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오규원의 시 '비가 와도 젖은 자는'이다. 궂은 날이라지만 그 비로 인해 다음을 희망으로 만난다. 무엇에든 온전히 젖은 이는 더이상 젖지 않고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다.
오규원(1941~2007) 시인을 2월 한달 네편의 시로 만났다. 처음 만나 오랫동안 기억될 시인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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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1'
복수초로 시작된 새 봄의 꽃앓이가 첫번째 절정에 이르른 때에 만나는 꽃이다. 봄볕이 그러하듯 화사하기 그지없이 피는 꽃이기에 가히 봄바람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꽃을 보고자하는 이들을 먼 길 나서게하는 꽃이다.


하얀 꽃받침이 떠받치고 있는 꽃자루 안에는 가운데 암술과 연녹색을 띤 노란색 꽃이 있다. 이 오묘한 조화가 꽃의 존재 자체를 더 돋보이게 한다.


바람꽃은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자라는 들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으로 변산 이외에도 불갑산, 무등산, 함평, 여수, 순천, 남해안 바닷가와 한라산에도 자라고 있다.


바람꽃과 분류체계가 다르면서도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종류로는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만주바람꽃, 매화바람꽃 등이 있지만 종류가 다르다. 모두 꽃쟁이들의 마음에 꽃바람들게 하는 꽃들이다.


긴겨울 꽃을 기다리게했던 탓일까 '덧없는 사랑',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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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소록養花小錄
-강희안 저, 이종묵 역, 아카넷

뒤숭숭한 시절이다. 책장에서 한권의 책을 빼들었다. 옛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골라 들여온 책들이 제법 많다. 읽었던 책 다시 읽기는 쉽지 않은데 이번엔 선듯 손이 간다.

"은일隱逸의 국화와 품격 높은 매화. 그리고 저 난초와 서향화 마땅히 군자가 벗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네"

꽃과 나무를 단순한 볼거리로만 삼지 않고 마음을 수양하는 자료로 삼았던 고려ㆍ조선의 문인들의 시와 문장에 주목한 역자의 시선에 매료 된다. 옛사람들의 원예기술에서부티 꽃과 나무, 이를 담은 화분이 간직한 한 시대의 문화사로 읽는다.

볕이 좋은 이른 봄날, 다른 꽃놀이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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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동백나무
남해 쪽 섬 어딘가에 흰동백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사진을 통해 봤다. 붉디붉은 동백나무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꽃이라 한번은 직접 눈맞춤하고 싶었다.


완도 난대림수목원에 동백림이 조성되어 있다. 수십종의 다양한 동백들이 꽃을 피워 반기는 곳에서 흰동백나무를 만났다. 겨우 한두송이 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꽃의 매력에 사로잡히기엔 충분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동백나무는 별도로 흰동백나무가 등재되어 있으니 분명 다른 종인 것이고, 변종이 많은 애기동백 종류와도 다른 것이다.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라는 동백의 꽃말과는 달리 흰동백은 '비밀스러운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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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說화설
시험 삼아 높은 언덕에 올라 저 서울 장안의 봄빛을 바라보노라면 무성하고, 아름답고, 훌륭하며, 곱기도 하다. 흰 것이 있고, 붉은 것이 있고, 자주색이 있고, 희고도 붉은 것이 있고, 노란 것이 있으며, 푸른 것도 있다. 나는 알겠노라. 푸른 것은 그것이 버드나무인 줄 알겠고, 노란 것은 그것이 산수유꽃, 구라화인 줄 알겠고, 흰 것은 그것이 매화꽃, 배꽃, 오얏꽃, 능금꽃, 벚꽃, 귀룽화, 복사꽃 중 벽도화인 줄 알겠다. 붉은 것은 그것이 진달래꽃, 철쭉꽃, 홍백합꽃, 홍도화인 줄 알겠고, 희고도 붉거나 붉고도 흰 것은 그것이 살구꽃, 앵두꽃, 복사꽃, 사과꽃인 줄 알겠으며, 자줏빛은 그것이 오직 정향화인 줄 알겠다. 

서울 장안의 꽃은 여기에서 벗어남이 없으며, 이 밖의 벗어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볼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때에 따라 같지 않고 장소에 따라 같지 않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꽇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 밖으로 뻗어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없고, 수풀 속의 꽃은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이런 가지각색 그것이 꽃의 큰 구경거리이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이옥(李鈺, 1760~1815)의 글 화설(花說)의 일부다. 이옥의 글쓰기 책을 읽다가 이 글이 생각나 찾아보며 옮겨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원으로 달려가 꽃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종일토록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꽃만 바라보았던 김덕형, 남의 집에 값진 꽃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금을 주고라도 반드시 구해왔다는 유박, 저 매화에 물을 주거라는 유언을 남긴 이황, 달빛이 어린 밤 국화를 벗 삼아 술잔을 나눴다는 사람까지 꽃을 보고 즐기는 이들은 무수히 많았다.

긴 겨울이 지나고 바야흐로 꽃 시즌이 시작되었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꽃을 찾는 발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부산스럽다.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꽃 탐방길에 나서는 이들의 마음, 내마음과 다르지 않다.

지심도 동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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