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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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작가의 작품은 첫 장부터 호기심으로 함께하는 동안 내내 깊은 공감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의 경우는 읽어가는 동안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야기의 흐름 파악에도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런 작품을 만나게 되면 일단 읽던 책장을 덮고 한순 돌릴 수밖에 없다. 호흡을 더 느리게 가져가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절차를 가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을]은 그렇게 낯설게 다가왔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작가 박솔뫼의 [을]은 제목에서부터 알지 못하는 벽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단지 ‘젊은 작가의 새로운 시도라 그럴 것이다’라는 위안을 삼아보지만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인간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현 시대를 흐르는 새로운 문제제기가 그렇게 낯설게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을]은 막연하게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이 머물 순간도 없이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다섯 젊은이 을, 민주, 프레니, 주이, 씨안은 어떤 이국의 장기 투숙자를 위한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을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민주는 을의 열 살이나 어린 유일한 친구다. 프레니와 주이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촌지간이면서 연인이다. 씨안 역시 여행자 신분으로 이 호텔의 하우스키퍼로 일하며 일상을 보낸다. 을과 민주, 프레니와 주이 둘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개입하기도 하면서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심리적 상태를 대표할 수 있는 말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홀로 독립적인 존재 상태로 살 수 없기에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이 날로 대두되는 사회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그 전통적인 인간의 관계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본다. 을에 등장하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로 그러한 인간의 관계가 보인다. 이것이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직업도, 인생의 목표도 중요하지 않은 다섯 남녀의 일상이 스냅사진이 한 장 한 장 흘러가듯 무심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데나 갈 수 있잖아”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살아온 시간의 흐름에서 특정한 부분을 잘라 낯선 곳으로 옮겨 놓는다면 이 소설과 같을까?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조건에 의해 규정받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드린 삶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있다. 1+1의 둘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에 새로운 +1이 등장함으로써 틀어지는 소통을 통해 이것을 감당해야할 각자들의 심리적 상황은 작가가 주목하는 사람간의 소통에 대한 문제 제기라 생각된다.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직업도, 인생의 목표도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은 그 상황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2와 3 사이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해 오히려 관계와 소통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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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짠
노희정 지음 / 책나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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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나에게는 로망
아는 화가에게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반겨주는 술자리가 시작되고 딱 ‘한잔’ 만 마시는 나를 두고 어의 없어하던 모습에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술꾼들이 말하는 주도를 모른다지만 너무도 모른다는 핀잔이 날아온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날 이후 ‘술 한 잔’이 나의 로망이 되었다. 술이라고 하면 종류에 불문하고 똑 같은 반응을 보이는 내 몸을 어쩌지 못하기에 ‘나도 술 한 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속에는 내 가슴에 담긴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기대감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벗’으로 사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여지없이 나오는 탄식이다.

하지만, 술을 못 마신다고 술자리의 여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술자리에 가장 늦게까지 어울리는 것은 그 속에 녹아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소중한 시간을 함께 누리면서 못 마시는 안타까움을 더해갔다.

술이 주는 여유롭고 넉넉한 장점으로 인해 술에 대한 찬사는 시대를 불문하고 있었다. 사람 수 만큼이나 종류도 많고 그 술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도 많다. 우리에게 술은 언제나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늘 사람들의 사귐 속에 존재하며 그들의 깊은 속마음을 달래주며 사람들 곁에 함께 했다. 술에 담긴 것, 바로 사람들의 따스한 삶이었다.

나에게는 로망인 이 술이 주는 혜택을 톡톡하게 누리는 사람이 있다. 시인 노희정이 그 사람이다. [술짠]은 술 예찬에 삶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뻐서 한 장, 성나서 한 잔, 슬퍼서 한 잔, 즐거워서 한 잔. 바로 술과 사람의 사귐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희노애락에 각 열 잔씩 마흔 잔에 달하는 술자리가 담겨 있다.

저자 노희정의 [술짠]에는 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청춘이 있고, 가족의 애달픔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며, 애처가 남편이 있고, 술로 인해 생기는 삶의 여유와 아픔이 함께 있고, 시와 사람들의 따스하고 깊은 속내가 있다. 저자는 이 모두를 품에 안은 것이 바로 술이라며 술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 

‘황진이 이래로 술을 다룰 줄 아는 가장 강력한 여전사!’라고 추천사를 쓴 허시명 작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술은 이렇게 마셔야 하는가 보다.

