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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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명암을 미완으로 남겼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무게의 시선으로 만난 첫인상은 흔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가벼운 스토리에, 이런 작품을 연재하고 있던 나쓰메 소세키는 죽음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의 글쓰기는 삶이란 나와 타자간의 충돌과 한 존재 안의 이중적 욕망의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메시지로 정돈되고 있었을까? 그의 수필이나 연설문·시론들에 비교해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작가의 마지막 소설은 예상 밖의 가벼움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치질 수술을 결정하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쓰다는 침울한 기분으로 처음 발병했을 때의 격심했던 고통을 기억하면서 불쾌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주위 사람들이 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점잔을 빼고 있는모습에 쓰다는 불쾌해진다. “자신의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과 어쩌면 바로 지금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18p)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더구나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전차 안의 승객들은 그의 눈길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19p)에 대한 자각은 앞으로 쓰다가 타자들과 만들어갈 관계에 대한 전망을 하게 한다.

 

남편 쓰다의 냉정함이 서운한 오노부는 처음 만남을 추억하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남편 때문에 외롭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지만 나처럼 못생긴 사람은 다시 태어나기라도 하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239p)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다. 한편, 외부에서는 보는 부부의 모습은 오노부가 쓰다를 손 안에 넣고 자유롭게 놀리는”(247p)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쓰다도 그녀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강인함에 불편함을 느낀다. 오노부는 재빠르고 영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사랑하는 남편 앞에서만 자신의 성품을 누르고 있다.

 

쓰다와 오노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격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관계망을 형성하며 일상을 이룬다. 감춰진 과거는 관계 안에 감춰져 있던 위기를 조명하고 쓰다와 오노부의 불안을 조성한다. 쓰다의 누이 오히데와 친구 고바야시의 암시와 요시카와 부인의 행동은 오노부를 불안하게 하고, 오노부는 남편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럼 얘기해주세요. 제발 얘기해주세요. 숨기지 말고 여기서 다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단숨에 안심시켜주세요.”(451p) 그녀의 진심이 진실보다는 안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쓰다의 옛 연인이었던 기요코의 소식을 알려주며 그녀가 있는 온천장으로 요양 가도록 하는 요시카와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오노부에게 쓰다의 비밀을 암시하는 고바야시는 이상주의자이다. 사회주의자로서 근대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요시카와 집안과 오카모토 집안(오노부의 고모부 집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쓰다의 실체를 드러낸다. 고바야시는 쓰다의 사랑을 허위라 하고, 쓰다는 고바야시의 사상을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고바야시는 오노부의 외로움을 들여다본다.

 

부인, 저는 남한테 미움을 받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일부러 남이 싫어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 존재를 남에게 인식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남의 미움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오노부 앞에 마치 딴 세상에서 태어난 듯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펼쳐졌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고 또 누구에게나 사랑받도록 해나가고 싶으며, 특히 남편에게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외 없이 세상의 누구에게나 들어맞으며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다.(253p)

 

미움 받는 행동이라도 해서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사상을 세상 앞에 보이려고 하는 그의 간절함은 세상과 융화될 수 없는 사상가,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 절절한 외로움 앞에서 오노부는 자신의 외로움을 확인한다.

 

 

미완이지만 이 작품에는 수미쌍관이 있다. 도입부에 등장한 레일 위의 전차는 후반부 온천으로 향하는 그가 탄 경편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도입부, 병원에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쓰다의 생각은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우연, 우연, 하는 이른바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19p)이라고 한 푸앵카레를  떠올린다.

후반부, 온천으로 향하는 쓰다가 탄 기차(경편)는 탈선하고 여러 번 앞으로 밀었다 뒤로 되돌리는 과정을 반복한 뒤 제자리로 돌아온다. 함께 탄 노인들은

또 늦어지고 말았군, 친구, 덕분에 말이야.”

누구덕분에 말이죠?”

경편 덕분이지. 하지만 이런 일이라도 없으면 졸려서 안 되네.”(523p)

라는 느긋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은 이 경편이 늘 탈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예상하고 있었다.

