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에 앗긴
선비의 마음,
봄이,
영원한 봄이
그 안에 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조선 18세시 말~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바야흐로 봄이 코앞이다. 때 맞춰 내리는 봄비가 대지를 흡족하게 적신다. 이제 자연은 말 그대로 물이 오를 것이다. 언 땅을 뚫고 새순이 나오는 것은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그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 역시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꿈을 꿀 것이다. 어찌 설레지 않을 것인가?
마상청앵(馬上聽鶯), ‘말 위에서 꾀꼬리의 갖은 소리 굴림을 듣는다’의 정취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낼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봄의 어느 하루가 아닐런지. 그 흥에 겨워 시 한시를 읊는다면 꼭 이럴 것이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시 짓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귤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 실버들 물가를 오고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 놓았구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김홍도가 지었을 것이 틀림없는 그림에 붙은 화제시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이 어찌 버들가지뿐이겠는가. 춘풍에 마음 동하는 모든 것들과 그 한가운데 놓여 있는 사람 마음까지 다 훈풍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나그네의 그 마음이 꾀꼬리 울음에 머물렀나 보다.
“시는 그림 그대로요, 그림은 한 편의 시다. 그랬구나! 저 텅 빈 여백은, 이 봄날의 아슴푸레한 안개와 보일 듯 말 듯한 실비는 모두 꾀꼬리 네가 짜서 드리운 고운 깁이었구나! 나그네는 봄비를 맞고 있다. 꾀꼬리 음성에 마냥 취한 탓에 속옷 젖는 줄도 모르고 있을 뿐…….”
유독 김홍도를 좋아했던 오주석의 마음은 이미 김홍도의 그 마음임을 짐작하게 만드는 해설이다. 봄을 붙잡아 두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림 속에 봄을 붙잡아 두었다. 그림 속에 봄은 살아 움직이며 그대로 머물 것이다.
나는 김홍도의 걸작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와 더불어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풍속화가로서 김홍도가 가지는 의미나 가치를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화가로서 김홍도를 평가하는 흐름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풍속화로만 인식된 김홍도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확실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