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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 이야기 - 옛그림의 인문학적 독법
이종수 지음 / 돌베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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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막연하게 동경하는 대상이 있다. 애써 이유를 찾는다면야 몇 가지 댈 수도 있지만 그런 막연함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한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그림’이다. 몇몇 화가와 친분이 있고 그들의 창작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림에 대한 나름대로 이미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과 나눈 ‘그림 이야기’가 더 큰 이유가 되리라 생각된다. 그림이 뭐고, 화가가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또한 그 작업과정은 어떤가를 지켜보며 차곡차곡 쌓인 생각이리라. 

몇 번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손대지 못했던 그림의 세계는 그래서 동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접 손대지 못한다고 보는 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호기로 그림에 대한 상식을 쌓아왔다.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그들과 나만의 소통을 위한 전재조건이라도 되는량 말이다.

이 책 ‘이야기 그림 이야기’를 들고 제목을 한참 동안 생각해 본다.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쉽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제목의 느낌에서 오는 분위기 탓이라 생각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알겠는데 중심 주제를 ‘이야기’에 두어야 하는지 ‘그림’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라고 생각해 두었다. 

우선, 저자는 이 책 서두에 이야기 그림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이야기 즉, 텍스트가 있고 그 텍스트를 이미지화 한 결과물이 이야기 그림이고 관심은 바로 그 이야기 그림에 대한 접근이라 해석된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 그것도 시대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야기를 이미지화 한다는 것은 어쩜 화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면서도 마음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나름대로 형성된 이야기의 이미지가 있기에 새로운 시각이어야 하면서도 근거로 삼고 있는 이야기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내용의 근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는 이여기 그림이 변화되어 가는 흐름 즉, 권(卷), 축(軸), 병풍(屛風), 삽화(揷畵) 등 네 가지 그림 형태에 따라 각각의 분야에서 두 편의 작품을 읽어가고 있다. 그래서 바로 ‘이야기 그림’ 읽기가 된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읽어간다는 것의 전재는 그 그림 속에 담기 이야기를 찾아내고 화가만의 독특한 그림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두루마리 형식의 권이 이야기 그림의 가장 앞자리에 서며 이는 이야기 시간상의 흐름에 공간이라는 장소와 결합된 것으로 시각적으로 시간상의 흐름이 중심이 되는 듯하다. 반면 축은 시간상의 흐름 보다는 그 시간을 축약해서 특정한 공간이 중심이다. 그렇게 그려서 벽에 걸 수 있는 형태의 그림을 축이라 한다. 더불어 병풍은 이 권과 축의 시간과 공간을 모아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루마리 권에 해당되는 고개지의 낙신부도, 교중상의 후적벽부도에 이어 축의 그림으로 구영의 춘야연도리원도, 장대천의 도원도 그리고 병풍으로 정선의 귀거래도,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를 읽고 삽화로는 진홍수의 장심지정북서상비본과 구사·왕위군 부부의 노신 논문·잡문 160도를 저자의 시각으로 읽어간다. 

그럼, 이야기 그림을 어떻게 읽어 가는가? 저자는 그것의 중심에 ‘무엇을 읽을 것인가’가 있다고 말한다. 작품 하나하나를 읽어가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이미 그림 읽기를 시도하면서 짐작하는 바이지만 독자들에게 그림 읽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섬세하고 자상하며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냥 안내자가 아닌 텍스트와 그림 그리고 독자 사이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탁월함이 돋보인다. 특히 김홍도의 그림에서 김홍도 자신의 내면에 담긴 뜻을 추론하며 의문을 남기는 것이나, 구사·왕위군 부부의 노신에 관한 그림 읽기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노신의 제치를 넘어서는 작품 읽기가 나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정한 대상을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그 전형적인 실례를 저자는 그림 읽기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그림이 ‘이야기 그림’이기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그림 읽기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그 이야기까지 해석본까지 제시하고 있어 이해를 돕는다. 작품 선정에서도 중국 작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시대 화가를 선정한 것으로도 저자의 배려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의 발간으로 그림과 독자들에 사이를 대단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림을 이렇게 읽어간다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그 만만치 않은 과정을 통해서 접근을 시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미소가 따라 붙는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이며 그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이 책은 훌륭한 안내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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