푸앵카레의 말처럼 인생에서 만나는 우연이라고 하는 사건들은 사실 예측 가능한 것들이다. 인생의 단계·시기마다 겪어야 할 일들이 찾아오고 관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노부의 행동에서도 사람들에 대한 예측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쓰다가 기요코를 만나고 미완으로 마친다. 그가 온천마을에 도착해서 나는 지금 이 꿈꾸는 듯한 것이 연속된 곳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꿈, 지금도 꿈, 앞으로도 꿈, 그 꿈을 안고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524p)라고 생각한 것처럼 결말이 날지 모르겠다. 그럼 그는 무엇 때문에 도쿄를 떠나 거기까지 갔을까?

 

쓰다는 적막한 마을을 지나며 희미한 전등 불빛과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가로놓인 커다란 어둠을 비교했을 때”(524p) 꿈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암을 만들어내는 빛은 희미하다. 그래서 꿈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지식인의 이상도 과거의 사랑도 희미한 빛이다. 도쿄에 있는 아내 오노부는 현실이고 그가 만나러 가는 기요코는 꿈이다. 빛과 어두움, 현실과 꿈은 삶에 혼재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타인들과의 관계가 끼어들고, ‘명암을 만든다. 인생은 관계가 만들어낸 의미들로 이루어진다. 그 관계망의 점들에 사람이 있다. 지나온 시간 속의 사람, 관계, 사건이 만들어낸 의미는 현재의 나를 비추는 빛이다.

 

놀라운 일은 이와 동시에 현재의 내가 천지를 다 가리고 엄존하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이다. 일거수일투족의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이 ()’라는 존재가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이월하고 있다고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심경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기준을 두고 자신의 뒤를 돌아다보면 과거는 꿈이 아니다. 아주 명백하게 현재 나를 비추고 있는 탐조등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정월이 올 때마다 나는 역시 보통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나이를 먹고 늙어 쓸모없게 되는 상태가 된다.

생활에 대한 이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그리고 모순 없이 공존하고, 상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의 논리를 초월하고 있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나는 지금 아무것도 설명할 의도가 없다. 혹은 해부할 수완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연초에 즈음해서 나 자신은 한 형체 두 모습이라는 견해를 품고 내 전 생활을 다이쇼 5(1916)의 조류에 맡길 각오를 할 뿐이다.”

(188~189p 점두록」 『나의 개인주의 외나쓰메 소세키)

 

점두록은 그가 명암을 연재하기 몇 달 전에 쓴 글이고 같은 해에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을 미완으로 둔 채 삶을 마감했다. 말한 것 처럼 그는 일거수일투족의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이월하고 그 과거로부터 현재를 탐조한다. 그렇게해서 조명되는 그의 안에 공존하는 두 모습에 대해서 설명할 의도가 없다. 그런 글쓰기를 명암에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힘을 빼고 애써 부인하지도 강조하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읽었다. 5년 전 죽음 앞에까지 갔었던 작가는 오히려 가벼움을 취하여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가볍게 보였던 작품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중요한 의미들을 생성했고, 미완의 여백에 무게를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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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11 0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소세키 소설 다 보시고 이렇게 상도 받으셨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11 08: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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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보부아르는 여성의 상황을 제시하기 전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생물학적·정신분석적·사회학적인 분석을 한다. 그녀는 이 탐구를 구조주의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고 있다. 구조주의는 사물의 참된 의미가 사물 자체의 속성과 기능에서가 아니라, 사물들 간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여성이 2로 여겨지는 것은 남성이 1인 사회가 여성 자신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항하는 존재로서 몸, 심리, 능력, 기능을 인식하는 것이다.

 

숙명 편(1)에서는 자궁을 지니고 있는 몸이 단지 번식의 객체로 여겨지는 것은 부장제(父長制)라는 사회적 환경 때문이다. 여성이 만들어지는 생식세포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관념에 지배를 받는 유추를 하고 여성을 객체화 한다. 탄생과 성장 단계에서 남성과 대비되어 몸의 소외를 겪는 여성은 임신의 단계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심각한 소외를 겪는다. 폐경기의 여성 역시 여러 가지 기능의 중단과 함께 번식 기능의 종결과 함께 같은 상태에 빠진다.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은 여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며 또한 여자의 상황의 본질적인 요소이다.”(65p) 왜냐하면 육체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파악하는 도구이며, 세계는 파악하는 방법여하에 따라서 상이한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65p)

 

