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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비켜가는 달이다.
몹쓸 가을비라 타박했더니 맑고 푸른 가을밤을 선물처럼 내어놓아 달이 곱게도 보인다.

짧지 않을 가을밤이 조금은 더 길어진다 해도 그 무엇을 탓하진 않으리라.

모월당慕月堂 깊숙히 달빛이 들겠다.
만월은 버거워 약간 비켜난 달과 눈맞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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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서권기書卷氣가 배 속에 가득 차서 넘쳐나와야 시가 되고, 문자향文字香이 손가락에 들어가서 펼쳐 나와야 그림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통감절요通鑑節要 반 권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함부로 칠언율시를 짓고, 해서楷書 한 줄도 쓸 수 없으면서, 함부로 난과 대를 그린다. 그러면서 스스로 고아한 사람의 깊은 운치라 여긴다. 일곱 글자에 운자를 달기만 하면 시라 말할 수 있는가? 먹물 종횡으로 갈기기만 하면 그림이라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우스운 일이 있다. 두 눈동자 반짝반짝하여 밤에 추호秋毫같이 작은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으면서 항상 안경을 낀채, 종일 배나 쓰다듬으며 앉아서 한 가지 일도 하지 않고 한 가지 직업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일체의 일에 대해 '서유기' '수호전' 등의 책을 인용하여 함부로 재단하며 스스로 옛 것에 박식하다고 자랑을 한다. 내 일찍이 이런 것을 비웃었다.

이 말을 내뱉자니 다른 사람을 거스르겠고, 내가 머금고 있자니 나를 거스르게 된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거스를지라도 끝내 이 말을 내뱉는다. 모름지기 각기 노력하여 이 병통을 면하면 다행이겠다.

*조선후기 매화화가로 유명했던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척독 중 하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양은 비슷하나 보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여 자신이 처한 조건이나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쭐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이름값은 자신의 성찰에서 근거한 책임감일 것이다.

공인, 전문가,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다양한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폭력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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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 속을 거닐다.
토방에 닿았던 안개가 마루 깊숙히 들어왔다. 성큼 깊은 가을로 빠져들었다는 증거다.

오늘은 가을볕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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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치지 말 일이다.
어느달이고 보름달없는 달 없지만 밤 기온 서늘해지는 10월과 11월은 달보기 참으로 좋은 때다. 없는 벗이라도 불러 술잔 마주하고 푸른밤하늘 환하게 웃는 달과 눈맞춤하자.

모월당慕月堂에 달빛이 환하다.
만월은 차마 버거울까봐 미리 눈맞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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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사람을 그윽하게 하고, 술은 사람을 초연하게 하고, 돌은 사람을 준수하게 하고, 거문고는 사람을 고요하게 하고, 차는 사람을 상쾌하게 하고, 대나무는 사람을 차갑게 하고, 달은 사람을 외롭게 하고, 바둑은 사람을 한가롭게 하고, 지팡이는 사람을 가볍게 하고, 미인은 사람을 어여삐하게 하고, 중은 사람을 담박하게 하고, 꽃은 사람을 운치롭게 하고, 금석정이金石鼎彛는 사람을 예스럽게 한다.

그런데 매화와 난은 거기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옛사람이 어찌 애지중지할 줄 몰랐으리요만 평범한 꽃에 운치를 비교할 수 없고 특히 한 글자로써 적당히 표현할 수 없으므로 거기서 빠뜨린 것이다.

나는 한 글자를 뽑아내러 그것에 해당시기를 '수壽'라고 한다. 수의 뜻은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 볼 것이다."

*우봉 조희룡(1789~1866)의 글이다. 매화에 벽이 있을 정도로 좋아해 매화 그림을 많이 그려 '매화화가'로 불렸던 사람이다. 작품으로 '매화서옥도'와 '홍매대련' 등이 있다. 이글은 '한와헌제화잡존'에 있다. 조희룡은 '수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달도, 거문고도, 꽃도 좋아하고 물론 매화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조희룡의 이 글에 다 공강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해서 관심을 갖고 그 주목하는 바가 벽癖이 생길 정도라면 혹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치癡나 벽癖이 없는 사람은 그 삶이 무미건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엇에 그토록 관심을 갖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며 복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할 대상이 있는가?
나는 이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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