파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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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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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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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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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대충 알고, 제목은 너무도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책. 요약본으로 읽거나, 산문으로 고친 책을 읽어나 했는데...

 

이번에 장거리 여행을 떠나면서 버스 안에서 읽을 책으로 골랐다. 이 참에 읽어봐야지 하면서.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와 신이 내기를 한다. 인간 '파우스트'를 두고서. 그 내기에서 누가 이길까를 생각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지만...

 

괴테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하는 생각은 했다. 인간은 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고 싶어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고 만족했다고 하니, 만족, 거기서 멈출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신의 경지에까지 올랐다고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욕망 너머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메피스토펠레스는 말한다. 신이 뛰어난 인간은 인간적 욕망을 넘어 신에 대한 사랑으로 진리의 길에 다가가 신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길 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 속에 자신의 영혼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파우스트 박사를 두고 내기가 벌어진다. 파우스트 박사를 찾아간 메피스토펠레스, 그가 파우스트 박사에게 제시한 다음 파우스트 박사가 받아들이는 장면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땐 자네가 날 결박해도 좋아.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  (95쪽)

 

이 부분. 인간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을 추구한다는 자신, 그 욕망은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것. 왜냐하면 인간은 신을 따르려 하니까. 신이 아니니까. 신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 같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테니.

 

이렇게 시작된 내기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 영혼을 갖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다.

 

1부는 바로 인간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욕망이 채워졌을 때 어떤가? 인간은 만족하는가? 여기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파우스트와 첫번째로 가는 곳이 바로 술집이다. 술, 우리 인간 영혼을 헤매게 하는 존재 아닌가. 술을 마셨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 하지만, 곧 술은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술꾼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 정도로 파우스트를 결박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가는 곳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자 궁극적인 욕망 아닌가.

 

사랑 때문에 벌어진 전쟁도 있으니, 이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만족해야 하지 않겠는가. 파우스트는 마르가레테(그레트헨)를 만나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사랑, 불붙는 사랑.

 

자신의 영혼을 상대에서 모두 주는 사랑, 영원히 멈출 것 같은 사랑,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오빠를 죽이고, 그레트헨은 자기 어머니와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죽게 된다.

 

파멸로 끝난 사랑, 어쩌면 파우스트는 자기 욕망을 위해 한 여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자기는 진실한 사랑이라고 했겠지만 상대를 구원하지 못하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그 사랑은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1부다. 인간 욕망이 끝나는 곳은 술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이들은 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가? 그것이 있다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

 

이제 2부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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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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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읽기 힘든 소재다. 세월호는. 소설을 읽으며 마음은 계속 심해로 가라앉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더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데, 이미 세월호는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똑바로 세워졌는데도 여전히 마음은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배만 올라왔을 뿐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져야 할 자들은 쏙 빠져나가고 소위 잔챙이라고 하는 사람들만 처벌을 받았다. 
 
여기에 처벌이나 비난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비난을 받기도 했고. 진실을 바닷속에 묻어두려고 했는지, 계속되는 진실규명 요구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정권이 몰락했다. 그건 몰락이다. 국민들이 마음으로 쫓아낸 부패한 권력.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생목숨들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그 시간에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는 사람이나 재난구호 책임자이면서도 제대로 사태 파악도 하지 못했던 장관들이나 관계 부처 관료들, 그리고 방송이나 제대로 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는데, 그것도 하지 않은 배와 해경 관계자들... 여기에 정부에서 하는 말만 그대로 받아썼던 소위 기레기들.
 
기레기들 말만 믿고, 또 유언비어만 믿고 피해자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소설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다. 세월호는. 소설 제목이 '거짓말이다'다. 
 
무엇이 거짓말일까? 정부의 발표, 언론의 발표, 사람들이 들었던 일들이? 그렇다. 많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고, 여전히 세월호에 관한 진실은 안갯속에 있다.
 
안갯속에서 세월호를 꺼내야 한다. 아니, 안개를 몰아내야 한다. 안개를 몰아내는 방법, 그것은 진실을 밝히는 일밖에 없다.
 
이 소설은 민간잠수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수색작업을 했던 사람들.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보상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지닌 능력으로 바닷속에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기에, 마치 전쟁 때 의병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났듯이,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또 해야만 할 일이었기 때문에 앞뒤 재지 않고 바다로 달려왔다. 
 
그리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한 명이라도 더 모시고 나오기 위해서. 데리고가 아니다. 모시고다. 소설에서는 분명 모시고 온다고 표현되어 있다.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가? 비록 목숨이 끊어졌다고 해도 소중한 존재다. 함부로 할 수 없는. 모셔야만 하는 그런 존재.
 
