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다. 이곳 볕은 바늘끝 같은데 산 너머에서는 물난리로 암울함을 전한다. 장마가 잘라가버린 여름이 이내 끝나버릴 수도 있겠다는 성급한 생각이 든다.

노랗게 물들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껏 부풀어 올랐다. 결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지만 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던 꽃보다 이 열매를 더 기다렸다. 땡볕에 온실 효과일지도 모를 공간에서 여물어갈 내일을 향한 꿈에 기대를 거는 까닭이다.

8월, 한낯 열기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반가우면서도 주춤거리는 사이 거침없이 파고들어 오는 열기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땡볕도 제 기세를 주체하지 못하는듯 비틀거린다. 이렇게 날뛰는 것은 갈 때가 얼마 남지않은 몸부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까닭이다.

염덕炎德이라며 세상을 보듬었던 조상들의 마음자리는 책 속에서만 머물고, 산 너머 비 소식은 안타까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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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꿩의다리'
키 큰 풀이나 나무들 잎으로 가려진 여름 숲의 반그늘이나 햇볕이 잘 드는 풀숲에서 키를 훌쩍 키워 스스로를 돋보이게 한다. 이른바 꿩들의 잔치가 벌어지는 여름숲의 특별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가느다란 꽃잎이 작은 꽃받침 위로 우산처럼 펼쳐지며 핀다. 하얀색이 기본이라지만 환경에 따라 붉은빛을 띄기도 한다. 꿩의다리는 줄기가 마치 꿩의 다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꿩의다리, 큰잎산꿩의다리, 금꿩의다리, 참꿩의다리, 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등 많은 종류가 있다. 꽃의 색이나 꽃술의 모양, 잎의 모양으로 구분한다지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식물을 대하다 보면 작은 차이를 크게 보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좁혀 보고 깊게 봐야 알 수 있는 세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꽃을 보며 사람사는 모습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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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놀빛 물 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빈손을 드는 마음으로
부신 햇빛을 가리고 싶습니다만
저 나무처럼은
마른 채로 섰을 수가 없습니다

아,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을 따름,
무엇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박재삼의 시 '나는 아직도'다. 무엇이 될 수는 없다는 체념보다 무엇이든 자꾸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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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뒤끝이 깊고 무겁다. 고온에 습기를 더하니 숨 쉴기 틈이 비좁다. 어디라도 볕 들 구멍은 있다던가. 그나마 더디게 산을 넘어와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한줌 바람이 반갑다.

사각거리는 댓잎소리를 반기는 마음보다 틈을 노리는 모기를 쫒는 손짓이 분주하다. 어둠의 깊이 만큼이나 무거운 습도가 지배하는 곳, 때를 놓치지 않고 세상 구경 나온 생명들의 신비를 만나는 시간은 빠르게만 흐른다.

돌아다 본 길이 낯설다. 정작 속에 들어있을 때는 알지 못하다가 틀을 벗어나 보니 안의 시간이 아쉽다. 그 아쉬움으로 지나온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다가올 시간을 목마름으로 기다린다.
하여, 늘 '지금, 이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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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저절로 피고 지는 것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견디면서 이겨나가야 비로소 때를 만나 꽃을 피울 수 있다.

잎 위로 꽃 잎 하나를 떨구는 일이 어디 저절로 이뤄지는가. 보내고 나니 비로소 남는 것으로 다음을 예약한다. 품어야 할 무엇을 안고 있는 일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맞서는 일 일지도 모른다.

여름이 여름같지 않아도 꽃은 피고 열매까지 맺었다. 다소 싱거운 여름을 탓하기에는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 지나온 아쉬움 보다 앞으로 펼쳐질 기대감에 주목 한다. 연밥이 연실을 여물게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기다림이란 지극한 그리움을 가슴 속 가득 쌓아두는 일이다. 하여, 이 또한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아프고 시리며 두렵고 외로운 이 긴 수고로움이 가득차면 은근한 맛을 품은 열매로 익으리라.

비가 여름날의 중간을 싹둑 잘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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