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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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치가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좋다. 어쩌면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그리스인들의 전형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권 시작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으로부터 시작한다. 두 극단의 부딪힘. 그러나 안티고네로 대표되는 극단은 본성과 자연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고, 크레온으로 대변되는 극단은 인위와 개인의 욕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극단과 극단이 부딪히면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안티고네의 죽음, 크레온의 파멸. 그러나 둘 다 파멸에 처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안티고네는 칭송을 받는다. 크레온은 비난을 받고, 어떤 동정도 얻지 못한다.

 

이 극단적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나'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아무리 법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용납되지 않음을 처음 부분부터 보여주고 있다.

 

이런 법만을 따지는 개인의 욕망이 그리스를 쇠퇴로 이끌어갔다는 논지가 뒷부분에 나온다. 소송천국 그리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소송이 필요한 사회, 넘쳐나는 소송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생산적이 아닌 남들을 파멸시키는데 쓰게 된다.(소송 망국 아테나이. 416쪽)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지고 마는데, 이 법의 맹신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작은 제목에 나오는 마지막 인물, 소크라테스다. 그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에 이른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으며 신을 믿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법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이 얼마나 잘못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또 아테네에서도 벌금으로 처벌을 면하는 제도가 있었듯이, 재판 따로 처벌 따로인 경우가 쇠퇴기에 넘쳐났는데, 우리나라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고 하여 온갖 보석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한 사회의 쇠퇴기에는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보다는 문자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온갖 해석가들이 나타나게 되고, 당시에는 이들이 소피스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요즘은 변호사 또는 브로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소포클레스에서 가장 중심에 두는 인물은 오이디푸스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쿤데라가 '농담'이라는 소설에서 오이디푸스를 언급했는지 알겠다.

 

자신의 잘못이 없음에도 그것을 비껴가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인간. 인간으로서 가장 고결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오이디푸스. 왜 신들이 그에게 고난을 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그래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인간, 영원한 안식을 얻은 인간, 오이디푸스.

 

우리가 언제 자신이 한 행동에 걸맞는 대접만 받았던가. 내 호의가 악의를 유발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마다 억울해 하지 않았던가.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하면서 변명만 하지 않았던가. 특히 정치인들, 오이디푸스처럼 왕이라는 자리에 있어 테베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자신에게 파국이 닥쳐오더라도 정면으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당당하게 나아가기. 책임지기. 다른 존재 탓하지 않기. 오로지 내게 주어진 일일 뿐. 오이디푸스는 그렇게 나아간다. 그런 그를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제시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뛰어난 인간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는 인간. 그 인간이 바로 오이디푸스이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인물들 말고도 이 책에서는 힙포크라테스를 다루고 있다. 의학을 발전시킨, 그의 의학 앞에서는 어떤 인간 차별도 없었음을 보여주는, 현대에도 의대를 나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돈이 아니라 병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의사의 모습. 그렇게 중요한 의사가 이 권에서 나오고,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나오기도 한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웃음으로 사회를 치유하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을 통해 당시 그리스 모습을 꼬집는다. 그는 웃음으로 흘려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사회를 개조하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비극에서 희극으로 나아가고, 아테네는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그 쇠퇴의 정점에서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는 것,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아닐까 한다.

 

이제 3권으로 가야 한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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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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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5: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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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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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야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를 실현한 나라로 아테네를 꼽기도 하니,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가 바로 그리스다.

 

하지만 그리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잘 모른다.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그냥 건축물 중심이나 자연풍광을 중심으로 보고 오갈뿐. 또는 신화의 흔적을 찾아다닐 뿐. 그리스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하지 않고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그리스를 다녀왔다. 달랑 2박.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에기나 섬만을 보고 온 것. 그리스에 대해서 많이 알지도 못했고, 또 그리스는 터키를 가기 위한 중간 여정에 불과했기에, 내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파르테논 신전이 터키 이스탄불보다도 감동을 덜 주었으니,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간 곳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와 제목이 똑같다. 시오노 나나미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을 해나가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재미고 있고. 극적인 요소도 잘 살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시오노 나나미 책과 비교할 수 있겠군 했다. 한데 읽어가니 아니다. 두 책은 비교할 수가 없다. 서술하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그 인물의 업적, 특성, 성격 등을 이야기한다. 한 인물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리스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일구어 온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즉 그리스인을 통해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문학 속의 인물들도 그리스인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를 현재에 충실한 인간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인간. 그에겐 공동체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능력. 그런 인간형이 아킬레우스라면 반대 편에는 헥토르가 서 있다. 헥토르를 공동체를 사랑하는 고결한 인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누구에게 더 애정을 쏟고 있는지 소개하는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저자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런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오레스테스, 역시 문학 속 인물이다. 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스인 중에서 비극작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비극작가를 돋보이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정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신에게서 인간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비극 작품 속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해준다. 그리스는 신의 정의에서 인간의 정의로, 즉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법이 정착하는 과정을 이런 비극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은 천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다.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다. 문명의 역사다.

