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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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카우스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다른 책을 읽다가 이 이름이 나오고,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이 있어서 과연 죽음을 눈 앞에 둔 늙은 작가의 일기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이 책을 읽게 했다.

 

좋은 책이란 다른 책으로 자연스레 손길이 가도록 하는 책이라고 하는 말이 맞는가 보다. 이 책을 소개해준 책을 보고, 부카우스키라는 사람의 글을 읽게 되었으니.

 

제목도 참 잘 붙였다. 원래 제목은 이것이 아니라, '선장은 점심 먹으러 나가고 선원들이 배를 접수하다'라고 하는데, 일본어 판과 우리나라 판에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란 제목을 붙였다. (183쪽)

 

70살이 넘은 노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일기로 쓴 글이니, 이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변산에서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윤구병도 나이 70이 되자 이제는 어떻게 죽어도 자연사로구나라고 했지 않은가.

 

나이 70이면 종심(從心)이다. 공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마음에 따르면 되는 나이. 이미 세상을 살 만큼 살았기에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해도 좋을 나이. 자연의 순리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겨도 좋을 나이 아닌가.

 

그래서 70이 넘어서 쓴 글에는 쓴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부카우스키의 글을 읽다보면 도대체 노인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고, 너무도 자주 경마장에 가며, 세상일에 대해 또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직설적으로 글을 쓸 수 있나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순간순간 죽음이라는 놈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작가는 이를 너무도 친숙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구절을 보자.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염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17쪽.

 

이런 자세를 지닌 사람은 삶을 즐길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살아있는 순간이고, 죽음과 함께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늘 자신의 왼쪽 주머니에 있다.

 

함께 살아간다. 그러니 어떻게 현재의 삶을 막 살 수 있겠는가. 시간을 어떻게 막 죽일 수 있겠는가. 이때 시간을 죽인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에 끌려다니는 일이다.

 

작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제의에 처음에 혹 했다가, 이내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결국 취소하고 만다. 그만큼 자신이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피하려고 한다.

 

이미 70이 넘었으니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 종심(從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일기를 읽으면 노인네가 쓴 글이라 죽음이 늘 곁에 있으니, 칙칙할 거라고 생각하고, 인생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만다.

 

삶에는 나이가 필요없다. 그냥 자신이 얼마나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충실하게 살았느냐다. 늙었다고 삶이 유쾌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젊었다고 삶이 유쾌한 것만도 아니다.

 

부카우스키는 이 일기에도 나오지만 젊었을 때는 노숙에 알콜 중독에 별 일을 다 해봤다고 하는데... 이는 나이 먹어서도 술을 많이 마시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데... 이런 일들이 참으로 경쾌하게 (심지어 술 마시고 돌아와 계단에서 넘어져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 168쪽) 표현되어 있다.

 

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삶에 유쾌하게 펼쳐지고, 그래,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이게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생 말년의 일기... 참, 유쾌한 일기다. 그래서 읽으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인생이란 이렇듯 현재에 충실하면 되는 것을... 현재에 충실할 때 죽음은 주머니 속에서 얌전히 함께 삶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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