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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식계보학
최연식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조선을 이해하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왕조국가인 조선을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조선이 세워지고 그 기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교를 근간으로 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밑바탕으로
해서 일궈온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선은 왕과 양반
사대부가 권력을 나눠가지며 왕권과 신권의 권력의 기울기에 의해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서로가 권력의 중심을 향하되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했기에 500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왕권과 균형을 이루며 국가를 이끌어
왔던 세력들 중 조선을 지탱했던 사상적 근거인 성리학의 대가들은 어떤 계보를 형성했을까? 조선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선비들을 통해 그 맥락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조선 시대의 선비는 현대사회의
지식인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와는 달리 조선은
지식인의 상징적 역할을 했던 것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문묘종사’가 그것이다.
“문묘(文廟)는 문성왕묘(文宣王廟)의 약자로
공자묘(孔子廟)라고도
부른다. 공자(孔子)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祀堂)을 가리키는
말이며, 흔히 공자를 중심으로 그 핵심
제자들의 위패를 모시곤 한다.”조선이 개국하면서 종묘와 더불어
문묘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 곳이다. 조선에서 문묘는 성균관에서
관장하며 이 문묘에 종사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총 18명이 있으며
최치원, 설총, 안향을 빼면 조선시대에 문묘 된
사람은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김인후, 조헌, 김집 등 15 명이다.
‘조선의
지식계보학’은 바로 조선시대에 문묘종사 된
이 15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개별 인물들의 학문과 정치적
영향력에 중심을 두고 살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들이 문묘에 종사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문묘 종사와 관련되어 각 개별 인사들의 면면을 살핀다는 점에서는 미약한 점이 있다.
15명의 문묘종사 과정을 따라가는
이 ‘조선의
지식계보학’은 크게 세 번의 쟁점화를 통해
살피고 있다. 먼저 중종반정이후 조광조에 의해
제기되어 정몽주의 문묘종사 과정에서는 정도전과 정몽주를 비교하며 어떻게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가 조선의 문묘에 첫 종사자가 되었는지를
알아간다. 두 번째로는 이황에 의해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에 대한 계보의 추정과
더불어 문묘종사에 대한 구체적 과정, 세 번째로는
이황, 이이 성혼 등으로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 임금과 당파사이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졌던 과정을
추적한다.
“조선의 문묘 종사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자 선정 의 표면적 결과가 아니라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정치의 적나라한 속살”이라 말하며 개별 인물 연구가
아닌 ‘문묘 종사의 정치
동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고 있는 ‘조선의
지식계보학’에서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시각으로 문묘종사를 통해 지식계보를 따져봤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지식계보학의 내용을 채워가진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문묘종사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서 부정적인 측면의 강조로 비춰지는 측면이 있어 문묘종사가 가지는 근본적 취지에 보다 주목한 연구와 결합 된다면 보다 풍부한 조선의
지식계보학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