 

문명의 역사에서 어두운 곳에 있었던 노예와 여자에 대해서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어떻게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는지, 민주주의를 이끌어가게 되는 주요 인물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솔론과 페리클레스. 두 사람의 지도자만 다루고 있다. 이들이 아테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한계 역시 이야기해주고 있다.

 

페리클레스의 민주주의는 시민만의 민주주의, 오히려 민주주의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그 전에는 아버지가 아테네 시민이면 어머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아테네 시민권을 지녔는데, 페리클레스 시대에 와서 부모 모두가 아테네 시민이어야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렇게 점점 폐쇄적으로 축소되고, 또 다른 도시국가들에 제국주의로 아테네가 나아갔기 때문에 결국은 아테네 역시 멸망하게 된다는 것.

 

민주주의는 특정한 집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사랑해야 하지만, 또한 개개인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리스인들을 통해서 역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2권, 3권으로 이어지는데... 계속 읽어야 한다. 

 

1권의 작은 제목이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다.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내려오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이제 다음 권부터는 인간 세계에서 법과 정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되어가는지가 나오겠다고 추측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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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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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패배자가 되는 사회, 행복한 사회인가? 그런 역사가 있는가? 아니다.

 

비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승자가 있기 위해서는 패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패자로 인하여 세상은 한층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않든 패자들은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고, 우리 인류를 발전시켜 온 사람들이다.

 

그런 패자들을 역사에서 깨끗이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는 일,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패자의 기록들을 통해 역사는 좋은 쪽으로 한걸음 내디딜 테니 말이다.

 

승자가 지닌 특성은 집요함일 것이다. 그들은 집요함으로 승리를 이끌어낸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에 반해 패자는 인간적인 품성에서 승자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다.

 

그런 인간적인 품성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패자들에 대한 기록,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미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 이 중에 처음 듣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로 인해서 이익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 그들에 의해서 어쩌면 이들이 의도적으로 가려졌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살려내는 것, 그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노벨상을 놓친 사람, 리제 마이트너 같은 경우,물리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지만 노벨상을 오토 한에게 빼앗겼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같이 과학분야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처음 듣는 이름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과 더불어 하인리히 만 같은 경우는 동생 토마스 만에 가려진 경우이고, 요한 슈트라우스는 이름이 같은 아들에게 이름이 가려진 사람. 그래도 이들은 가족에게 뒤쳐졌다고 할 수 있으니 덜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추락한 오스카 와일드나 앨런 튜링 같은 경우는 문제가 있다.

 

성정체성이 범죄가 되던 시대.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그런 시대에 살았던 사람.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 이들이 바로 위대한 패배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책.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이들을 패배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사람도 있다. 윈스턴 처질과 등소평. 어떻게 이들이 패배자인가. 물론 잠시 패배해서 물러날 때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결국 승리를 하지 않았나.

 

역사에서도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런 사람들 말고 역사에서 지금 다루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 역사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기 몫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 그들이 비록 당대에는 패배했을지라도 역사의 흐름에서는 살아남아야 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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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4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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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4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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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인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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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고 앞만 보고 달려와서 이제는 꽤 앞에 왔으리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뿔싸, 바로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낭패감.

 

온몸에 힘이 죽 빠지고, 도대체 지금까지 뭔 짓을 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고, 역사는 발전한다더니 그건 책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는 처참함마저 들게 된다.

 

87민주화 운동이 30년이 지났고, 민주정권도 탄생시켰었는데, 도대체 민중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지도 꽤 되었고, 노동운동이 힘을 발휘하던 때도 있었는데, 과연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50년이 되어 간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세월이 흐른 것.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이어 수많은 열사들이 따랐다.

 

열사들... 너무도 슬픈 이름 아닌가. 자신의 몸을 불사를 수밖에 없었던, 가진 무기라고는 자기 몸밖에 없었던, 그래서 가장 소중한 자기 생명을 내던져야 했던 이들. 그들을 가리키는 이름 열사. 그런 열사들.

 

열사들이 많았다는 것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슬픈 우리 현실을, 각박했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으로밖에는 저항할 수 없었던 그런 열사들을 가진 나라. 그 열사들로 인해 지금 우리가 있게 되었는데, 열사들이 그토록 원했던 사회를 우리가 만들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금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의미가 있다. 평전소설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달고 있는, 사실이지만 허구인 그런 평전이자 소설이다.

 

현대자동차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분신한 양봉수 열사를 중심에 두고 몇몇 허구적인 인물이 나와 당시 현실과 노동운동,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활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광주'다. 이름이 기막히지 않은가. 양봉수 열사 평전소설을 쓰면서 전체적인 서술자 이름을 광주로 하다니.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이름. 여전히 진행 중인 민주화 운동을 이르는 이름으로 이보다 좋은 이름이 어디 있는가.

