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벚꽃나무

잎새도 없이 꽃피운 것이 죄라고

봄비는 그리도 차게 내렸는데

​바람에 흔들리고

허튼 기침소리로 자지러지더니

하얗게 꽃잎 다 떨구고 서서

​흥건히 젖은 몸 아프다 할 새 없이

연둣빛 여린 잎새 무성히도 꺼내드네

*목필균 시인의 시 "벚꽃나무"다. 봄을 건너는 나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이른 시기에 꽃을 피우는 나무는 보통 잎 보다 꽃이 먼저다. 흥건히 봄비 내리는 오늘 딱 그 풍경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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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風 춘풍

春風空蕩漾 춘풍공탕양

明月已黃昏 명월이황혼

亦知君不來 역지군불래

猶自惜掩門 유자석엄문

봄바람은 괜스레 살랑살랑 불어오고

달이 밝으니 이미 황혼이구나

오지 않을 그대인 줄 잘도 알면서

그래도 문을 차마 닫지 못하네

*조선사람 복아(福娥)의 시다. 황윤석의 '이재란고'에 복아의 어머니가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의 후손이라는 사연과 함께 실려 있다고 한다.

살랑거리는 것은 바람만이 아니다. 봄볕의 아지랑이도, 흐드러진 벚꽂도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도 살랑거려야 봄이다. 싱숭생숭한 마음 피할 이유가 없다.

마음이 밑도 끝도 없이 살랑거리는 것은 그리운 사람이 더 보고 싶어진 까닭이다. 기다리는 줄을 알면서도 오지 않은 이나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이나 서로 못할 짓이다. 무심하게 달은 뜨니 심사는 더 복잡하다. 차마 닫지 못하는 대문은 또 무슨 죄인가.

봄바람에 한껏 젖혔던 꽃잎을 닫았다. 허망한 마음 단속이라도 할 요량이지만 날 밝으며 대문을 열어두듯 꽃잎도 활짝 열어 젖힐 것이다. 봄 석달 열흘 내내 쉬지 않고 반복하는 일이다.

모든 게 봄바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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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 그로부터 75년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니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다시, 이산하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 서문을 읽으며 바다 건너 제주의 그날을 새긴다. 통째로 떨구어 지고난 후가 더 아름다운 동백이다. 늘 새롭고 나날이 새로워져야 할 4ㆍ3의 의미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으니 기꺼이 꺼내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떨어진 동백은 땅 위에서 더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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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괴불나무
몇해를 두고 볼 수 있기를 바라던 나무다. 남쪽에 사는 내가 북쪽에 있는 나무를 만나기에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제법 커 보였다. 하지만 마음에 품은 것은 그때가 언제가 되었던 오게 마련인 모양이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숲에 잎이 나오기도 전에 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절정을 드러낸다. 아무 데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독특한 꽃으로 만나고 나면 반드시 기억되는 나무다.

꽃 만큼 붉은 열매도 한몫한다. 푸르름이 한창인 여름에 싱싱한 잎사귀 사이의 곳곳에서 콩알만 한 크기의 열매가 쌍으로 마주보며 열린다.

이른 봄에 노란빛이 도는 흰색의 꽃이 피는 남쪽의 길마가지나무와 더불어 꽃 색깔의 대비로 주목받는 나무이기도 하다. 먼 길 나들이에서 몇해 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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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花 매화

姑射冰膚雪作衣 고야빙부설작의

香脣曉露吸珠璣 향순효로흡주기

應嫌俗蘂春紅染 응혐속예춘홍염

欲向瑤臺駕鶴飛 욕향요대가학비

고야의 얼음 같은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기로운 입술로 구슬 같은 새벽이슬 마시네.

응당 속된 꽃들 봄에 붉게 물드는 것 싫어하여

요대를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는 게지.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두번째로 등장하는 이인로의 시 '매화'다.

매화梅花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라는 그림이다. 그림은 강 건너 멀리 보이는 높은 언덕에 소담스러운 매화가 피어 있다. 건 듯 부는 봄바람에 실려 온 향기가 강가에 이르러 뱃전에 부딪친다. 이미 술잔을 기울인 노인은 비스듬히 누워 매화를 바라본다. 매화와 배를 이어주는 것은 텅 빈 공간이다. 그 공간이 주는 넉넉함이 매화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 속 여유로움과 닮은 듯싶다.

매화야 옛부터 사람들이 워낙 좋아해서 마음으로 담아 시나 그림으로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만큼 매화는 특별한 존재였다.

증단백의 청우淸友, 임포의 매처학자梅妻鶴子나 암향부동暗香浮動, 소식의 빙혼옥골氷魂玉骨이나 아치고절雅致高節, 안민영의 황혼원黃昏月, 이황의 매형梅兄 등 모두가 매화를 가르키는 말이다.

옛사람에게만 그럴까. 오늘날에도 매화를 찾아 길을 떠나는 이들은 많다. 해가 바뀌는 1월이면 어김없이 섬진강가 소학정을 찾는다.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꽃을 피운다. 그 매화 향기를 맡고자 탐매의 길을 나서는 것이다. 혼자여도 좋지만 멀리 있는 벗과 만나 꽃그늘 이래 들어 정을 나눈다.

금둔사 납월홍매, 통도사 자장매, 화엄사 흑매, 단속사지 정당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전남대 대명매 등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매화를 보러 탐매길에 나선다. 나귀나 말에서 타고 자동차나 기차로 이동수단만 달라졌을 뿐 매화를 보러 나선 사람들의 마음자리는 같을 것이다.

서둘러 봄을 불러오던 매화는 이미 봄바람에 밀려 지고 있다.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보며 이른 봄 섬진강가에서 함께 매화를 보았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매화처럼 곱고 깊은 향기로 기억되는 탐매의 추억이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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