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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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특별한 시각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 지는 정치현실이 그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의 눈으로도 해결책이 보이는 문제를 가지고 치고 박고하는 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최근 집권 여당 대표의 자연산 발언이나, 같은 당 소속 특별시장의 학생들의 무상급식에 관한 반대광고는 그런 모습의 극단적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이 있어서 그러한 시각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일까? 단순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무엇인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회 현상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평가하고 판단하기 마련이지만 대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어 그러한 판단의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본다면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바로 그들이 각각 보고자 하는 것, 과정은 내버려 두고서 결과에만 목을 매는 상황이 우리고 하여금 이런 이해하지 못할 상황을 목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바로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대한 근본적 차이를 설명해주는 책이 앨버트 O. 허시먼 저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 하는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수 또한 반동 지배자들이 항상 내걸고 있는 논리를 몇 가지 이론적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줌으로써 이해하기 힘든 정치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 하는가’의 저자 앨버트 O.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은 현대 경제학사의 주요 틀을 ‘터널 이론’이나 몰락하는 조직에서 발생하는 ‘이탈, 저항, 충성’의 행동 유형을 분석하였으며, 개발도상국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틀을 적용하여 큰 성과를 남긴 세계적인 석학이다. 주요 저서로는 ‘보수는 어떻게 지배 하는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열정과 이해관계’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 허시먼은 인류가 이룩한 진보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들을 보수 또는 반동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행동양태를 분석 세 가지의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가 그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역효과 명제는 어떤 정책의 예견되는 결과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단순히 어떤 정책이나 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나 좋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의도된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정책의 시행을 저지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무용 명제’는 어떤 정책을 시행해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 이룩한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어떤 변화라는 것도 결국 대부분 표피적이고 외형적이고 표면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깊숙한 사회 구조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도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위험 명제’는 결과를 예상하며 시행하려는 정책을 시행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를 위해 옛 진보를 희생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판단하려 한다. 만약 새로운 개혁이 시행된다면 어떻게 해서 귀중한 이전 개혁을 특히 최근에야 이루어낸 그것을 치명적으로 위태롭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살핀 인류의 지난 200년 역사의 과정에서 진보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얻어낸 결론이라고 한다. 특히, 영국의 산업혁명이나 프랑스 시민혁명 그리고 대의적 민주주의의 표상인 시민의 선거권 획득, 20세기 들어 사회복지 정책의 수립 등의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주장을 세밀하게 검토하며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저자가 살핀 유럽이나 미국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한국정치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인다.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나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특별시장의 특정사안에 대한 반대광고 등에 대한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면 결국 저자가 말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세 가지 힘’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언어적 현상이 발휘하는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은 여려 차례 선거를 통해 확인 된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현실정치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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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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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되살려야 할 우리 역사 - 백제
수년전 문화유적답사로 전국을 돌며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사 다니던 그 문화유적의 중심에는 물론 가까운 조선시대가 주를 이루긴 했지만 지역에 따라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반도 역사에서 승자의 나라로 다양한 기록문화와 유형문화재의 기반이 되는 것은 역시 신라와 통일신라의 유적이 단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구려의 경우 분담된 현실에 의해 상대적으로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지만 현실을 감안하여 그런대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독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은 사라진 백제의 역사였다. 무열왕릉을 중심으로 몇몇 남아있는 불교유적 말고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으로부터 찬란했을 백제문화를 유추해 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풍납토성-500년 백제를 깨우다’(2001, 김영사)의 발간으로 백제 역사의 사라진 일부분이나마 접하게 되었던 그 감회를 잊을 수 없다. 개발열풍에 의해 사라질 뻔한 유적을 지켜내고 졸속으로나마 발굴하는 과정과 사라진 백제 역사의 일부분이나마 되찾은 쾌거라고 말해 지는 부분이다.