 

광주... 많은 탄압을 받고 힘들게 힘들게 지금까지 왔지만, 여전히 광주는 진행형이니, 그 아들 이름이 '개벽'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농성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 70년대를 전태일 열사가 열었다면, 80년대는 광주가 열었으며 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 봇물 터지듯 나온 노동자 대투쟁, 민주노조 건설 운동 등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꿈꾼 것은 노동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고 사는 사회였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 그런 사회는 당연히 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 사람으로 인정하면 그에 합당한 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계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통해 이 소설은 너무도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인간 대접을 받았더니, 외환위기로 인해 다시 인간 이하의 처지로 전락해 가는 과정이...

 

양봉수 열사와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얻었던 노동자 권리들이 하나하나 다시 사라져 가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가는 현실이 이 평전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개벽을 꿈꾸지만 그 개벽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개벽을 꿈꾸는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평전소설은 노동운동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옳았다고도 하지 않는다. 노조집행부의 무능, 변절, 자기 이익을 위한 행동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원이라고 해서 모두 동지애로 묶여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들, 고뇌하는 노동자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료들 곁을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자들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노조 간부들, 이를 더욱 활용해 노조를 와해시키는 자본, 공권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형화된 인물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또 겪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굴러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비정규직이 너무도 많아진 현실에 처해 있다.

 

아버지들은 그래도 정규직 노동자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파업 투쟁을 통해 임금 인상을 얻어냈다면 아들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하루하루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사회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들이 어느날 눈을 뜨고 주위를 보니 이런 제자리다. 아니 더 뒤로 가 버린 자신들, 자기 자식들을 보게 된다.

 

이게 뭔가?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됐는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이 평전소설은 광주를 통해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고 양봉수 열사 평전소설이라고 하지만 과거 인물에 대해 소개만 하는 책은 아니다.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 서술자가 '광주'이고 그 아들이 '개벽'이듯이 광주는 아직도 개벽을 기다리며 진행 중임을 명심하게 한다.

 

읽으면서 슬프고 화나고, 지난 몇 십 년이 머리 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했던 그런 평전소설... 과거를 떠올리며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평전소설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오래 전에 받았는데.. 이제야 읽었다. 읽으려고 책을 집었다 다시 놓았다를 반복했다. 노동 열사에 관한 책, 마음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마음이 불편해야 한다. 그 불편함이 사라지는 때, 그 때가 바로 열사들이 꿈꾸던 것이 실현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읽으며 아직은 마음이 불편했다. '개벽'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개벽'이 높다란 고공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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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변화한다 - 모옌 자전에세이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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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 읽은 중국 작가로는 모옌과 위화가 있다. 둘은 다섯 살 차이다. 다섯 살 차이라 함은 동년배라 할 수 있단 얘기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작가인데 작품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영 다르다.

 

모옌이 1955년생, 위화가 1960년생. 이들은 중국을 공산당이 장악한 다음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항일전쟁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기를 겪었다. 그런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위화가 자기 수필집인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중국 현대사를 겪으면서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면, 모옌은 이 책 "모두 변화한다"에서 자신이 겪은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위화는 주로 문화대혁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위화에게는 문화대혁명이 성장함에 있어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소설 '형제'를 보아도 문화대혁명기의 비극과 개혁개방기의 성장이 함께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중국 현대사를 힘겹게 겪어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위화보다 다섯 살이 더 많은 모옌 역시 위화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을텐데, 이 수필집의 분위기는 너무도 다르다.

 

이미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듯한 과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심한 갈등을 겪지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개인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말이다.

 

차이가 모옌은 교육을 덜 받고 군인으로 입대해 생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시 중국에서 군인은 당원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계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화가공 공장에서 군인이 된 모옌은 문학에 대한 꿈을 잊지 않고 결국 소설가가 된다. 그가 소설가가 되어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중국이 변해온 모습을 글로 담아낸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이 책은 수필로 읽어야 하지만 읽다보면 이상하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줄거리가 있고, 사건이 있고, 무엇보다 뚜렷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모옌이 다녔던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동창. 루원리와 허즈우, 그리고 교사들 몇몇과 모옌. 이들의 삶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이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문화대혁명기는 살짝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수많은 사람이 수없이 고통을 당했던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모옌은 빗겨가고 있다. 그 다음 개혁개방기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다.

 

국가, 지방, 인민 소유에서 개인 소유로 바뀌어 가는 과정,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허즈우가 돈을 벌게 되는 과정과 결혼 그리고 자식들 이야기, 루원리의 가정사와 개인적인 아픔이 시대의 변화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세 동창의 삶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책인데,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가 초등학교 때는 어떠했고, 청년기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더 좋게 다가오는 책이다.

 

모옌,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어 '공리'란 여배우를 세계적인 여배우로 만들어낸 "붉은 수수밭"이란 영화를 떠올리면 된다. 그 영화의 원작이 되는 "홍까오량 가족"을 쓴 사람이 바로 모옌이니까.

 

여기엔 그 영화 "붉은 수수밭"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영화 촬영을 모옌의 고향에서 했다고 하고, 또 폭파되는 차가 이 책에 계속 나오는 '가즈51'이라는 차라고 하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모옌이라는 작가의 사적인 삶과 중국이 겪어온 역사를 함께 알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과거를 따뜻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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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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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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