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김홍도 - 아버지와 아들이 길어 올린 결정적인 생의 순간들 낮은산 키큰나무 12
설흔 지음 / 낮은산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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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선택되는 화가가 김홍도일 것이다. 그러한 김홍도의 명성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풍속도첩이라는 화첩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인다. 단원 풍속도첩에는 기와이기, 주막, 새참, 무동, 씨름, 쟁기질, 서당, 대장간, 윷놀이, 타작, 편자 박기, 활쏘기, 담배 썰기, 자리 짜기, 신행, 행상, 나룻배, 우물가, 길쌈, 고기잡이, 장터길, 빨래터 등의 27작품이 실려 있으며 국가지정 보물 제527호다. 이 풍속도첩으로 인해 최고의 풍속화가로 기억되었다.

 

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나 영, 정조의 두 임금을 섬기며 화가로써 최고의 지위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현감 벼슬까지 지냈다. 그러다가 그의 최고 후원자였던 정조가 사망한 후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져 죽은 날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마지막이 모호한 사람이었다.

 

풍속화가 김홍도, 이러한 표현이 화가 김홍도를 올바로 표현하는 것일까? 풍속화로 유명하기에 다른 작품들은 없단 말일까? 이 물음 앞에 소림명월도, 주상관매도,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등과 같은 몇몇 그림을 제시하면 놀랍도록 다른 화풍의 김홍도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토록 다른 모습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 김홍도를 오로지 한 인간, 화가로써 이해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와 같은 작품으로 역사 속 실제 인물에 탁월한 상상력을 더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확실한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 설흔을 통해 김홍도의 내면읽기를 따라가 보자. 그 속에서 화가 김홍도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은 붓으로 그리는 게 아니다. 네 마음을 쪼개 그 조각으로 그리는 것이다. 너만이 듣고 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이 쉽겠느냐? 그래서 사람이 일평생 그릴 수 있는 그림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내 그림을 얼마든 흉내 내 팔아도 좋다. 하지만 그런 그림을 그리는 너는 화가는 아니다. 내 말, 알겠느냐?”

 

여기에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담겨 있다. 천재화가, 풍속화가, 도화서화원 등으로 불리는 김홍도에서 인간, 화가 김홍도로 시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작가 설흔은 김홍도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풍속화에 주목하지 않고 그의 추성부도를 통해 화가 김홍도의 내면을 추론해 간다. 그리하여 인간 김홍도의 인간성과 화가 김홍도가 화폭에 담고 싶었던 그림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보면 아들의 눈으로 그려 낸 인간 김홍도에 관한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글을 따라가다 보면 김홍도의 이야기지만 그 중심엔 그의 아들 김양기가 있다. 그렇다고 아들 김양기에 모든 것이 맞춰지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주는 매개는 역시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당대를 뒤흔든 천재 화가 대신 생의 뒤안길에 선 인간 김홍도,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아프게 지켜보면서 차갑고 광폭하기 그지없는 가을 한복판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 가는 아들 김양기의 만남이 가슴 아프도록 절절하게 그려졌다.

 

이 작품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아들을 끈끈하게 이어 주는 그림들이다. 그림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중요한 장치로도, 김홍도의 인간적 면모와 품성을 드러내는 단서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그림은 글로만 묘사되고 있다. 김홍도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작품을 이야기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화가의 그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내면에 담긴 무엇인가를 밖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이 가진 참뜻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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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22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만의 그림, 자신만의 사진, 자신만의 음악, 자신만의 글, 자신만의 춤. 자신만의 그 무엇.
인간의 내면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표현 방법이 나온 게 아닐까요? 무언가 표현한다는 것은 그래서 표현의 형식이 무엇이든 ˝그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든 나의 관점이든. 똑같은 표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겠지요. 우린 모두 보편적인 듯 유일한 존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