술은 안주와 함께 있어야 한다. 안주는 때에 따라 허기진 속을 채우기도 하고 술을 마시는 핑개 거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안주는 술자리에 함께 있는 ‘그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의 속 깊은 마음이 가장 좋은 안주가 아닐까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갇혀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수 있는 소통의 매개 ‘술 한 잔’이 그리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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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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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과 음악 사이, 사랑의 다리를 놓다
대금을 손에 잡은 지 2년, 아직 발걸음도 때지 못한 수준이지만 어느 순간 ‘아~ 그래 이 소리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불고 또 불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때 마음에 와 닿았던 그 느낌과 순간적인 전율이 있어 어렵기만 한 대금을 다시 손에 들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은 가슴 속에 품은 바가 있기 때문이오. 음악이라는 것은 가운데 맺힌 바가 있어 밖으로 새는 것을 말한다. 잘 우는 것을 가려 뽑아 그것을 빌려 울게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송나라 이후 성리학의 선구자였던 문학가 및 사상가 한유라는 사람이 악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여덟 가지 재료 팔음을 두고 이른 말이다. 창작하는 예술가의 마음 깊은 울림이 있어야 비로소 예술일수 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소리든 예술이라는 영역에 포함되는 그 어떤 것이든 다 사람이 창작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 창작자의 내면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속 깊은 울림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것, 그것이 예술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요소로 인해 창작을 하는 예술가와 그 예술품을 감상하는 관객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고 비로소 공감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예술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잡아내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과 음악,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영역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저자 노엘라는 남다른 눈으로 이 점을 잘 활용하여 그림과 음악사이 보이지 않은 끈을 이어주고 있다.

저자 노엘라의 가슴 깊은 공감에 의해 선택된 그림과 음악, 화가와 음악가들은 우리 눈과 귀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모네와 드뷔시, 실레와 베르크, 들라크루아와 베를리오즈, 모로 와 바그너, 클림트와 시마노프스키, 칼로와 뒤 프레, 미켈란젤로와 데 프레, 뭉크와 쇤베르크, 발라동와 말러 등 40여 명에 달하는 활동했던 시대를 불문하고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들 사이에 소통되는 공감대를 찾아 보여주고 들려준다. 저자는 그 소통의 기준을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으로 선택한다. 바로 ‘사랑’이라는 지고지순한 감정 말이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음악을 듣고 얻는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고, 둘 사이에는 오히려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장벽을 허물려는 강한 파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로 닮아있다. 바로 처음 보는 남녀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 그 소중한 감정을 공유하며 또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일련의 시간처럼 말이다. 저자는 음악과 그림 사이 공존하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저자 자신을 삶을 이입시키고 있다. 외롭고 힘들었던 유학생활 그리고 사랑을 하는 동안 자신의 얻은 희열, 열정, 배신, 질투, 불안, 고독, 그리움 등의 솔직한 속내를 그대로 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고독, 외로움, 갈망, 그리움 그리고 사랑 등의 감정을 다스려가는 성찰의 길의 한 순간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친 영혼과 마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음악과 그림이 공존하지만 나에게 이 책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음악에 있어서는 저자의 감성만큼 공감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부록으로 저자가 이야기 하는 음악이 함께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저자 노엘라는 젊다. 그래서 삶과 사랑의 가능성에 대단히 열정적이다. 그 속에는 ‘내가 알고 있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해보는 것, 그것으로부터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잠재해 있다. 예술가로, 삶을 영위하는 한 인간으로, 세상을 다 품에 안을 수 있는 여성으로 사랑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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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역사다 - 전선기자 정문태가 기록한 아시아 현대사
정문태 지음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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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가슴,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볼 일이다
아직 어린나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그때 태극기를 두른 형님들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응시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사이 무슨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알게 되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뭔지 모를 그때 그 호기심을 찾고 해결해 가는 길이었다고 본다. 그때가 바로 1980년 5월이었다. 고립, 통제 속에 한 외국인의 눈에 잡힌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국 현대사의 뜨거움 감자로 등장했다.

