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책이 자신을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날마다 발행되는 수많은 책 그리고 그 책을 집필하는 다양한 저자들을 만나면서 늘 새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마음이 오롯하게 담긴 책에는 저자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저자만의 독특한 향기가 번진다. 독자로써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 ‘시코쿠를 걷다’가 바로 그런 향기 나는 책이다. ‘바보이반의 산 이야기’를 통해 만났던 저자 최성현의 일본 여행기다. ‘내 영혼의 베이스캠프는 여전히 우리 마을, 그리고 땅을 갈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내 논밭’이라는 저자가 ‘걷기여행’이라는 외출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마음 속 밝은 빛을 담아놓은 책이다.

이 여행기의 주 무대는 동양의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일본의 시코쿠 섬이다. 이 섬은 일본 열도 4개의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으로, 섬 전체가 사원이고 경전이 따로 필요 없는 일본 사람들의 순례길이라고 한다.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형성된 큰스님이라는 뜻을 가진 ‘오다이시상’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순례자를 이끌고 있다. 시코쿠 섬에 분포한 88개의 사찰을 순례하는 1200km에 달하는 기나긴 길이다. 걸어서 40~60일이 소요되는 이 순례 길에는 세계 각지에서 15만 명이 찾으며 매년 2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고도 한다. 이 길에 나선 순례자에게는 스게가사(삿갓 모양의 대나무로 만든 모자), 하쿠이(순례자가 입는 흰색 상하의), 금강장(나무 지팡이)이라는 공동전선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는 순례 도중 어디에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순례 길에 나선 저자 최성현은 ‘빛’을 찾아 나선 길이라고 했다. 저자가 찾고자 한 ‘빛’은 무엇일까? 느긋한 마음으로 사람이나 자연 풍광에 걸리지 않는 자유스런 걸음걸이로 걸었던 저자의 마음가짐 속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홀로 먼 길을 걷다’, ‘시코쿠는 나의 병원’, ‘대자연이라는 책’, ‘사람은 무엇으로 빛나나’는 순례 길을 걸어왔던 순례 길의 관심사가 담겨 있다.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변 풍경보다는 순례지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자연과 독특하게 만나며 교감과 소통하는 저자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 사람을 만나는 태도, 자신을 매료시킨 대자연 속에서도 늘 내면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순례자를 대하는 주민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오셋타이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먹을거리나 마실거리, 돈, 하룻밤의 잠자리 등을 제공하면서 기뿐 마음으로 순례자를 맞이하고 또 떠나보낸다. 이 오셋타이 정신으로 뭉친 ‘시코쿠 순례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코쿠 섬을 생활 근거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행정조직 그리고 그 길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그들 모두에게 타자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 살아 있으며 또 배워가는 길이기도 하다.

느린 걸음은 자신과 타자간의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만들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일 년에 일정 시간을 여행할 것을 권하는 저자는 그 여행에서 자신과 타자의 공감과 소통 그리고 자신의 내면속으로 함께 여행하길 바라는 것이다. 저자가 걸었던 56일 3천리의 시간이 향기롭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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