생물학적 조건이 여자에 대하여 움직일 수 없는 숙명을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남성에 비교해서 육체가 약하다는 것은 사회에서 여성이 타자(他者)라는 것에 이유가 되지 못한다. “생물학적 조건은 존재론적·경제적·사회적·심리적인 전체의 관계에 잘 비추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70p)

 

남성의 거세 콤플렉스와 비교되는 여성의 소외에 대한 정신분석적 견해도 거부한다. 이것은 남성의 몸에 대항하여 분석된 것이다. 여성의 초월이나 소외행위로 간주되는 남성적 태도나 여성적 태도는 객체의 역할(‘타자의 역할)과 자기 자유의 요구 사이에서 망설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여자가 객체가 되는 이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를 아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다.

 

마찬가지로 엥겔스의 사유 재산 제도와 남성의 세력 팽창 계획 아래서 여성의 무능력과 몰락을 설명하려고 하는 엥겔스의 관점도 불충분하다. 프로이트의 성적 일원론과 엥겔스의 경제적 일원론을 거부한다. 육체 성적생활 기술 등은 인간존재의 총체적인 전망 속에 파악될 때에 한해서만 인간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가치는 실존자가 존재를 향해 자기를 초월하는 기본적인 투기(投企, 기투)에 의하여 지배된다. 이때 동일성에 기투(企投)한다면 그 가치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며 여성은 영원히 타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분석의 과정에서 주목하게 된 것은 사유재산제도와 사회주의 하에서 여성의 지위이다. 노예와 같은 지위를 갖고 있었던 아테네나 다른 도시국가들과 달리 스파르타에서 여성은 남성들과 동등한 수행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우월한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공산주의가 여성에게 약속한 지위 역시 달랐다. 어느 정도는 사유재산과 자본주의가 여성을 객체화 하는 중요 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 편(2)에서는 남성에게 속해왔던 세계와 여성들이 반복과 내재 속에 갇혀있던 역사를 다룬다. 원시 유목민의 삶에서부터 근대의 여성의 지위에 대해, 1위가 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서술 한다.

왜 인간인 여자는 자주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는가? 노동력의 필요가 개발해야 할 원료의 필요보다도 더 절실했기 때문에 인류가 가장 맹렬하게 출산을 요구하던 시대에 있어서조차, 또 모성이 가장 존경을 받던 시대에 있어서조차도 인류는 여자에게 제 1위를 획득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서 인류는 단순한 자연적인 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종으로서 자기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정체가 아니다. 그것이 목표하는 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데 있다.”(100p 上卷)

 

사유재산제도의 등장과 함께 여성은 사유재산과 결부되어서 그 운명이 결정되고 재산에 애착을 갖게 된 주인은 재산을 존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상속자를 만든다. 그 재산과 아이들은 여성과 분배하지 않았다. 사유재산제도와 함께 국가주의 아래서 가정단위에 간섭과 통제가 이루어지고 자본주의 아래서 재산의 세습이 견고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공공에 대한 여성 사회참여와 관련해서 여성의 권리는 남성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여성들은 남성이 여자를 정의하는 대로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214p 上卷)해왔다.

 

신화 편(3)에서는 가부장제의 사회 안에서 만들어져 내려온 여성다움의 신화를 내면화 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신화와 문학에 나타난 여성 숭배의 이중의 의미, 여자의 육체에 대한 신화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을 살핀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의 신화들이 작가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윤색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에서 타자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성숭배와 신화가 나타난 몽테를랑, 로렌스, 클로델, 브르통의 작품을 스탕달과 비교한다. 그들 작품에는 남성의 자유, 초월조차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들 각자에 있어 이상적인 여자는 자기에게서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 줄 수 있는 타자를 정확히 구현하는 여성이다. ……몽테를랑은 그로 하여금 남성의 권위를 측정하게 하는 여자를 동정하는 데 찬성한다. 로렌스는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를 포기하는 그런 여자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클로델은 남성에게 복종함으로써 신()에 복종하는 여종자(女從者) 하녀 헌신자를 찬양한다. 브르통은 여자가 자식이나 애인에게 가장 온전한 사랑을 바칠 수 있기 때문에 여자에게 인류의 구제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스탕달의 경우에도 여성 인물이 남성 인물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녀들이 남자보다도 더 격렬한 기세로 그 정열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373p 上卷)

 

남성들이 굳게 믿는 여성적 신비는 여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신비로 남겨두는 상호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지적한다. 여성은 그렇게 자신의 몸과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부장제(父長制)의 희생자인 여성들이 여성다움에 대한 신화를 내면화하고 가부장제에 공모한다.

