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차이 -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운의 비밀
한상복.연준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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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국, 운도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하면할수록 더 꼬이기만 하는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그냥 손 놓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이런 사람을 보고 대책 없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답일 때도 있다는 것을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므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 묻혀 아니면 갖가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자신을 변화시켜 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당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그런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원인을 조건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책 ‘보이지 않는 차이’는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나와는 달리 잘나가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잘 나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검토해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그 ‘차이’에 주목하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비교검토해가면서 알려주고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보이지 않는 차이’는 운이라고 하는 것이다. 손대는 일마다 술술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운이 따른다고 한다. 그 운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운이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를 살피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너무 쉬운 문제며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는 그 차이를 살펴 자신은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고 잘 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적 사례를 따라해 보는 것을 실천해 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운이 따르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차이’라는 마흔 아홉 가지의 법칙을 제시한다. 이 법칙은 성공에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는다, 작은 행운을 소중하게 여긴다, 체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정리정돈으로 운의 흐름을 바꾼다, 때로는 포기함으로 얻는다, 뻔뻔하게 기다린다, 평생의 파트너와 함께한다. 등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했을 때 변화된 자신의 마음과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명확한 실천지침이라고 한다.

결국, 차이는 누구나 아는 것을 내가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있고 그것을 그들만 알고 있어서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누구나 알고 있는 사소한 것을 실천 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달린 것이라고 본다면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운이 내게 따라 붙도록 자신을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모든 운은 사람에게서 온다며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책에 다른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자기혁신을 해갈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부분 역시 동서양의 그럴듯한 유명한 사람들뿐 아니라 늘 상 함께 살아가며 그래서 더 친근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도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나도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한걸음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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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펭귄클래식 85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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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제도는 인간의 평등을 보장하는가
현대사회는 복잡한 사회구조만큼이나 다양한 인간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 다양한 인간관계의 중심에는 나와 타자의 관계설정이 있으며, 이는 불평등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불평등을 개선하고 나와 타자간의 관계를 동등한 관계로 회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이러한 모색이 직접적인 인간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통섭’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해결해가려는 움직임이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불평등 문제는 오늘날에 와서 대두된 문제가 아니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대두되었으며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 또한 함께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일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다. 이 루소의 논문은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주제로 1753년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 학술논문 현상공모에 응모한 논문이라고 한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 1778년)는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제네바의 시계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며 하인, 견습공, 사환, 가정교사 등 온갖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에게 운명적인 여인 바랑 부인을 만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갈 수 있었으며 테레즈 르바쇠르와 사이에 다섯 자녀를 두었지만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 부모로써의 책임을 방기하게 된다. 그의 저작으로는 ‘학예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 엘로이즈’,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에밀’, ‘사회계약론’ 등이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인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인류사의 형성과정을 통해 근원을 밝혀가고 있다. 원시적인 자연 상태의 인간이 선악과 자기 보존의 불안 의식을 알게 되면서부터 문명의 상태에 들어서게 되고, 나와 ‘타자’를 의식하고 구분하며 함께하는 삶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연법이 통용되는 상태에서는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다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종속적인 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이러한 종속적인 인간관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인 제도와 법률을 만들었는데 다시 이러한 제도에 의해 불평등 관계가 정착되었다고 본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없으나 우리의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발전으로부터 그 에너지를 얻어 성장하며, 마침내는 소유권과 법의 제정에 의해 항구적이 되고 합법화 된다.’

우리는 흔히 루소의 사상의 중심에 ‘자연으로의 회귀’를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에서 불평등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는 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로소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선한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한 인간이 타자 그리고 사회문화적 관계에 의해 타락하며 미개인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찾아가자는 것이 아닌가 한다.

루소의 이 논문이 발표된 시기에 그리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논문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지 못하는 급진적인 사상이며 절대왕정에 대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루소의 이러한 사상은 이후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기반이며 오늘날까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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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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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으로 본 조선의 정치
먹는 것을 즐기는 미식가나 식도락가가 아닌 사람이다 보니 특별히 음식이 흥미를 끌지는 못한다. 음식이 가지는 기본적인 용도라고 볼 수 있는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그치고 만다. 유독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식가들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는 수준을 넘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사항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과 오늘날, 절대적 빈곤의 사회와 선진국 등에서와 같이 음식이 가지는 의미는 시대상이나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의미를 갖는 음식이 절대 권력으로 상징되는 왕권시대의 왕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주로 먹고 살았을까? 이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보는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함규진의 ‘왕의 밥상’이다.

