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說화설
시험 삼아 높은 언덕에 올라 저 서울 장안의 봄빛을 바라보노라면 무성하고, 아름답고, 훌륭하며, 곱기도 하다. 흰 것이 있고, 붉은 것이 있고, 자주색이 있고, 희고도 붉은 것이 있고, 노란 것이 있으며, 푸른 것도 있다. 나는 알겠노라. 푸른 것은 그것이 버드나무인 줄 알겠고, 노란 것은 그것이 산수유꽃, 구라화인 줄 알겠고, 흰 것은 그것이 매화꽃, 배꽃, 오얏꽃, 능금꽃, 벚꽃, 귀룽화, 복사꽃 중 벽도화인 줄 알겠다. 붉은 것은 그것이 진달래꽃, 철쭉꽃, 홍백합꽃, 홍도화인 줄 알겠고, 희고도 붉거나 붉고도 흰 것은 그것이 살구꽃, 앵두꽃, 복사꽃, 사과꽃인 줄 알겠으며, 자줏빛은 그것이 오직 정향화인 줄 알겠다. 

서울 장안의 꽃은 여기에서 벗어남이 없으며, 이 밖의 벗어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볼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때에 따라 같지 않고 장소에 따라 같지 않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꽇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 밖으로 뻗어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없고, 수풀 속의 꽃은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이런 가지각색 그것이 꽃의 큰 구경거리이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이옥(李鈺, 1760~1815)의 글 화설(花說)의 일부다. 이옥의 글쓰기 책을 읽다가 이 글이 생각나 찾아보며 옮겨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원으로 달려가 꽃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종일토록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꽃만 바라보았던 김덕형, 남의 집에 값진 꽃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금을 주고라도 반드시 구해왔다는 유박, 저 매화에 물을 주거라는 유언을 남긴 이황, 달빛이 어린 밤 국화를 벗 삼아 술잔을 나눴다는 사람까지 꽃을 보고 즐기는 이들은 무수히 많았다.

긴 겨울이 지나고 바야흐로 꽃 시즌이 시작되었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꽃을 찾는 발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부산스럽다.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꽃 탐방길에 나서는 이들의 마음, 내마음과 다르지 않다.

지심도 동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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