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프로페셔널 -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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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다 우연히 '역사 저널 그날'을 보게 되었다. 가끔은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천민 출신인 장영실을 세종이 기용하여 쓰려고 하는데, 천민에게 벼슬을 주어 기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황희가 그런 전례가 예전에도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장영실을 쓰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내용.

 

이것이 바로 선례의 힘이고, 기록의 힘이고, 아는 것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 행해진 일들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재판에서도 판례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을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런 사회에서도 능력에 따라 쓸수 있는 전거를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 머리 속에 남았는데...

 

이 프로그램의 내용과 이 책이 연결이 되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선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반으로 행세깨나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천민, 기생까지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번듯한 기록은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이들의 활동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남아 있던 자료들을 모아 저자가 정리해주고 있다.

 

기록의 힘이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 소위 '덕후들'이 있었음을. 이런 '덕후들'로 인하여 조선사회가 좀더 깊고 넓어졌음을.

 

열 명의 프로페셔녈을 다루고 있다. 영어로 프로페셔널이라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전문가, 대가 정도 될테고, 요즘 용어로는 '매니아' 또는 '덕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행가 정란, 바둑기사 정운창, 화가 최북, 조각가 정철조, 무용가 운심, 책장수 조신선, 원예가 유박, 천민 시인 이단전, 음악가 김성기, 과학기술자 최천약

 

조선시대 많은 인물들을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 중에 최북만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 정철조 편을 읽으면서 그의 호가 '석치'라는 사실에 박지원과 관련된 일화들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듣는 이름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여행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원예가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이들을 모두 한자어로는 벽(癖), 광(狂), 나(懶), 치(痴), 오(傲)라고 한다. 자기분야에 빠져 다른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자부심이 넘쳐나서 다른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남들 눈에는 한쪽으로 치우쳤거나, 미쳤거나 오만하거나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면 이들은 모두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매니아 수준을 넘어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신분과 환경을 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고 단련하고 노력하여 결국 넘어선 사람들이다.

 

이들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신분에 의해, 환경에 의해, 또는 끼리끼리에 의해 자기들만의 경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장영실이 기용된 것이 전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지금 우리가 '덕후'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들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남들이 하지 않은 일, 하고자 하지 않은 일들을 한 사람도 있고, 신분 제약을 넘어 일가를 이룬 사람도 이 책에 등장한다.

 

그나마 다른 양반들의 기록에 이름자를 남겼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또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인데...

 

그렇게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찾아 하나로 엮어낸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조선후기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할 수도 있으니...

 

덧글

 

여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바로 '책장수 조신선' 편인데... 영조, 조선후기 문화 중흥을 이끈 임금임에도 이때에 분서갱유라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것 참... 이래저래 문화는 정권에게는 견제해야만 할 어떤 것인가 보다...

 

씁쓸했다. 이 부분은. 책의 유통과 출판을 국가가 통제한 이유도 바로 이런 정권 유지였을테니... 지금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참으로 오랜 연원을 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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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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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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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2 - 달이 뜬다 북을 울려라
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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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2권이다. 순서대로 읽었어야 했지만, 사실 3권을 먼저 읽었다. 외국에 나가 우리나라 예술의 외연을 넓힌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

 

국내는 이미 많이 안다고 생각한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국내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음을, 우리나라 예술에 대해서 꽤 무지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모르고서야 어디, 도대체 학교 다니면서 우리나라 예술에 대해 배운 것이 무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무지했다. 정말 미술이나 음악은 교과서에만, 학교 수업에만 갇혀 있는 그런, 학교를 떠나면 내게서 사라지는 그런 교과목이었다.

 

이 학교에서의 예술수업이 내 몸속으로, 내 맘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점수따기 배움이었던가, 이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예술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1권과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느끼게 되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것들 역시 전시행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

 

예술을 천시해서는 좋은 나라가 될 수 없다. 다양한 예술이 꽃피고, 그런 다양한 예술들을 실험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어떤 예술이 있고, 어떤 예술가들이 있는지 안다면, 그것은 학교 교육을 넘어 삶 교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2권에 나오는 장소와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전혜린과 서울·뮌헨, 박수근과 양구, 고유섭과 인천, 박인환과 서울, 김명환과 곡성, 김승옥과 순천, 김대환과 인천, 천상병과 인사동, 황현과 구례, 채만식과 군산, 장욱진과 덕소, 김유정과 춘천, 권진규와 서울, 배희한과 서울, 김용준과 서울, 이상화와 대구, 한용운과 백담사, 허난설헌과 강릉, 조금앵과 남원, 이삼만과 전주, 이월화와 서울, 바우덕이와 안성, 석모도, 한강

 

학교에서 배운 예술가들, 특히 박인환과 천상병, 김유정, 채만식, 이상화, 한용운에 대해서는 좀 안다고 할 수 있지만, 김명환, 김대환, 배희한, 조금앵과 같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 만나서 반갑다. 모르던 사람을 만나는 일, 모르던 예술을 만나는 일, 그것 자체로 기쁜 일이다.

