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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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찾은 조선의 역사
역사의 현장엔 어제와 오늘이 함께 공존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기도 하고 때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지만 현장엔 그 뿌리가 어떤 형태로든 남아 후손들에게 당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든 기록문화의 형태로 남아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적 현장과 그에 얽힌 사연 그리고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역사적 현장은 오늘과 밀접하게 관계 맺으며 건재하게 살아 있음을 안다.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것도 정치적인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 유배자라는 이름을 달고 정치의 중심이었던 한양을 떠나 가깝게는 강화도 멀리로는 제주도, 흑산도 등 육지에서 떨어진 섬으로 밀려나 한양을 바라보며 유배에서 풀러날 만을 기다리다 죽어간 사람도 있고 운이 좋게 풀려나 보란 듯이 재기한 사람도 있다. 유배신분에 억울해 하며 암울한 시간을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학문과 시문에 열중하여 후대에 남을 성과를 올린 사람도 있다. 

이 책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바로 그런 유배자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들이 살아왔던 현장에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후대사람들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에서 유배는 대부분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간혹, 정치적인 이유와는 상관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당파의 세력 판도에 의해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배를 가는 죄인의 신분이지만 당당하게 현지에서도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짧게는 수십 여일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섬에 갇혀 지내야했던 유배자들의 삶은 세월의 무게에 의해 대부분 사라졌다. 저자 이종목과 안대회가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남긴 기록이다. 유배객의 신분으로 울적한 마음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던 사람이나 지역의 지리지를 작성한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 기록에 근거하여 유배자들이 머물렀던 섬을 찾아 현재의 모습에서 당시 흔적을 따라가 보는 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찾은 유배의 섬은 위도,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를 찾아, 그곳에 머물렀던 유배객 이규보, 이행, 연산과 광해군, 이건명과 조관빈, 최익현, 노수신, 이대기, 조정철, 정약전, 신헌, 신기선, 김만중, 이광사, 이세보, 조희룡, 안조원, 이진유 등이다. 주로 남해안 인근의 섬으로 한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었기에 정치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당연하게 유배지로 선택된 것이다. 섬은 그때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졌다. 연륙교가 놓여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곳도 있다. 또한, 정치적 상황이 변해 당시 죄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편안하고 대접받은 유배객이 있는가하면 먹을 것을 구걸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유배객도 있었다.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유배된 섬에서 한탄 속에 숨을 거둔 객도 있었고,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죽을 때까지 높은 벼슬을 한 이도 있었다. 벼슬아치로 살 때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학문적 성과를 거둔 이가 있는가하면, 외로운 섬에서 예술혼을 불사른 이도 있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에 의해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있었기에 섬 또한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었다.  

저자들이 유배의 현장 섬을 찾아 섬의 자연풍광과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유배객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사진에 담긴 섬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유배객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 중 확실한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조희룡 편에서 김정희의 수하로 이야기 된 부분이 그것이다. 저자들의 전공이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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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역사를 뒤집다 - 문명을 이끈 50가지 식물 역사를 바꾸다
빌 로스 지음, 서종기 옮김 / 예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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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식물은 공동운명이다
생태계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바람이 있다.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늘어나고 다음세대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이 많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을 내놓는 학자들이 많다. 그 원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산림훼손이나 환경파괴, 화석연료의 사용 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다양한 요소를 들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며 인간의 목숨을 살렸거나 삶의 질을 풍성하게 만들어온 동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분야가 아닌가 한다. 

지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동식물의 역사는 길다. 그 긴 시간동안 사라지거나 새롭게 나타난 동식물들 또한 많았을 것이다. 자연적인 환경의 변화에 의한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해온 동식물들이 사람들의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멸종되거나 사라지는 상황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일 것이다. 

이 책 ‘식물, 역사를 뒤집다’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식물들의 역사적 기록을 살피고 인간과 식물이 어떻게 공생관계를 맺어왔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를 찾아보고 있다. 저자 빌 로스(Bill Laws)는 사회사학자이자 전문적인 정원사이며 명성 있는 원예학 저술가로 활동하며 ‘예술가의 정원’, ‘들판 현장 안내서 : 풀밭, 초원 그리고 목장’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저자가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하는 식물로는 용설란을 시작으로 양파, 파인애플, 대나무, 차나무, 삼, 오렌지, 커피, 사프란, 마, 코카나무, 벼, 담배, 양귀비, 로부르참나무, 사탕수수, 옥수수, 장미, 포도 등 50여 가지 식물들로 인류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식물들이 주종이다. 