‘왕의 밥상’은 조선시대 절대 권력의 상징인 왕들의 밥상을 통해 왕들의 일상과 당시의 시대상을 비롯하여 권력의 역학관계를 밝히고 있는 책이다. 왕들의 밥상은 권력에 비래하여 그 시대 최고의 음식으로 채워졌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이 과연 옳은가로 부터 어떤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왕의 밥상에 오르게 되는가, 그리고 그 밥상이 가지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태조, 세종, 연산군, 성종, 인조, 영조, 정조, 고종, 순종에 이르는 조선왕 27명의 밥상을 문헌에 근거하고 시대구분을 통해 밝히고 있는 이 책에서 왕의 밥상은 절대 권력자의 건강을 지켜가는 것 이외 숨겨진 다른 의미를 있었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선 절대 권력자 왕의 밥상이 생각보다는 소박하다는 것, 왕의 밥상을 채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진상을 통해 올라온 것으로 꾸렸다는 것 그리고 때론 왕은 다양한 형태로 먹는 것을 조절했다는 점이다.

‘조선왕들의 밥상, 그 위에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양생하고 장수하려는 뜻과 정치 이념과 현실에 따라 왕의 정치적 역할을 다하려는 뜻이 함께 깃들어 있다.’

조선은 성리학이라는 기본 이념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왕은 그 선두에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었기에 더 철저히 지켜 가야하는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먹는 음식에도 왕의 구미에 맞는 것으로만 채워질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연산군처럼 예외적인 왕도 있었다. 또한 왕의 밥상을 채우기 위해 각지에서 올라온 진상품 역시 권력자의 욕심을 채우며 국민을 탄압하는 차원이라기보다는 밥상에 올라온 음식을 통해 전국의 실정을 파악하는 과정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기는 했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유지되어 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감선이나 철선, 각선이라는 것을 통해 먹는 음식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나라의 변고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왕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백성의 안위를 살핀다는 측면으로 상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영조 왕처럼 신하를 조정하려는 편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왕의 밥상’은 이렇게 왕에게 올려졌던 음식을 통해 왕과 당시의 시대상황을 살펴본 것에 그치지 않고 수랏상이 차려지기까지의 과정과 담당했던 관리, 담당관청에 구성요소를 비롯하여 밥상이 가지는 사상적 측면까지를 살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고르게 먹으려고 노력한 왕이 아무래도 선정을 베풀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왕들이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찾아다니며 먹는 웰빙 음식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차원으로 끝나고 마는 시대풍조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은 자연과 더불어 먹고 만들어지기까지의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을 때 진정으로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음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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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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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의 이중성에서 흔들리는 인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지속되어온 의문이 아닐까? 눈 밝은 사람들에 의해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려는 다양하고 지난한 노력은 철학이나 종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펼쳐져왔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선과 악으로 규정하며 살피는 것은 종교나 학문의 영역을 떠나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문제이며 이 두 영역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휘되는가가 더 중심적인 의문이 아닐까?

파울로 코엘료의 인간과 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발표된 여려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 ‘악마와 미스 프랭’은 ‘그리고 일곱번째 날’의 연작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사랑, 죽음, 부와 권력의 일환으로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이어 연작의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이라 한다. ‘악마와 미스 프랭’은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부와 권력을 향한 인간의 본성이 발휘되는 모습을 황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날 때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야기기는 모두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에 한 이방인이 나타나면서 시작되고 있다. 이 이방인은 부와 권력의 언저리에서 성공한 삶을 살다가 예기치 않은 일에 아내와 두 딸을 잃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다. 그가 그의 실험을 위해 선택한 마을 ‘베스코스’는 한때 상업도시로 활발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쇠락한 마을로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있다. 이방인은 마을의 호텔에 근무하는 미스 프랭에게 황금 덩어리를 보여주며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제안을 한다. 일주일 안에 이 마을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간다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평생을 쓰고도 남을 황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부모도 없이 가난하고 답답한 일상에 묻혀 살며 자신의 삶에 변화를 원하는 미스 프랭은 이방인의 예기치 않은 제안을 받고 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의 제안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신부, 읍장, 지주 등의 유지들이 각자가 원하는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희생양의 필요성을 말하며 희생양은 마을에서 혼자 살아가는 베르타라는 노파로 모아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은 우리를 난관에 봉착시켜 우리의 용기와 변화의 의지를 시험한다. 그럴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거나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달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일주일, 그 정도면 우리가 운명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작가 노트’중에서

