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다
김태연 지음 / 시간여행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오직 보는 자만이 보리라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은 상대성 원리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세계다. 이 명제는 내가 알고 있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고정 불변하는 그 무엇도 없으며 가치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비교할 대상에 의해 규정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했던 말 중 하나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한 것이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상대성의 원리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알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잊고 살아가는 모순에 처한 자신을 본다. 

이처럼 알고는 있지만 삶속에 운용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식하지 못하는 더 많은 것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인식하는 범위 자체를 한정 지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지극히 단편적인 사건의 조합만으로 세상의 판단하고 그 판단에 의해 모든 진리가 규명되는 듯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을 위안삼아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할 수밖에 없고 이해하는 범위가 전부라 여기며 살아간다.’ 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확인시켜주는 이야기를 접하며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다’라는 김태연의 소설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약하고 인식하는 범위가 얼만 한정된 시공간인지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주인공 나는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공으로 인해 살던 고향을 떠나 법학과에 입학하지만 아버지의 친구인 왕거지와의 만남을 인연으로 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일정정도 성공을 거둔 나는 ‘챔피언스리그’라는 기록을 접하며 재야 천재수학자 김광국과 다희라는 인물들이 겪는 일을 통해 스승 왕거지와의 약속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컴퓨터, 인터넷, 수학, 천문학, 물리학 등 최신 과학적 성과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구로 사용된다.

수학, 물리학, 천문학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고수들이 등장하며 우주의 구성 원리를 찾아가는 지적 탐험과정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소설이 가지는 허구성이라고 만 치부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규명되었고 또 밝혀지고 있는 다양한 과학적 원리, 수학이 찾아가는 명쾌한 방정식의 성립과정 등 따라가기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 주를 이루지만 저자는 묘하게 추리물 성격의 사건 진행과 결합하여 딱딱함을 다소나마 해소하고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 안에 있는 너’ 등 철학적 개념을 수학적으로 방정식으로 확인하려는 지난한 지적 탐구과정이 선입감처럼 지루하지는 않지만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수식, 수학적 개념들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저자의 표현대로 K리그, 챔피언스리그, 코스모스리그로 이어지는 시공간,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동일한 주제를 통해 엮어 놓고 있다. 그것을 풀어가는 매개가 축구공이라는 구를 통해서 말이다. 이는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축제 그리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는 생각이다. 수학적 이론의 어려움도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비약된다는 점, 사건의 마무리가 흐지부지 한다는 점, 미완의 마무리 등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최근 톰 지그프리드의 게임하는 인간 호모루두스라는 책을 통해 수학이 주는 학문적 매력에 흠뻑 빠진 기억이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학문분야가 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성과의 총화가 수학적 방정식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것이다’라는 이 소설로 다시금 그러한 충격에 노출된다. 하지만 그 충격은 흥미로운 지적탐구 과정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묘한 흥분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온갖 문명의 이기가 수학을 비롯한 과학의 성과가 집적된 결과물이지만 그 구체적 원리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도 잘 사용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 그 속의 지구라는 행성에 대해 그 구성 원리를 구체적 알지 못함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학문이 인간 존재의 근원을 밝혀가려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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