 

2부 체험 편에서 가장 중요하고 쟁점이 되었던 제2부 체험의 서론과 제1편 상황 부분이다. 서론에서 작가는 여자혹은 여성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어떠한 원형(原形), 어떠한 불변 부동의 본질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의 주장 중 대부분의 경우는 현재의 교육과 풍습의 단계에서이다. 여자가 여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실존의 공통적 배경을 그려 보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형성편(1) 1장 유년기를 들어가며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392p)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작가의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가장 적확하다. 피투(彼投)된 현존재는 끊임없이 기투(企投)한다. 피투는 현사실성을 이야기 하고 실존은 그 안에서 떠날 수 없고 영향을 받는다.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피투된) 역사, 사회(현사실성)가 그 존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형적, 본질적 여성이 아닌 사회적 환경 안에서 규정되어지고 교육되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년기와 젊은 처녀, 중년의 여성, 노년을 맞이한 당대의 여성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그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핸디캡을 지닌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며 성장하는 것은 앞에 유치되어 있는 타자로서의 전망 때문이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성적운명을 성취한 후에도 이 과거의 인식을 바꿀 수가 없다.

 

상황 편(2)에서는 결혼제도 하에서 제약을 당하는 기혼여성의 몸과 성취, 관계의 욕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관계에서 올 수 있는 생물학적인 남녀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사랑이 있었을 때도 사랑이 없을 때도 여성들에게 굴욕감과 어려움을 준다. 결혼한 여성은 어머니로서 강요된 모성을 짊어진다. 또한 아이는 여자의 기쁨이며 정당화이다.”(191p) 자기의 노력으로 성취를 이룰 수 없는 가정주부, 아내, 어머니는 타자에 의하여 주부, ‘아내, ‘어머니, ‘여자로 인정받기를 원한다.”(253p 下卷) 이렇게 만족을 구하고 있다. 남성의 보호아래 있다는 것과 경제적 지원, 불감증 등을 들어 당대의 매춘부와 기혼여성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의 노년은 위기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자는 스스로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제적 발전도 이루어야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집단적이어야 한다.

 

반면, 여성이 자신의 상황을 바꾸려는 왜곡된 노력이 나르시시즘, 정열적 사랑에 빠짐, 신비주의로 나타난다. 정당화 하는 모습이다. 특별히 끊임없이 연애하는 사랑에 빠지는 여인의 자기소멸의 꿈은 실제로 존재하고 싶다는 격렬한 의지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남편)이 가치를 보유하길 바라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경험한다. “연애는 여자에게 있어서 운명 지어진 의존적인 생활을 감수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는 최고의 시도이다.”(448p 下卷) 그러나 그것 또한 하나의 잔인한 속임수일 뿐이다.

 

문학과 예술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이 해방하려는 방편이 되었고, 전위에 섰다. 하지만 해방을 모색하는 여자들조차 여전히 남자 앞에 주체성이 부여된 객체로서 자신을 바라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남성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존재로부터의 해방을 하려면 남성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주체로서 일어서야 한다. 결론 부분에서 보부아르는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마치고 있다.

 

노예와 여성의 차이가 없는 모호한 성관계에 대한 서술을 읽으면서 ‘컬러퍼플을 기억했다. 노예에서 해방된 여성이 사랑하지 않는 남성의 보호 아래에서 겪는 비인간적인 상황!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자신이 화장실인 듯 느껴졌다는 여주인공의 담담한 고백이 너무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여성과 노예를 연결 배치시킨 작가의 의도가 읽혀지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톨스토이의 불행한 결혼과 어느 시골 기차역에서 발견된 그의 마지막에 대해서만 기억하고, 그의 명성 뒤 가려져 소외된 채 오명을 쓴 톨스토이 부인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의 성에 제시된 사실들은 지금에서 보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고 동의하지 않는 사실들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여성에 대하여 탐구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방법은 당시로서는 전무한 것이었고 여성학에 있어 새로운 제시였다는 생각이다.