하지만 그런 민간잠수사들에게 나라는 어떠했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이 생활할 수는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참담하다.
 
나라 존재가 무엇인지, 위정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이 점을 소설은 허구로 파고든다.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꾸며냄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다. 4년이 지났음에도 세월호는 진행형이다. 밝혀야 할 사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소설을 읽으며 최명란이 쓴 시 '베짱이'가 생각났다. 지금도 이런 베짱이들이 국회에 드글드글하니, 세상 일은 반복이 되는지. 학습효과가 없나 보다. 아니면 기레기로 통하는 언론들이 국민들의 귀와 눈을 막은 정도가 아니라 뇌 깊숙이까지 점령했는지도.
 
   베짱이
 
너 전생에 정치인었나 보구나
늘 같은 소리로만 울어대니 말이야
 
최명란, 결혼, 맛있겠다. 문학수첩. 2001년 초판. 35쪽.
 
한결같음이 짜증날 때가 있다. 십 년 넘게 한결같이 헛소리만 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그들을 소환할 방법도 없는 현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소설에는 정치인은 나오지도 않는다. 지나가는 투로 국회의원들이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세월호 사건 때 정치인들은 제 역할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4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지. 같은 소리만 반복한 정치인들이다.
 
이 소설은 유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를 통해 세월호에 다가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분명 구조 작업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골든 타임이 지난 다음에 그들이 배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엇하고 있었나? 민간잠수사들이 올 때까지 배 속에 있던 사람들을 구할 잠수사가 우리나라에는 없단 말인가. 그런 구조 팀이 나라에 없단 말인가. 분명 아닐텐데... 따라서 소설에서 주인공은 구조 작업이 아니라 희생자를 모시고 오는 작업이라고 한다. 너무 슬프게도) 그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단지 세월호 유가족들뿐만이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고통받고 있음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진실이 밝혀져야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누가 세월호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그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밝힌 다음 사람들 마음을, 몸을 치유해야 한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땜질 식 처방이 아니라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먹먹함 속에서 읽어나가는 소설. 하지만 읽어야 할 소설.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여전히 진실은 멀리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소설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 이렇게 희망이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우리가 희망을 잡고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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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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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천천히 읽게 된다.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가 늙어가듯이 소설도 그렇게 천천히 전개된다. 우르비노 박사가 죽은 뒤,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과정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열정적인 사랑, 죽을 것 같은 사랑 속에서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하는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를 잊지 않기 위해 육체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가 관계한 여성이 6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 열정적인 관계를 맺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가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는 것. 확인을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서 하는데, 여기에 단순히 몸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몸을 취한다는 것은 마음을 취한다는 것과 연결이 된다. 몸만을 추구하는 사랑은 돈이 매개된 사랑이다. 돈으로 제 욕정으로 해소하기 위해 사는 관계, 그것이다. 그러나 플로렌티노는 돈으로 여자를 사지 않는다.

 

물론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인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여인은 직접 돈을 받지 않는다. 저금통에 돈을 넣고 마는 것, 또 플로렌티노가 힘들어할 때 찾아가 위안을 받는 것.

 

이렇게 그와 관계를 맺은 여인들도 늙어가는데, 유일하게 관계를 맺지 않는 여인이 있다. 흑인 여성인 레오나 카시아니. 이 여인은 플로렌티노가 자려고 할 때 그를 아들로 생각한다고, 아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여인은 플로렌티노가 선박 회사의 회장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데, 어머니를 잃은 그에게 레오나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결국 자살하고 마는 아메리카 비쿠냐, 십대의 나이에 플로렌티노와 관계를 맺는 그녀는, 마치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플로렌티노가 페르미나로 인해 그녀와 관계를 끊자 자살하고 만다.

 

십대 여인이 칠십 대 노인과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이게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세상에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이런 나이가 상관없음이 바로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사랑에서 나타난다. 노인들의 사랑을 추악한 것으로 여기는 페르미나의 딸과 아들과 달리 며느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신분도 나이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하는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정신적인 사랑만은 아니다. 육체적 사랑도 가능하다.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는 나중에 육체 관계를 갖는다. 처음에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육체 관계를 찾아낸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했을 때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른 때는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잔잔한 만남, 잔잔한 사랑으로 변해간다.

 

이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공적인 생활의 과제는 두려움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부부 생활의 과제는 지겨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89쪽)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불처럼 이는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들의 생활은 반복으로 점철된다.