‘대백제: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은 ‘풍납토성’ 이후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백제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은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의 역사다큐멘터리 ‘대백제’ 5부작 방송분을 정리 보완하여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중국, 일본을 넘나들며 백제의 사라진 역사를 찾아다녔을 제직진의 노고가 얼마만큼이나 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제작진은 먼저 ‘백제’는 한반도는 물론, 해상강국의 면모를 통해 일본과 중국 대륙까지 진출한 거대한 고대국가였으며, 동북아 최고의 선진 문물을 가진 문화강국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두나라 한 핏줄, 일본 속의 백제’, ‘700년 백제, 불국토를 꿈꾸다’, ‘백제는 최강의 하이테크 국가였다’, ‘고대 한류, 백제가 살아나다’, ‘백제, 바다를 꿈꾸다’ 등 총 다섯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이는 기존 백제역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제 건국관련 이야기나 일본과의 국제관계를 비롯하여 튀어난 불교 예술작품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일본 국왕가의 핏줄이 백제계에서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일본 천황의 발언을 통해 고대 국가시대 일본과 한반도의 밀접했던 관계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대백제’에서 기존 역사 고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문화 강국으로써의 면모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제철기술, 음악, 백제 기악, 패션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대폭 확장하여 살피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눈에 뛴다. 제작진은 k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오늘날 한류의 근원을 백제 음악의 전파와 그의 전승이 기원이라 보고 있으며 이뿐 아니라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의 근거가 백제 옷에서 기원했다 점, 서해를 중심으로 해상 강국으로의 면모가 다시 확인된다는 근거를 찾아 밝힌 점 등은 사라진 백제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단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텔레비전 방송용 원고의 한계가 보인다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두나라 한 핏줄, 일본 속의 백제’, ‘700년 백제, 불국토를 꿈꾸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무왕 시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신라와의 전쟁에서 그 격전지가 한강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익산지역이었다고 주장하는 점과 이것이 미륵사를 건설한 근거라고 하는 점은 더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락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 공자의 논어를 빌어 백제 문화를 표현할 때 등장하곤 하는 말이다. 이 책 ‘대백제’는 그 실체를 확인 시켜주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음악, 백제 기악, 패션 등으로 문화 강국으로써의 백제를 고찰했다는 점과 이를 통해 고대 한일관계의 재조명 한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문화유적의 발굴로 하나 둘 밝혀지는 사라진 우리 역사 백제가 앞으로 또 무엇을 보여줄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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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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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숨겨진 보석을 발굴해 가는 사람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시작하며 처음 받은 인상이 지속되거나 더 깊은 내면을 알게 되어 더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나중의 모습이 다른 경우도 있어 실망하는 때도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은 분명 전자일 것이다. 알아 가면 갈수록 그 신비감이 더하거나 조심스러워지는 사람이라면 그가 살아온 삶을 통해 충분히 내면의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 한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일면을 알게 되고 이후 더 많은 이목을 집중 받아 본래 그 사람의 진면목에 이르게 되는 사람들을 종종 접한다. 그중 한명이 ‘남자의 자격’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박칼린이라는 사람이다. 박칼린은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태생에서부터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국에서 태어났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한국에 정착해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여 일찍이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연극, 첼로, 뮤지컬, 국악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섭렵하며 연주자로 살 수도 있었을 그녀가 보여준 삶은 그야말로 도전이며 열정적인 모습이다. 

음악감독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선 박칼린은 ‘명성황후’, ‘사운드오브뮤직’, ‘시카고’, ‘렌트’, ‘아이다’, ‘노틀담의 곱추’, ‘미녀와 야수’ 등 내노라하는 작품을 통해 국내 뮤지컬 분야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며 20여년 한국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냥’이라는 이 책은 텔레비전 프로에서 보여주었던 박칼린의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사람을 따스하게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내성적이었다는 어린 시절 학교생활, 어머니를 중심으로 미국의 가정에서 다양한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운명처럼 다가와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스승님들 그리고 여행 등 그녀의 생활 속에 숨 쉬는 음악과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바로 그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으로부터 도제식 배웠던 가르침이 이제는 제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박칼린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사람들 속에서 스승에게서 배웠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할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서쪽에서 온 마녀’라는 별명은 박칼린의 겉모습이 아니며 그녀가 살아가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박칼린, 그녀의 자유스러운 영혼과 열정적인 삶은 이색적인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ㅐ득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양한 세계로의 여행,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 사람들 속에 숨겨진 재능을 알아내는 안목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스한 가슴 등은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그 밑바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다양한 인종들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한 어머니를 통해 이런 그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리라.

‘그냥’은 박칼린이 텔레비전 프로를 통해 반짝 나타나 바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사람이 아님을 확인해준다. 그녀의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책에는 그야말로 ‘그냥’이라는 말이 어울리듯 자신의 생활을 펼쳐놓고 있다. 여기에서의 그냥은 ‘마냥’이 아니다. 철저하게 준비된 속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예술인이 내 놓을 수 있는 덤덤한 고백이기에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그냥’에 담겨진 모습이 박칼린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내면에 숨겨진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처럼 흥미를 유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 희망이 때론 ‘마녀'라는 이름으로 다가올지라도 사람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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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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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나의 하루는 행복일까?
동네 뒷산, 친근감이 앞서는 단어다. 올 겨울 보기 드물게 눈이 내리는 날 쉬엄쉬엄 걸어가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두 시간에 걸쳐 걸었다. 눈 쌓인 숲길이 미끄러워서가 아니다. 느리게 걷기를 통해 길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존재를 확인하고 눈높이를 맞춰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마주하며 마음으로 들어오는 나무며 풀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痼� 당연한 것이리라. 사람들 사는 공간 가까이 이렇게 마음 다독여주는 숲이 있다는 것은 행복일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알고 누리는 사람들만 누리는 그런 행복 말이다.

이렇게 머물고 느린 걸음으로 세상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바깥세상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과는 반대의 길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 중 여행 작가이며 생의 탐색가, 시간의 염탐자, 길의 몽상가라 불리는 최갑수라는 사람이 있다.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을 통해 처음 접하며 짧은 ‘머뭄과 쉼’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한 점에 불과하지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게 하는 경험을 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새로운 책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을 만난다.