 

당시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더 나아가 오늘날 여성의 상황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한층 더 복잡한 역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자립뿐만 아니라 욕구 실현이라는 문제가 더욱 어려운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한 가지 떠오른 그림이 있다. 유명한 정치인들의 경우 부동산과 같은 축재를 부인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들을 본다. 명예, 성취, 권력은 남편이 가져가고, 그 부동산, 주식, 심지어 뇌물수수에는 부인이 연루된다. 남편들은 그녀의 불의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듯한 입장을 취하는 모습을 본다. 남편의 명성, 성공, 가치를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근대 여성의 모습에서 달라진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반화 시킬 수 있는가? 있다고 본다.

 

내가 피투되어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기투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나는 어떤 존재인가? 앞으로 어떤 의미에 기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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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04 22: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칼라퍼플 저도 충격적이면서도 사실적이란 생각했어요. 톨스토이의 아내도 그렇고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첫 시작을 패널티를 받고 시작하는 것 같아요. 너무 잘 읽았어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1-11-04 22:30   좋아요 5 | URL
감사합니다
글 써놓고 줄이느라 반나절이 걸렸네요 ㅎㅎ

청아 2021-11-04 22: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소비를 부추기는 부분들이 과거와는 분명 다른 점이고 이에 따른 심리적 영향이 새롭게 연구되어야 하고 개별적 성찰도 시급하다고 봐요.
그리고 저도 정치인들과 그 부인들의 공동비리에 대해 <제2의성>읽으면서 생각했는데요. 윤모씨는 그냥 아내핑계대는 부류같아요ㅎㅎ
그레이스님과 함께 이 책을 읽어서 좋아요~♡ ٩(ˊᗜˋ*)و♡

그레이스 2021-11-04 22:46   좋아요 5 | URL
^^
생각한 부분이 많았는데 너무 길어져서 ...!

저도 기뻐요~♡

단발머리 2021-11-04 23: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유재산제도와 자본주의 발전이 여성의 객체화에 중요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눈에 띕니다. 역사적으로 불평등했던 여남 관계와 여성의 현재 상황에 대한 왜?의 질문이 항상 그 두 개의 요인으로 수렴된다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넓고 깊게 사유할 수 있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1-04 23:5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레포트 밀려서 늦게 낸것 같은 느낌이예요^^

바람돌이 2021-11-05 0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훌륭한 정리라니 대단하십니다.
제가 제2의 성을 읽을 때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같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

그레이스 2021-11-05 06:38   좋아요 2 | URL
부끄럽지만 읽고 정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독서괭 2021-11-05 0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독도 대단하고 정리도 대단하고 다들 대단하세요~~!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가 “여성은 남성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쓴 부분이 떠오르네요. 저도 언젠가..!! 언젠가는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06:40   좋아요 3 | URL
언젠가 꼭!^^

이 책 때문에 다른 책들을 못 읽어서 조급했는데 그만큼 가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새파랑 2021-11-05 0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건 리뷰가 아닌 논문 같아요 ^^ 멋지고 대단 하세요 👍👍

그레이스 2021-11-05 09:47   좋아요 4 | URL
부끄럽네요^^
과찬이신줄 알면서도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1-11-05 09: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박수 드립니다, 그레이스 님.
저는 정리를 못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약점인데 그레이스 님은 정리를 너무 잘해주셨네요. 그레이스 님의 이 리뷰는 이 책을 읽은 제가 읽기에도 좋지만 이 책을 읽기 전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아요. 이 글을 읽고 시작하면 제2의 성이 더 잘 이해될 것 같아요. 저는 2년후쯤 제2의 성을 다시 읽을 계획인데 그 때 이 리뷰를 또 한 번 읽고 책을 읽어야겠어요.