벼를 비롯한 식물들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식물들은 지역적 환경을 반영하며 식물 성장의 특성에 적합한 한정된 지역에 분포되었다. 그렇기에 그 식물이 주는 혜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지역과 사람들의 문화에 의해 다른 성질과 특성으로 관계 맺어왔다. 식물들의 이러한 상황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신대륙발견 등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삶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사람에 의해 인위적인 환경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까지 식물 특유의 성질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특정한 식물에 대한 지배적 권리를 가진 집단이 생겨나며 경제적 이득과 관련되어 식물의 성질까지 변화시켜가며 변종과 개량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커피나, 차와 같은 식물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는 사건으로까지 확대된다. 아편전쟁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등이 그것이다. 또한 사탕수수나 고무나무, 면화 등의 재배에 노동력의 필요한 상황에서 식민지 노예 등의 노동력 착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식물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식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각을 바꿔 식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의 종족을 번식시킬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인간이 이 과정에 개입하면서 특정한 식물은 별다른 노력 없이 인간에 의해 종족을 번식시키며 우수한 품종으로 개량되어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식물이 사과, 장미, 튤립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각 식물들의 상세한 그림과 관련 자료, 식물의 어원과 유래, 비슷한 유의 식물에 대한 설명까지 구성되어 식물의 역사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사실까지 알려주고 있어 더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인류보다 긴 시간동안 지구의 주인공으로 살아왔을 다양한 식물들이 인간의 인위적인 간섭이나 작용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곧 인류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심각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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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집 홍신한문신서 55
장기근 지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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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문과 현실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할까?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유명하기에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진면목을 알기 이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형성된 피상적인 지식으로 인해 때론 올바른 이해를 방해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람 ‘이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의 생애를 포함하여 그가 남긴 학문적 성과를 통해 이황이라는 사람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올바로 아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 사람에 대해 그 모든 것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관련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남긴 업적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은 조선시대 성리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대 학자로 기억되는 측면이 우선된다. 또한 조정에 출사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기도 한 관리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미니 품에서 자랐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지만 출사에는 별 뜻이 없다가 살림에 도움을 얻기 위해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하고 관료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직접 경험한 정치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병들어 약한 몸으로 인해 70여 차례 사직 상소를 올릴 정도로 벼슬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학문의 연구와 저술 후학 교육에 더 많은 뜻을 두었던 사람이다. 이황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계기로는 성리학의 4단 7정에 관한 고봉 기대승과의 논쟁을 통해서가 아닌가 한다. 남긴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퇴계집’은 시, 교, 소, 차, 경연강의, 계의, 사장, 계사, 서계수답, 서, 잡저, 발, 잠명, 표전, 상량문, 축문, 제문, 묘갈지명, 행장 등이 수록되었다. 외집과 별집은 앞에 목록이 있고, 모두 시가 수록되었다. 2003년 발행 된 홍신문화사의 이 퇴계집은 그 중에서 시, 교서, 소, 경연강의, 차자, 서간문, 잡저, 언행록 등을 선택해서 해설을 하고 있다. 발행된 지 오래되어 해설을 읽어 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한문을 접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원문을 해석한 것 역시 한자어가 많아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색함이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에 대해 막연한 이해에서 벗어나 이황이 남긴 글을 직접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히, 소에서 보여 지는 벼슬에 대한 이황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어린 왕을 위해 올린 무진육조소나 성학십도에서 주장하는 자신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학문하는 뜻이 어디에 있을까? 자신을 수양하고 뜻을 올바로 세워 삶에 실천하는 것이라면 현실 정치에 임하는 사람으로 매번 물러나야만 했을까? 군주와 백성을 위해 그가 소장에 담은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할 일을 없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연암서가), ‘퇴계 VS 율곡’(역사의아침), ‘함양과 체찰’(미다스북스), ‘퇴계 잡영’(연암서가)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접한 퇴계 이황의 글에서 보았던 인간적인 모습을 포함하여 그가 가진 삶의 자세를 통해 학문과 일상이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지위의 고하나 나이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쉽지 않게 접한 퇴계집을 통해 그의 삶과 학문의 뜻을 한권에 묶어 살필 수 있다는 점이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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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본 세상 세계문학의 숲 9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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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작품 하나로 기억되는 작가가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본 세상을 자신의 독특한 언어로 세상과 소통을 꿈꾸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 특유의 세상이 작품 속에 담기게 되고 그런 작품만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소통되고 또 거듭나는 것이리라. 그렇더라도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가‘돈키호테’라는 작품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세르반테스다. ‘돈키호테’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작가의 다른 작품은 접할 기회도 없었지만 익숙한 이름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익숙한 이름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다른 작품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개들이 본 세상’은 1613년 ‘모범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그의 단편들 가운데 ‘사기 결혼’, ‘개들이 본 세상’, ‘질투심 많은 늙은이’, ‘피의 힘’, ‘유리 학사’등 이렇게 다섯 편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다. 돈키호테에서 보여주는 신랄한 풍자와 유머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사기 결혼’은 마치 현대의 결혼 풍속도를 보는 듯한 흥미로움이 있다. 자신의 가진 것을 부풀리고 남이 가진 것을 탐내며 이를 합법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한다. 속고 속이기를 반복하는 한 남녀의 결혼과정을 통해 인간이 가진 탐욕과 허례허식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개들이 본 세상’은 두 마리의 개가 사람의 말을 하게 된 계기를 통해 개가 걸어온 과거를 다른 개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개로 태어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각기 주인들의 특성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점철된 거짓과 이기심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기 결혼’의 주인공 캄푸사노가 병 치료차 있었던 요양원에서 개들이 나눈 이야기를 직접 듣고 메모한 것이라는 시작된다. ‘질투심 많은 늙은이’는 젊은 아내를 지키기 위해 철옹성을 쌓는 늙은 남편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다. 재물이나 아무리 높은 담장, 자물쇠로도 결국 지켜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