‘잘 지내나요, 내 인생’에서 저자는 일상, 사랑, 타인, 여행, 타인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바라본 삶이 담겨 있다. 무덤덤하게 삶을 관찰하는 관망자의 모습 속에는 삶을 달관한 듯 한 마음가짐이 숨어 있다 곳곳에서 은근한 모습으로 들어난다. 일상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오는 느긋함이 있는 것이다. 세상은 파이팅을 외치라고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누구나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기에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자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저자 최갑수의 세상을 향한 마음가짐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저자 최갑수는 늘 떠날 준비가 되었다. 직업이 여행 작가라는 것이 준비된 여행자의 필요한 생활방식일지라도 그것을 넘어선 자유로운 영혼이 꿈틀대는 사람만이 가능한 자유가 있는 것이다. 한적한 곳, 바람과 맞서는 곳, 해질녘 붉은 노을 앞에서 저자의 눈은 자연이 주는 그 아름다운 풍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벗어난 자신의 내면의 울림과 오롯이 대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지내나요, 내 인생’에 담겨있는 그의 사진은 다른 사진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다. 노을, 태양, 가로등의 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 찍기에 치명적일 수 있는 역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묘한 감성을 자극하는 빛을 담아낸 사진들이다. 슬픔을 담아낸 사진만이 성공한 사진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진들이다. 짧은 글이지만 그 행간을 읽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역광의 거슬린 빛에 숨죽이는 시각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가슴으로 스미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 생에서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가지고 있는지.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행복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 숨어 삶의 주인공인 자신이 발견해 주길 바란다는 말이 있다. 특별하고 큰 무엇인가 만이 행복의 근원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 속에 느끼는 감정이 행복임을 알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복의 한가운데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하루를 가지고 있다면 잘 살아온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지금부터라도 그런 하루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며 하루를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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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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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책이 자신을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날마다 발행되는 수많은 책 그리고 그 책을 집필하는 다양한 저자들을 만나면서 늘 새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마음이 오롯하게 담긴 책에는 저자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저자만의 독특한 향기가 번진다. 독자로써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 ‘시코쿠를 걷다’가 바로 그런 향기 나는 책이다. ‘바보이반의 산 이야기’를 통해 만났던 저자 최성현의 일본 여행기다. ‘내 영혼의 베이스캠프는 여전히 우리 마을, 그리고 땅을 갈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내 논밭’이라는 저자가 ‘걷기여행’이라는 외출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마음 속 밝은 빛을 담아놓은 책이다.

이 여행기의 주 무대는 동양의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일본의 시코쿠 섬이다. 이 섬은 일본 열도 4개의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으로, 섬 전체가 사원이고 경전이 따로 필요 없는 일본 사람들의 순례길이라고 한다.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형성된 큰스님이라는 뜻을 가진 ‘오다이시상’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순례자를 이끌고 있다. 시코쿠 섬에 분포한 88개의 사찰을 순례하는 1200km에 달하는 기나긴 길이다. 걸어서 40~60일이 소요되는 이 순례 길에는 세계 각지에서 15만 명이 찾으며 매년 2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고도 한다. 이 길에 나선 순례자에게는 스게가사(삿갓 모양의 대나무로 만든 모자), 하쿠이(순례자가 입는 흰색 상하의), 금강장(나무 지팡이)이라는 공동전선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는 순례 도중 어디에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순례 길에 나선 저자 최성현은 ‘빛’을 찾아 나선 길이라고 했다. 저자가 찾고자 한 ‘빛’은 무엇일까? 느긋한 마음으로 사람이나 자연 풍광에 걸리지 않는 자유스런 걸음걸이로 걸었던 저자의 마음가짐 속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홀로 먼 길을 걷다’, ‘시코쿠는 나의 병원’, ‘대자연이라는 책’, ‘사람은 무엇으로 빛나나’는 순례 길을 걸어왔던 순례 길의 관심사가 담겨 있다.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변 풍경보다는 순례지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자연과 독특하게 만나며 교감과 소통하는 저자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 사람을 만나는 태도, 자신을 매료시킨 대자연 속에서도 늘 내면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순례자를 대하는 주민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오셋타이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먹을거리나 마실거리, 돈, 하룻밤의 잠자리 등을 제공하면서 기뿐 마음으로 순례자를 맞이하고 또 떠나보낸다. 이 오셋타이 정신으로 뭉친 ‘시코쿠 순례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코쿠 섬을 생활 근거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행정조직 그리고 그 길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그들 모두에게 타자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 살아 있으며 또 배워가는 길이기도 하다.

느린 걸음은 자신과 타자간의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만들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일 년에 일정 시간을 여행할 것을 권하는 저자는 그 여행에서 자신과 타자의 공감과 소통 그리고 자신의 내면속으로 함께 여행하길 바라는 것이다. 저자가 걸었던 56일 3천리의 시간이 향기롭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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