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붓꽃'

꼭 집어 대상을 선정하고 때맞춰 일부러 찾아간다. 그곳에 가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노루귀, 변산바람꽃, 깽깽이풀, 노각나무, 함박꽃나무 등 그렇게 찾아가는 몇가지 식물 중 하나다.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비슷한 금붓꽃과는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곱고 더 순해서 한결 친근함을 불러오는 꽃이 이 노랑붓꽃이다.

노랑붓꽃은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남부지방에 자생지가 있으나, 자생지 및 개체수가 극히 드물어 보기 쉽지 않은 꽃이다. 비슷힌 금붓꽃과 차이는 잎이 보다 크고 넓고, 한 꽃대에 꽃이 1~2개씩 달리는 것이 다르다.

작은 차이지만 느낌은 사뭇 달리 다가온다. 글로 설명하기 전에 느낌이 다른 것으로 식물의 종류를 구분하는 묘한 재미를 노랑붓꽃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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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부질없는 세상 못내 가련하여라

庭際有櫻桃花盛開 정제유앵도화성개

未三日還落有感 미삼일환락유감

花事無三日 화사무삼일

人生少白年 인생소백년

盛衰同一理 성쇠동일리

浮世更堪憐 부세경감련

정원에 활짝 핀 앵두꽃이

사흘 만에 졌기에 감회가 있어

꽃 소식은 사흘도 가지 못하고

인생사는 백 년도 되지 못하는구나

성쇠의 이치는 다 같은 법

부질없는 세상 못내 가련하여라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 번째로 등장하는 이수광(1563~1628)의 시 '庭際有櫻桃花盛開 未三日還落有感'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어서일까. 무수히 많은 꽃을 피우고 꽃 만큼 열매도 많이 열린다. 익어 떨어질 때까지 미쳐 다 따먹지 못할 정도다. 이수광은 이런 앵두나무에서 주목한 것이 짧은 개화 기간으로 꽃이 지는 감회를 읊었다.

우선, 앵두하면 "앵두나무 우물가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떠올린다. 지금이야 우물도 없으니 우물가를 서성이는 동네 처녀도 찾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앵두나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앵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세종과 문종 사이에 앵두와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효성이 지극한 문종이 앵두를 좋아한 세종을 위해 앵두나무를 심어 앵두가 익으면 따다 바쳤다. 그후 궁궐에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처음으로 심었던 나무들 중 하나가 앵두나무다. 다른 나무에 비해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두어해 눈과 입을 즐겁게 하더니 그 다음해에 죽어버렸다. 지금은 새로 심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앵두나무를 심은 이유는 앵두 익을 무렵 누군가 찾아오면 나눠 먹어도 좋을 것인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맞춰 찾는 이가 있다면 앵두나무로 이끌어 붉디붉은 앵두를 한 움큼 따서 입안에 넣고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곤 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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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를 기다려서야 볼 수 있다. 그것도 멀리 있기에 본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 해에는 때를 맞추지 못해 볼 수 없었다. 올해는 이제 막 피어나는 몇 개체를 두 곳에서 만났다.

바람꽃 종류인데 꽃대가 하나라서 홀아비바람꽃이라고 했단다. 홀애비바람꽃, 호래비바람꽃, 좀바람꽃, 홀바람꽃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조선은련화라는 이름도 있다.

남쪽에 피는 남바람꽃과 비슷한 모습이다. 다만, 꽃잎 뒤에 붉은색이 없어 더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다.

꽃은 북쪽에 멀리 있고 나는 남쪽에 사는 게으른 사람이라 이곳에 없는 꽃을 보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아직도 눈맞춤을 기다리는 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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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1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요기합니다.
 

得有汝幸矣 득유여행의

너를 얻을 수 있어 큰 행운이도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강진 유배시절이 만난 제자 황상(黃裳, 1788~1863)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 문하에 들기를 주저하는 황상에게 다산은 삼근계三勤戒를 써주며 배움을 격려했다. 어느 날 제자 황상이 보내온 시 한편을 읽고서 다음과 같이 그 소회를 밝혔다.

“부쳐온 시는 약간 기세가 꺽이는 듯하지만 기발하고 힘이 있는 것이 내 기호에 꼭 맞는구나(頓座奇崛). 기쁨을 형언할 수가 없구나.” “아에 너에게 축하하는 말을 전하며 나 스스로에게도 축하하고 싶구나. 제자 중에 너를 얻을 수 있어 행운이도다.”

제자가 스승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리라.

이런 관계가 어찌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만 해당하겠는가. 벗과 벗, 자식과 부모, 연인. 부부ᆢ.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이를 표현하는 최고의 말이라 여겨진다.

등치 큰 박새 아래 보일듯 말듯 자리를 잡은 천마괭이눈이다. 위세에 눌려 빛을 잃을만도 한데 오롯이 제 빛과 모양을 유지하며 스스로 존재한다. 격에 맞지 않다고 내칠법도 한데 자신의 그늘에 넉넉히 품었다.

물이 위에서 흐르듯 인정도 다르지 않다지만, 무엇이든 일방통행은 없다. 귀하게 대하면 귀하게 대접 받는다. 내 주변을 둘러볼 기회로 삼는다.

得有汝幸矣 득유여행의

너를 얻을 수 있어 큰 행운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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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초록을 더해가는 숲은 봄에서 여름으로 탈바꿈하느라 쉴틈이 없다. 뭇생명들을 품고 기르기 위해 숲은 짙어지고 깊어진다. 풀은 땅을 덮고 나뭇잎은 하늘을 가린다. 닫힌듯 열린 숲은 숨 쉴 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때를 보내고 있다.

온기를 담은 품으로 생명을 기르는 일이 숲만의 고유 영역은 아니다. 사람도 사람들의 숲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고유한 빛과 향기로 채워간다. 사람의 숲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거울로 삼고 제 길을 간다.

온기와 그늘로 생명을 품어주던 숲도 눈보라와 비바람으로 그 생명을 내치듯, 언제나 내 편으로 든든한 언덕일 것만 같던 사람들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느라 너무도 쉽게 손바닥을 뒤집는 것이 사람의 숲이다. 이렇게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에서 풀과 나무의 숲이나 사람 숲은 서로 다르지 않다.

떨어진 노린재나무 꽃잎에게 제 품을 내어주었다. 생의 마지막이 이토록 편안하다면 다음 생을 꿈꾸어도 좋지 않을까.

스승의날이다. 풀 한포기, 새싹 하나, 떨어진 꽃잎ᆢ. 돌아보면 세상 만물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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