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내리기 시작한 눈이 잠든 사이 온 세상을 자신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번 겨울 두번째 내린 눈이 이렇게 많이 와 올 겨울은 눈 풍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는 풍년이 든다고 하니 이 추운 겨울도 그리 시린 가슴은 아니다. 풍성한 내년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본체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저 멀리 나무 한그루는 감나무로 잎을 떨군채 동네 새들의 놀이터로 활용된다. 저 감나무는 앞 풍경을 바라보는 기준범으로 작용하여 멀리 관음사가 깃든 검장산으로 시선을 이끈다.

 

서쪽으로 난 서재의 넓찍한 창으로 앞산 눈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고 오후 내내 따사로운 햇살이 서재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따로 난방하지 않아도 될만큼이다.

 

눈으로만 바라보기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신발은 고쳐신고 길을 나선다. 이번엔 저수지 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앞 눈경지와 옥과 인근의 농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저수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저수지 위쪽으로 사람의 흔적이 없기에 산에서 내려온 깨끗한 물이 고여 맑기만 하다. 가까이 물이 있어 사람 살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봄이나 가을 물안개의 근원지이지만 지금은 포근한 눈 이불을 쓰고 얼어 있다. 멀리 연산에 머리에서 내려오는 눈 담은 구름이 밀려 온다. 마을 안길을 걸어 저수지까지 오는 것도 힘이 든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걸음걸이를 자꾸 더디게 만드니 말이다.

 

저수지 위쪽까지 걸어가는 동안 제법 큰 동물발자국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인다. 간밤 눈을 피해 마을로 내려온 동물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동물이 이런 발자국을 남긴 것인지...더 올라가자 곧 답이 나온다.

 

지난 초겨울 벌을 친다는 사람이 저수지 위쪽이 콘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벌통을 늘어 놓았는데 그 벌 키우는 아저씨와 함께 사는 개의 발자국이였다. 큼직한 개 두마리가 경계하는 몸짓으로 짖고 있다. 올가오는길 내려온 사람 발자국이 있었는데 아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저수지를 건너가는 조그마한 다리가 있는데 그 부근에 정자가 있다. 여름철 사람들이 모여 추름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 바로 앞 소나무가 눈을 뒤짚어 쓰고 저수지를 지키고 있다. 마치 저수지의 수호신처럼 말이다.

 

 

늦가을 올랐던 연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로 접어든다.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올라가다 지나온 길을 돌아 본다. 눈 위로 처음 발자국을 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누군가는 처음 눈길을 걸어갈 때는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올 사람들을 생각하여 똑바로 가라고 했지만 자꾸 미끄러지는 발걸음에 비틀거리기만 한다. 이래서야 뒤따라올 사람들이 헷갈리기만 할 것 같다. ^^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과 함께 게곡물로 더위를 식혀준 곳이지만 지금은 계곡도 산길도 눈으로 덮혀 있다.  

 

나무며 길 위에 쌓인 눈이 며칠전 내린 눈과 같지 않다. 묵직한 느낌으로 착 가라앉았다고 해야 할런지...하여 소나무며 대나무 잎에도 쌓인 눈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눈은 많이 왔지만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고 수분을 많이 담고 있어서일까? 길 위를 걷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산 정상으로 가는 길 초입에 있는 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눈을 머금은 구름과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서이다. 길을 돌아 다시 저수지까지 내려왔는데 올라올때 만난 개들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이 와서 이제는 집으로 들어간 것일까?  

 

 

저수지 전너편 능선을 올라 다시 저수지를 발 아래두고 연산을 본다. 올라올때 본 것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이제 마을 옆 호남고속도로가 보이는 정상으로 올라간다. 급경사를 올라가야 하는데 지팡이가 없어 죽은 산죽나무 한가지를 집어 들었다. 지팡이 삼아 의지하고 올라갈만 하다. 내집 서재에서 바라보면 사야를 가리고 있는 산의 뒷편으로 가는 길이다. 그곳에 올라가면 정자하나가 있고 그곳에선 순천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고속도로 건너편이 전남과학대학이 있는 옥과다. 비록 면소재지이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있어 젊젊은이들이 많은 곳이다. 군립도서관에 아직까지도 대장간이 남아있는 시골장까지 열려 사람살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사진의 가운데 오른쪽 얼핏 보이는 마을이 내가사는 연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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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2-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남이신가요. 정말 평지밖에 보이질 않군요!
저렇게 소복히 눈이 쌓이 평지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하고 꽉 찬 느낌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2-2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광주는 눈이 별로 많이 안 와서 오전에 기온이 올라가니 많이 녹았어요.
옥과는 광주와 가까와서 그런지 아파트가 꽤 많더군요.
혹시 무진 님 사는 곳이 오산인가요?

프레이야 2012-12-2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화리,라고 하셔서 제가 아는 그곳인가 했어요.^^
반갑습니다. 덕분에 눈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보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평화로운 풍경이 참 고맙습니다.^^
제가 사는 곳엔 어제도 눈이 오지 않았어요. 대신 비가 좀 내리다 그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