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맑은

가을,

성근 숲,

달이 뜬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병진년화첩 중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조선 1796, 종이에 수묵 담채, 삼성미술관 리움, 보물 제782

 

그 달을 보았는가

개기월식이라고 붉은 달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늘 다른 모습의 달이지만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른 달로 느끼게도 한다. 달에 주목하며 살아온 시간이 제법 된 나에게 달을 담은 그림 하나가 언제나 머릿속에 있다. 깊어가는 가을 밤 아주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다. 이른 퇴근으로 억새 사이로 반짝이는 석양을 바라보다 익숙한 무엇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분명 비슷한 이미지를 어딘가에서 봤는데...잠시 후 김홍도의 그림 한 점이 오버랩 되었다.

 

소림명월도우리가 익히 아는 조선 후기 화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다. 풍속화가로 인식된 측면이 강하지만 산수, 인물, 화조, 시 등 다양한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소림명월도를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하게 보이는 풍경이고 눈을 사로잡을만한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강한 끌림이 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보고 있는 듯 현장감이 살아있다. 겹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가려져 있지만 그 존재가 확실히 드러난다. 조선시대 유명했던 산수화, 진경산수와는 다른 맛이 분명하다.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으나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함 보다는 달과 나뭇가지들이 품어내는 아우리가 심상치 않다.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을 넘어선 경지가 있다.

 

'소림명월도'에 대해 오주석은 가장 심상(尋常)한 것이 가장 영원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가을이 어느 가을인가? 지난해 가을인가? 이백 년 전 가을인가? 계절과 자연에 대한 이 완벽한 감정 이입은 보는 이의 숨길을 턱 막을 지경이다...... ‘소림명월도는 사람이다. 가을을 보고 그것을 느꼈으나, 마음에 잔물결 하나 일으키지 않고, 있는 가을 그대로 관조할 수 있었던 사람, 스스로 자연과 하나가 됐던 김홍도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살아 당시 이미 절정기에 이르고 왕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화가 김홍도에게는 자신을 거듭나게 할 무엇이 필요했을까?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이 가을이다. 자연뿐 아니라 사람도 이와 닮았다. 유독 가을을 건너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더 튼 울림으로 전달되는 성찰의 이미지가 전해진다.

 

김홍도를 김홍도답게 알게 하는 가장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까?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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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14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홍도의 선이라고 생각해왔던 분위기와 전혀 다르네요. 사람의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오류가 많은 건지. 풍속화 아닌 다른 그림들을 접하면서 김홍도라는 화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림에서 끌림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림의 특정 부분에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요, 흐린 선인듯 시선을 끄는 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묘합니다.(이 와중에 텔레토비의 햇님이 생각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