 

이런 일을 화첩을 들고 다녀 우리에게 알려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저자들로 인해 우리 예술이 넓고 깊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예술이 널려 있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제 주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사는 마을에 어떤 예술이, 어떤 예술가가 있는지... 그런 마음을 먹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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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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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 1 - 예의 길을 가다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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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예술가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떤 예술가들은 우리들 기억에 영원히 남으려는 듯이 그가 활동했던 장소에 그의 흔적들을 곳곳에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수가 없다. 그가 살았던 장소도 변해버리고, 그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예술가들은 장소를 통해 복원해 낸다. 예술가들을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낸다. 아니 기억 속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생활 속에 불러낸다. 그렇게 그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장소,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장소를 찾아간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들고서.

 

그곳에 가서 예술가들을 만난다. 실제로 만나지야 못하겠지만 예술가들의 혼과 소통을 한다. 그런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그 장소를 그림으로 그린다. 이것이 바로 '화첩기행'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를 통해서 많은 예술가들과 장소를 만난다. 비록 그 장소가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너무나 멀리 와 있을지라도 예술가의 흔적을 저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을 홀대했던 시대가, 나라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제는 흔적도 찾기 힘든 장소도 많지만, 이런 저자의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예술가에 대한 흔적이 남겨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도 예술의 폭을 넓고 깊게 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문화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절대로 홀대해서는 안 될.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을 구분하지 않는다. 예술을 그렇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모두 혼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보자. 어떤 장에서는 특정한 누구라고 하기 힘든 사람들도 나온다. 가령 '진도소리와 진도' 하면 그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진도라는 섬에 대한 이야기다. 그 섬이라는 장소가 그런 소리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난영과 목포, 진도소리와 진도, 강도근과 남원, 서정주와 고창, 허소치와 해남·진도, 이매창과 부안, 윤선도와 보길도, 운주사와 화순, 임방울과 광산, 이효석과 봉평, 김삿갓과 영월, 아리랑과 정선, 나운규와 서울·남양주, 김명순과 서울, 최승희와 서울·도쿄, 정지용과 옥천, 나혜석과 수원, 이건창과 강화, 김동리와 하동, 안동 하회와 별신굿 탈놀이, 이인성과 대구, 남인수와 진주, 박세환과 경주, 문장원과 동래, 암각화와 언양, 이중섭과 제주, 김정희와 제주, 정선과 금강산, 최북과 구룡연, 최익현과 금강산

 

이것이 1권에 나온 예술가와 장소다. 내가 가 본 곳도 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알고 있던 예술가와 모르던 예술가가 함께 모여 있다.

 

이 중에 슬픈 사연, 예술가를 이따위로 대하는 나라에 대한 절망, 그 시대에 대한 분노, 바로 이인성과 대구 편이다. 이인성, 소설가 이인성은 알았는데, 화가 이인성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한국적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그리고 경찰관과의 시비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민중을 지킨다는 경찰이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예술가를, 그것도 자부심이 넘쳐나던 예술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 시대, 그 야만.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테니까. 각 공간은 그냥 물질적 공간으로만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예술가들이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순간 공간은 장소가 된다. 드디어, 공간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장소.

 

그 장소들에서 우리는 예술을 만나고 예술가를 만나고,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2권에서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예술가들을 만날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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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human RED 001
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은진 옮김 / 이마고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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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늘어진 시계들, 선명한 색채에 비해 도무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물들. 무슨 의미로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 힘든 그림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자로 명명한다.

 

초현실주의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달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교과에서 다른 초현실주의자는 몰라도 달리는 꼭 배우게 되니 말이다.

 

여기에 달리는 사탕 츄파춥스를 디자인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림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다방면에, 그가 영화제작에도 참여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이다. (백화점 내부를 디자인 하는 장면이 이 책에 나오는데,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달리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의 오만한 모습도 함께)

 

그런 그가 자서전을 썼다. 그것도 36살에. 아마 우리 나이로 하면 37세가 되겠지만, 그가 80이 넘어 죽었으니 자신의 인생을 반도 살지 않은 상태에서 자서전을 썼다. 이 무슨 오만함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계획했다는 자신감인지. 스스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주장하는 그였으니... 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이 자서전의 끝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들은 보통 일생을 다 산 다음에 말년에 가서 회고록을 쓴다. 모든 사람들과 반대로 가는 나는 회고록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그 내용을 사는 것이 더 지적인 것으로 보였다. 산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인생의 반을 다 청산할 줄 알아야 한다. 경험으로 풍성해진 나머지 절반의 인생을 계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385쪽)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의 삶을 살기를 거부한 사람의 태도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이 점에 대해서 읽으면서 반감을 가질 사람도 많다.

