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인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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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고 앞만 보고 달려와서 이제는 꽤 앞에 왔으리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뿔싸, 바로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낭패감.

 

온몸에 힘이 죽 빠지고, 도대체 지금까지 뭔 짓을 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고, 역사는 발전한다더니 그건 책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는 처참함마저 들게 된다.

 

87민주화 운동이 30년이 지났고, 민주정권도 탄생시켰었는데, 도대체 민중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지도 꽤 되었고, 노동운동이 힘을 발휘하던 때도 있었는데, 과연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50년이 되어 간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세월이 흐른 것.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이어 수많은 열사들이 따랐다.

 

열사들... 너무도 슬픈 이름 아닌가. 자신의 몸을 불사를 수밖에 없었던, 가진 무기라고는 자기 몸밖에 없었던, 그래서 가장 소중한 자기 생명을 내던져야 했던 이들. 그들을 가리키는 이름 열사. 그런 열사들.

 

열사들이 많았다는 것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슬픈 우리 현실을, 각박했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으로밖에는 저항할 수 없었던 그런 열사들을 가진 나라. 그 열사들로 인해 지금 우리가 있게 되었는데, 열사들이 그토록 원했던 사회를 우리가 만들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금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의미가 있다. 평전소설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달고 있는, 사실이지만 허구인 그런 평전이자 소설이다.

 

현대자동차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분신한 양봉수 열사를 중심에 두고 몇몇 허구적인 인물이 나와 당시 현실과 노동운동,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활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광주'다. 이름이 기막히지 않은가. 양봉수 열사 평전소설을 쓰면서 전체적인 서술자 이름을 광주로 하다니.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이름. 여전히 진행 중인 민주화 운동을 이르는 이름으로 이보다 좋은 이름이 어디 있는가.

 

광주... 많은 탄압을 받고 힘들게 힘들게 지금까지 왔지만, 여전히 광주는 진행형이니, 그 아들 이름이 '개벽'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농성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 70년대를 전태일 열사가 열었다면, 80년대는 광주가 열었으며 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 봇물 터지듯 나온 노동자 대투쟁, 민주노조 건설 운동 등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꿈꾼 것은 노동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고 사는 사회였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 그런 사회는 당연히 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 사람으로 인정하면 그에 합당한 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계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통해 이 소설은 너무도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인간 대접을 받았더니, 외환위기로 인해 다시 인간 이하의 처지로 전락해 가는 과정이...

 

양봉수 열사와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얻었던 노동자 권리들이 하나하나 다시 사라져 가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가는 현실이 이 평전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개벽을 꿈꾸지만 그 개벽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개벽을 꿈꾸는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평전소설은 노동운동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옳았다고도 하지 않는다. 노조집행부의 무능, 변절, 자기 이익을 위한 행동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원이라고 해서 모두 동지애로 묶여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들, 고뇌하는 노동자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료들 곁을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자들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노조 간부들, 이를 더욱 활용해 노조를 와해시키는 자본, 공권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형화된 인물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또 겪게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굴러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비정규직이 너무도 많아진 현실에 처해 있다.

 

아버지들은 그래도 정규직 노동자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파업 투쟁을 통해 임금 인상을 얻어냈다면 아들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하루하루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사회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들이 어느날 눈을 뜨고 주위를 보니 이런 제자리다. 아니 더 뒤로 가 버린 자신들, 자기 자식들을 보게 된다.

 

이게 뭔가?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됐는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이 평전소설은 광주를 통해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고 양봉수 열사 평전소설이라고 하지만 과거 인물에 대해 소개만 하는 책은 아니다.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 서술자가 '광주'이고 그 아들이 '개벽'이듯이 광주는 아직도 개벽을 기다리며 진행 중임을 명심하게 한다.

 

읽으면서 슬프고 화나고, 지난 몇 십 년이 머리 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했던 그런 평전소설... 과거를 떠올리며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평전소설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오래 전에 받았는데.. 이제야 읽었다. 읽으려고 책을 집었다 다시 놓았다를 반복했다. 노동 열사에 관한 책, 마음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마음이 불편해야 한다. 그 불편함이 사라지는 때, 그 때가 바로 열사들이 꿈꾸던 것이 실현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읽으며 아직은 마음이 불편했다. '개벽'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개벽'이 높다란 고공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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