두꺼운 책 읽느라 고생하셨고 무엇보다 정리도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09:48   좋아요 3 | URL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신 다락방님께도 감사드려요^^~♡

scott 2021-11-05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분량 줄이지 마시쥐!!
그레이스님 완독에 무한한 박수를~~👏👏

그레이스 2021-11-05 11:57   좋아요 2 | URL
책 분량이 많다보니 ...!
피곤함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1-05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쓰신 기투 한다는 표현은 자주 쓰이는 것이 아니라서 조금 낯선 느낌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1-05 23:56   좋아요 2 | URL
여기서 사용한 기투는 어떤 가능성, 의미에 자신을 던진다는 뜻으로 보시면 될듯요.^^
평안하세요~

scott 2021-11-06 00:35   좋아요 1 | URL
기투 단어 뜻 메모 ~메모~

수이 2021-11-09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 가슴 찔리는 문장들이 많은걸요. 오늘도 찔리고 기분 좋아하고 있으니 변태처럼 느껴져요 스스로가 후후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1-09 22:03   좋아요 0 | URL
독성인의 희열?이죠^^
감사합니다~
 
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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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가 힘을 빼고 쓴 듯한 작품. 삶에는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현실과 이상이 함께 간다. 미완의 열린 결말에 사건들을 채워넣는다. 우연이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때 쓰는 것이라 한 푸앵카레를 기억하며, 새삼 삶은 예측 가능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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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31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 보신 건가요 꽤 길다고 하던데... 다 보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레이스 님 시월 마지막 날 잘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10-31 01: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시월 마지막날 잘 보내세요

다락방 2021-10-31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플래그 엄청 붙이셨네요!!! >.<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레이스 2021-10-31 15:05   좋아요 0 | URL
플래그 양만큼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ㅋ
 


춘분 지나고까지』 『행인』 『마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에고 3부작이라고 한다. 춘분 지나고까지에서는 감춰져있던 불안의 원인이 드러나고, 행인에서는 불안이 쌓이고 증폭된다. 마음에서는 자살로 갑작스럽게 진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행인에서 이치로는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거나, 내 앞에는 이 세 가지 길밖에 없네라고 말했다. ‘죽거나마음에서, ‘종교에 입문하거나에서, ‘미치거나행인에서 주인공들이 가는 길이다. 이렇게 나쓰메 소세키의 주인공들의 삶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화자(話者)는 어느 바닷가에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알게 된다. ‘는 도쿄로 돌아와서도 선생님 집을 찾고, 계속되는 방문과 교제 속에서 선생님의 학문과 사상에 존경심을 갖는다. 선생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에게 선생님은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가 떠드는 건 죄스러운 일이지”(41p)라고 말할 뿐, 그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는 과거의 어떤 일이 선생님을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짐작한다. 어느새 는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임종을 위해 떠나오던 날 선생님의 정원에 서있던 목서 한그루는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았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후에 는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암시와 커다란 의미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자신에게 보였던 선생님의 냉담한 태도는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할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24p)였음을 깨닫는다. 고향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그에게 선생님으로부터 한통의 편지가 도착하고 선생님의 비밀이 드러난다.

 

갱부의 주인공 청년이 막장에서 사내를 만나고 그의 숙소를 찾으며 한동안 그의 곁에 있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던 것처럼 마음의 화자 역시 선생님에게 비슷한 인력을 느낀다. 막장에서 만난 사내가 그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마음의 화자에게 선생님이 과거를 편지로 고백하는 것도 유사하다. 이렇게 그들은 그들의 삶을 고백함으로 청자(聽者)에게 삶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나는 내 과거의 선과 악 모두를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할 생각이네.”(274p)

 

지금의 화자와 같은 나이 때, 대학시절 선생님에게는 친구 K가 있었다. K는 이상주의자였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K를 돕고자 선생님은 자신이 묵고 있는 하숙집을 소개한다. 하숙집 딸(아가씨)을 사랑하게 된 K의 마음을 알고 선생님은 질투심에 휩싸이게 된다. 초조해진 선생님은 비겁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의 옆방에서 친구 K는 목숨을 끊는다.

 

행인에서 여인을 두고 지로가 미사와와 벌였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신경전은 마음에서 K로 인해 선생님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와 병행한다. 처음에는 없었던 아가씨에 대한 감정이 K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생겨난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이다. 행인에서 지로는

거기에 우리가 깨닫지 못한 암투가 있었다. 거기에 인간의 타고난 이기심과 질투가 있었다. 거기에 조화로도 충돌로도 발전할 수 없는, 중심을 결여한 흥미가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내 비겁함을 부끄러워했다. 동시에 미사와의 비겁함을 미워했다. 하지만 비열한 인간인 이상 앞으로 몇 년을 교제한다고 해도 도저히 그 비겁함을 없앨 수는 없으리라는 자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굉장히 불안해졌다. 또 슬퍼졌다.”(76p, 행인)

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슬픔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왜 우리는 그런 감정의 천박함을 알면서도 사로잡히고 끌려갈까?