 

보통 사람의 정서에 의하면 달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비난을 받으면 받았지 결코 찬탄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비도덕. 자기중심주의!

 

자기 멋대로 산 사람.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 그런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도 마찬가지고,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달리일 뿐 누구도 될 수 없다. 달리의 삶은 달리가 살아야 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살았음을 느끼게 만드는 자서전이다.

 

달리가 한 온갖 기행들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에 가짜 추억을 만들어낸 일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여인을 어른이 되어 만나게 되어 그와 함께 하는 과정, 미술 학교에서의 일들, 화가로서 겪게 되는 일들을 솔직하게(? - 달리를 잘 믿을 수 없어서, 이 역시 자신의 환상을 섞어서 회고록을 썼을 수도 있다) 쓴 글이다.

 

가끔은 달리 자신이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런 환상이 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보면 달리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거만한 천재의 글이다. 이런 천재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과연 모두가 이런 천재가 되어야 할까 하면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달리는 독특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이제 달리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0이 되기 전에 자신의 회고록을 쓴 달리. 어쩌면 달리는 이 책의 2부 제목처럼 '얼른, 늙어버린' 천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나이에 회고록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간 초현실주의로 유명한 달리, 그의 삶을 그의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을 통해 그의 그림에 다가갈 수도 있으니... 달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한 가지, 물론 원본에는 달리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번역해서 달리를 소개하는 책인데, 중간 중간에 또는 한쪽에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달리의 그림들을 실어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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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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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고 했었다. 공산화가 되고 나서 우리와 교류가 끊겼고, 중국은 적대국이었으며, 명칭도 중국이 아닌 중공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잘 알 수 없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바로 '죽의 장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교류를 하고,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유학 오는 학생도 많고,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도 많다. 중국에 현지 법인을 차린 회사도 많고. 이와 더불어 서로의 나라를 오가는 관광객들도 많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금의 중국이 있게 한 인물들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은 중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한다.

 

한나라때 태사공이라고 불리는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에는 왕조의 역사들만이 아니라 왕조 속에서 살아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 책을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비긴다면 '현대사 중국인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 중에 이 1권에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합병 당했던 시절, 중국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게다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혁명기 시기의 일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한때의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도 많은 손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처음 시작을 '참새 소탕전의 추억'이라고 한다. 참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농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정부에서 참새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중국 전역에서 참새 소탕전을 벌인 이야기.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가능했던 이야기. 그러나 한 해 동안 참새를 소탕했다고 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는 일. 참새를 소탕하자 참새가 먹던 해충들이 천적이 없어져 오히려 농민들을 더 괴롭히게 되는 현상.

 

잘못된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책의 첫장면이다.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참새 소탕전처럼 역사에는 일방적으로 나쁜 쪽은 없다는 것.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을 선악의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들 역시 역사의 한 장면에서는 모두 자신들에게 맞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시작을 이해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정권 다툼에서 몰락해 사라진 인물들도 있지만 이들을 일방적으로 역사에서 제거할 수는 없는 것.

 

참새 소탕전에 이어 나오는 인물이 바로 류사오치라는 마오쩌뚱과 함께 혁명을 이끌고 한때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문화대혁명 때 몰락한 사람이다. 비슷한 길을 걸은 린뱌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뒤를 이어 나오고.

 

이들은 혁명을 함께 했지만 권력은 함께 누리지 못하는 그런 속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역사에서 늘상 되풀이 되고 있었던 일.

 

격동의 와중에는 함께 해도 안정이 된 다음에는 누군가가 떨려나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런 정치사적인 인물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서 역사책 속에 죽어 있는 글자로만 남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방적으로 한 편을 몰아세우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해주려는 듯한 저자의 태도가 어느 한 편에 감정을 몰입하지 않도록 해서 읽기에 좋다.

 

여기에 정치적인 인물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중국을 이끈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나온다. 그들이 격동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치 장강의 흐름처럼 중국이라는 나라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들이 중국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잘 모르고 있었던 수많은 중국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주둔했던 위안스카이(한자어로 읽으면 원세개)의 부인 중에 세 명이 조선인이었다는 사실. 그들의 자손들 중에 잘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다만 아쉬운 점은 '사기 열전' 처럼 분야가 같거나 또는 삶의 행태가 비슷한 인물들끼리 묶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여기에 작은 제목을 하나씩 붙였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2권에는 어떤 인물들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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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1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사두기만 하고 미처 못 읽은 책이네요. 리뷰 읽고 나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inye91 2017-05-15 09:03   좋아요 0 | URL
저는 5권 중에 먼저 1권만 구입해서 읽었는데요, 계속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