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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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즐거움 속에 아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알고 있던 것에 무엇 하나를 더하는 느낌. 그래서 작가나 작품을 좀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단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명작과 관련된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음악, 미술, 문학 분야의 대가들과 그에 얽힌 사랑. 사랑은 우리 인간들이 벗어날 수 없는, 마치 공기와 같은 존재 아니던가.

 

그런 사랑이 대가들도 피해가지 않는다. 사랑에 습격을 당한 대가들, 그들이 겪은 마음의 풍랑이 어떻게 작품과 연결이 되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굳이 알지 않아도 작품을 느끼는데 지장이 없지만, 알고 나면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사랑이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런 사랑으로 어떤 작품이 탄생하는지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세 분야로 나누어 서술되어 있는데, 각 부분의 제목이 참 멋지다.

 

1부는 '선율 따라 사랑은 흐르고'다. 음악가들이 겪었던 사랑에 대해서, 사랑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특히 음악가들은 자신의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사랑과 작품이 잘 대응하고 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음악가 5명이 나오는데 그들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쇤베르크'가 주인공이다.

 

음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 다섯 사람이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떻게 그 사랑이 작품으로 나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처럼 달콤한 독은 없다고 하는데, 독도 잘만 쓰면 약이 된다고, 이들은 이런 사랑이라는 독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2부는 '그대라는 이름을 화폭에 담다'다. 역시 다섯 명의 화가가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벤스, 피카소'

 

사랑이 화가에게 영감을 주고, 사랑이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화가에게는 많다. 특히 자신이사랑했던 사람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들은 사랑을 통해 죽지 않는 삶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독이 영원한 삶을 만들어주었다고나 할까? 특히 이 책에서 피카소는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화풍이 변했다고도 하니 사랑이 예술로 변한 경우라 할 수 있다.

 

3부는 '그대 나의 소설이어라'다. 등장하는 사람은 다섯이지만, 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브론테 자매 셋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브론테 자매 셋, 생텍쥐페리, 헤밍웨이' 이렇게 다섯 명이 등장한다.

 

브론테 자매 중에 샬럿과 에밀리는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앤'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늘 기억에서 사라졌는데... 이 불행한 자매들이 자신들이 겪는 불행을 소설로 승화시켜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오래 산 샬롯이 겨우 40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하니, 에밀리와 앤은 이십 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참으로 불행한 가족사인데, 어쩌면 이들은 이렇게 죽음을 늘 눈 앞에 두고 살았으므로, 더 치열하게 사랑하고 작품을 남겼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어린왕자로 잘 알려진 '생텍쥐페리'의 삶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이 책은 준다. 마냥 순수했을 것 같은 그가 겪은 사랑, 비행사로 겪은 경험이 작품에 잘 나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한 사랑, 그의 아내와의 일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세 분야의 작가들이 겪었던 사랑, 삶을 작품과 연결지어 알려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이 지닌 장점은 작품 곳곳에 그림이나 사진들이 함께 나온다는 것이다.

 

글만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기에 더욱 좋다. 예술가에 대한 책답게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유명한 작가일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겪으며 사랑의 풍랑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풍랑을 내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여하튼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이 내는 풍랑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겪은 사랑과 작품을 보면서 내 사랑, 삶을 생각하게도 하니 그것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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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루
김선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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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운명이다. 남북이 갈라져 있어서 그 비극을 온몸으로, 아니 온 가족이 겪어야 했다. 가장이 탄압을 받으면 어려움은 가장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어려움은 온 가족으로 번져 나간다.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당시에 남자는 가장으로서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구속이 되면 아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러 노동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된다. 가족의 생활이 아니라 생계가 문제가 된다.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지금은 이런 '가장'이라는 말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구속이 되면 다른 가족들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엄혹했던 시절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이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구속이 되면 가정은 파탄나고 만다. 이웃에게서 멀어지고 알던 사람들도 떨어져 나가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고, 심지어는 아내나 자식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

 

완전히 파탄난 가정, 그럼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 정도 민주화 된 것,, 남북관계가 평화 관계로 가고 있는 것은 그들의 그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 문제가 잘 풀려가다가 탁 장애물에 부딪혔다. 예전 같으면 그 장애물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다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런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장애물을 남북이 힘을 합쳐 넘을 수 있다는 생각. 분단된 지가 7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수많은 협상을 했는데, 통일을 위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고 희생도 했는데, 잘 나가던 길에 툭 떨어진 장애물, 이 장애물이 통일로, 평화로 가는 길을 이제는 막지 못하리란 생각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일의 길, 평화의 길을 힘들게 닦아놓았는데, 그들이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에 걸렸었는데, 그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치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그런 노력들이 배신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통일의 길, 평화의 길을 닦은 사람 중에 한 사람, 김낙중이 있다.