 

친구 K의 사인(死因)을 생각하며, 처음엔 실연 때문이라고 단정했지만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갑자기 결심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선생님은 오싹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도 “K가 걸어간 길을, K와 똑같이 가고 있는 거라는 예감이 때때로 바람처럼 가슴을 가로질렀기 때문”(267p)이라고 한다.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지 못한 자의식 과잉 상태의 두 사람은 그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행인의 이치로는 '말라르메의 의자'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껏 의자 하나 잃고 마음의 평화가 흐트러진 말라르메는 행복한 사람이지. 난 이제 대부분 잃었네. 겨우 내 소유로 남아 있는 이 육체마저 거리낌 없이 나를 배신할 정도니까.”

(381p, 행인)

이 세상에 거할 곳이 없는 존재, 그 육체마저도 거절하는 것처럼 느끼는 그는 H와 동행한 여행에서 극도의 불안과 고독을 토로한다. 밥을 먹는 그는 육체의 거절은 극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위태롭다.

 

오랫동안 죽음을 생각하던 선생님은 노기대장의 죽음과 그의 글을 읽고 갑자기 실행에 옮긴다. “노기씨는 그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273p) 죽을 당시의 고통보다 살아온 35년이 더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자 죽음을 결행한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트리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도처에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을 그 주인을 배반한 다른 존재인 듯 쓰고 있다.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윤리적인 위상과 존재론적인 위상의 이중구조가 있다고 가라타니 고진은 이야기한다. 타자(대상)화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대상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양심을 위배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당시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시간이 지난 뒤 여전히 과거에 과오를 저질렀던 마음을 떨어뜨려 대상화 하지 못하면 그 안에 갇힌 신경증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반성도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것도 오직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절망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그는 변함없이 절망 속에 있는 것이며, 자신으로서는 얼마간 분투했다고 여길지라도 그렇게 분투하면 할수록 점점 더 절망의 늪에 빠질 따름이다. 절망이라는 차질은 단순한 차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관계하는 차질, 또 타자와의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차질이므로, 자기 혼자를 상대로 삼은 관계 속에서의 차질은 동시에 자기라는 관계를 만든 힘과의 관계 속에서 무한히 반영되는 것이다.” - 키르케고어, 죽음에 이르는 병

(31p, 나쓰메 소세키론 집성)

 

실존주의를 거론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때때로 몸서리쳐지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오래 지속될 때 우리는 그 절망에 갇히게 된다.

 

신경쇠약을 앓았었던 나쓰메 소세키는 그의 작품 안에서 주인공들에게 그의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 그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을까는 그의 에세이나 편지글들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유리문 안에서라는 수필을 보면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이런 만남들, 서신들, 그리고 작품은 그가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과 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깊은 연애에 뿌리내린 열렬한 기억을 빼앗더라도 그녀의 상처에서 떨어지는 피를 시간으로 씻어주려고 했다. 내가 본 그녀에게는, 아무리 평범해도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늘 삶보다 죽음을 귀중하다고 믿고 있는 나의 희망과 조언은 결국 불쾌감으로 가득 찬 이 삶을 초월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것을 실행하는 자신이 평범한 자연주의자임을 입증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다.” (228p 유리문 안에서」『긴 봄날의 소품)

 

오늘 행인마음으로 동아리 회원들과 토론하며, 만일 이 책들을 혼자 읽고 끝냈다면, 감상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 의미를 생성하는 만남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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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22 0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관계 맺기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쩐지 저는 둘 다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은 잘하는 것처럼 본다고 해도...