‘피의 힘’은 성폭행을 당한 한 여자가 그 상처를 딛고 자신의 삶을 가꿔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애기치 않게 찾아온 불행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불행의 원인에게도 슬기로운 방법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유리 학사’는 인간 이성에 내포된 광기와 비이성을 주제로 죽음의 문턱으로 이끄는 사랑의 묘약을 먹음으로써 광기를 가지게 된 한 지식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의 다섯 편 세르반테스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17세기의 사람들이야기지만 마치 현대사회의 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듯 한 인상이다. 시대를 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내면은 다 비슷한 것일까? 아주 친근한 이웃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바로 그러한 힘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작가들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상상의 세계가 있는 것일까?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갈 주인공을 만들어 그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허구에서 출발하는 문학 작품 속에 삶의 진실성이 있기에 문학은 힘을 가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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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재발견 -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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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자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사람을 보는 시각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도 그렇지만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시각 역시 그렇다. 무엇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기에 그 멋을 기준으로 보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양한 측면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는 것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경우가 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시각의 편협성이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그러한 시각이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중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함은 굳이 부연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당연함이 현실에서는 당파적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당연히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객관적 자료가 뒷받침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리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진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자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학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견지해야할 자세가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주목받는 인문학자 중 한사람이 정민이다. 그는 문헌상에 나타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글을 해석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유되도록 노력하는 학자다. 그의 저작 ‘다산의 재발견’이 출간되는 배경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자료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달려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했다. 한번 찾아가 안 되면 수차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확인하고야 마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간 저자가 발간하는 책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폭넓은 독자층이 형성된 것이리라.  

‘다산의 재발견’은 조선 후기 정약용과 관련된 미 발굴 자료나 새롭게 세상에 나타나 전후 사정에 맥락을 이어주는 자료를 바탕으로 왜곡되었거나 사실이 잘못 알려진 다산 정약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귀중한 논문들을 모아 놓은 저작물이다. 자료 한편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앞 뒤 맥락이 끊긴 기존의 자료에서 충분치 못했던 사실이 새로 발견된 자료로 인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자료가 주는 가치가 어떨지 상상을 뛰어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약용의 유배기간인 1801년부터 1818년까지가 중심이다. 새로 발굴한 다산 친필첩을 중심으로 '다산의 강진 강학과 제자 교육', '다산의 사지 편찬과 불승과의 교유', '다산의 공간 경영과 생활 여백', '다산 일문의 행간과 낙수' 4개의 큰 틀로 구분하고 분류하여 22개의 논문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배지 강진에서 정약용이 이룬 업적에 비해 그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이번에 새로 발굴하고 정리한 자료로 인해 많은 의문점이 해결되었으며 심지어 잘못 알려진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료들로는 강진 유배시절 교유했던 수많은 제자, 승려, 자녀에게 쓴 시뿐 아니라 산문 등의 조각난 친필 편지(서첩)들을 통해 역사적 맥락, 문화적 맥락, 전후의 개인적 맥락 속에서 맞춰내 다산의 면모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의 발굴이 전공한 학자들이나 관계자들에게는 둘도 없는 중요성이 있겠지만 때론, 일반 독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 보다는 역사적 인물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 책 ‘다산의 재발견’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부자론’에서 보여주는 생활인으로써의 정약용 모습 같은 것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우리 역사에서 학문적 업적으로 보면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크고 광범위한 사람이라서 우리와는 다른 한발 건너에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져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적인 모습에서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아버지이며 부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남편이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은 그 거리감을 줄여주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유배당한 사실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임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불행한 일로인해 그가 남긴 업적을 보면 그렇게만 볼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긴 세월 정약용이 겪었을 몸과 마음의 고통을 넘어 학문의 성취를 이룬 일은 우리 역사가 갖는 보석 같은 일이 되었다. 이제 후학들은 그의 학문적 열정과 정신을 현 시대에 어떻게 살려내야 하는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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