 

김낙중에 대해서는 '굽이치는 임진강'으로 먼저 알았다. 그 다음에 신문에 난 기사에 '간첩'으로, 그것도 무려 30여 년이 넘게 국내에서 학원가에 침투해 암약한 간첩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고, '굽이치는 임진강'을 바탕으로 최두석 시인이 쓴 '임진강'이라는 시를 읽었다.

 

이 정도면 김낙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김낙중의 딸이 쓴 '탐루'라는 책을 읽으니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다.

 

딸이 본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위인전기를 읽으면 마냥 존경스러운 그런 행동들과 말들이 나오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한 가족사를 쓰고 있기에, 주인공이 꼭 김낙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주인공은 두 명이라고 해야 한다. 김낙중과 부인인 김남기.

 

어쩌면 딸이 쓴 이 책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부인인 '김남기'일지도 모른다.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남편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초들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지내온 그의 삶 자체가 바로 통일, 평화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웅적인 모습으로만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딸이 썼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겪었던 갈등, 어려움 등을 어머니의 일기를 토대로, 또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기록하고 있기에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6.25전쟁을 상반되게 겪은 사람, 김낙중은 평화주의자가 되는 계기가 6.25였다면, 김남기는 6.25를 통해 반공 사상을 지니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고 결혼하고 어려움을 겪어나가는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소위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이.

 

소위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 구도자처럼 평생을 살아온 김낙중, 그리고 그런 남편으로 인해 현대사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은 김남기.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들의 삶이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통일과 평화로 가기 위한 길이 얼마나 험난했었는지를 이 책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들이 걸었던 길이 조금은 넓어지고 평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꽃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이 걸어야 할 길은 아직도 험한 '돌길'이다. 가끔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진다고 거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김낙중처럼 이런 돌길, 가시밭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자국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한두 번 넘어졌다고, 또 자꾸 넘어진다고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꾸 자꾸 걸어가야 한다. 루쉰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미 남북 분단의 길을 통일, 평화의 길로 만들려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것이다. 그러니 가끔 발에 걸리는 돌부리들은 치우며 가면 된다.

 

김낙중은 커다란 돌부리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4차례나 간첩혐의로 잡혀들어갔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그 길을 가려한다. 그렇게 한 사람들, 그들을 따라 더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평화, 통일의 길은 평탄해지고 넓어진다.

 

분단된 나라에서 평화, 통일의 길을 가려던 사람, 그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 김낙중, 그리고 그런 그와 함께 평생을 울고 웃으며 함께 한 김남기, 그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본다. 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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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0 1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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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얼음 -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
송두율 지음 / 후마니타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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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걸어서 남북 경계선을 넘는 장면. 그리고 그와 손을 잡고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북쪽으로 경계를 넘어갔다 돌아오는 장면.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남북 경계를 스스럼없이 넘는 모습.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제 남북은 영원히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그 선언. 일제가 강제 병합함으로써 남북이 갈렸다면, 전쟁으로, 또 수많은 총격전으로 심리적인 분단까지 있었는데, 그래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전전긍긍하던 생활이었는데, 두 정상이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하겠다는 의지까지 표명을 했으니.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게 될 그 회담을 보면서, 경계선을 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남북 평화, 남북 통일을 위해서 남과 북을 오갔던 사람들. 그래서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넘었던 그 경계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을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중 한 사람, 송두율이었다. 그가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 독일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으로 그를 구속, 재판까지 한 우리나라. 그것도 인권변호사 출신 고 노무현 전대통령 때였으니, 충격이 더했다.

 

그가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까지, 우리나라의 민낯을 전세계에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87민주화운동이 얼마나 형식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그야말로 형식적 민주주의만 이루었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송두율 귀국 사건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은 평화체제로 돌아서고, 남북이 자유로운 왕래를 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럴 때 송두율에 대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북한에 갔다는 것이 구속 사유가 되었고, 재판에서도 그 점은 유죄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독일 국적을 지닌 학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이 죄가 된다면 우리나라에 도대체 어떤 학자들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을 방문한 학자들은 모두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없단 말인가? 아니다. 송두율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가 지닌 국적과 상관없이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다녔고 독일로 유학가서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다.