저자 파울로 코엘료의 관심은 명확하다. 황금에 대한 유혹, 일주일이라는 주어진 시간, 자신을 대신할 희생양의 선택 등의 과정에서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할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가에 있다. 부와 권력을 손에 쥘 기회를 직면할 때 인간의 본성이 발휘되는 모습을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측면, 운명을 결정의 순간에 작용하는 선과 악의 모습 등으로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렇게 특수하고 극한 상황에서만 선과 악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소한 일에서도 늘 상 대면하게 된다. 

‘악마와 미스 프랭’에서는 그간의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저자의 자아성찰이나 영혼의 울림에 대한 탐구과정에 대한 구성이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금의 유혹, 희생양, 악마와 천사 등의 설정이 다분히 인위적인 느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 죽음, 부와 권력이라는 3부작의 마지막은 부와 권력이라기보다는 ‘선과 악’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는 한 인간이 절대적으로 양자 중 어느 하나의 본성을 갖는다고는 보지 않고 있다. 선과 악은 늘 동전의 양면처럼 내부에 함께하고 있으며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양자 사이를 왔다갔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달리 나타난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내 놓으면서 타인을 위해 서슴없이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냥 단순한 재미를 위해 지나가는 어린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인간 본성의 무엇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일까?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악마와 미스 프랭’을 통해 인류가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다시한번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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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에 대한 그리움 - 잊혀져가는 거의 모든 것의 아름다운 풍경
김종태 지음 / 휘닉스드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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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을 통해 현대인의 삶의 근거를 확인 한다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나이 들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볼까? 분주한 아침, 느긋해지는 오후, 또 하루를 무사히 보낸 안도감, 달라진 아침 공기, 떨어진 가로수 나뭇잎 등이 문득 마음에 들어올 때면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보내는 듯싶지만 일상 깊숙이 시간의 흐름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느끼는 것 보다 더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많다. 기억 속에만 머물고 있던 추억에 관련된 물건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그렇다. 떠나온 고향을 찾아 어린 시절 옛일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는 때에는 더욱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살아나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하루아침에도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렇게 변해가는 것에서는 당장에 느끼는 그리움이 덜하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추억이 쌓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 곁을 떠났거나 떠나고 있는 생활모습, 물건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놓은 책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지금도 어디선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도 있기에 사라져가는 아쉬움이 더 큰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는 책이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와 이웃들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생활모습을 담고 있는 것들은 아득한 정경, 못 다한 그리움, 꿈이여, 다시 한 번, 그래, 이 맛이야, 아, 옛날이여라는 분류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런 구분하고는 상관없이 저자가 찾아내고 그리움을 담아낸 것들에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어머니의 깊은 마음이 담긴 것들이다.

쪽, 호롱불, 조롱박, 양은그릇, 맷돌, 화로, 골무, 절구, 부지깽이, 장승, 통행금지, 누룽지, 엿장수. 장독대, 골목길 등 지금은 잊혀진 이름뿐인 것, 추억이 떠올라 미소 짓게 만드는 물건들뿐 아니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풍경과 소리들까지 담아두고 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만 담은 것이 아니다. 잊혀진 그것들에 담긴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따스한 정과 그들이 살아온 삶의 지혜 그리고 지금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까지 담겨있다. 

저자가 되살리고 싶은 사라져가는 것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흥망성쇠의 자연법칙이 있음도 인정하고 있다. 옛것이 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물건이나 생활풍속에 담겨진 조상의 지혜가 검증절차 없이 부문별하게 유입된 외래문물에 밀려나고 있으며 우리 것을 가볍게 여기는 사대주의 세태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기성찰이 있다.

존재하는 그 무엇이든 과거를 기반으로 두지 않은 것은 없다. 생활의 편리함을 주는 과학기술도 그것을 누리며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도 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온 결과며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옛것을 돌아보는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미래를 바르게 살아갈 근거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리움’의 중심에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울고 웃던 우리들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있기에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움 감정이 아닌가 한다. 무엇이든 이렇게 감정이입이 되어 있는 것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며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그리움은 커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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