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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밥상으로 본 조선의 정치
먹는 것을 즐기는 미식가나 식도락가가 아닌 사람이다 보니 특별히 음식이 흥미를 끌지는 못한다. 음식이 가지는 기본적인 용도라고 볼 수 있는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그치고 만다. 유독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식가들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는 수준을 넘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사항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과 오늘날, 절대적 빈곤의 사회와 선진국 등에서와 같이 음식이 가지는 의미는 시대상이나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의미를 갖는 음식이 절대 권력으로 상징되는 왕권시대의 왕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주로 먹고 살았을까? 이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보는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함규진의 ‘왕의 밥상’이다.
‘왕의 밥상’은 조선시대 절대 권력의 상징인 왕들의 밥상을 통해 왕들의 일상과 당시의 시대상을 비롯하여 권력의 역학관계를 밝히고 있는 책이다. 왕들의 밥상은 권력에 비래하여 그 시대 최고의 음식으로 채워졌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이 과연 옳은가로 부터 어떤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왕의 밥상에 오르게 되는가, 그리고 그 밥상이 가지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태조, 세종, 연산군, 성종, 인조, 영조, 정조, 고종, 순종에 이르는 조선왕 27명의 밥상을 문헌에 근거하고 시대구분을 통해 밝히고 있는 이 책에서 왕의 밥상은 절대 권력자의 건강을 지켜가는 것 이외 숨겨진 다른 의미를 있었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선 절대 권력자 왕의 밥상이 생각보다는 소박하다는 것, 왕의 밥상을 채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진상을 통해 올라온 것으로 꾸렸다는 것 그리고 때론 왕은 다양한 형태로 먹는 것을 조절했다는 점이다.
‘조선왕들의 밥상, 그 위에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양생하고 장수하려는 뜻과 정치 이념과 현실에 따라 왕의 정치적 역할을 다하려는 뜻이 함께 깃들어 있다.’
조선은 성리학이라는 기본 이념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왕은 그 선두에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었기에 더 철저히 지켜 가야하는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먹는 음식에도 왕의 구미에 맞는 것으로만 채워질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연산군처럼 예외적인 왕도 있었다. 또한 왕의 밥상을 채우기 위해 각지에서 올라온 진상품 역시 권력자의 욕심을 채우며 국민을 탄압하는 차원이라기보다는 밥상에 올라온 음식을 통해 전국의 실정을 파악하는 과정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기는 했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유지되어 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감선이나 철선, 각선이라는 것을 통해 먹는 음식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나라의 변고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왕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백성의 안위를 살핀다는 측면으로 상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영조 왕처럼 신하를 조정하려는 편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왕의 밥상’은 이렇게 왕에게 올려졌던 음식을 통해 왕과 당시의 시대상황을 살펴본 것에 그치지 않고 수랏상이 차려지기까지의 과정과 담당했던 관리, 담당관청에 구성요소를 비롯하여 밥상이 가지는 사상적 측면까지를 살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고르게 먹으려고 노력한 왕이 아무래도 선정을 베풀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왕들이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찾아다니며 먹는 웰빙 음식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차원으로 끝나고 마는 시대풍조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은 자연과 더불어 먹고 만들어지기까지의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을 때 진정으로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음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