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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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
바야흐로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는 시대다. 수천 년 전, 인간 삶의 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상가와 철학자를 비롯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학문을 하며 통합적 시각을 기반으로 삼아 연구하고 토론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학문을 전개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역사의 시간을 더해가며 학문에는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 세분화 되어왔고 그 결과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로인해 사람들의 삶은 물질적으로 보다 풍요롭게 되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학문의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 예전보다 풍요로워졌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소외현상으로부터 권력에 의한 인간성 말살, 부의 불균형 분배, 전쟁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노출되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어 장애요소로 등장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학문간 벽을 허무는 융합과 통섭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벽을 쌓고 경계를 강화하며 이를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 팽배하다. 학문의 도가 사라졌다거나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특히, 지난 과거의 오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 사회 전반에 걸쳐 권력의 중심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결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맥은 유지되고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과거의 오류가 가장 심하게 남아 있는 분야로 교육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제 식민지시대 침략자의 의도가 관철된 정책이 해방 후 미군정으로 이어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기에 국사과목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정책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 건제하는 것이리라.  

아집은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기다. 지킬 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믿고 있던 것에 새로운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이해받지 못할 일이다. 더구나 학문하는 학자들 사이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의견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 학문하는 자세가 아닐까? 하지만 학문하는 사람들이 아집을 내 세우는 것은 학문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기득권을 지키고자하는 것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학자들 간에 전면전을 치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중심은 바로 사관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중심으로 이어져오며 그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 왔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득권에 흠집을 낼만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에 대해 기득권자들이 행하는 태도가 비판이라는 가면을 쓰고 폭력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이덕일의 관점에 정병설을 중심으로 유봉학, 안대회, 오항녕 등의 비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습이다.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에 앞서 학문하는 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보기 드문 모습이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세간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드는 역사의 이야기고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나름대로 생각을 가진 대중들이 먾은 현실이다 보니 흥미를 증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양편에서 주장하는 이야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는 무엇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전문자료나 사료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더군다나 사료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 맥락을 잡아가는데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 독자들로써는 양자사이에 벌어지는 논고의 근거나 주장하는 바를 통해 살피는 것이 우선되는 것이리라. 상대편의 주장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어떤 시각으로 설득해 가는가를 보면 신뢰가 가는 편이 가려지게 마련이다. 

이주환 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그간 벌어진 이덕일의 주장에 대해 정병설을 중심으로 유봉학, 안대회, 오항녕 등이 제기한 비판에 대한 비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중록’과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롯하여 이덕일과 안대회, 오항녕의 저서를 두루 살펴본 사람으로써도 구체적 사항에 들어가서는 어느 편에 서야할지, 어떤 사람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할지 난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들 저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말하는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 대치되는 주장을 비교하면서 살핀다면 무엇이 올바른 시각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주자학, 노론이나 한중록, 사조세자, 정조의 죽음 등은 어쩌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하는데 필요한 한 요소로 작용하는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그보다 근본적인 것, 바로 이 양자가 대척점에 서 서로에 대한 칼날을 드러내게 만드는 근본에 대한 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노론에서 일제침략시대의 권력자 그리고 미군정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오늘에 이르며 권력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엔 분명 한계와 특정한 목적이 있다. 이 특정한 목적은 자신들이 선점한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말에 무게중심이 간다. 역사를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재를 올바로 살기위해 반드시 해야 할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 책무를 방기하고 자신의 이해요구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역사를 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듯 역사는 그들을 기록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행해질 역사의 평가를 어떻게 감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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