 

독일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 오지 않고 북한을 방문했고, 또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해외에서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사상이 좌익이고, 친북이고, 반체제 세력인 것이다. 이런 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단다. 독일인 송두율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송두율이 돌아온단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거창하게 환영한단다. 이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수구세력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 수구세력을 누를 힘이 없었다.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보라. 우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유령이 우리 곁에 늘 상존하고 있고, 그래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국가보안법이라는 필터를 거치게 된다.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송두율 역시 마찬가지다. 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송두율이 싸울 수밖에... 재판을 통해, 또는 다른 길을 통해.

 

이런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책이니 말이다. 그가 태어나서 유학을 가고,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과정, 북한을 왜 방문했는지, 우리나라에 와서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최근까지 세계 상황과 관련지어 쓴 글이다.

 

이 책의 첫구절이 송두율 삶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첫제목과 시작은 이렇다.

 

기억 속에 없는 어머니

 

(전략) 우리 삶의 시작이자 많은 추억의 큰 원천은 무엇보다 '어머니'일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대한 추억이 없다. 내가 두 살 반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기억의 편린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기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꿈을 한 번도 꾸어본 적이 없다.  (19쪽)

 

그렇다. 그에게 친어머니는 너무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37년 동안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것도 오자마자 감옥에 가듯이 어머니에 해당하는 조국은 그에게 없는 존재다.

 

조국이 기억 속에 있더라도 독재로 점철된 반민주적인 나라로만 기억될 뿐이다. 애틋한 기억을 유발하는 어머니가 그의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조국인 우리나라도 그에게는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책에는 그의 새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새어머니 품에서 그는 자란다. 새어머니가 그가 성장하는 동안 그를 보살펴 주었듯이 독일은 이제 그의 새어머니가 된다. 그가 자라고 제 꿈을 펼치도록 해주는 장소, 그곳은 독일이다.

 

이렇듯 가정사와 그가 살아온 삶이 연결이 된다. 이런 삶을 사는 그에게 조국이 처한 현실은 답답했을 것이다. 이런 답답함이 조국이 민주화 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하게 했을 것이다. 분단되어 있는 조국에 다른 쪽인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테고.

 

남북한이 통일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해 그는 여러 활동을 한다. 그게 비록 자신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을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했으므로.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행동이었으므로.

 

그리고 37년만의 귀향. 구속, 감옥, 집행유예를 거쳐 다시 독일로. 그에게 이미 친어머니는 없는 존재다. 조국은 없다. 그는 독일사람이다. 그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쪽이냐 저 쪽이냐는 이분법 논리를 벗어나 그는 이 쪽도 저 쪽도 다 아우르는 '화쟁'의 '경계인'이 되려고 한다.

 

내가 먼저 경계인이 됨으로써 다른 경계인들을 부를 수 있다고, 그래서'경계인들'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라고. 이렇게 새로운 경계인들, 바로 그들은 '불타은 얼음'이라고.

 

'계몽과 해방'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양쪽을 다 아우르는 '경계인들' 송두율은 이제 그를 꿈꾸고 있다. 그들과 함께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 '경계인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진영논리를 강요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이젠 그런 진영논리가 먹혀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진영논리가 얼마나 폐해를 지니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조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기 위해 활동한 것을 빌미로 그를 탄압하는 모습, 역시 진영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만 강요하는, 그래서 경계인들은 억압받고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모습. 수많은 경계인들이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들 덕에 이렇게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경계를 넘을 수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송두율을 얽어매었던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남북이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돌아서는 이 시점에 구체제 망령인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또다시 '판문점 선언'은 선언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족속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휘두를 수 있는 칼을 이 참에 아예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제2, 제3의 송두율이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분단의 비극을, 그 비극 속에서 비극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평화체제에 생각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경계인 송두율, 그의 삶이 우리에게 '불타는 얼음'이 되었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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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flow 2018-05-03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북 정상이 분단 경계를 손쉽게 넘나드는 걸 보며 저게 뭐라고 이렇게 멀리 싸우며 살았나 생각했습니다.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8-05-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서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가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북을 가르고 있던 그 선 정말 별것 아니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으니까요.

2018-05-0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랭보의 마지막 날 (문고본) 마음산 문고
이자벨 랭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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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튀르 랭보. 그는 내게 글자의 색을 알아보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어쩌다 음운에 색깔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을 들었고, 랭보의 '모음'이라는 시에서 각 모음에 색깔을 그가 입혔음을 발견했다.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가 일찍 죽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는 나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상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시도 그렇지만 행동도 기이한, 일찍 죽은 점에서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책이 나와서 읽게 되었다. 암으로 다리를 절단하고, 그 암이 온몸으로 퍼져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는 사실을.