희선

그레이스 2021-10-22 06:24   좋아요 4 | URL

저도 잘 못합니다.
말씀대로 누구나 다 서툴겁니다.
지금 대하고 있는 그 사람은 유일한 사람이기때문에...^^

PersonaSchatten 2021-10-22 0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을 너무 메이지유신으로 인한 과거와 새 시대의 분리랑 관련 지어서 생각했었나봐요. 일본학 수업 때도 그렇게 리포트 써서 내고. 새롭네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10-22 06:27   좋아요 4 | URL
저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읽었어요.
일본학 수업 재밌겠는데요.
나쓰메 소세키 말고 다른 책들도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PersonaSchatten 2021-10-22 12:27   좋아요 0 | URL
근현대 문학 수업이라 시대별로 대표작만 쭉 읽었어요. ^^ 지금 생각나는 건 나중에 극우 정치인이 된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이랑 카프 문학처럼 좌파로 유명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이 언뜻 생각나네요. 한쪽은 한때 태양족을 양산하며 대히트했다는데 독자들이 무엇에 반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한쪽은 내용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데, 이게 팩트였다는 게 충격이라 두고두고 생각나고 좋았어요. 저는 전공투나 육체파 예술사조는 좀 이해를 잘 못했고 주로 여성작가나 전후파 문학을 잘 읽었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10-22 17:22   좋아요 1 | URL
전쟁과 문학, 고바야시 다키시를 읽는다라는 책을 주목했었어요
공산주의자로서 군국주의를 비판했던 작가고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반대하다가 사형을 당했다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였어요
게공선, 찾아봐야겠네요.

만화로 읽는 게공선이 있네요

PersonaSchatten 2021-10-22 13:32   좋아요 1 | URL
저는 蟹工船이 원제라 게공선이 익숙한데, ‘게잡이 공선’으로도 번역되어 있어요. 지만지 책도 이렇게 번역돼 있더라고요. 문학성 없다고 평가되어 왔지만 그가 취재를 하여 글을 쓰는 작가라 그런 것 같고요. 르포로 읽으면 일본의 조지오웰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 젊은 열정과 진지함이 가득한 작가였는데 이 작가가 오래 살아서 필력이 더 영글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저는 실제 사건이라 해서 생각이 많았기도 하고 감히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읽고 싶으셨다니 더요. ^^

그레이스 2021-10-22 13:35   좋아요 1 | URL
일본의 조지오웰이라...!
더 관심이 가네요^^
자세한 소개 넘 감사합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1-10-22 0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동아리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렇게 한 작품이 아니라 세 작품을 연결해서 페이퍼를 읽으니 소세키의 의식흐름이 잘 느껴지네요. 마음이란 참 어렵고 신비한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10-22 08:33   좋아요 3 | URL
사람들의 감상이 다 각각이지만 또 공감하고 끄덕이는 부분이 일치할때 희열도 있습니다.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깊어지는 걸 느끼구요.
마음 어렵죠!

mini74 2021-10-22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미를 생성하는 만남, 부럽습니다. 미치거나 죽거나 입문하거나. 이 말에 고뇌의 깊이가 딱 느껴져요 ㅠㅠ 그나저나 그레이스님 글 보며 야금야금 모은 소세키책운 언제 시작하나ㅠㅠ 싶습니다 ~~

그레이스 2021-10-22 08:56   좋아요 2 | URL
^^
미니님에게도 소세키 소설 좋으면 좋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2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 동아리 모임에 가시는가
봅니다.

저희 달궁 오프는 과연 언제나
가능할 지... 부럽삽니다.

그레이스 2021-10-22 09:59   좋아요 2 | URL
저희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어요
꿋꿋하게...ㅎㅎ

페크pek0501 2021-10-22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 을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 사 놓고 못 읽고 있는 책 중 하나예요.
올해 안으로 읽어야겠다, 로 정합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1-10-22 14:03   좋아요 2 | URL
응원합니다~~
으쌰으쌰
리뷰도 기대합니다.
전 사놓고 못 읽는 책이 한수레, 일거서라고 해야할까요. ㅋㅋ

서니데이 2021-10-22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들은 읽고 독서토론을 하시는 거군요.
혼자 읽는 것과는 또 다르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의 생각도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0-22 19:20   좋아요 1 | URL
예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시간 되세요

희선 2021-10-23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주가 참 빨리도 갑니다 그것보다 하루하루가 빨리 가는군요 요새는 해가 짧아져서 빨리 어두워지는데, 여전히 게으르게 지내서... 언제쯤 덜 게으르게 지낼지... 부지런하게 지내자가 아니고 덜 게으르게 지내기예요

그레이스 님 주말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10-23 10:49   좋아요 0 | URL
오늘 상강이 지나고 나면 입동이 오겠죠?

정말 시간이 빨리 갑니다.
한해를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계절이네요.
희선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래요~♡