 

반복되는 삶, 지겨움이다. 이 지겨움을 이겨낼 때 부부 생활은 지속된다. 하지만 지겨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일탈이 일어나거나 부부 생활이 파탄나게 된다.

 

우르비노 박사와 페르미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르비노 박사 역시 바람을 피우고, 그런 관계를 통해서도 이들의 결혼 생활은 계속 유지된다. 한때의 바람, 이것은 부부 생활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몇 십년 동안 지속되는 비슷한 일상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사랑에 빠졌을 당시에는 새로움의 연속이었지만,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일상이 시작된다.

 

일상의 연속, 이것은 지겨움이고, 바로 '별것'이었던 사랑이 '별것 아님'이 되고 만다. 이렇게 별것 아닌 사랑 속에서도 결혼 생활은 지속되는데, 이런 지속이 바로 사랑을 '별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별것'이  '별것 아닌 것'이 되었다가 다시 '별것'이 되는 과정이다. 이 '별것'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자리잡을 수도 있고, 또 사별을 한 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사랑이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한 순간도 페르미나를 잊지 못했다는 플로렌티노의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할 때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는 그렇게 페르미나를 기억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고 결국은 그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페르미나와 맺어지는 것.

 

환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이다. 현실로 꽉 찬 그런 삶이 이 소설을 지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사랑에 환상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무려 53년을 기다려 맺어진 사랑이라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일상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적나라한 인생들이 모여 우리 삶을 이룬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별것' 아닌 삶을 '별것'인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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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0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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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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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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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작품으로는 두 번째 작품 읽기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느꼈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는 없다.

 

그냥 우리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콜레라 시대, 지금은 사라진 시대다. 그렇다면 과거 시대의 사랑이라는 말일까. 왠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들의 사랑이 지금으로부터 따지면 과거에 해당하겠지만, 사랑은 시대를 넘어 공통된 무엇이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열병을 앓듯이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목숨을 바칠 것처럼 푹 빠져 있고, 그 사랑에 전염되어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콜레라가 이미 과거 질병이 되었고, 이제는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도 잘 알려졌듯이, 사랑 역시 과거의 어떤 일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을 달뜨게 하고, 들뜨게 하고, 사랑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그런 열병같은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고 결국 생활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상황. 결국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콜레라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 그럼에도 그게 지속되면 안 된다는 것.

 

1권의 마지막 대사가 바로 이것이다. "별것 없더라고요." (286쪽)

 

신혼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돌아온 페르미나 다사가 한 말이다. 사랑은 빠져 있을 때는 별것이다. 정말로 특별한 무엇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별것 아닌 것이 된다.

 

이렇게 별것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사랑은 생활 속에 녹아들어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살지만 나중에는 정으로 산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페르미나 다사와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 역시 정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50여 년을 함께 살지만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즉 페르미나 다사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만들게 되는 것, 그러나 결혼이라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를 다르게 보게 되는 것. 그리고 현실에 안주해 결혼 생활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죽을 것 같은 사랑은 없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별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은혼식, 금혼식, 금강혼식(다이아몬드식)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함께 25년, 50년, 75년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처음엔 불붙는 사랑이 있겠지만, 콜레라와 같은 열병을 앓겠지만, 콜레라가 지속되면 삶은 유지될 수 없으니, 곧 정신차리게 된다.

 

그 다음에는 생활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삶이다.

 

소설은 나이 든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죽게 되는 사건이 소설의 앞부분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 우르비노 박사의 부인인 페르미나 다사와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편지로 서로에게 환상을 키워가는 그런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편지로 만나는 사랑, 그것은 상대에 대한 환상을 키우게 된다. 이런 환상은 실물을 보는 순간 깨지게 된다. 환상이 깨지면 그때부터 현실이 들어온다. 현실이 들어왔을 때 페르미나 다사가 선택하는 것은 결혼이다.

 

상류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하는 것. 이들의 결혼으로 충격을 받은 아리사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파리로,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아이를 임신한 페르미나가1권 마지막에서 하는 말 "별것 없더라고요."

 

이 '별것 없더라고요'가 바로 '별것이더라고요'가 된다. 우리 삶은 이런 별것 없는 것이 바로 별것인 삶이다. 그렇게 삶은 유지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소설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2권에서는 결혼한 페르미나가 어떤 현실을 살아가는지, 페르미나를 사랑하는 아리사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지가 펼쳐질 것이다.

 

내 삶,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삶이 바로 별것이라는 생각을 소설을 읽으면서 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별것 아닌 삶이 소설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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