 

죽음의 순간, 사람들은 솔직해진다고 한다. 천재로 알려진 작가가 마지막에 보이는 솔직한 모습에 대한 궁금증도 이 책을 읽게 하는 데 한몫했다.

 

동생 이자벨 랭보가 쓴 책인데... 이자벨 랭보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와 랭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랭보가 죽기 전에 했던 마지막 여행에 대한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랭보를 간호하는 이자벨. 이자벨이 본 랭보. 랭보가 이자벨에게 했다는 말이 마음을 울린다.

 

"난 땅속으로 갈 테고, 넌 태양 속을 걷겠지." (50쪽)

 

너무도 젊은 나이에 유명한 시인이 되고, 곧 시를 포기하고 - 그는 프랑스에서 문학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았지만 청춘기의 작품을 계속 이어가지 않은 걸 흡족해 했다. 왜냐하면 "졸작이었으니까."(98쪽), 병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고, 온몸에 퍼진 암 때문에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 세상을 뜬다.

 

그가 살았을 때 낸 시집이 별로 많지 않고 젊은 시절에 쓴 작품 이외에는 별다른 작품도 없다. 우리나라 이상이나 나도향, 김유정 등이 20대에 삶을 마감한 것에 비하면 조금 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작품 활동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도 조숙한 천재였던가. 그러므로 세상과 화합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기저기 방랑생활을 했다는데, 나중에는 무기 판매상까지 했다니, 그런 삶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가 세상에 정착하기는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랭보의 마지막 여행'은 그가 치료를 받으러 로슈에서 마르세유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이다.

 

통증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랭보가 어찌어찌 마르세유로 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랭보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사람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기차를 타고 통증과 함께 하는 여행.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동생 이자벨의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는 글이다.

 

어쩌면 랭보의 삶은 그 자신의 시집 제목처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일지도 모른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바로 지옥 자체였을 터이니. 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삶은 지옥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때문에 여기저기 방랑생활을 했을 테고.

 

랭보에 관심이 있는 사람, 랭보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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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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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애인이 쓴 책을 읽으면 우선 드는 생각이 바로 '대단하다'이다. '대단하다' 이 말 속에는 그렇게 하지 못할텐데, 또는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에는 다름을 대하는 태도가 작동한다고 한다.

 

신체장애, 지적장애. 다른 사람인데, 이들은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사회적인 부담이라는 생각을 지니는 사람이 더 많고, 태어나서 자라면서 장애인 자신들도 이런 생각을 지니게 하는 환경 속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릴린 루소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장애인들을 가엾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만큼이나 장애인 스스로도 자신들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

 

이만큼 다름은 삶을 살아가는데 상당한 차별로 작동을 한다. 그런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을 언론이 다뤄주는 이유도 장애인들이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같지만 겉돌고 있음을 언론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에 대수란 말인가?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면 대단한 일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를 한다.

 

이런 보도를 자연스레 접하면서 생활하는 우리들 역시 은연 중에 장애인은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사람으로 인식을 하게 된다. 우리만이 아니라 장애인들조차도.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닉 부이치지'나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책을 보면 그들이 너무도 자연스레 성공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외모를 거울을 보면서 진저리친다든지, 다른 장애인을 만나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싫다든지, 이것은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인을 볼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해릴린 루소는 말해주고 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불만을 표하듯이 장애인들도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장애인으로 인식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기까지는 꽤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

 

우리에게 장애인으로서 성공한 대명사로 통하는 헬렌 켈러도 역시 수많은 갈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갔을텐데, 우리는 그런 내적 고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외부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장애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해릴린 루소의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실례로 우리나라 학교만 해도 그렇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교육받기를 거부하는 부모들도 있고, 장애인 학교가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는 형편이니, 그들과 함께 하는 삶, 그들을 편견없이, 아니 장애인이라고 명확히 인식하고 생활하는 일은 아직도 힘들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배려하라는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애인임을 부정하라는 것도 아니다. 장애를 인정하되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감정,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감정이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장애인이냐 장애인이 아니냐는 구분은 필요없어져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릴린 루소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다. 그런 자신을 똑바로 보는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고.

 

그렇지만 그는 안다. 장애를 부정한다고 장애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장애로 인해 남들의 도움만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그냥 다른 생활을 할 뿐. 생할에서 다를 뿐이지만 느끼는 감정, 욕구들은 같다고... 세상에서 여성, 장애인으로서 차별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것들을 차별이 아닌 그냥 다름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내보이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 해릴린 루소를 '대단하다'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하지 못한 우리들을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비꼬는 의미에서. 그러니, 이런 비꼼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더 낮은 곳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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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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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1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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