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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재발견 -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8월
평점 :
대학자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사람을 보는 시각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도 그렇지만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시각 역시 그렇다. 무엇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기에 그 멋을 기준으로 보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양한 측면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는 것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경우가 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시각의 편협성이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그러한 시각이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중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함은 굳이 부연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당연함이 현실에서는 당파적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당연히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객관적 자료가 뒷받침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리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진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자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학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견지해야할 자세가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주목받는 인문학자 중 한사람이 정민이다. 그는 문헌상에 나타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글을 해석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유되도록 노력하는 학자다. 그의 저작 ‘다산의 재발견’이 출간되는 배경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자료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달려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했다. 한번 찾아가 안 되면 수차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확인하고야 마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간 저자가 발간하는 책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폭넓은 독자층이 형성된 것이리라.
‘다산의 재발견’은 조선 후기 정약용과 관련된 미 발굴 자료나 새롭게 세상에 나타나 전후 사정에 맥락을 이어주는 자료를 바탕으로 왜곡되었거나 사실이 잘못 알려진 다산 정약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귀중한 논문들을 모아 놓은 저작물이다. 자료 한편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앞 뒤 맥락이 끊긴 기존의 자료에서 충분치 못했던 사실이 새로 발견된 자료로 인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자료가 주는 가치가 어떨지 상상을 뛰어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약용의 유배기간인 1801년부터 1818년까지가 중심이다. 새로 발굴한 다산 친필첩을 중심으로 '다산의 강진 강학과 제자 교육', '다산의 사지 편찬과 불승과의 교유', '다산의 공간 경영과 생활 여백', '다산 일문의 행간과 낙수' 4개의 큰 틀로 구분하고 분류하여 22개의 논문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배지 강진에서 정약용이 이룬 업적에 비해 그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이번에 새로 발굴하고 정리한 자료로 인해 많은 의문점이 해결되었으며 심지어 잘못 알려진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료들로는 강진 유배시절 교유했던 수많은 제자, 승려, 자녀에게 쓴 시뿐 아니라 산문 등의 조각난 친필 편지(서첩)들을 통해 역사적 맥락, 문화적 맥락, 전후의 개인적 맥락 속에서 맞춰내 다산의 면모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의 발굴이 전공한 학자들이나 관계자들에게는 둘도 없는 중요성이 있겠지만 때론, 일반 독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 보다는 역사적 인물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 책 ‘다산의 재발견’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부자론’에서 보여주는 생활인으로써의 정약용 모습 같은 것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우리 역사에서 학문적 업적으로 보면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크고 광범위한 사람이라서 우리와는 다른 한발 건너에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져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적인 모습에서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아버지이며 부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남편이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은 그 거리감을 줄여주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유배당한 사실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임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불행한 일로인해 그가 남긴 업적을 보면 그렇게만 볼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긴 세월 정약용이 겪었을 몸과 마음의 고통을 넘어 학문의 성취를 이룬 일은 우리 역사가 갖는 보석 같은 일이 되었다. 이제 후학들은 그의 학문적 열정과 정신을 현 시대에 어떻게 살려내야 하는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