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아시아의 나라들과 사람들을 보게 된다. 미국과 프랑스 등을 비롯한 강대국의 정치 경제적 이권에 의해 유린되어온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현대사는 전쟁, 혁명과 쿠테타라는 단어와 떨어질 수 없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면서 그것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나라들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현장은 역사다] 이 책은 외국 기자라는 신분으로 아시아의 격변하는 현장을 목숨을 건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정문태라는 한 기자의 결과물이다. 분쟁과 전쟁의 상황에 내몰린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다닌 기자의 눈이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내 눈 앞에 활동사진처럼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현장은 역사다]에는 인도네시아, 아쩨, 동티모르, 버마, 캄보디아, 말레이사아, 타이의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멀리는 식민지의 개척자였던 유럽의 나라들과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한 분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눈물 나는 이야기, 킬링필드라는 미 제국주의 홍보용 영화로 유명한 대 학살,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투쟁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각 나라마다 속사정과 내용은 다소 상이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비슷하다. 우리가 겪었던 그 아픈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현장은 역사다’라는 이 책의 제목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적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이 책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이 담겨있다. 포탄이 터지는 현장에 있었고 그 일을 저질렀거나 반대했던 대통령, 총리, 혁명 지도자들을 직접만나 인터뷰한 이야기에서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아 몰랐던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현장만을 전달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그 일이 벌어지게 되는 전후 사정을 꼼꼼하게 따지며 의문점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장 기자가 가지는 순발력에 치밀함 그리고 정의의 편에 서려는 마음까지 담아내고 있다.

현대사회를 일컬어 지구 공동체 또는 지구촌이라 부른다. 이 말은 지구라는 공간을 우리가 느끼는 물리적, 심리적인 거리가 그만큼 가깝고 또 나라와 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인 교류와 소통이 주류를 이뤄가는 사회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성 말살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현장은 역사다]라는 한 기자의 노력에 의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아시아의 현대사를 접한다. 우리 역시 굴곡진 현대사를 가졌기에 다른 아시아의 나라와 그 국민들의 삶이 우리와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세상을 향한 자신의 시각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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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3판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3
E. H. 카 지음, 권오석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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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스펙트럼을 갖추다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는 사람들의 경우 다수가 경험하겠지만 한권의 책이나 한 사람의 저자에게서 얻은 공감으로 매료되어 같은 주제나 동일한 저자의 책을 찾아 읽는 경험이 있다. 이것은 나에게 대단히 흥미로운 탐구과정이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 역사인 조선시대의 획을 그었던 왕, 정조에 대한 관심이 10여권이 훌쩍 넘어서는 정조관련 책으로 모아졌다. 이 과정에서 이덕일이라는 저자를 알게 되었고 그가 쓴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 알게 된 <조선의 힘>의 저자 오항녕의 저서를 접하게 되면서 이덕일에 대한 관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특정한 저자에 끌린다는 것은 그 자자가 책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주장에 공감하는 면이 많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저자를 통해 얻었던 지식이나 공감이 다른 저자의 주장을 접하면서 흔들리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가진 지식이 미흡했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한발 나아가 책을 출판하는 저자라면 당연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특히, 소설 등의 문학이라는 장르가 아닌 역사서라면 더욱 강조되는 것이 저자의 ‘책임’이라는 문제가 대두된다고 본다. 일반인이 역사를 바라보는 조건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기에 일반인에게 역사를 전달하는 역사학자나 역사가라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책무는 그 무게를 점점 더 무거워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점에 다시 만난 책이 바로 E. H. 카(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다. 막 대학을 입학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려 멋모를 때 접했던 책을 제법 시간이 흘러 다시 접하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다르다. 앞에서 말한 상황에 맞물려 마치 그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듯 조금은 서두른 마음을 읽게 된다. 왜? 사람들은 역사를 접하려고 할까. 나와 같은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춰보고 그 속에서 미래를 꾸려갈 희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나 역시 이러한 관점으로 그동안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역사 또는 역사적 사실로 이끄는 대중적인 저서로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다. 저자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규정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자세와 역할 그리고 책무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출간된 1900년 전반기까지의 역사학계의 흐름을 살펴가면서 역사라는 학문이 등장한 배경 뿐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의식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역사에만 국한되는 시각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지녀야 할 기본 의식에 대해서까지 포괄하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역사가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저자는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 첫째, 그 역사가가 사회와 역사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제한된 시야를 뛰어넘을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그 역사가가 자기 견해를 미래에 대해 투입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상황에 전적으로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 보다는 과거에 대해 더 깊고 더 지속적인 통찰력을 요구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역사가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의 시대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자신이 선택한 역사적 사실을 평가, 해석함에 있어 보다 높은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본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며 역사에 관심을 높여가는 현대인들이 많다.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의 성공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관심에서 흥밋거리에서 벗어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으로 나아가길 바래본다. 다시 접하는 [역사란 무엇인가?]는 특히 저자의 긍정적인 역사인식에 공감하게 된다. 현대인들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미래를 개척할 힘을 얻기에 충분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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